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6일 수.
5.16 군사혁명 30주년이다. 여전히 계속되는 군인정치는 언제나 종말이 올지 의문이다.
2. 시흥병원에서의 첫 수술(12.4-7)
시흥병원에 도착한 것은 알겠는데 수술실에 들어간 것은 기억에 희미하다. 수술후에 입원실에서의 일은 기억난다. 대변이 마려 억지로 일어나 변을 봤다. 수술 직후에는 대변이 나오지 않는 것이 정상인데 어머니 말에 따르면 그 일 후에 바로 혈압이 많이 떨어져 중환자실로 내려갔다 한다. 중환자실에서의 일은 생생히 기억한다. 손에 묵주알을 들고서 기도하다가 아끼던 1단묵주를 잃어버린 것, 신부님들의 면회와 계속되는 통증, 간호사들의 떠드는 소리와 음식 먹는 모습 등. 밤낮으로 불을 켜놓아 시간이 언제 지나는 지도 모르고 나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배를 갈라 수술을 했고, 거기서 더러운 물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수술이 잘 되었다고 그러는데 나는 고통을 계속 느꼈고 수술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빈센트 병원으로 옮길 것을 형님에게 요구했다.
3. 빈센트 병원으로 옮기다.
12월 8일. 성모승천 대축일, 신학교에서는 수원가대 첫 부제품이 있는 날이다.
부제품 미사에 참례했던 몇몇 동료들이 와서 나를 도와주었다. 나는 역시 앰블런스를 타고 성빈센트 병원응급실로 들어갔다. 11일까지 중환자실에 있으면서 여러가지 검사를 더하고서 12일 개복수술을 실시했다. 나중에 의사의 말을 들어보니 말이 안나올 정도로 엉망진창이 되었다고 했다. 1차수술 때에 수술이 완전하지 못해 내장들이 썩어가고 있는 중이었다고 한다. 대장수술을 했는데 고인 물(?)에 의해서 십이지장이 많이 상했다고 했다. 수술을 마친 의사는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는 하늘에 맡길 뿐이라 하면서 기도를 열심히 하라고 했단다.
4. 또 한 번의수술
12일에 마친 수술이 아물기도전에 나는 또 한번의 개복 수술을 해야했다. 이유는 위출혈이었다. 위장이 터져 많은 양의 피를 토했다. 그래서 일단 응급조치로 피를 멈추게 하려고 엘튜브를 코를 통해 위장으로 넣었다. 그리고선 찬 소독물로 나의 위장을 닦아내었다. 한참을 토하다가 의사선생님들이 모여 수술계획을 잡고 잠시 후에는 수술이 시작되었다. 나는 신부님께 청해 병자성사를 받았다. 수술대 옆에서 나는 어머님께 그리고 여러 사람에게 걱정하지 말고, 울지도 말라고 하였다.
나는 죽음을 느끼며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가졌다. 그리고 주님께 나를 맡겼다. 잠시 후 수술이 시작되었다. 나는 마취로 인해 무의식의 세계로 갔다.
"나는 죽음을 느끼며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가졌다."==>매일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그날그날에 최선을 다하는 삶...사랑하며..이해하며 살아가려 노력하면서도 어느새 인연의 고리에서 또 고민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곁에 계시는 신부님의 말씀으로 하느님의 사랑의 힘을 얻고..말만이 아닌 실천으로..이해해보며..사랑하며 살아보렵니다....(신부님! 다치신 입술은 괜찮으신지요? 딸아이가 걱정많이 했어요..이쁜(?) 묵주사서 좋아라 신부님찾아 간길이었거든요..)
저는 이러한 일들을 2017년 신부님이 위암으로 입원하여 시술과 수술할때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 택시기사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택시기사가 바로 빈센트병원에만이라도 데려다주었더라면 이지경까지는 안되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신부님은 오늘 이 시간까지(2020년 12월 3일 현재) 건강하게 우리곁에서 하느님의 일을 하며 기쁘게 사목하고 있었을 거니까요ㅠㅠ 오늘, 수원교구 부제서품식이 있었나 봅니다. 저는 도저히 볼 수 없었습니다. 신부님이 생각나고 떠올라서요. 신부님 생각만 하고 너무나 애통하고 서러움만 북받칩니다.
첫댓글 다른 색깔의 '유신'(?)은 또 언제 종말이 올까요? 이런 내용의 일기, 신부님이기에 가능하셨을거예요...썩은 내장...살아계신게 기적입니다. 작은 수술하신분이라도 조금 활동하면 많이 힘들어 하던데 강론은 앉아서 하시면 안되나요????? 기적의 신부님!!!
처음부터 빈센트 병원으로 가셨으면 좋으셨을텐데~
"나는 죽음을 느끼며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가졌다."==>매일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그날그날에 최선을 다하는 삶...사랑하며..이해하며 살아가려 노력하면서도 어느새 인연의 고리에서 또 고민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곁에 계시는 신부님의 말씀으로 하느님의 사랑의 힘을 얻고..말만이 아닌 실천으로..이해해보며..사랑하며 살아보렵니다....(신부님! 다치신 입술은 괜찮으신지요? 딸아이가 걱정많이 했어요..이쁜(?) 묵주사서 좋아라 신부님찾아 간길이었거든요..)
좀 아팠죠. 그런데 많이 좋아졌어요. 걱정해 준 딸아이에게 고맙다고 전해 주세요. 처음부터 빈센트 가자고 했는데, 저한테 뭔가 주실려고 그렇게 되었나 봅니다.
신부님의 '사목일지'를 보며, 저희들 곁에 아주 가까이 계신분으로 다가와 편안하고 다정하신 신부님이어서 좋습니다~~ 죽음의 끝자락까지 다녀오신 분이라 왠지 느낌이 남달랐습니다...
하하하... 너무 잘 봐 주시나 봅니다. 살다보면 더 많이 알게 되시겠죠....
와 신부님 개복 수술을 그렇게 여러번을 하셨는데....정말 신부님이셨기에 견디실수있었으리라 생각도 듭니다....지금 이렇게 살아 계시는 것은 기적이라고 생각 됩니다....신부님 존경합니다....
그런데요. 또 다른 큰 수술이 기다렸죠.. 진짜 갈 뻔 했어요. 저도 포기했었거든요...
와~~신부님..하느님께서 많이도 사랑하시나 봅니다..
아니! 이거 보다 더 큰게 또 있으셨다구요? 정말 하느님께서는 신부님을 도구로 쓰셨구나 라고 감히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 하시는일은 놀라워라 입니다.... 그때 병원에 옮기지 않았다면 생각하고 싶지도 않네요...늘 신부님의 기도가 하늘에 닿아서 좋은결과가 저도 열심히 기도를 해야하는데...잘 안됩니다...반성하고 갑니다..
정말 힘드셨겠어요~저희 친정어머니도 5년전 위암수술하시고, 장이꼬여 일주일만에 다시 개복하셨거든요. 첫수술때는 담담했는데,다시 할땐 대기실에서 내내 울었어요. 손가락 조그만 상처에도 쓰라린데,배를 두번씩이나.... 신부님과 가족들의 심정 조금은 이해가 되네요~ 힘든시련을 견뎌내시고 다시 나게 하시어,주님의 도구로 살아가라는 주님의 뜻에 너무나도 열심히 살아가시는 신부님 화이팅!!입니다.
저는 이러한 일들을 2017년 신부님이 위암으로 입원하여 시술과 수술할때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 택시기사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택시기사가 바로 빈센트병원에만이라도 데려다주었더라면 이지경까지는 안되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신부님은 오늘 이 시간까지(2020년 12월 3일 현재) 건강하게 우리곁에서 하느님의 일을 하며 기쁘게 사목하고 있었을 거니까요ㅠㅠ 오늘, 수원교구 부제서품식이 있었나 봅니다. 저는 도저히 볼 수 없었습니다. 신부님이 생각나고 떠올라서요.
신부님 생각만 하고 너무나 애통하고 서러움만 북받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