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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오늘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음에서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부활주일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모든 만물이 생기를 갖고, 파릇파릇한 싹을 틔우고, 생명의 찬가를 부릅니다. 불과 2달 전만해도 나무는 매말라 있었고, 산에는 하얀 눈이 덮여있었습니다. 그런데, 봄이 됨을 알리는 봄비가 내리자, 검단산을 비롯하여, 성내천 주변의 버드나무와 벚나무에는 싹이 틔었습니다. 특히, 벚나무는 벌써, 벚꽃을 피우기도 하고, 꽃봉오리가 맺혔습니다. 또, 하얀 목련, 보랏빛 목련이 펴서, 2024년의 새 봄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렇듯, 봄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보여주며,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봄을 가리켜, “부활의 계절”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부활의 약속은 성경에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움트는 풀 한 포기에도 약속되어 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은,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일점일획의 남김없이 다 이루십니다. 그러기에,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본문 3 - 4절을 보시면, “성경대로”라는 말이 연이어 두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강하게 강조하는 표현이며, 본문의 기록자인 사도 바울이 자신의 확신과 목격, 그리고, 여러 사도들과 성도들의 목격을 근거로 고린도 교인들에게 강조하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신앙은, “성경대로의 신앙”이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이 목격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간증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신지, 3일만에 무덤에서 부활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제자들에게 보이신 후, 40일 후에 500여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이 한 곳에 모여 기도할 때, 성령께서 강한 바람처럼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이러한 성령께서는 오늘날에도, 지금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들 위에 임하십니다. 성령께서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임하신 사건을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로마는 서기 313년에 밀라노 칙령을 발표함으로, 기독교를 국교화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 기독교 복음의 핵심을 은사에 두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아닙니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있습니다.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신 것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떠나서는 기독교의 신앙을 정립할 수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빠진 신앙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는 곳에는 희망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결코 환상이나 조작된 결과가 아니라, 분명한 역사적 사실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의 신앙 역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근거하여, 확신있는 참된 신앙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3 - 4절을 보시면,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합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우연한 돌발사가 아니라 성경의 예언대로 성취된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에 대해, 성경에서 가르치심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로서, 하나님 앞에 죄인된 우리를 의인으로 불러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임을 증거합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성경의 예언대로 된 일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성경대로”라는 말은, “구약 성경의 예언대로”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본절의 좀더 정확한 의미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구약성경에 예언되어졌던 것으로서 그것이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겁니다. 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부활 직후 예수의 부활을 허위인 것처럼 날조하려는 유대종교 지도자들의 음모 이래로 오늘날까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부인하는 주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사건을 하나의 신화적 사건으로 날조하여 사람들로 믿지 못하게 하려는 시도는 시대마다 계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의 죄인 됨으로 인하여 내어 주심이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은, 죄인된 우리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서 있게 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믿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란 우리에게는 전혀 없는 의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하신 겁니다. 이것을 은혜로 받게 된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럼,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이 알기 원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본문에 나와 있는 대로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시지낸바 되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 이것이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것은 성부 하나님께서 부활의 주체자가 되시며, 부활하신 성자께서는 아버지와 함께 그 영광에 동참함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문에서 강조된 “성경대로”라는 말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것은, 구원받은 자가 성경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라고 하신 겁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성경 앞에 비추어, 성경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머리와 가슴과 인생의 주인이심을 알고, 성경대로 무덤에서 사흘 만에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경배하며 동행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7 - 8절을 보시면,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베드로에게 먼저 보이신 후 열두 제자에게, 그리고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으며, 그 후 야고보와 모든 사도에게 보이시며 마지막으로 바울 자신에게도 보이셨다는 겁니다. 이는 그들 모두가 그리스도의 부활이 허구가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임을 증거하는 증인이라는 말입니다. 더욱이 주님의 부활을 목격했던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본서를 기록하던 당시에도 여전히 살아있었다는 본문 앞의 6절의 증거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확실성을 더욱 확고히 하는 진술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이 오백여 명이 넘는다는 것은 그것이 얼마나 분명한 사실인지 명백히 증거해 줍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사건의 사실성을 입증하고자 한다면 두 명의 증인만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부활은 무려 오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증거한 사실인 것입니다. 하지만, 마 28장을 보면 예수님의 부활 직후 무덤을 지키던 파수꾼들이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자 대제사장들은 그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예수님의 시신을 제자들이 도둑질하여 갔다고 소문을 퍼뜨리도록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예수의 부활에 대한 증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부활이 이렇게 대적자들에 의해 증거된 사실은 그것이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임을 입증해 줍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엄연한 역사적인 사실이며 결코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자연 법칙이나 과학적 상식을 초월한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루어진 명백한 사실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게바와 열두 제자와 오백여 형제와 야고보와 모든 사도와 그리고 바울 자신에게 보이셨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바울이 왜 이 말을 합니까? 그것은 그가 지금 전하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전부터 전해 내려왔던 이야기들을 자기 나름대로 편집한 것이라든지 혹은 자신이 직접 지어낸 이야기가 아님을 증거하는 겁니다.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여러 사람들과 자신이 직접 보고 체험한 이야기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역사적인 사실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럼, 바울 사도는 본문에서 왜? 부활의 목격을 이야기하겠습니까? 그것은 고린도교회 교인들 가운데 부활이 없다고 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런 자들에게, 그 부활하신 주님을 베드로가 만났고, 또, 열두 제자들이 보았고, 그 뒤 오백여 명의 제자들이 목격했고, 그 중에 태반이나 지금도 살아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그 후에, 야고보도 보았고,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바울 자신도 보았다는 겁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자신을 가리켜 “맨 나중”이라고 한 것은, 자기 뒤에는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여 사도라 칭함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인 자신에게까지, 부활하신 예수님이 만나주셨고, 또, 자기를 사도로 삼아주셨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이나 복음을 전하는 것이나 또,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 부활하심에 대한 목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 이후 즉, 바울이 본서를 기록할 당시까지 이들 가운데 거의 대부분의 목격자가 살아있다고 주장함으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과 확실성을 강하게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본 것을 “계속해서 증거하고 있다”고 합니다. 초대 교회의 제자들은 자신이 본 것을,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증거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행 1: 8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신 명령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우리도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내 자랑을 위해서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 내가 믿는 하나님이 나를 위해 행하신 일을 주변 사람들에게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과학적으로 증거되지 않을 뿐, 역사가 증거하며, 당시 많은 사람들이 증거한 것처럼,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세상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0절을 보시면,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헛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헛되다”에 해당되는 헬라어 “케노스 기노마이”는, “텅 비었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 자신에게 주신 은혜를 모두 쏟지 않고, 그대로 자기 안에 채워서 보존하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도 우리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함을 알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간직하고 있는 사도 바울은, 본문을 통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복음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합니다. 고린도의 사람들은 이방인으로서, 유대인들이 볼 때 원수 같은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들은 또 헬라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러한 이방인이었던 고린도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전 세계적으로는 물론 한 개인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누구도 모릅니다. 우리가 신약성경을 읽어보면 사도 바울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비롯하여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바울에게 부어진 것처럼, 바울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바울을 이끌어서 하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에서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과 함께 함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듣는 자들이 복음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모든 것에 대해 사도 바울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며, 고백하고 감사하고 증거하는 겁니다. 본문에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은, 어거스틴이나 프렌시스 같은 성자들도 많이 인용한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자신이 복음을 받게 되었다는 것으로, 사도 바울을 비롯하여, 모든 증거자가 자기 부인을 하는 가운데서 고백되어지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일부러 겸손한 것처럼 꾸미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제대로 받고 그 복음 안에서 올바르게 서 있는 자들은, 자신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죽도록 충성하고서도 내가 아니요, 내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그렇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진정 복음을 제대로 받은 자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강조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지니는 특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경배하고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성도된 우리에게 베푸신 큰 은혜가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충만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