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세 살 줄어 생긴 에피소드 몇 가지
1956년생인 나. 호적에는 1959년생으로 되어 있습니다. 원숭이띠가 돼지띠로 바뀐 것이죠. 게다가 월일도 실제와 다릅니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철이 들 무렵, 어머니께 여쭈어보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너희 아빠가 출생 신고를 하였는데 아마도 음력생일을 양력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담당자의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짐작하건대 그 당시만 해도 부모들은 자식 출생 신고를 곧바로 하지 않고 서 너 살 먹은 후에 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밑 여동생은 나랑 세 살 터울인데 호적에는 1960년생으로 되어 있습니다.
나이가 세 살 줄어 어떤 일이 생겼을까요?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 입학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동네에서 함께 뛰어놀던 동갑내기들은 모두 취학통지서가 나왔는데 나만 빠진 것이죠. 또래들은 입학하는데 외톨이가 될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그제야 ‘큰일’임을 직감한 어머니께서 대책을 강구하셨습니다. 바로 청강생 입학. 다행히 학교에서 받아들여져 또래들과 함께 학교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만약 3년 늦게 학교 입학했다면….
고등학교 3학년 때 체력장이 있었습니다. 대입 예비고사에 체력장 점수도 20점 포함되었습니다. 100m 달리기, 턱걸이, 왕복달리기, 오래달리기, 던지기 등의 8종목이 있었는데 평가기준이 나이에 따라 적용되었습니다. 나이가 세 살 적게 된 나는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오래달리기를 하는데 힘이 들면 속도를 늦추어도 점수 획득하는데 지장이 없었습니다. 잠시 걸어가는 나를 보고 한 급우가 “어? 저렇게 해도 되는 거야?”라는 소리가 쟁쟁합니다.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등학교 때 대입원서를 쓰는데 낭패를 보았습니다. 담임 선생님께 공군사관학교 가고 싶다고 하니 격려를 해주십니다. 다음 날 담임의 호출을 받았습니다. “너는 성적이 괜찮아 사관학교에 지원하면 합격할 수 있지만 자격이 되지 않는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요? 당시 사관학교 지원에는 일정한 나이 제한이 있었습니다. 나는 나이가 줄어 지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호적이 제대로 되어 사관학교에 합격했다면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1990년 중반, ○○중학교 근무 시 전문직(일명 장학사) 시험을 보았습니다. 공부는 어느 정도해서 내 나름으로 합격을 기대했는데 좋은 소식이 오지 않습니다. 3수(修) 때는 오기가 생겨 도교육청 인사담당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문직 국어과에 응시한 ○○중학교 교사 이영관입니다. 합격 여부가 궁금합니다” 한참 있다 수화기 너머에서 답변이 들립니다. “아, 선생님은 합격자가 24명인데 25등이네요. 나이가 어립니다” 마치 나이가 어려 불합격시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지만 당시에는 장학사가 되려면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시대였습니다.
내 나이 35살(호적 나이 32살). 결혼을 앞두고 중매로 초등학교 교사인 대학후배를 만났습니다. 첫 대면에 상대방이 내 나이를 묻습니다. 장난기가 발동해 주민등록증을 보여 주었습니다. 교육대학 후배이고 내가 몇 회 졸업생이라 하면 나이는 미루어 짐작할 줄 알았습니다. 또 교제 중 ‘원숭이띠’라 하면 나이 계산은 저절로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내와는 일곱 살 차이인데 아내는 주민등록증에 나타난 출생년도를 보고 네 살 차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지금도 웃으면서 ‘사기 결혼’이라 우깁니다. 주위 지인들은 나를 ‘도둑놈’(?)이라 합니다.
장학관 근무 시절, 새로 선출된 당시 교육수장과 교육철학이 맞지 않아 원로교사가 되어 명예퇴직을 희망하였습니다. 정년퇴직 5년을 앞둔 시기였습니다. 원래 나이대로 하면 2년 앞두고 명퇴인데 공직에서는 호적 나이대로 해야 하므로 3년이 추가된 것입니다. 명예퇴직 수당을 호적 나이대로 하니 5년치에 해당하는 수당을 받았습니다. 부모님께 고맙다고 해야 하나요?
지금은 경로당 문화교실 댄스 강사입니다. 2019년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니 5년차 강사입니다. 해마다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최종합격자가 결정되는데 호적상으로 보면 아직 팔팔한 나이입니다. 올해 호적상 나이로는 64세. 100세 시대라는데 이 정도 나이면 청춘 아닌가요? 이제 호적 나이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 때문에 생긴 희로애락의 순간, 추억으로 여기며 인생을 돌아봅니다.
첫댓글 이 글은 2023.4 현재 연금지 투고 글입니다. 편집자에 의해 선정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