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제67회 / 이명자)
다른
어느 날. “너는
도대체 사람이냐 아니면 생각도 하지 못하는 동물이냐.” 나를
보자마자 가시 돋친 어머니의 말이었다. 그러나 그 가시는 나를 찌르지도 못했고 내게 한
치의 뜻을 전하지도 못했다. 나는 며칠째 마약을 굶어 이미 정신이 오락가락 하던 때였으니까. 어머니에게 다짜고짜 손 벌려 돈을 요구하는 내 얼굴에 나타난 형상이(?) 어머니에게
참을 수 없는 이성을 만들어 버린 것이 분명했다. 안 그래도
아침 나절에 쉘터의 문을 나서는데 ‘야, 머리 좀 감아라. 사람인지 돼지인지 분간이 안 된다.’ 지 머리는 지린내가 나서 모두들
피하는 것도 모르는 주제에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나를 건드린 그야말로 꾀죄죄한 키 작은 녀석을 한 대 쥐어박고 쏜살같이 거리로 튀어 달아난 나는..... 꽁지 빠지게 달아나면서(나를 돼지라 놀린 녀석은 진드기어서
그 녀석의 손아귀를 벗어나기가 여간 곤혹스럽다는 걸 쉘터를 관리하는 사무실 안에도 자자하게 명성 날리고 있는 막무가내의 극치를 보여주는 녀석이었다.) 돼지? 내가? 그럼
넌 쥐새끼다 자식아. 멀어진 김에 주먹으로 욕을 한방 날리고 어머니를 만나러 봄빛 만발해 반짝반짝 빛나는
거리가 희망의 찬가를 부르며 나를 유혹해도 아무 감흥도 느끼지 못하고(거 왜 꽃피는 봄날은 쉽게 유혹에
빠지잖는 가.) 곱씹어 봐야할 모욕당한 돼지는커녕 다 찌들어버려 희망 한 톨 남아 있지 않는-즉 나의 희망이라는 것은 더도 덜도 말고 내가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최소량의 코케인을 얻는 것뿐인데도
집에서 쫓겨나기를 여러 번, 쉘터를 옮겨 다니는 것도 여러 번, 그럴
때마다 내 새대가리 속에 뿌리내리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쫓겨나고 옮겨 다니고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여서 그런가 보다 할 뿐- 내 육신은 걷기도 힘들었지만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를 그리며 열심히 걸었다. 열심히 걸었는데..... 수중에 돈 한 푼 얻어내지 못하고 뜻을
새겨 담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어머니가 내게 했다. 사람이냐? 동물이냐? 사람이면 어떻고 동물이면 어떻고 억수로 재수 옴 붙은
날, 길고 더러운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정기라고는 찾아볼 수없는 흐릿한 내 두 눈동자를 외면하지 못한
어머니는 내 손에 달랑 투 달러를 쥐어주고 떠나버렸다. 사노라면 살기마련이다. 다행히 이 투 달라는 그날 나를 보호하사 내 마음이 잠잠해졌고 지린내 풍기는 키 작은 녀석도 잠잠해졌고 투
달러로 더러운 거래 끝에(한 녀석이 거의 다 피우고 남은 꽁초를 목숨 같은 나의 투 달라와 맞바꾸었다.) 얻어낸 가장 질 나쁜(그 녀석의 온갖 불순물이 낭자한 호흡과 침이
섞여 있는.) 마리화나 일망정..... 내 수중에 들어와
그 밤이 고요히 지나갔다. 훗날
어머니는 ‘내가 너를 동물이라고 했던 말 기억나니?’ 나는 ‘그랬어요? 기억 안나요.’ 했고, 어머니는 매우 미안했지만 그 때는 어머니의 심정이 나로 인하여 갈기갈기 찢어진 상태라서 참을 수없이 되었기
때문이었다고 내게 사과했다.
자 그러니 좋은 기분으로 다시 어머니에게 시선을 돌리자. “내가
죽어버리면 어떨까요. 내가 죽어버리면 내 아들이 바른 삶을 찾을지 모르잖아요. 내 아 들은 자신이 옳은 짓을 하고 있다는
커다란 착각 속에 빠져서 헤어날 기미가 없어요. 어린 것
이 할 짓이 없어 마약중독이라니요. 내가 죽어 버리면 만사 다 잘 될 거예요.” 기분
좋게 환상의 나래로 끌려 다니던 나는 넉장거리를 쳤다. 대답 한번 들을 수 없는 누군가에게..... 어머니의 말은 이상야릇한 곳으로 치달았다. ‘어머니가
죽어? 어머니 제발 죽지 마세요.’ 죽는다는
말이 어찌나 소름끼치게 무섭던지 나는 엉엉 울부짖으며 어머니의 죽음을 만류했다. 그러나 환상이 결사적으로
내 눈에 어머니의 주검을 보여주었다. 나는 얼어붙은 체 머리에 뿔난 저승사자가 어머니를 만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승사자가 나를 힐긋 쳐다보았다.
그 눈빛이 얼마나 무섭던지 나는 내빼기 시작했다. 죽어라고 내뺐다.
숨이 차서 더 이상 내뺄 수 없을 때 내 두발이 딛고 서있는 ‘지상이 이렇게 좋은 곳이로구나!’ 절로 감탄했다. 어머니는 죽지 않았고 저승사자도 간곳없고 다시
말하고 있는 어머니가 내 눈에 들어왔던 때문이었다. “내
죄가 커요. 하나뿐인 아들을 내가 저렇게 만들었으니까요. 나는
죄의식 때문에 남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어요. 살아 있으나 죽은 목숨이에요. 어떻게 하면 좋을 까요. 내 사랑이 부 족해서 일까요? 너무나 지쳤는데..... 이것이 나의 업보라면 아들을 위해 세상이 가르쳐주는 곳으로 어떤 길이든 쫒아가야겠지요.” 귀담아
들은 어머니의 말은 나를 안도시켰다. 환상의 나래가 그럼 그렇지, 내편이었다.
‘환상의 나래? 너의 편? 좋아한다, 이 마약중독자야. 네가 아무리 구구절절 너 자신을 변명해 보았자
그건 너를 노리는 마약 특유의 악성 드라마라는 걸 몰라? 알 마음도 없겠지. 왜소하기 짝이 없는 너는 네가 왜 왜소한지도 모르고 말이야. 너의
가족을 눈여겨 살펴 봐 좀. 가족이라고 해야 달랑 너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꼴같잖은 너야. 너의 아버지는 너에게 품었던 희망을 아직도 놓지 못하고 안절부절 속 시원한 해결방법도 모르면서 아직도 발바닥이
닳도록 고군분투하지. 뭐 기억이 안난다고? 에라 이 뻔뻔스러움이
하늘을 찌르고도 모자라 삼라만상 두루두루 악취를 풍겨대는 마약중독자야. 조금이라도 네게 불리하면 고개를
돌려 버리는 너.’
이토록 따끔한 간섭을 당했으면서도........ ‘그리고
너의 어머니는 말이야. 지금 고목처럼 썩어 들어가고 있어. 썩은
부위가 하나씩 떨어져 나가면 끝이야. 그러면 너는 어떻게 될까? 마약으로
인해 굳어진 너의 머릿속 누가 있어 그나마 동정할까? 이제라도 늦지 않았어. 정신 차리고 마약을 끊지 않으면 너는 모든 걸 잃게 될 거야. 조만간
네가 무서워하는 죽음에도 이를 수 있어.’
싸늘하게 굳은 간섭의 눈초리들에게 이토록 무섭고 무자비한 경고를 받았으면서도..... 흥, 그러나 나는 콧방귀를 뀌고 만다. 그 간섭들이 가소로워서가 아니었다. 실은 나를 똑 바라보고 있는 코케인이 무서워서다. 코케인은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여타간의 생각들은 나부랭이로 착각시킨다. 허망을
우리들에게 심어주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마약들은, 감시의 대명사다. 죽음을
불사하고 코케인에게 대든다면 어쩌면 살며시 물러가 줄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데 뭐야 이 겁쟁이야. 너는 죽기가 무서워 그냥 그대로 세상이 무시하고 쳐다보지 않는
마약장이로 살겠다고?’ 간섭이여
나 때문에 너무 흥분하지 마라. 나는 마약이건 삶이건 아주 잘 컨트롤 하고 있어, 나를 뭐로 보고 말이지. 마약장이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도 믿지
못하는 너희들이 이상한 거야. 나는 너희들 세상을 향해 손 내 민적 없어. 시침 뚝 떼고 중독자들 특유의 허세를 부린다. 내게는 어머니가 있으니까
말이지. 나는 의기양양해져서 눈을 떴다. 환상으로부터 잠을
깬 것이다. 목이 말랐다. 코케인이 원하는 달콤한 주스를
마셔야겠다. 방안은 아직도 밤이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로
인해 갈 데까지 가고야 말 것처럼 험악한 말싸움을 하던 때가 언제였던가. 모든 것이 기억났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선명한
기억이 조급해 부리나케 방을 나섰다. 나는 내 두 눈으로 숨 쉬고 말하는 어머니를 똑똑히 보아야했다. 달콤한 주스를 마셨는데도 나를 힐긋 바라보던 저승사자의 섬뜩한 눈이 꼭 현실 같아서 말이지..... 어머니는 응접실 소파에 길게 누워 잠들어 있었다. 어머니가
응접실 소파에 잠들어 있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버지로부터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해 상한 자존심을 어찌하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했을 때도 나하고 아귀다툼을 했을 때도 어머니는 천연덕스러울 정도로 아버지와 합방했다. 어머니가
왜 소파에서 잠들었을까? 의문은..... 들 리가 있나. 코케인이 내게 보여준 환상은 이해하기가 어렵고도 쉽고도 따라가기가 마련해진 대로 마련해지지 않은 대로도 얼마든지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말이지. 어머니가 소파에서 잠든 것은 하등의 의문이 될 리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아버지 어머니 때문에 정당한 이유하나 더 얻었다는 기쁨에 홀려서 도를 넘은 코케인을 흡입하고
코케인이 내게 우격다짐으로 베푸는 환상에서 여러 가지를 보고 듣고 경악하고 기뻐하고 안도하고 무언가를 다짐하고 내 딴에는 이것, 저것 심혈을 기울였으니까 말이지.
내 방으로 다시 돌아온 나는 손이 떨리는 것도 모른 체 어머니가 소파에 고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자축하기 위하여! 남아있는
마약을 몽땅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끝. 끝나버렸다.
세상의
끝이라는 암흑에 갇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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