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해후 邂逅
석양 무렵에야 적봉 부근에 다다랐고, 무리의 앞쪽에서 붉은 바위산 아래에서 일곱 마리 양을 몰고 가는 무리를 발견하였다.
밤새 두 마리가 또, 더 생겼다.
어린 새끼는 없는데, 마릿수는 어제보다 더 많아진 것이다.
분명 어젯밤에 또, 두 마리를 더 훔친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잠자리를 물색하고 있었다.
해는 이미 붉은 바위, 적봉 저 너머로 붉디 붉은빛으로 바위들을 채색 彩色하며, ‘오늘 하루를 이제 마무리 지으라’며 사람들을 다그치고 있었다.
여기저기 비교적 평탄한 지형을 찾아, 큰 돌은 한쪽으로 치워 바닥을 고르고, 이동식 게르 기둥을 세우고, 기둥 바깥과 그 위에 천막을 휘두르고 있었다.
오늘 쉴 잠자리를 만들고 있는 이주민들의 움직임이 부산스럽다.
곧 이어 저녁노을이 초원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도둑 양몰이들을 발견한, 한쪽 눈이 시퍼렇게 통통 부은 누리가 나선다.
오전보다 눈두덩이가 더 많이 부어있다.
외부 타격을 받아 부풀어 오른 상처 부위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 충격으로 터진 실핏줄이 아물어 빨리 낫는데, 하루 종일 몸을 움직였으니, 더 부어오른 것이다.
“이놈들! 양을 훔쳐 간 놈들이 도리어 사람을 패는 법이 어디 있느냐?”
“이놈이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군, 오늘은 네 녀석 그 입을 놀리지 못하게 만들어야겠다.”
상대방들은 어제는 일곱 명을 상대로 싸웠어도 손쉽게 이겼는데,
오늘은 머릿수가 줄어 겨우 다섯 명뿐이라, 가벼이 여겨 자신만만하다.
“적반하장 賊反荷杖도 유분수지 도둑놈이 도리어 큰소리치고 있네”
“이 녀석이 누굴 도둑으로 몰고 있어, 한 번 더 맞아봐라”
하더니 왼 손바닥으로 누리의 얼굴을 가격한다.
대비하고 있던 누리는 얼른, 백 부장 해천이 서 있던 오른쪽으로 피한다.
그래도 관록과 경륜이 엿보이는 해천이 믿음직스럽다.
그러자 상대방은 누리의 명치를 노리고 오른 주먹을 내지른다.
그런데, 해천 백 부장은 별 움직임이 없다.
여유롭게 상대방의 공격을 구경만 하고 있을 뿐이다.
누리는 할 수 없이 비틀거리며 또 뒤로 두 걸음 물러나 피한다.
그러자 상대방은 거듭 왼 다리로 누리의 가슴을 향해 올려 찬다.
그러자 해천의 옆에 있던 중부가 비틀거리는 누리의 팔을 잡아 자기 옆으로 슬쩍 당기면서, 오른발로 상대가 치켜든 왼 다리 뒤쪽 허벅지의 은문혈을 힘껏 올려 차버린다.
‘퍽’
상대는 급소를 제대로 맞았다.
누리를 앞 발차기로 가격하려고 다리를 높이 치켜든 자세 즉, 허벅지의 인대가 팽팽하게 당겨진 상태의 그 급소를 정확히 가격하니 위력은 배가 되었다.
상대방은 “억” 하는 소리와 동시에 뒤로 넘어지더니, 타격을 받고 마비된 허벅지를 두 손으로 감싸 안으며 괴로워한다.
돌연,
상대방 주위의 청년 세 명이 잽싸게 중부를 에워싼다.
그러자 자연히 주변 사람들은 자리를 내어주며 뒤쪽으로 멀찌감치 물러난다.
제대로 된 결투장이 마련된 것이다.
“이놈 봐라”
하더니 주먹이 날아오고 발길질이 쏟아진다.
그러나 전혀 당황한 기색도 없이 중부는 날아오는 주먹을 팔뚝으로 비켜 막아 내고, 발길질은 몸을 돌려 피하더니 유연하게 주먹을 날리고 발길이 올라간다.
상대방들도 날렵하게 피하면서 반격 反擊을 가한다.
제법 무술을 익힌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 실력이 되니 네 명이 일곱 사람을 이겼겠지’
서너 차례 서로가 치고받는 듯하더니 돌연, 중부가 제자리에 우뚝 서 버린다.
서로가 주먹질과 발길질로 바삐 겨루며 싸우다가, 갑자기 정지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자 상대들도 이상한지 주춤한다.
돌연,
중부의 주먹과 발길질이 번개처럼 날아간다.
왼 주먹은 앞쪽 상대의 관자놀이 옆의 태양혈 太陽穴을 번개처럼 후려치고, 거의 동시에 오른발은 돌려차기로 옆 녀석의 후두부를 정확히 가격하더니, 왼쪽으로 빙글 돌면서 오른손은 날카로운 수도 手刀로 변하여, 손 끝치기로 뒤쪽에 있던 녀석의 배꼽 위 명치에 비수처럼 꽂아버린다.
세 녀석이 동시에 뒤로 뻗어버린다.
모두 급소에 정확하게 한방씩 묵직한 선물 膳物을 받았다. 그걸로 상황 끝이다.
주위가 조용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결투가 끝나버린 것이다.
바로 옆의 사람들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
주위 사람들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특히, 서누리의 놀람은 대단하였다.
친구인 중부의 무술 실력이 저렇게 뛰어나다니...
누리의 눈동자가 경탄 敬歎의 빛을 발한다.
네 명이 땅바닥에서 끙끙거리며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다.
해천 혼자만 빙그레 웃고 있다.
그 자리에서는 중부의 실력을 제대로 아는 자는 해천이 유일하다.
그러니 해천은 도둑들을 제압하는데 나설 필요가 없었다.
물론,
해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중부의 실력이 대단한 줄은 미처 몰랐다.
그들 중 서누리의 부은 눈두덩이 속의 검은 눈동자가 반짝인다.
‘우리 일곱 명이 덤벼도 상대가 안 되었는데 혼자서, 그것도 단숨에 끝장을 내 버리다니’
모두가 감탄하고 있는데 그때,
돌연,
중부 앞에 늘씬한 낭자가 나타나더니 낭랑한 목소리로,
“사부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하면서,
왼 무릎은 땅에 꿇고 오른 무릎은 세우고, 두 손으로 포권을 취하여 오른쪽 무릎에 올리고는 다소곳이 고개 숙여 아주 정중한 자세로 인사를 올린다.
마치,
큰 제비나비가 보라색 엉겅퀴 꽃봉오리에 사분이 내려앉듯이,
격조 格調를 갖춘 우아하면서도 아리따운 동작이다.
중부의 무예 실력에 놀라 조용해졌던 좌중의 분위기가 순간 술렁인다.
중부는 나름 어이가 없다.
순간,
뇌리를 스치는 느낌이 온다.
그리고 보니 낭자의 목소리가 귀에 낯 설지 않다.
황망 慌忙 중에도 중부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게 깔고 굵직하게, 제법 위엄을 갖추어 말한다.
“우문청아, 오랜만이네”
중부의 화답 和答을 들은, 고개 숙인 낭자가 온몸을 부르르 떤다.
그러더니, 머리를 들어 중부를 올려다본다.
“사... 사부님, 어찌 제자의 이름을 아십니까?”
의혹으로 가득 찬 눈빛이다.
중부는 이제 상대방의 신분을 먼저 파악한 사실에 대한 자부심으로, 목소리를 좀 전보다 더 굵게 낮추어 웃으며, 여유를 부리며 천천히 말한다.
“하 하 하, 사부가 제자의 이름을 몰라서야 어찌 사부라 하겠느냐?”
“여... 역시, 사부님이십니다”
“험...”
“그런데, 저 역시 사부님의 존함을 알고 있습니다”
“어~, 그래?”
“예, 어김없습니다.”
여유를 부리던 사부가 도리어 조급해진다.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고음 高音으로 변하고, 입놀림이 빨라진다.
“어떻게 알았지? 그럼, 내 이름이 무엇인데?”
“천천히 말씀 올리겠습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역전되어, 오히려 제자가 여유를 부린다.
“그래, 일단 일어나서 얘기하자”
“넵, 사부님, 감사합니다”
우문 청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중부에게 맞아 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네 명을 보고는 큰 소리로 말한다.
“아우들도 모두 일어나 사부님께 인사 올리도록 하게”
그제야, 땅에 쓰러져 있던 네 명은 어기적거리며 주섬주섬 일어나더니, 중부를 보고는 두려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깊이 고개 숙여
“죄송합니다”라며 사과한다.
“아니, 나보다 어제 억울하게 맞은 내 친구들에게 사죄해야지?”
그러자 모두, 방향을 바꾸어 서누리와 병사 두 명에게 머리를 깊이 숙여 사과한다.
“어제는 몰라보고 실수하였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러면서도 한쪽 손들은 중부에게 얻어맞은 부위를 계속 어루만지고 있다.
급소에 맞은 통증이 쉽사리 가시질 않는 모양이다.
허벅지를 차인 녀석은 걸음걸이가 절뚝거리며 제대로 서 있지를 못하고,
관자놀이를 맞은 녀석의 눈두덩이는 벌써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명치를 손끝 치기에 찔린 녀석은 아픔을 참느라고 양손으로 배를 잡고 허리를 굽히며 인상이 찌그러져 있고,
승모근을 가격당한 녀석은 고개가 삐딱하게 한쪽으로 돌아가 있다.
“험~. 괞찬소”
서누리가 시원하게 사과를 받아들인다.
아니 벌써,
네 녀석이 중부에게 얻어맞아 땅바닥에 나뒹굴 때 속이 후련해졌었다.
그놈들이 중부에게 급소를 크게 한방씩 얻어맞아, 괴로운 표정과 더불어 흙바닥에 나뒹구는 볼썽사나운 몸짓을 적나라하게 서누리와 병사 두 명에게 여과 濾過 없이 보여주었다.
그것으로 이미 사과를 받은 것이나 진배없었다.
서누리와 두 병사의 굳었던 표정이 환하게 풀리는 것을 보고, 이를 확인한 중부가 우문청아 무리에게 말한다.
“됐고, 우리 양이나 돌려줘”
“...”
“왜, 답이 없지?”
우문청아가 답한다.
“아우들이 사부님의 무술에 겁을 먹고 감히 답을 못합니다. 잃어버린 양은 물론 모든 양을 다 가져가시면 됩니다”
“아, 아니, 우리 양만 가져가면 돼”
“아닙니다, 나머지는 사부님께 드리는 수업료 授業料입니다”
“내가 가르친 것도 없는데, 수업료는 무슨...”
“아닙니다, 앞으로 많이 가르쳐 달라는 뜻입니다”
“허~ 이 무슨..”
“사실은, 여기 있는 모든 양은 사부님께 수업료로 드리려고 준비해 둔 양들입니다”
이 말을 듣는 중부는 어이가 없다.
“아니, 내가 언제, 어디에서 나타날지, 어떻게 알고 ‘미리 준비해 두었다’라고,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오?”
“그 점은 잠시 뒤에 알게 됩니다”
“...”
그러자 성격 좋은 누리가 나선다.
“그래, 수업료 당겨서, 선금 先金으로 받읍시다”
해천도 누리의 말에 맞장구 친다.
“좋아, 누리 형제 말대로 하자”
서누리의 퉁퉁 부은 눈두덩이를 보니, 누리의 억울함도 어느 정도 보상해 주어야 할 것 같고, 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주 移住하는 요즘 분위기가 고기 쓸 일도 곧 생길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중부가 일행의 대표격으로 멋쩍게 말을 한다.
“그럼, 두 마리만 가져갑니다”
“그건 사부님 마음대로 하세요, 나중에라도 필요하면 또 가져가시면 되고요”
하여튼, 우문청아의 언행은 언제나 시원시원하다.
의외로 그렇게 도난 당한, 양 羊 문제는 선선하게 합의가 되었다.
그러자 우문청아가 말한다.
“이제 양 문제는 해결되었으니, 차후 일을 말씀해 드릴게요?”
“뭘?”
“사부님, 일단 저희 막사로 가시도록 하지요?”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니 중부는 일행들을 돌아본다.
그러자, 무리의 인솔자 引率者인 해천이 대신 답을 한다.
“그러지, 벌써 해는 지고 우리 숙소 宿所는 너무 머니까”
자신의 제의를 받아들이는 중부 일행을 확인하고는 우문청아는 자신의 아우들에게 무언가 몇 마디 지시한 후 앞장을 선다.
모두 우문청아를 따라 가까운 막사로 들어간다.
조금 전에 설치한 관계로 게르 안이 어수선하다.
그래도 이동 중의 임시 막사인데도 제법 공간이 넓어 열 명 정도는 충분히 앉고도 여유가 있어 보인다.
할 일 없는 누리가
“제가 양을 잡아 식사 준비할게요” 하면서 바깥으로 나간다.
그러자 병사 두 명도 게르 밖으로 누리를 따라 나갔다.
-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