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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꼼수
하모호선장의 말이 끝나자 경매사가 박성기회장에게 빚쟁이처럼 따졌고 박성기회장은 계속 딴청만 부렸다. 급기야 경매사가 박성기회장의 멱살을 잡고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아마 하모호선장이 아니었으면, 힘으로 당하지 못한 경매사는 병원으로 갔을 것이고. 박성기회장은 경찰서로 갔을 것이 뻔했다. 하지만 머하노식당아주머니까지 합세해서 경매사를 달랜 바람에 최악의 사태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을 떼어 놓은 후 머하노식당아주머니가 경매사에게 말했다.
“아재, 젊은 사람하고 싸워 이기몬 머하노?”
“늙는 것도 서러운데 젊은 놈이 가지고 노는데도 가만있으란 말이가? 아지매 같으먼 오냐 오냐 잘한다 글칼끼요? 말도안되재.”
머하노식당아주머니가 다시 말했다.
“아재, 큰 나무는 그늘도 많고 바람도 많이탄다아이오. 사람이 쉬어가도 큰나무 아래 쉬지 쪼깬나무 아래 쉬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아랫사람한테 지는기요. 고만하고 여 앉으소. 얼릉!”
머하노식당아주머니가 경매사를 억지로 끌어 앉히는 사이 박성기회장은 돗돔을 안고 주방으로 들어갔고, 머하노식당아주머니의 중재에, 물고 뜯고 놀던 개 하품하듯 경매사의 표정도 갈아 앉았다. 바다사람의 싸움은 격렬하지만 금세 갈아 앉는다. 돌아서면 뒤끝도 없다. 꼭 울진항 아침바람 같다. 동해의 많은 항구 중 울진항 바람변덕은 유명하다. 아침에 죽어라 불던 바람도 해 뜨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그라진다. 그래서 한겨울에도 휴항이 거의 없고 바다사람들도 싸운 뒤 앙금이 없다.
박성기회장이 돗돔을 안고 들어간 주방에, 뒤따라 들어갔다 나온 하모호선장이 홀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방안으로 이끌었다.
“자, 방에들어가입시더. 쟈가 돗돔 사온기 알고봉께 경매사 대접할라꼬 산기네? 요새 젊은아들아이들치고 보기드문 경로사상이다.”
“경로사상? 지랄로?”
얼른 보면 욕 같은 말이지만 경매사가 남은 감정의 찌꺼기를 털어내는 신호다. 퇴역선원이 경매사에게 핀잔하듯 한마디 했다.
“야아야, 자네한테 머 나올끼 있다고 쟈가 비싼 돗돔 사왔겠노? 자넬 좋아항께 그런기지. 안그렇나?”
퇴역선원이 박성기회장을 쳐다보며 눈을 찡긋했다. 허지만 퇴역선원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다. 박성기회장이 돗돔을 낙찰 받아 양주까지 경매사가 끌고, 들고 오게 한 것은 계획적인 꼼수였다. 사람은 싸운 후 정든다고 했던 담임의 말을 실전에 응용한 것이다. 박성기회장은 수산물유통을 하려면 수족 같은 경매사 한사람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매사와 한판 붙으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물론 사후 처리는 머하노식당사람들이 맡을 것이라 예측하고 일을 벌인 것이다.
박성기회장의 치밀한 계획은 성공했다. 가져온 돗돔을 회치고 찌지고 볶고 구워서 거나한 돗돔파티를 열었다. 한창 돗돔 맛에 정신이 팔린 사람들 사이에 끼어 앉으며 머하노식당아주머니가 박성기회장을 보고 말했다.
“머하노? 얼릉 경매사아재한테 술한잔 안올리나? 그라고 아재도 글카몬 안된다. 그 무거운걸 나이든 사람한테 여까지 끌고오게 한거는 도가 지나친기다.”
“죄송합니다 제 장난이 지나쳤습니다.”
“고걸 장난이라고 친기가? 젊은 사람도 힘들낀데 나이든 사람한테 글카다 다치기라도 하몬 우짤끼고? 그런 생각도 몬해봤나? 아이고 쯧쯧.”
머하노식당아주머니가 혀를 찼다.
박성기회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2차 벌리는 줄 알고 모두 박성기회장을 올려다봤다. 엉덩이를 뒤로 빼며 얼른 몸을 옆으로 사린 경매사가 겁먹은 표정으로 박성기회장을 쳐다봤다. 박성기회장이 경매사 자리 앞으로 가서 버티고 섰다. 모두 긴장해서 아무 말도 못했다. 박성기회장이 갑자기 넙죽 엎드려 경매사에게 큰 절을 했다. 절하는 순간 경매사가 너무 놀라 비명을 질렀다.
“야가 사람 잡을라카나? 다 끝난 일 갖고.”
“어르신 정말 죄송합니다. 어르신 그냥 오시라면 안 오실 거 같아 제가 쇼를 좀했습니다. 넓으신 아량으로 용서해 주십시오.”
경매사 눈이 휘둥그레졌다.
경매사에게 큰절을 한 후, 박성기회장은 경매사가 들고 온 양주를 제일먼저 그윽하게 한잔 올렸다. 그 모습을 보고 퇴역선원이 고개를 꺼덕이며 말했다.
“쟈, 볼수록 배운기 많네? 죽은 사람한테는 술 먼저 올리고 산사람한테는 절하고 술 올리는기다. 허참! 기특하다.”
겁에 질렸던 경매사가 얼결에 양주를 받아 들었다. 사태를 파악한 경매사가 터프하게 웃었다. 긴장한 탓에 목소리가 끌끌했지만 표정과 말은 전혀 달랐다.
“괜찮타, 내 돌아서몬 없다. 자, 니도 한잔해바라. 학씨리 영국놈들 술이 좋긴 존네.”
박성기회장은 경매사의 잔을 받고 고개를 돌려 단숨에 마셨다. 그리고 양주 값을 경매사에게 건넸다. 두 손을 내젖고 사양하던 경매사가 방안사람들의 간청에 못 이겨 꼬리를 내렸다. 아침부터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머하노식당에서 간간히 새어나왔다. 그 웃음 속에 박성기회장의 한마디도 또렷하게 묻혀 있었다.
“어르신, 제가 성공하면 꼭 영국구경 한번 시켜드리겠습니다.”
아침 술판이야 바닷가에서는 자주 있는 흔한 일이지만, 이날 아침의 돗돔 파티는 흔한 일이 아니었다. 돗돔과 양주두병으로 박성기회장은 수산업계의 백전노장한사람과 머하노식당아주머니의 제안으로 퇴역선원을 그 자리에서 초대직원으로 채용했다. 머하노식당사람들은 아까워서 좀체 맛볼 수 없는 돗돔을 오전 내내 질리도록 포식했고, 남은 돗돔회와 매운탕은 점심시간에 머하노식당단골들에게 풀었다. 이일로 박성기회장의 소문은 울진항에 금세 파다하게 퍼졌다.
“머하노식당 조카가 활어도매상 낸다고 돗돔 잡았다카더라.”
“그 집에 조카가 언제부터 있었노?”
“영국에서 경매공부하고 왔다카던데?”
안희정이나 안희정 닮은 여자가 있었다면 연애하느라 결코 사업에 손대지 못했을 박성기회장은 오로지 유기오수산유통에만 전념했다. 처음엔 안희정을 좋아해서 스스로 안희정의 짝과 대립했지만 담임이 떠나고 난 다음부터 박성기회장은 안희정은 물론 안희정의 라이벌로 여겼던 짝마저 등한시 했다. 말도 없었고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누구나 가질 여자에 대한 호기심이나 연정 같은 묘한 감정도 없었다. 울진에 와서 하모호 타러 나갈 때 새벽라면 사러 들리던 24시편의점 알바가 박성기회장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박성기회장은 바람 빠진 타이어처럼 요지부동이었다. 오로지 유기오수산에만 전념했다.
박성기회장은 틈만 나면 생물신선도유지와 배송연구에 몰두했다. 수산업에서 가장 골머리 앓는 것이 수산물의 보존기간이다. 바다에서 나오는 모든 어류는 신선도가 우선이다. 신선도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산소공급장치와 배송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엔 그런 개발에 착수하는 기업은 고사하고 뜻을 가진 사람도 없었다. 특히 활어의 경우, 살아 있는 체 배송해야하기 때문에 대부분 배송처에 납품한 후 사후관리가 잘 안 되는 것이 수산업계의 공통적인 딜레마였다.
또 하나. 박성기회장을 유기오수산에만 전념하게 한 것은, 5년 안에 어머니의 장롱에서 턴 원금의 2배 반환과 아버지에게 갖은 고초를 겪게 한 외삼촌에게 샤일록의 차용증을 쓰게 하겠다는. 자신에게 스스로 한 맹세 때문에 지독하게 유기오수산에 매달렸다. 보통사람이면 잊혔을 사건이지만 박성기회장은 기성회비 털어 강릉으로 튀었던 그때의 고통과 아픔을 한 번도 잊어 본적이 없었다. 외삼촌에 대한 그의 앙심은 복수심이었다. 허지만 그 모든 정황들이 박성기회장의 도전기폭제였고 원기회복을 위한 피로회복제가 되었다.
부단한 노력 끝에 박성기회장은 수산물 부패를 무려 3배 이상 지연시키고, 활어를 원산지자연생태와 흡사하게 조절해주며, 친환경살균까지 해주는 전자동첨단산소온도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첨단시스템은 수생물活魚이 수조에 들어갔을 때, 빛, 환경, 온도, 수질 등에서 놀라운 성능을 발휘했다. 뿐만 아니라 수생물이 수조안에서 단시간에 적응하는 것은 물론, 먹이만 공급해주면 성장까지 하는 놀라운 기능을 가진 시스템이었다.
아직 누구도 시도해보지 못한 산소와 온도결합시스템의 방대한 프로그램은 오로지 유기오수산에 혈맹으로 투합한 6인의 경험과 백방으로 전자프로그래머를 찾아다닌 결과였다.
박성기회장이 개발한 첨단산소온도시스템은 막 부흥하기 시작한 한국의 IT산업과 맞물려 더 빛을 내며 7개국특허와 함께 AT625라 명명했다. 글자 그대로 Auto Thermostat자동온도와 박성기회장의생일인 1960년 6월25일에서 625만 발췌한 것이다.
일단 AT625시스템을 개발하자 외지의 배송 난 지역에도 무리 없이 전천후납품이 가능했고 배송처의 수족관에 활어를 풀어놓아도 전혀 폐사율이 없었다. 물론 계절도 타지 않았다.
두 번째 연구한 것은 배송시스템이었다. 인공위성이 없던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내비게이션을 이용할 수 없어 모든 수산업계의 배송시스템은 주먹구구식이었다. 그래서 개발한 것이 무선회로양방향통신시스템 TW625였다. 이 시스템 역시 ToWay에 박성기회장의 생일을 따 붙인 것이다. 배송기사와 오기오수산간의 모든 통신은 이 TW625로 관리했다.
이제 내가 더 설명해야 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한마디로 난리가 났다. 거래 한번 트려면 손바닥에 각질이 일어날 정도로 비벼대야 했지만 AT625와 TW625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거꾸로 된 것이다.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거래해달라고, 아니면 직접 찾아와 상담하자고 대드는 업체들 때문에 박성기회장은 도피해 다니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때맞춰 서해안에서 비브리오균과 살모넬라균 그리고 개체추적중인 맹독성물질 때문에 사람들이 계속 희생당하는 일까지 벌어지자 오기오수산은 미처 거래를 체결하지 못한 업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보름 뒤. 살모넬라와 비브리오가 동해까지 침투해 수산업은 파경으로 치달았지만 오기오수산은 그뜩 없었다. 아니, 정반대였다. 독점특수를 누렸다.
여기까지가 박성기회장을 단시간에 성공하게 한 비결의 전부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한 가지 기막힌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하늘은 선한 자를 돕는 것이 아니고, 앙심을 품은 자에게 기회를 준다는 사실이다. 나도 성공하려고 박성기회장보다 몇 배나 노력하고 고생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박성기회장은 단숨에 성공했다. 나는 무슨 일에나 가능한 선의로 풀려고 했고, 박성기회장은 한번 품은 앙심을 되갚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는 사실이 달랐다. 그러니까 하늘은 선한 자를 돕는 것이 아니고 앙심을 품은 자를 돕는 다는 것을 그때 비로소 통감했다. 만약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으면 이렇게 대들고 싶었다.
“당신이 진짜 하나님 맞아?”
유기오수산을 개업하고 4년이란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 흘러가버린 후, 박성기회장은 유기오울진수산센터 건립을 실행에 옮겼고 모든 매체는 그를 조명했다. 허지만 그의 고향, 얼굴과 나이, 이름은 아예 화면이나 지상紙上에 비치지도 않았고 그의 목소리는 변성으로 내보냈다.
나는 그런 박성기회장이 존경스럽다 못해 경이로웠다.
술잔에 술이 남았지만 첨작을 했다.
“선배님, 그때가 참 좋았던 시절이었습니다. 물불가리지 않았고 두려움도 몰랐고 세상이 모두 내 눈높이 밑에 있었으니까요. 허지만 도랑 건너면 강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박성기회장의 눈에 작은 물방울이 금세 떨어질 듯 말 듯 맺혔다.
나는 박성기회장과 헤어져 돌아오면서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구부정한 사람들과 뚱뚱한 사람. 그리고 뻣뻣하게 걷는 사람들과 LED광고판과 네온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인생이나, 종이 앞면 뒷면이나 무슨 차이가 있는가? 스쳐 가면 잔영만 남는 것인데. 그런 푸념에 젖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나는 박성기회장이 왜 실패했는지. 그에게 소상히 들었다. 보편적으로 생각하지 못할 기막힌 사건사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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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란 살아가는 가치관과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 주는 보석"
첫댓글 오늘도잘보고갑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그림이나글을 잘못올리는것은 정말컴맹은 맞는듯합니다
컴맹과는 상관없습니다..요즈음 컴퓨터 만지는 사람들, 그림 글 잘 안올려도 잘 읽기만 해도 모두 컴 박사들입니다
사천왕님도요....ㅎ
아~~~그냥 성공시키시지....벌써....
ㅋㅋㅋㅋ...그럼 인어뷰 님이 쓰도록해요. 나 오늘 부터 안쓸테니까....ㅋㅋㅋㅋ
박성기 지금 안 떨어트리면 너무 너무 이야기가 길어져요.....재미도 없어지고....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