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천-우주를 사랑으로 채우시는 하느님의 발자욱
“갈릴레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사도 1,11)
오늘 첫 독서에서,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이들에게 천사가 들려준 말씀이다.
오늘날 하늘의 개념은 성경이 쓰이던 시대와는 완전히 다르다.
하늘로 날아 올라가면 끝없는 우주가 나온다.
관측이 가능한 우주의 끝에 도달하려면 빛의 속도로 수백억 년을 가더라도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가는 동안에 우주는 계속 확장하니까….
그러니 하늘을 바라보는 승천 이야기는 오늘 독서 말씀으로 정리해야겠다.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 1,11 참조)
오늘 승천 이야기는 하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약속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분께서 처음 오실 때 그러셨던 것처럼
다시 오실 때도 우리를 잊지 않고 꼭 사랑이라는 모습으로 오실 것이라는 약속에 관한 이야기이다.
현대인은 신·구약성경 속 시대와는 모든 것이 달라진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이 시대의 인생은 그 시대 사람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삶의 연속이다.
피조물의 역사가 수천 년이 아니라 138억 년으로,
생활과 사유의 공간은 지중해 연안을 넘어온 지구 끝으로,
중력을 이해하고 나서부터는 태양계, 은하, 은하단, 관측이 가능한 우주, 미지의 우주로 넓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이 허구가 되었으므로 신앙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한다.
그들은 볼 수 없는 곳이 발견되어 더 이상 눈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이들과 같다.
오히려 신앙인은 세상을 만드신 하느님의 어마 어마한 규모에 감동한다.
6천 년짜리 세상을 만드신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영겁의 하느님이 그분이시다.
1977년에 발사된 우주 탐사선 보이저1호가
태양계 저편에서 카메라를 돌려 찍은 지구 사진은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불린다.
그 사진을 보노라면 이 우주에서 지구란 얼마나 작은 곳인가를 깨우칠 수 있다.
하느님은 시간과 공간으로 구현되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
지구뿐만 아니라 수천억 개의 별을 가진 수천억 개의 은하를 창조하신 분이시다.
우주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그 첫 순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임계국면(threshold)을 만난다.
그리고 그때마다 하느님의 엄청난 사랑을 만난다.
그 임계국면의 정점에 예수님이 계시고, 하느님의 사랑이 계신다.
그분은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사셨고, 어느 날 그 사랑으로 우리에게 오실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의 승천은 하느님의 사랑과 사랑 사이의 이정표다.
많은 사람이 버킷리스트를 가지고 산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을 담은 리스트다.
얼마 전에 나는 버킷리스트를 바꿨다.
2021년에 인류는 우주에 ‘제임스 웹’이라는 고성능 망원경을 띄웠다.
어느 날 그 망원경이 촬영한 화보를 보다가 입이 벌어졌다.
거기에서 6,500 광년 떨어진 독수리성운 안에 있는 ‘창조의 기둥’이라는 사진을 보면서
그 신비스러움과 아름다움에 푹 빠졌다.
그날 나는 버킷리스트를 바꿨다.
언젠가 꼭 그것을 내 두 눈으로 보고 싶다.
안 되면 하느님께 보여달라고 조를 것이다.
이제 내 버킷리스트는 이 세상의 풍경이나 죽기 전이라는 시간에 한정하지 않을 것이다.
승천은 이렇게 그분을 통하여 우주로, 사랑으로 나를 뛰어오르게 하는 약속이다.
이완희 스테파노 신부 여월동 본당 주임
주님 승천 대축일 (홍보 주일) 주보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