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났을 때 첫 이름은 끝선이다. 말하자면 집에서 부르는 이명(異名)이다. 일곱 번째로 태어나 그만 낳는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라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금연(金蓮)이라 지어 호적에 올렸다. 금같이 귀한 연꽃이란 뜻이란다. 아버진 내가 태어난 일시를 짚어보고 뜻을 두어 지으셨단다. 한자어에 능통하신 아버지는 작명가는 아니지만, 우리 형제들 이름에 각자 나름의 의미를 두어 지은 이름을 호적에 올렸다. 아버지도 이명이 있고, 큰언니와 셋째 언니도 나처럼 이명을, 가졌다.
집에서 끝선이란 이름으로 계속 불리다가 초등학교 입학을 할 때 왼쪽 가슴에 금연이란 이름을 달았다. 내 이름이 아닌 것 같아 이름표를 자꾸 쳐다보며 어색해했다. 하지만 친구들이 자주 불러주어 날이 갈수록 금연이라는 이름에 조금씩 익숙해졌다.
남녀공학인 중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우리 반 남학생이 나에게 살짝 다가오더니, 정면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자.”하고 킥킥거리는 거였다. 몇몇 남자애들은 즐기듯이 따라서 같이 거드는 것이었다. 나를 놀린 친구가 너무 싫었고 학교에서 그 애만 안 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다른 길로 다녔다.
여고 입학원서를 쓰면서 연을 련으로 바꾸어 금련(金蓮)이라 썼다. 한자어 표기로 보자면 맞는 말이다. 두음법칙을 알아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담배를 피우지 말자’라는 친구의 놀림이 가슴에 딱지로 붙어서 지워버리고 싶은 생각이 더 컸던 것이다. 그 이후 대학 때도 사회생활의 전반적인 이름을 표기할 때도 어김없이 금련이라 적었다. 하지만 주민등록증, 여권, 은행 통장 등 정확한 증빙이 필요할 때는 금연으로 써야 했다. 지금도 그렇게 쓴다.
지하철 2호선이 생기고 금련산 역이 있다는 걸 알았다. 한글이나 한자어가 내 이름과 똑같았다.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금련산도 금련산역도 있으니 나는 산을 가지고 역도 가진 부자라며 혼자서 피식 웃었다.
금련사라는 절은 부산 수영구 광안동에 있다. 금련사는 도심 속 조용한 사찰로 벚꽃 수국 단풍으로 유명하다. 군수사령부 예하 군 법당으로 운영되며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국군 장병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법당이란다. 나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금련사라는 절 이름에 편안함을, 가진다.
내가 세례를 받을 때 마리아라는 세계명을 받았다. 세례명은 작은 오빠가 지어준 이름이다. 양력 생일이 성모마리아 대 축일 날이기도 하니 그런 것 같다.
성당 사람들은 금련이는 잘 모르고 만날 때마다 “마리아”하고 부른다.
블로그에 가입하면서 닉네임을, 데이지라고 했다. 데이지꽃은 야생화는 아니지만, 민들레꽃만 한 크기에 하얀, 연분홍 등의 색깔로 둥글둥글 피어나는 순하디순한 꽃이다. 꽃말은 평화, 순진, 미인이다. 평화라는 꽃말이 마음에 들었다. 화분에 소담하게 모여 함께 피어있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나도 데이지꽃을 닮고자 지은 이름이다.
데이지라는 이름은 내가 내 이름을 지었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데이지꽃 화분을 창가에 두고 차를 한잔 들며 ‘데이지, 차 맛 어때? 데이지, 숲속 나무들의 유희 좀 봐...... 여유있는 달콤한 시간이다’라고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때 데이지꽃이 말을 한다면 나를 뭐라 불러주면 좋을까. 끝순 금연 금련 마리아.....
여러 가지 이름에는 제각기 뜻이 있고 역사가 있다. 나라 이름도 지역 이름도 마찬가지다. 방방곡곡의 고장엔 그곳만의 특유의 이름이 있고 유례가 있다.
어떤 건물이나 물건에도 이름이 없는 것이 없다. 붙여진 이름은 제 모습과 생김새와 흡사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남녀를 구별하여 이름을 짓고, 집안의 내력으로 돌림자를 쓰기도 한다. 작명가는 태어난 해와 일 시를 보고 이름을 짓는다. 예술가는 자신이 쓴 글씨나 그림을 완성한 뒤 작품 끝에 호를 써서 낙관을 찍기도 한다. 모두 나를 지칭하여 담은 그릇이다.
예전에는 태어났을 때 곧바로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가명이나 별명을 지어 불렀다. 그러다 한 두 해가 지나서야 본명을 지어 호적에 올리곤 했다. 내 친구만 해도 금안이 판돌이 외자 등 가명이 많다. 하지만 대개는 가명 그대로 쓰는 경우가 있어 오랫동안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했다.
친구들은 간혹 내 이름이 예쁘다는 말을 한다. 어떻게 그 시절에 그런 이름을 지었냐며, 잘 외우는 이름이라 잊지 않는다는 말도 한다. 웃는 내 표정과 어울린다는 말도 한다. 하지만 그들도 내 이명을 알면 생각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금련, 마리아, 데이지, 내가 생각해도 괜찮은 이름이다. 만약 내 호를 남긴다면 어떤 이름이 좋을까.
첫댓글 '금련' 부르기도 듣기도 좋은 이름입니다. 좋은 글 많이 쓰시어 금빛 연꽃으로 피어나세요. 응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