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역 슈퍼슈퍼마켓
박몽구
밝은 빛밖에는 감지할 줄 모르는 불나방들
날갯짓 부산할수록
번득이는 빛에 갇혀 눈이 멀고 만다
촉수 좋은 모란역 슈퍼슈퍼마켓은
가슴선 깊게 드러난 탱크탑을 걸친 여자
더운 속 냉커피로 달래고
서울로 가는 출근 전철 시간에 쫓겨
삼각김밥을 찾는 신입사원,
먼 시장으로 발품을 팔지 않고
저녁거리를 준비하는 아낙들
은행 마감 뒤에 급전이 필요한 남자들…
성능이 좋은 흡판을 가진 문어처럼
죄다 빨아들이고서야 제풀에 쓰러진다
밤 새워 뜬눈으로 달려온 성주 참외
갈라진 농심처럼 까맣게 탄
진천 참깨들 소리 지를 새도 없이
멱살 잡힌 채 밀려나고
보름이나 걸려 바다를 건너오면서도
농약 범벅으로 더욱 파릇한 바나나가
길 가운데까지 나와 벌거벗은 채 유혹한다
이제 뙤약볕 자글거리는 난장에 앉아
불어터진 잔치국수 따위 말지 않아도 된다며
천장까지 쌓인 컵라면과 함께
화난 사람처럼 펄펄 끓는 물을 건넨다
어린 것들에게 시달리느라 축 처진 젖무덤
걱정하지 말라며 쇳가루가 든 분유를 들이민다
찬물에 손 담가 밥 짓는 시간을 돌려
손톱에 그림이나 그리라며
보름이 지나도 쉬지 않는 햇반을 상자째 안긴다
구태여 타는 볕 아래
손발 힘들게 부리지 않아도 된다고
바다 건너온 먹거리들
배달하느라 바쁜 오토바이들
느린 신호등을 피해 달리는 동안
써니를 보며 여고 시절의 추억이나 캐라며
슈퍼 건너 멀티플렉스관으로 통하는 엘리베이터
힘든 줄로 모르고 부산하게 오르내린다
모란역 슈퍼슈퍼가 엉덩이를 넓게 틀면서
묻어서 함께 떠밀려온
희고 미끈한 다리를 가진
오피스텔, 방송 댄스 교습소, 노래 주점, 네일 샵, 대낮일수록 어두운 안마시술소…
공룡 같은 허기를 메우는 동안
서울로 가는 뜨내기들의 성욕을 채우느라
음침하게 모자를 눌러쓴 모텔 뒷문들이
차단막 속에서 쉴 새 없이 철철철 흘러내린다
퇴색하고 너저분한 것들
죄다 쓸어 담아
손발을 부리지 않아도 좋은
편리한 세상이 열린 날
환한 불빛을 향해 달려갈 줄밖에 모르는
불나방들의 죽음을
읽는 눈은 감겨져 있다
선택을 망설일 겨를도 없이
슈퍼슈퍼의 큰 아가리로 쏠려 들어가며
사라진 토박이들의 그리운 이름들
다시 부르려 해도
끝내 닿지 않는 손
바코드 리더기 아래 뭉개져 있다
─문학 무크 『시에티카』 2011년 · 하반기 제5호
박몽구
광주 출생. 1977년 『대화』로 등단. 시집 『개리 카를 들으며』, 『마음의 귀』, 『봉긋하게 부푼 빵』, 『수종사 무료찻집』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