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장,
지연은 부지런한 일상을 보낸다.
아들 창민이가 벌써 여섯 살이다.
이제 창민이는 매일 유아원에서 지내는 것을 실증내지 않고 잘 적응을 하며 아침마다 엄마와 인사를 한다.
아침 아홉시면 창민이를 유아원으로 데려다 주는 지연이다.
유아원은 가게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직장 여성들을 위한 유아원은 사설이어서 다른 곳보다 조금은 비싼 곳이지만 모든 시설이 잘 되어 있는 곳이다.
자정까지 맡길 수 있는 곳이지만 지연은 여섯시만 되면 창민이를 데리고 가서 집으로 돌아간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시간 이후부터는 창민이와 둘 만의 시간으로 정하고 함께 저녁을 먹고 창민이와 시간을 보낸다.
다행히 창민이는 어떤 음식이라도 가리지 않고 잘 먹고 성격도 쾌활하고 막힘이 없이 밝은 아이였다.
오늘도 지연이는 시간을 보면서 퇴근을 한다.
“미스 민!
잘 부탁해!“
“네, 사장님!
안녕히 가세요.”
민혜란은 늘 밝고 상냥한 웃음을 잃지 않는다.
지연이 믿고 모든 것을 맡기는 아가씨였다.
참으로 성품이 밝고 고운 사람이다.
자신이 퇴근을 하고 난 이후에는 모든 것을 맡아서 해 내고 있는 민혜란은 부모님도 없이 결혼을 한 오빠 네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아가씨다.
금년에 졸업을 앞두고 있는 예전에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바리스타 자격증을 획득하고 자신의 가게를 가지는 것이 꿈인 밝은 성품의 아가씨다.
지연은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며 유아원에 도착한다.
그 시간 서진은 우연히 “지연 커피 전문점“이라는 간판을 본다.
“응?
지연 커피 전문점?
이런 곳도 있었나?“
서진은 차를 멈추게 한다.
벌써 이곳에 내려 온 것이 일 년이 지났지만 보지 못했던 곳이다.
지연이라는 이름에서 아내를 생각한 서진이다.
행여 이곳에 내려와 가게를 차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차를 멈추게 한 서진은 차에서 내려 다시 가게를 살펴본다.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커피전문점이다.
서진은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간다.
“어서 오십시오.”
민혜란은 문을 밀고 들어서는 손님을 맞이한다.
진한 커피향이 코를 자극한다.
이미 테이블은 젊은 사람들로 꽉 차 있다.
서진은 일을 하고 있는 바리스타들을 하나씩 살펴본다.
그러나 아내의 모습은 없다.
서진은 창가 쪽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는다.
아내의 이름과 같은 상호에 발길을 끌어당긴 곳이다.
커피를 마시면서 그 예전의 아내의 모습을 떠 올린다.
참으로 아름답고 청순한 아내의 모습이다.
잊으려 해도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아내의 모습이다.
미치도록 그립고 보고 싶은 아내의 모습에 늘 가슴이 아프고 그리움에 온 몸이 타 들어 갈 것만 같다.
어디에서도 아내의 그림자도 찾을 수가 없다.
“지연아!
이렇게 당신 이름 두 글자에도 난 너무 반갑다.
당신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난 마치 당신이 이곳에 있는 것처럼 너무나 반갑다.
어디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진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자신과 대화를 나눈다.
지연의 친정에 자주 연락을 해 보는 서진이다.
그 어떤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자주 처가 쪽에 전화를 하면서 지연의 소식을 알 수 있기를 기다리는 서진이다.
그러나 지연은 아무런 연락도 없다.
애가 타 들어가는 처부모님의 심정을 서진은 느낄 수 있다.
서진은 한참을 그렇게 커피를 마시며 지연의 생각 속에 묻힌다.
서진은 가끔 퇴근을 하고 나서 그곳을 찾는다.
늘 지연이 퇴근을 하고 난 이후의 시간이다.
누구하고의 만남도 아니고 늘 혼자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깊은 생각 속에 잠겨 있다 돌아가곤 하는 서진의 모습을 서혜란이 기억을 한다.
매일 오는 것은 아니지만 잊지 않을 정도로 들려주는 손님이다.
“며칠 오시지 않네!”
민혜란은 서진의 모습을 생각하며 중얼거린다.
“누구 기다리는 사람이 있니?”
지연이 혜란의 말을 듣고 묻는다.
“제가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고요 한 두어 달 전부터 오시는 손님이 있는데 사장님 퇴근을 하시고 나서 오시거든요.
혼자서 오셔서 커피를 마시면서 늘 깊은 생각에 잠기시다 돌아가시는 분이신데 중후하시고 참으로 멋진 분이시거든요.
헌데, 며칠 오시지 않으시니 궁금하기도 하고 기다려지네요.“
”그래?
혹시 네가 반한 것 아니니?“
”사장님!
그분 연세가 아마 사장님과 비슷할 걸요?
그런 분을 제가 좋아할 리가 있겠어요?“
”사랑이라는 것은 알 수 없단다.
그렇게 자로 재듯 그런 사람은 안 된다고 생각해서 아니면 얼마나 좋겠니?
사랑에는 나이도 국경도 없다고 하잖니?“
”에이, 허지만 그분은 아니에요.
그런 분이 가정이 없으시겠어요?
그리고 전 사랑에 목을 매거나 미치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저는 사랑보다는 성공을 하고 싶거든요.“
혜란의 맑고 밝은 음성이다.
“나도 한 때는 그런 때가 있었다.
그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나도 모든 것에 당당하고 자신이 있었다.“
”어머?
사장님도 그런 로맨스가 있었어요?
혹시 창민이 아빠요?“
”내가 쓸데없는 말을 했구나!“
지연은 얼른 입을 다문다.
자신도 모르게 남편을 떠올렸던 지연이다.
늘 그립고 지독하게 보고 싶은 남편이다.
창민이가 자랄수록 더욱 남편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성품 또한 남편과 흡사해서 자신을 편안하게 해 주고 있는 것만 같다.
창민이는 칭얼거릴 줄을 모른다.
언제나 엄마가 하는 말이면 무엇이든 믿고 따르는 창민이다.
그런 창민이가 요즘에는 아빠 말을 한다.
“엄마!
우리 아빠 언제 와?“
아빠를 찾는 창민이에게 지연은 아빠가 외국에 나가 계신 것으로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아빠?
우리 창민이 아빠가 보고 싶어?“
”응!
창민이가 이만큼 컸는데 아빠가 창민이를 알아보지 못하면 어떻게 해?“
창민이는 자신이 자라는 만큼 아빠가 알아보지 못할 것을 걱정하고 있다.
“창민아!
우리 창민이가 아무리 커도 아빠는 한 눈에 아들을 알아본단다.
그러니 아무런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빠는 창민이가 안 보고 싶은가봐!”
“아빠도 창민이가 많이 보고 싶으시단다.
허지만 지금은 오실 수가 없으시니 어떻게 하지?
창민이가 참아 주었으면 하는데?“
”네!
참을 수 있어요.“
창민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이내 마음을 돌린다.
서진은 바쁜 일과 속에서 잠시 지연의 커피전문점을 잊고 지낸다.
이제 이곳의 모든 일에 바쁜 일상이 늘 시간에 얽매이게 하고 있다.
어머니를 만나러 서울에 올라갈 시간조차 없다.
한 달에 한 두 번은 올라가던 집이었지만 요즘에는 그럴 시간이 없다.
두 딸의 모습도 언제 보았는지 아빠로서 미안하다는 생각뿐이다.
그렇게 미정이가 떠나고 나서야 서진은 두 딸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
아무런 죄도 없이 태어난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 이름조차 자신은 별 의미도 생각도 없었다.
미정이가 지어준 딸들의 이름이다.
은하, 그리고 작은 딸 은비!
백일 만에 엄마하고 떨어져야 하는 작은 딸 은비다.
이제 은하도 엄마를 찾지 않는다.
아마 기억 속에 엄마의 기억이 잊어진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두 딸을 생각하는 서진의 마음은 아이들이 안쓰럽다.
다행히 할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잘 자라주는 딸들이 고맙다.
어머니는 그 아이들을 보시면서 웃음을 되찾으시곤 하신다.
부쩍 늙어버리신 어머니의 모습이 서진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심한 몸살을 겪고 나신 어머니는 예전과는 달리 많이 수척하시고 늙으신 모습으로 변하신 것이다.
자신으로 인해 하루도 마음이 편한 날이 없는 어머니의 모습이 안쓰럽고 안타까운 서진이다.
어머니의 활동 또한 전과 같지 않으시고 많이 줄어드신 모습이다.
거의 모든 일들을 유경미에게 맡기고 외출이 뜸하신 것이다.
모처럼 이른 시간에 회사를 나온 서진은 잠시 시간을 본다.
이제 여섯시가 막 넘어가는 시간이다.
벌써부터 숙소에 들어가야 할 일도 없다.
피곤한 몸보다는 마음에 위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발길은 자신도 모르게 커피전문점으로 향하고 있다.
습관대로 구석진 자리에 앉아 밖을 내다본다.
“응?”
아이를 데리고 승용차에 오르는 여인의 모습을 보다 놀라는 서진이다.
흡사 지연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지연이라면 아이가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멀어져 가는 승용차의 뒷모습을 눈으로 따라간다.
더구나 지연이가 이 먼 부산에 있을 리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모습이 비슷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는 세상이다.
주문을 하지 않아도 서진이 앞에 커피가 놓여진다.
에소프레소의 하트형이 멋지게 만들어진 커피의 맛과 향과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그리움이 묻어나는 에소프레소의 커피다.
쓴맛과 단맛과 신맛이 적당히 어우러진 맛이 마치 아내가 해 주던 그 맛이 그대로 살아 있는 듯한 맛이다.
하트형의 모양 역시 아내가 해 내던 아주 섬세하고 아름다운 모습의 모양 그대로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똑 같은 하트를 만들어 내면서도 아내는 좀 더 섬세하고 우아하게 만들어 내는 솜씨가 있는 것이다.
지연의 그 솜씨를 많이 닮은 민혜란의 솜씨였다.
이제 민혜란은 지연의 그런 솜씨들을 거의 완벽하리마치 배워 나가고 있다.
민혜란은 일을 하면서도 자꾸만 서진의 모습에 신경을 쓴다.
늘 혼자서 무슨 생각인가 깊이 하는 모습이 너무 외로워 보이는 모습이다.
함께 친구라도 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다.
그러다 혜란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하는 웃음을 터트린다.
행여 자신의 마음이 그 남자에게 향하는 것이나 아닌가 하는 어이없는 그런 웃음이다.
절대로 이성에게 빠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혜란이다.
더구나 저런 중년 남자와의 사랑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신으로 인해 오빠가 받을 충격을 생각하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서진에게 눈길을 머물곤 한다.
서진은 늘 하던 그대로 적당한 시간을 머물고는 가 버린다.
단 한 번도 그 어떤 사람에게도 눈길을 머물지 않는다.
그러나 들어서면서 늘 주방을 향해서 한 사람씩 바라보는 눈길은 여전하다.
마치 그 누군가를 찾는 듯한 그런 애타는 눈길이라고 혜란은 생각한다.
늘 같은 사람 같은 모습으로 일을 하고 있는 바리스타들이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같은 장소에서 같은 모습으로 일을 하고 있는 바리스타들의 모습을 한사람씩 보고 나서야 구석진 자리로 가는 서진이다.
서진이 나가고 나서야 혜란은 다시 피식하는 웃음을 터트린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이다.
혼자만의 상상에 어이없다는 듯 혜란은 다시 입가에 묘한 웃음을 짓는다.
“사장님!
내일 나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내일 무슨 일이 있어요?“
”네!
내일 아버지 제사인데 새언니도 일을 하는 사람이라 끝내고 돌아오면 제가 도움을 줘야 해서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빠져야지요.
내일 우리 창민이를 늦게까지 맡기면 되니까 안심하고 그렇게 해요.“
”창민이에게 미안해서 어떻게 해요?“
혜란은 어린 창민이가 얼마나 엄마를 기다릴까 싶어 마음이 안쓰럽다.
“이제 우리 창민이도 그런 사정을 말하면 알아들어요.
그리고 자주 있는 일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네, 감사합니다.“
혜란은 모든 것을 이해해주는 지연의 마음이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오빠와 둘이서 살아오면서 늘 부모님의 제사를 잊지 않고 지내고 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부모님 제사는 남매가 냉수 한 그릇이라도 정성을 다해서 떠 놓으며 정성을 다 해서 지내는 날이다.
다음날 지연은 창민이에게 말을 한다.
“창민아!
오늘은 엄마가 언제 데리러 온다고 했지?“
”밤 열시!“
“그래, 우리 창민이 울지 않고 엄마를 기다릴 수 있지?”
“네!
혜란이 누나가 없으니까 엄마가 그때까지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 그래도 엄마가 될 수 있으면 빨리 올게!“
“아니에요.
창민이는 이제 아기가 아니에요.
잘 놀고 있을 수 있어요.“
지연은 그런 아들을 품에 안는다.
“우리 창민이 언제 이렇게 많이 컸어?
이제는 엄마가 창민이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
”엄마!
창민이가 얼른 커서 엄마를 안심시켜줄게요.“
”그래, 엄마 가서 일 할게!.“
지연은 그렇게 창민이를 맡겨놓고 가게로 온다.
생각할수록 대견스럽고 가슴이 아프다.
저런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자꾸만 마음이 아파온다.
자신의 아들이 세상에 태어난 줄도 모르고 있을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그런 아빠를 만나지 못하게 하고 있는 아들에게 더욱 가슴이 아프다.
이젠 아빠를 찾는 아들이다.
친구들이 아빠와 함께 있는 모습을 부러운 듯이 바라보는 아들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그러나 이제 어떤 이유로 무슨 이유로 연락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사람의 가정에 풍파를 일으킬 마음이 없는 지연이다.
글: 일향 이봉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