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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나무
-현대인의 신화를 만들어 가는 나무
송기호, {신화와 문학에 뿌리내린 나무 이야기}에서
커피나무는 꼭두서닛과의 늘 푸른 관목이다.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열대작물이며, 높이 8-9미터까지 자란다. 나무껍질과 꽃은 흰색이며, 열매는 짙은 붉은색으로 자줏빛을 띤다. 열매 안에 두 개의 씨가 있는데, 이것이 커피의 원료가 된다. 커피는 현재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음료 중 하나이다. 커피는 수백 년간 세계 여러 지역으로 퍼져가면서 소비되는 방식과 관련된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 온 음료이기도 하다. 이제 어디에서나 수많은 사람이 즐기는 음료의 원료인 커피콩 열매를 맺는 커피나무야말로 현대인의 신화를 구축하는 나무다.
세계적으로 많이 소비되는 커피는 아라비카와 로부스타 커피인데, 각각 다른 품종의 커피나무에서 열매를 얻는다. 아라비카 커피나무는 열대나 아열대지역의 해발 일이천 미터 이상의 서늘한 고산지대에서 잘 자란다. 브라질이 최대 생산국이며, 콜롬비아와 에티오피아가 뒤를 잇는다. 커피는 대부분 소규모로 운영되는 가족 농장에서 재배되는데, 다른 작물과 섞어 재배한다. 아라비카 커피의 오래된 품종은 반그늘에서 잘 자라기에 과일나무 같은 키가 큰 다른 작물 아래 심는다. 그늘 재배(shade grown) 방식이다. 이 경우 커피나무 사이의 간격이 클 수밖에 없다. 커피나무는 대개 사람의 어깨높이 정도까지만 자라게 하는데,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손으로 수확할 때 편하기 때문이다. 한편 대형 기업농장에서 재배하는 새로 개발된 품종은 직사광선이 비치는 곳에서 잘 자라기에 촘촘하게 심는다. 이런 방식으로 재배한 일광커피(sun coffee)는 수확할 때도 기계를 쓰는 탓에 덜 익은 열매까지 함께 수확되어 품질이 떨어진다. 아라비카 커피는 세계적으로 한해 675만 톤(2021~2022년 통계) 정도 생산되는 데, 브라질에서 절반 정도 생산된다. 그리고 브라질 국민은 자국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소비한다. 개인 기준으로 볼 때 커피를 제일 많이 마시는 사람들은 덴마크와 핀란드, 스웨덴, 캐나다 같은 북유럽과 북미 국가 사람들이다.
로부스타 커피나무는 상대적으로 비가 많이 오는 적도 근처 지역과, 따뜻하고 해발 고도가 낮은 곳에서도 잘 자란다. 아라비카 커피보다 강한 맛이 나고, 맛이 떨어지며, 인스턴트커피에 많이 쓰인다. 커피를 마셨을 때 입안에서 느껴지는 밀도감이나 중량감을 뜻하는 바디감을 높이기 위해 아라비카 커피에 섞어 쓰기도 한다. 로부스타 커피는 커피를 추출할 때 나오는 황금색 거품, 이른바 크레마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에소프레소 커피에도 쓰인다. 아라비카 커피보다 세계 생산량이 적으며, 베트남, 브라질, 인도네시아, 우간다 같은 나라가 주요 생산국이다. 전 세계적으로 1억 명 이상이 커피나무를 재배하여 생계를 유지한다.
커피는 10세기경 페르시아의 의사 라제스가 커피의 의학적 효능을 언급하며 처음 문헌에 등장하지만, 커피나무는 이미 그 이전 수백 년간 재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커피가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가 된 기원에 대해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지만, 아프리카의 고대 아비시니아 땅, 즉 지금의 에티오피아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커피의 맛을 처음으로 느낀 생명체는 사람이 아니라 염소였다. 옛날 에티오피아에 어린 염소 목동이 있었다. 이 소년은 낮 동안 염소를 데리고 산과 들로 다녔는데, 염소들은 자유롭게 풀을 뜯으며 다니다가 늦은 오후 무렵 소년이 피리를 불면 소년에게로 와서 집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소년이 여느 때처럼 피리를 불어도 염소들이 보이지 않았다. 염소를 찾아 나선 소년이 한곳에서 염소들을 발견했는데, 염소들은 매우 흥분한 상태로 이리저리 뛰거나 서로 머리를 부딪치고 뒷발로 서서 울고 있었다. 소년이 영문을 몰라 염소들을 자세히 관찰하니, 어떤 나무의 잎과 빨간 열매를 뜯어먹고 있었다. 염소들이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한 것은 그 나무의 잎과 열매를 먹은 탓임이 분명했다. 염소들은 한참이 지나서야 흥분이 진정되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자 소년도 호기심을 느껴 그 나무의 잎과 열매를 먹었더니 염소들처럼 기분이 좋아지고 피로도 잊게 되었다. 그 나무가 바로 커피나무였다. 소년은 수도원의 사제에게 그 나무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 후 커피가 에티오피아 전역에 퍼지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서 재배하기 시작한 커피는 교역을 통해 홍해를 거쳐 아프리카 건너편 아라비아반도로 퍼졌다. 아라비아 사람들도 커피의 특별한 맛과 그 음료가 주는 놀라운 효과에 매료되었다. 아라비아에서 커피는 처음에 수피교 수도승들이 밤늦도록 기도할 때 졸음을 쫓는 효과가 있어 종교시설에서 마시다가, 점차 일반인에게로 퍼져 나갔다. 부유한 사람들은 집에 커피 마시는 전용 공간을 두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커피 마시는 공간인 카베 카네스라는 커피하우스가 생겨났다.
16세기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튀르키에인들이 예멘을 점령했는데, 그곳의 항구 도시 모카를 통해 커피가 다른 곳으로 퍼져 나갔다. 커피가 모카에서 이집트의 수에즈로 가고, 거기서 이탈리아의 나폴리나 베네치아 같은 도시국가로 건너갔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커피 무역을 통해 큰 이득을 보자 커피를 엄격히 통제했다. 예멘에서만 커피나무를 재배하고 모카를 유일한 커피 수출 항구로 삼고, 커피나무나 열매가 밖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단속했다. 커피 열매는 싹이 트지 않게 물에 끓인 것이나 볶은 것만 밖으로 나가는 것이 허용됐다. 그러다 17세기 들어 한 무슬림 순례자가 커피 씨앗 일곱 개를 몰래 인도 남부지역으로 가져가 싹을 틔웠다. 또 당시 해상 무역을 주도하던 네덜란드 상인들이 예멘의 아덴에서 네덜란드로 커피나무 묘목 한 그루를 몰래 가져가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네덜란드인들은 그 나무에서 얻은 열매로 스리랑카에서 커피나무를 재배했다. 또 다른 네덜란드인들은 인도에서 재배하던 커피나무를 인도네시아의 자바섬과 수마트라섬 등 동남아 지역에서 재배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로부터 커피나무가 카리브해와 중앙아메리카 그리고 남아메리카로 전해져 재배되었다. 커피의 전파 경로에 등장하는 모카와 자바라는 지명이 1700년대에는 유명 커피 브랜드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했다.
커피가 세계 여러 곳으로 퍼져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커피에 대해 다른 반응을 보였다. 아라비아반도로 건너간 커피가 각성 효과가 있어 기분을 좋게 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상업적인 커피하우스가 많이 생겨났다. 그런데 사람들이 커피하우스에 모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이도 있었다. 메카의 통치자였던 카이르 베그는 자신을 조롱하는 풍자시의 근원지가 커피하우스라는 것을 알고는 커피를 코란이 금지하는 음료로 규정했고, 사람들이 커피하우스에 모이는 것을 막았다. 그런데 커피를 즐겨 마시던 최고지도자 술탄이 그 금지령을 폐지했다. 그러나 16세기 내내 아라비아반도의 여러 곳에서 커피는 엄격하게 금지되었고, 커피를 마시다 잡히면 엄한 벌을 받았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커피는 모두가 즐기는 음료가 되었다.
커피가 유럽에 전파되는 과정도 비슷했다. 가톨릭 사제들이 교황에게 커피를 금지해달라고 청원하기도 했지만, 커피가 퍼져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의학적 효능도 있었지만, 커피가 유행하게 된 더 큰 이유는 문화적 효능 탓이었다. 프랑스에서 사람들은 아라비아에서 건너온 낯선 음료를 중심으로 모여 앉아 잡담을 나누고 정보를 교환했다. 더 진지한 이들은 정치, 문학과 예술 이야기를 나누었다. 피터 버크(Peter Burke)는 커피하우스가 지식의 형성과 전파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커피가 평범한 음료가 아니었던 셈이다. 프랑스혁명 이후의 프랑스에서는 전에 없던 새로운 풍경이 생겨났다. 커피하우스에서 남녀가 대등하게 모여 앉게 되었으니, 커피가 남녀평등을 앞당기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영국에서도 커피는 큰 인기였다. 1700년경 런던에 커피하우스가 이천 개 정도 있었다고 하니 그 인기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영국에서는 오랫동안 술이 여러 사회 문제의 원인이었는데,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면서 술을 덜 마시게 되었다. 커피가 영국인들에게 분명한 건강상의 이득을 가져온 것이다.
커피가 퍼져 나가는 과정에서, 커피는 사람들을 한자리로 모으는 강력한 요인이었다. 사람들은 커피하우스에 모여 정치뿐만 아니라 문학과 예술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의견을 교환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커피하우스는 새로운 지식이 교환되고 퍼져 나가는 중요한 장소이기도 했다. 커피는 계몽기 유럽의 시대정신과도 잘 맞았다. 피터 다이어몬드(Peter Diamond)에 따르면, “삼백 년 전, 계몽의 시대에 커피하우스는 혁신의 중심지였다. 그 시절 사람들은 대부분 맥주를 마시는 대신 커피를 마셨고(말하자면, 술로 몽롱해진 대신 각성 상태가 되었고), 새로운 생각들이 폭발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커피하우스에 모여, 술에 취해 몽롱해진 상태에서가 아니라 맑은 정신으로, 아니 약간은 들뜨고 흥분한 상태에서, 사람에 대한 새로운 인식, 그리고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커피야말로 계몽의 정신을 가장 잘 반영한 음료였다.
에티오피아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커피 음료가 세계로 퍼져 나가서 수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다 보니, 커피에 대해 기억할 만한 말을 남긴 사람도 많다. 16세기 이슬람 신학자이며 커피 애호가이자 옹호자였던 셰이크압달 카디르(Sheik-Abd-al-Kadir)는 “커피는 보통 사람의 황금이다. 황금처럼 모두에게 호사스러움과 고귀함의 기분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커피가 가난한 보통 사람도 누릴 수 있었던 사치였던 것을 잘 말해준다. 『걸리버 여행기』로 잘 알려진 아일랜드 소설가인 조나던 스위프트(Jonathan Swift)는 “커피는 우리를 진지하고 엄숙하고 철학적으로 만든다”라고 말했다. 그에게는 커피가 그저 이른 아침 아직 잠이 덜 깬 사람들을 깨우는 각성제나 한가한 잡담을 나누며 마시는 음료가 아니라, 진지하고 철학적인 생각을 돕는 음료였던 셈이다. 미국 건국기의 대통령이었던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커피, 문명 세계의 최고 음료”라고 말했다. 커피가 현대 문명에서 가장 주목받는 음료가 되리라는 것을 예견했던 셈이다. 음악의 아버지로 알려진 바흐도 커피에 관해 재미있는 말을 남겼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마치 구운 염소고기를 말려 놓은 것 같은 상태가 된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좋은 곡을 작곡할 만큼 몸과 정신이 유연한 상태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에게는 커피가 예술적 영감을 돕는 음료였던 셈이다. 「황무지」라는 잘 알려진 시를 쓴 엘리엇(T. S. Eliot)은 다른 시에서 “나는 내 삶을 커피 스푼으로 재어 왔다”라는 유명한 구절을 썼다. 커피가 현대인의 정체성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는 말일 것이다. 나무와 연결된 여러 신화가 현대에 들어 본래의 맥락이 잊히거나, 아예 사람들의 기억과 삶에서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커피는 오히려 그 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커피가 인간의 삶 속에 들어온 지도 오래되었고,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이 커피에 부여했던 의미가 변화를 겪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커피에 부여하는 의미는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으며, 커피는 현대인의 삶에서도 새로운 신화를 계속 만들어 가고 있다.
커피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생산한다. 그러나 커피를 직접 재배하고 생산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소득 몫이 너무 적다는 점이 꾸준히 지적되고 있다. 커피 생산자에게 소득이 더 돌아갈 수 있는 윤리적 커피 소비를 원하는 이들이 선택할 방법이 몇 가지 있다. 우선 그늘에서 재배되는 그늘 커피를 소비하는 것이다. 그러면 커피 노동자의 노동 조건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유기농 커피는 대부분 그늘에서 재배된다. 공정무역 커피는 중간상인에게 가는 몫을 줄이고 생산자에게 최저가격을 보장하여 더 많은 몫이 돌아가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소비 방식이다. 열대우림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탄생한 민간기구 열대우림동맹(Rainforest Alliance)과 커피 노동자의 삶을 더 좋게 하고 생물 다양성을 보존할 목적으로 생겨난 민간기구 국제보호기구(Conservation International)에서도 윤리적으로 생산되는 커피를 인증해주고 있다. 이들 기구가 인증하는 커피를 소비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저자 송기호 교수: 송기호 교수는 충북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미시간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한남대학교 영문과에서 영시를 가르치고 있다. 사회적 주변부로 내몰린 사람들의 삶을 다룬 문학작품에 관심이 많으며, 영국의 노동자 시인들에 관한 여러 편의 논문을 썼다. 최근에 쓴 책으로 『시간을 물고 달아난 도둑고양이』가 있다.
송기호 교수의 {신화와 문학에 뿌리내린 나무 이야기}는 서양의 신화와 문학 속에 나오는 ‘나무학學’이며, 나무를 통해 인간 존재를 성찰하려는 ‘인문학적 교양서’라고 할 수가 있다. 영문학자로서의 서양의 신화와 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함께, 그의 ‘나무학’을 정립하고, 서양의 로버트 프로스트와 휘트먼을 비롯한 유명 시인들의 시를 직접 번역하여 참나무를 비롯한 스무 종의 나무를 소개한다.
한국 인문학의 역사상 대단히 아름답고 뛰어난 송기호 교수의 역작이라고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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