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이에 33대의 탱크가 진지를 통과해 후방에 구축된 포병부대로 몰려갔다. 인민군 전차가 지나가자 미군들은 "저 친구들이 우리를 못 알아봤기 때문에 지나간 것이지, 미군이 왔다는 사실을 알면 다시 돌아갈 거야"라고 떠들어댔다. 포 진지를 쑥밭으로 만든 탱크들은 계속 남쪽으로 달려가 국군 17연대와 미 34연대를 공격한다.
한편 탱크가 지나간 죽미령에는 기분 나쁜 정적이 감돌았다. 1시간 후 이번에는 긴 행렬의 트럭과 보병이 접근해 오는 것이 보였다. 보병의 행렬은 10㎞에 달했다. 바로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 최정예부대 4사단의 주력부대였다. 인민군 호송트럭이 가까이 접근하자 스미스 중령이 명령을 내렸다.
"저들을 엄벌에 처하라" 박격포와 Cal 50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인민군 트럭에 불이 붙고, 어떤 병사들은 공중으로 날아갔다. 곧 3대의 탱크가 접근해 포와 기관총을 난사했다. 인민군 병사들은 트럭에서 내려 총을 쏘며 포위망을 만들기 시작했다. 전투는 3시간이나 계속 벌어졌다. 스미스 부대는 포병과의 연락도 끊기고, 총알도 떨어져 더 이상 싸울 수 없었다.
◈ 자만했던 미 24사단, 패주에 패주를 거듭하다
인민군 탱크의 공격을 받자 사기를 잃고 천안으로 도망치는 미 34연대
스미스 중령은 오른쪽에 있는 C 중대를 먼저 철수시켰다. 그러나 B 중대의 2소대에는 철수 명령이 전달되지 않았다. 중상자들은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다들 뿔뿔이 흩어져서 안성을 거쳐 천안으로 후퇴했다.
540명(포병부대 포함)의 스미스 부대원 중 150명이 전사하고, 31명이 실종되고, 대부분의 장비가 인민군 수중에 들어갔다. 이렇게 많은 피해를 보고 스미스 부대가 올린 성과는 불과 7시간 동안 적의 진격을 지체시킨 것이다.
인민군의 포로가 된 스미스 부대원들
한편, 스미스 부대 후방에서 인민군과 전투를 벌였다는 국군 14연대의 사망자는 고작 2명(또는 6명)이다. 제대로 전투 한번 못하고 탱크의 공격을 받자 정신없이 도망친 것으로 추정된다. 14연대 후미에 포진하고 있었던 미 34연대도 마찬가지였다. 스미스 부대가 참담하게 깨졌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에 휩싸였다.
결국 인민군 탱크가 나타나자 전의를 상실하고 정신없이 서둘러 천안으로 후퇴한다. 이 부대는 그 뒤의 연이은 전투에서 급속히 붕괴돼 완전히 해체되고 만다. 미 24사단은 대전으로 밀려갔다가 인민군의 우회 포위 전술에 휘말려 겨우 옥천으로 빠져나가는 데 성공한다. 이 대참패에 이어 이번에는 딘 사단장이 인민군의 포로가 되는 수모를 겪는다.
이승만 대통령(왼쪽)이 인민군에게 잡혀 3년간 포로생활을 하다 돌아온 윌리엄 딘 소장(가운데)에게 무공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오른쪽은 미 극동군사령부 마크 클라크 대장.
딘 소장은 최전선에서 바주카포까지 쏘면서 부대를 지휘했지만, 낙오되면서 포로가 되어 휴전이 돼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특수 임무를 완수했나?
아무리 적을 얕잡아봐도 수만 명이 몰려 오는데 달랑 540명의 부대를 최전선에 배치한 의도를 알 수가 없다. 미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을 눈으로 보여주면 인민군이 놀라서 도주할 것이라는 오만에 빠진 것이 아닐까? 맥아더 사령부는 4달 후 청천강 이북으로 올라갈 때 똑같이 오만에 빠져 다시 한 번 형편없이 깨지게 된다. 훗날 낙동강 전선에서 포로가 된 인민군 제2군단 작전참모였던 이학구 총좌의 증언을 들어보자.
미군의 참전에 놀랐으나 사기가 오히려 올라갔다고 증언한 인민군 2군단 작전참모 이학구 총좌.
"그때 미국이 전쟁에 개입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산에 미군이 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들 놀랐다.그러나 초전에 격파해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맥아더 사령부의 의도와는 달리 '미군에게 한 방 먹였다'는 자신감만 불러일으켰다.스미스 중령은 회고록을 통해 "나의 부대는 적의 공격을 불과 몇 시간밖에 지연시키지 못했지만, 이 전투는 '미국은 싸워보지도 않고 우방과 동맹국의 파멸을 결코 방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고했다"고 평가했다.
미 육군사관학교의 워싱턴 홀에 가면 미군이 참전한 여러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그려 넣은 '스테인드글라스화'들이 벽에 장식돼 있다.
워싱턴 홀의 '스테인드글라스화' (사진=6.25전쟁60주년기념사업회 제공)
특이한 것은 이 그림 모두 한심한 이유로 패전한 전투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스미스 부대의 '오산전투'이다. 그만큼 미군 역사에 오점을 남긴 충격적인 패배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승전이 아닌 패전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보면 미군의 저력을 절감하게 된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