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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본받지 말 것을 말씀하시다(2)
마태복음 23장 8-12절 / 1……8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10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1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태복음을 비롯한 4복음서에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자주 언급됩니다. 이들 외에도 사두개인, 엣세네인, 셀롯인, 사독인이 있는데, 사두개인1), 엣세네인2)과 함께 유대의 3대 종파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들 중 바리새인은 바리새파 사람들, 곧 바리새파에 속한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바리새인 중에서 서기관의 일을 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서기관은 율법사라고도 번역되고 있는데 율법학자 또는 율법교사, 곧 율법선생입니다. 이들의 유래에 대해서는 바벨론 포로기를 겪고 귀환한 유대인이 그리스(헬라)의 문화에 젖어 세속화가 가속화 되는 것에 대한 반동으로 B.C 5세기에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의 영향을 받은 자들이 경건에 힘쓰는 공동체를 형성해 나감으로 ‘경건한 사람들’을 뜻하는 하시딤(Hasidim)3)을 이루게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B.C. 2세기에 분할된 그리스 왕국 중에서 셀류쿠스 왕조4)의 안티오쿠스 4세(에피파네스)가 유다를 헬라화시키고자 하는 것에 대항하여 율법에 근간을 두고 엄격한 생활을 해나가며 메시야를 대망함에서 경건생활을 해 나가고자 하는 공동체를 이루어나감으로 하시딤이 형성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 하시딤은 안티오쿠스 4세가 예루살렘 성전 기물을 탈취하고 성전을 더럽히며 높은 제단과 신당, 그리고 우상들을 세우고, 돼지와 더러운 짐승의 피의 제물들로 제사를 드리도록 하고 안식일을 비롯한 절기의 구별이 없게 하는 등에 많은 유대인들이 동화되며 성전을 모독함에 있는 것에 분노한 제사장 맛다디아가 일으켜 싸웠으며 그의 아들 중 셋째인 '망치'란 뜻의 '마카비'로 불리는 유다가 뒤를 이어 싸운 전쟁인 마카비 전쟁(B.C. 167-142)에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바리새파는 이 하시딤의 후예들인데, 이들은 유대인을 헬라주의화 시키려는 정책에 반발하여 선민 이스라엘로서 하시딤이 추구해 나가는 율법에 의한 경건한 삶을 유대 사회 속에서 실행하며 살고자 하는 사람들로, 하시딤 중에서 외식주의 하시딤으로 있어나간 사람들이 바리새인이며, 은둔주의에 의한 신비주의적이며 금욕주의적인 하심딤으로 있어나간 사람들이 엣세네인 입니다.
바리새인이 율법 준수를 외식에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있어온 조상의 유전인 ‘장로들의 유전’과 관련이 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두 돌 판에 기록하여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 주신 율법인 ‘성문율법’이 있는데, 이것 외에 또 하나의 율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구전율법’입니다. 구전율법은 입에서 입으로 전달하여 온 율법을 이릅니다. 구전율법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1)첫 번째는 율법학자가 율법을 상세히 설명해 온 것이 있어왔습니다. (2)두 번째는 이 율법을 일상생활의 모든 면에 적용시킨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있어왔습니다. (3)세 번째는 예로부터 율법학자들이 인정해 온 관습이 있어왔습니다. 이 세 가지의 유형을 종합하여 ‘조상들의 유전’, 또는 ‘장로들의 유전’이라고 규정합니다.
마태복음 23장 1-7절에서 예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킬 것이나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 것을 말씀하셨으며, 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백성들에게 율법을 지킬 것을 말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자기들이 말한 율법을 따르는 실행에 있지 않고 자기들도 감당하기 어려워 할 수 없는 무거운 요구를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강요하며 지키지 못하는 백성들을 정죄할 뿐만 아니라, 자기들이 하는 모든 행위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해 왔던 것은 성문율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성문율법에 근거해서 사람의 입으로 말해 오고 또한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왔던 조상들에 의해 후손들에게 있어 왔던 전통인 ‘장로들의 유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장로들의 유전’에서 의해서 말해 오고 있는 모든 계명은 선하신 하나님의 뜻의 정신이 있는 것이기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말하는 바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따름에 있는 행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정작 자신들이 말하는 것에 있는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하나님을 섬김에 있는 생각을 마음에 품음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서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공경함과 율법의 정신에 의한 사고(思考)는 없었습니다. 다만 율법의 계명인 각 조항의 규칙만이 유대교의 엄격한 종교법으로 있을 뿐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유대교의 지도자요 선생으로 있으면서 사람들에게 존경받고자 했습니다. 해서 (1)기도할 때 이마나 팔에 매다는 성구함(경문)을 크게 만들어 달고 옷단에는 기다란 술을 달고 다니며 거룩하게 꾸밉니다. (2)잔치에 가면 윗자리에만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지도자요 선생이 앉는 높은 자리만을 찾습니다. (3)많은 사람이 왕래하여 다니는 길에 나서면 거드름을 피우며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랍비'라거나 스승이라고 불러 주기를 바랍니다.5)
이런 그들에 대하며 8-12절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랍비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는 경향은 제자들에게도 나타날 수 있는 유사한 위험성인 까닭에 이에 대한 주의를 갖도록 경계에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랍비’(8절), ‘아버지’(9절), ‘지도자’(10절)라고 사람들이 불러 주기를 바라고 이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6)
왜 그래야하는지의 이유를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상태를 들어서 말씀해 주십니다. ‘랍비’라고 불려야 할 분은 제자들이 아닌 그들을 가르치시는 ‘선생’ 한 분 이시고,6) 제자들은 랍비의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닌 다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땅7)에 있는 그 누구도 ‘아버지’라고 불리지 말 것은 그렇게 불려야 할 분인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며, ‘지도자’라고 불리지도 말 것은 그리스도 한 분만이 만유의 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공경함이 없으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아들이지 않은 까닭에 ‘선생’도 ‘아버지’도 ‘지도자’도 없습니다. 그런 그들은 자신들이 ‘선생’과 ‘아버지’와 ‘지도자’의 자리에 앉아 사람들에게 ‘선생’으로 있으려고 하고 ‘아버지’ 행세를 하려고 하고 ‘지도자’로 군림하려고 합니다. 해서 사람들에게 ‘선생’으로 ‘아버지’로 ‘지도자’로 불리기를 즐겨 합니다.
이는 선지자 말라기가 지적하며 책망한 “아들은 아버지를 존중하고 종은 주인을 존중하는 법인데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말 1:6)를 그대로 따르는 악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공경함이 없었으며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신 주인으로 인정함이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선생이고 아버지이고 지도자의 자리인 모세의 자리에 앉아 선생과 아버지와 지도자가 받을 영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 분 선생과 한 분 아버지와 한 분 지도자가 받을 영광을 가로채는 것임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마치 하나님을 공경하며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는 양 나타내야만 하니 외식에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서 예수님은 이를 끄집어 내셨는데, 마태와 마가는 이런 그들을 잘 알고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여 예수께서 말씀하셨음을 각각 다음과 같이 기록함으로 알려줍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마 15:8-9)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막 7:6-7)
현대어성경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번역하여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좀 더 쉽게 알 수 있도록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백성이 나를 섬긴다고 주장을 하지만 사실은 말로만 나를 섬기고 높이며 마음은 내게서 아주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이 나를 경외하며 제물을 바친다고 해도 아무 쓸모없는 일이다. 그들은 나를 세계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들에게 편리한 대로 생각해 내어 만든 규정에 따라서만 나를 높이고 섬기기 때문이다'.(마 15:8-9)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 위선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대해 이미 적절한 예언을 하였다. `이 백성이 나를 섬긴다고 주장을 하지만 사실은 말로만 나를 섬기고 높일 뿐 마음은 내게서 아주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이 나를 경외하며 제물을 바친다고 해도 아무 쓸모없는 일이다. 그들은 나를 세계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들에게 편리한대로 생각해 내어 만든 규정에 따라서만 나를 높이고 섬기기 때문이다.' 얼마나 옳은 말이냐!” (막 7:6-7)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선생’이 계시며 ‘아버지’가 계시며 ‘지도자’가 계십니다. 그 ‘선생’이요 ‘아버지’요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며 또한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렇게 한 분의 ‘선생’, 한 분의 ‘아버지’, 한 분의 ‘지도자’를 따르며 섬김에 있게 된 것은 한 성령을 받아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한 믿음으로 한 분 주님을 섬김에 있는 한 세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엡 4:4-5). 이런 제자들이 한 분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관계가 어떠하겠는지를 시편 147:11에서 보게 됩니다.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 도다.” 제자들은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봄에 있습니다. 그런 제자들을 대하시는 하나님은 크게 기뻐함에 계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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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두개인(사두개파)은 B.C. 2세기 경 마카비 전쟁의 승리로 등장한 하스모니안 왕조(B.C. 165-63) 때 사독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다수의 제사장들에 의해 형성된 유대교 종파 중의 하나로 귀족, 대제사장 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권력 있고 부유한 자들로 구성되었다.
2) 엣세네인(엣세네파)은 바리새인과 함께 하시딤의 경건주의를 계승하는 자들이나 바리새인이 유대 사회 속에서 율법 준수에 의한 경건주의에 있어나가는 것에 반해 이들은 은둔에 의한 금욕적인 삶을 가지며 성경의 묵상과 기도에 있으면서 주의 나라의 기다림에 있는 경건주의를 펼쳐나가는 특성에 의해서 다분히 신비주의적이었다.
3) 하시딤(Hasidim)은 ‘인자’, ‘인해’, ‘긍휼’, ‘사랑’, ‘은혜’, ‘은총’, ‘선대’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는 히브리어 '헤세드'라는 히브리어에서 유래되었다.
4) 그리스 제국을 이룬 알렉산더 대왕이 인더스 강 유역의 원정을 중단하고 돌아오던 중 32세의 젊은 나이에 말라리아 혹은 열병 등 원인 모를 병으로 죽은 후 그리스 제국은 넷으로 분할되어 통치되었다. (1)알렉산더 대왕의 고향인 마케도니아에 세운 ‘카산더’(Cassander) 왕조 (2)소아시아 지역에 세워진 ‘리시마쿠스’(Lysimachus) 왕조 (2)이집트와 퀴레네, 홍해와 동아프리카지역, 에게 해의 여러 섬들, 그리고 소아시아 해안과 갈리폴리반도의 일부에 세운 ‘프톨레미’(Ptolemy) 왕조 (3)옛 페르시아 제국의 대부분과 시리아북부, 메소포타미아 인도서북부, 아프카니스탄, 중앙아시아 투르케스탄까지 지배한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갖춘 ‘셀류쿠스’(Seleucus) 왕조. 이 당시 예루살렘을 포함한 유대는 프톨레미 왕조에 속하여 유대교 전통이 존중되고 히브리어 성경이 그리스어로 번역(70인역경)되는 등 자유로웠었으나, 셀류쿠스 왕조에게 빼앗겨져서는 헬라화 시키려는 이교 정책에 의한 온갖 악정과 핍박을 당함에 있었다.
5) 마가복음에서는 마태복음에서 보는 것 외에도 과부들의 재산을 염치없이 삼키면서도 자기들이야말로 친절한 사람인 듯이 꾸미고 다닌다고 하였다(막 12:40). 그런 그들을 누가복음에서는 겉은 깨끗이 씻지만 속은 항상 탐욕과 악독이 가득 차 있어서 더럽다고 하였다(눅 11:39).
6) ‘선생’에 사용된 원문의 단어는 ‘랍비’에 대한 또 다른 표현으로 그 뜻은 ‘가르치는 사람’, 곧 ‘선생’이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6:45에서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라고 말씀하여 예수께 나와 제자 됨에 있게 된 것이 그들을 가르치신 선생이신 하나님에 의해서 되어진 것임을 알려주었다.
7) ‘땅’에 사용된 단어는 ‘흙으로서의 땅’, ‘지구로서의 땅’, 또는 ‘세상으로서의 땅’을 뜻하는 것으로, 여기에서는 ‘세상’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