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17
‘율사모’는 강원 최북단 22보병사단에서 복무하는 아들을 둔 부모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다. 사단명이 강릉 출신 대학자 이이(22)의 호를 따서 율곡이고, 율곡부대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였다고 해서 율사모다. 물론 이 사단을 율곡부대로 아는 이는 거의 없다. ‘십만양병설’의 율곡보다는 ‘별들의 무덤’으로 더 유명한 탓이다.
최근만 해도 노크 귀순, 오리발 귀순, 새해 월북 사건까지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드높은 악명에 아들이 22사단으로 배치를 받으면 사색이 된 부모들은 앞다퉈 율사모에 가입한다. 최전방 정보를 비롯해 이심전심 위로받을 수 있는 곳이 ‘선배 부모’들 모여 있는 이곳뿐이어서다.
‘복무 기간도 짧고 카톡도 하는 요즘 군대가 군대냐’고 혀를 차지만, 적어도 22사단은 예외다. 우리 군에서 유일하게 산악과 해안을 동시 경계하는 부대로 동해안과 휴전선이 만나는 내륙 28㎞, 해안 69㎞ 등 여느 1개 사단이 책임지는 구역의 4배에 달하는 전선을 지킨다. 철책만 지키는 것도 아니다. 봄 가을로 버섯과 산삼을 캐러 민간통제구역까지 들어가는 일반인 수색에 투입되는 일도 부지기수. 다른 전방과 달리 예비 여단이 없어 몇 달씩 휴가 못 가는 병사들이 태반이고, 전역 당일 새벽까지 작전을 뛰고 나오는 일도 예사다.
병력 부족은 비단 22사단만의 문제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국방개혁 2.0′으로 병력 감축이 본격화하면서 2017년 이후 올해까지 11만8000명 규모의 병력이 줄었다. 대비책으로 CCTV, 열상 감시장비(TOD), 광망 철책 등 과학화 경계 시스템을 도입했다지만, 지난 월북사건에서 보듯 혹한의 날씨에선 무용지물 되기 십상이다. AI를 기반으로 한 유·무인 복합 전투 체계를 구축한다지만 걸음마 단계다. 연이은 북의 도발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최전방에서 ‘물 샐 틈 없는 철통경계’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유감스럽게도 BTS 병역 특례 논란은 이런 상황에서 지지부진 이어지고 있다. 병력도 부족한데 왜 특혜를 주느냐 시비하는 게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특례’의 필요성, 그리고 그 단어가 주는 열패감에 있다.
병역특례제도(보충역 대체복무제)는 과학 예술 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서 인적 자본이 부족하던 1970년대, 국위를 선양할 엘리트 양성을 위해 만들어졌다. 당시는 특례자를 뽑아도 20대 남성 인력이 사오십만에 달할 때라 병력 자원이 남아돌았다. 지금은 다르다. 대한민국은 10대 경제 강국이 됐고, 전문연구요원·산업기능요원·예술체육요원 등의 특례를 두지 않아도 우수 인력들이 각 분야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반면 저출산 등으로 현역 가용 인력은 20만명대로 떨어졌고, 10만명대 진입도 코앞이다. 국방연구원 안석기 박사의 말대로 “지금은 BTS에게 특례를 줄지 여부가 아니라 특례 제도 폐지 여부를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BTS가 일군 성취는 눈부시다. 하지만 그 보상이 꼭 병역 면제여야 할 이유는 없다. 그들은 이미 부(富)와 명예 등 차고 넘치는 보상을 받아왔다. BTS의 공백이 국익에 치명적인 것도 아니다.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4대 의무 중 국방의 의무는 가장 무겁고 신성하다. 분단 국가에 태어난 이유로 자신의 몸과 자유를 나라에 헌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례가 존재하면 병역의 의무는 징벌의 의미로 읽히고, 삶의 가장 빛나는 시간을 희생하고도 ‘군바리’라는 멸칭을 듣는 청년들은 모멸감에 빠진다.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나라에서 병역이 형벌로 여겨질 때 강군(强軍)이 탄생할 수 있을까.
율사모에는 22사단에서 복무한 뒤 자신의 아들도 “꼬드겨” 같은 사단, 같은 병과에 지원 복무시킨 아버지가 있다. 멘붕에 빠진 신병 부모들을 가장 열심히 다독여주는 그는, 조국의 최전선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지, ‘대한민국 1%의 사나이’가 된 것이 얼마나 뿌듯한 것인지 유머와 넉살을 버무려 설명한다. 국방부가 할 일을 일개 예비역이 해주는 셈이다.
지난 주말, 엑스포 유치를 위한 BTS의 부산 공연은 감동적이었다. 역시 7명 완전체로 있을 때 그들은 아름다웠다. 입대로 인해 맏형 진이 빠질 무대는 상상하기 싫었다. 그러나 훈련소 연병장에서 뒹굴고, 군사열차에서 눈물의 도시락을 먹고, 전선에서 밤을 지새운 뒤 돌아올 청년들은 과연 어떤 음악을 선보일지도 궁금해졌다. 마이너리티를 향한 위로와 연대를 넘어 세계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을지. 그들의 피날레곡 ‘Yet to come’처럼, BTS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sion@chosun.com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