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3. 05.
작년 10월 친북 단체 회원 17명이 미국 대사관저 담장을 넘었을 때 주변에 있던 경찰은 30여 명이었다. 시위대가 사다리를 타고 담을 넘자 경찰은 “시위대가 다칠까 봐” 사다리를 치우지 않았다. 시위대가 관저 안에서 플래카드를 펼치고 반미 구호를 외칠 때도 시위 여성은 건드리지 않았다. “여성 몸에 손을 댔다가 문제가 생길까 봐” 가만뒀다고 해명했다.
▶ 엊그제 서울 지하철 잠실역 구내에서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의 전단을 돌리던 58세 여성을 경찰이 팔을 등 뒤로 꺾고 수갑을 채워 연행했다.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세 번 요구했으나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 네 명이 여성 한 명을 땅바닥에 쓰러뜨린 뒤 올라타고 뒷수갑을 채웠다. 이 장면이 유튜브에 공개되면서 '과잉'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은 "50만원 이하 벌금에 해당하는 현행범인 데다가 주거지가 분명치 않아 체포했다"고 말했다.
▶ 경찰청 체포 매뉴얼에 따르면 현행범을 체포할 때 순순히 응하면 양손을 앞으로 모아 수갑을 채우고, 자살·자해·도주 우려가 있는 경우 뒷수갑을 채우도록 돼 있다. 저항하거나 직무집행을 방해하는 경우, 강력 범죄를 저질러 무거운 처벌이 의심되는 경우에도 뒷수갑을 채울 수 있다. 엊그제 중년 여성은 휴대폰으로 경찰을 때리고 신분증 제시를 거부했기 때문에 매뉴얼대로 체포했다는 것이 경찰 설명이다.
▶ 미국 경찰은 현행범의 경우 예외 없이 뒷수갑을 채운다. 시위대에 합류했다가 경찰 저지선을 넘은 현역 의원이 뒷수갑을 찬 채 체포되기도 했다. 통근 열차를 기다리는 플랫폼에서 샌드위치를 먹던 남성에게 '음식 섭취 불가' 규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뒷수갑을 채우기도 했다. 작년엔 경찰이 여섯 살 아이가 교직원을 발로 차며 짜증을 냈다는 이유로 수갑을 채워 문제가 되기도 했다.
▶ 그런데 한국 경찰은 폭력 시위를 진압하다 얻어맞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민노총 시위대에게 맞아 치아가 부러진 경찰도 있다. 사드 배치 현장에서는 경찰 차량이 시위대에게 검문을 당했다. 미국 대사관저 시위 관련 단체 압수 수색에 나선 경찰은 “너 이름 뭐야” “어디라고 큰소리를 쳐”라는 말을 듣고 “욕하지 맙시다”라고 했다. 민노총이 기업 임원을 피투성이가 되도록 때리고 전국 관공서를 돌아가며 점거할 때도 얌전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이런 경찰이 전단 돌리던 중년 여성을 땅바닥에 쓰러뜨리고 뒷수갑을 채웠다. 낼모레 환갑인 여성을 경찰 넷이 쓰러뜨렸다. 참으로 용감한 한국 경찰이다.
한현우 논설위원 hwhan@chosun.com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