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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부 그가 유식하다고 말하는 자만이 그에게 무지를 안기게 되는 것이다.
영원한 인간사랑 ・ 2022. 11. 26. 8:41
22부
그가 유식하다고 말하는 자만이 그에게 무지를 안기게 되는 것이다.
1. 꽃동산의 펼쳐저있는 페비신씨의 치마를 보았다.
아버지 신수근은 역적이라 하여 참살당하고, 역적의 딸이라며 한신하가 말해 중종이 어쩔 수없이 폐비시킨다.
중중은 폐비 신씨가 보고 싶어 폐비신씨의 사가를 보았고 꽃동산의 펼쳐져 있는 페비 신씨의 치마를 보았다.
신씨는 또 중종이 사직단 제사에 참가하는 날이면 언제나 말죽을 쑤어 사직단 정문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임금이 탄 말이 나오면 먹여줌으로써 부부간의 정이 변함없음을 표현하여 중종의 마음을 이끌었다.
단경왕후(1487(성종 18)~ 1557(명종 12)은 조선 제11대 왕인 중종의 비였다.
유난히 금실이 좋아 함께 고락을 나누며 살아왔던 중종은 반정으로 왕위에 올랐으나 부인을 잊을 수가 없어 경회루에 올라 신씨가 있는 인왕산 기슭을 바라보곤 하였다.
1499년(연산군 5년) 12살의 나이에 당시 진성대군에 봉해져 있던 성종의 둘째아들 중종과 결혼하여 부부인이 되었다.
1499년(연산군 5) 진성대군과 혼인하여 부부인에 책봉되었다.
신씨는 1487년 1월 신수근의 딸로 태어나 열세 살이 되던 해에 진성대군과 혼인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1506년 중종반정이 성공하면서 남편이 왕위에 오르자 그녀도 자연스럽게 왕비에 올랐다.
그녀의 아버지인 익창부원군 신수근은 연산군의 폐비 신씨의 오빠였다.
성희언, 박언종 등이 연산군을 내몰고 연산군의 처남인 신수근 형제를 중종반정에 가담하지 않은 관계로 살해했다.
진성대군의 부인은 신수근의 딸로 박원종 등이「이미 부인 신씨의 아버지 등을 죽였는데 그 딸을 왕비로 두면 우리에게 보복이 올지도 모른다」하여 왕비 되는 것을 반대하였다.
1506년(중종 원년) 음력 9월 9일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진성대군(중종)을 왕위에 앉힌 반정세력에 의해 7일 만에 폐위되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2. 다홍치마를 바위에 넓게 깔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다 산을 내려왔다.
단경왕후 부인 신씨는 인왕산 아래 옛 거처로 쫓겨나 살게 되었다.
중종실록 등에는 그녀를 폐위 할 때 중종이 크게 반대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단경왕후 신씨(1487년~1557년 음력 12월 7일)는 조선 중종의 정비이다.
조선의 역대 왕비 중 제일 짧은 7일의 재위 기간을 보유하고 있으며, 역적의 딸로 연좌되어 폐출된 후 영조 때에 부모와 함께 복위되었다.
1506년 9월경 궁궐을 떠나서 몸종 하나만 달랑 데리고 인왕산을 오르는 여인이 있었으니, 단경왕후 신씨이었다.
중종 반정공신들에 떠밀려 남편 중종을 두고 인왕산 아래 하성위 정현조 집에 머물고 있던 신씨가 경복궁을 바라보며 그리움을 달래기위해 산에 오르는 길이었다.
혹시 볼까 다홍치마를 바위에 넓게 깔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다 산을 내려왔다.
그것도 처소가 얼마 안가서 시전 죽동궁으로 옮겨지니, 그나마 바라보던 것도 얼마가지 못했다.
죽동궁을 떠나 친정으로 거처를 옮기니, 그곳에는 연산군의 아내 신씨도 살고 있었다.
왕비에서 폐위된 두 여인이 한 집에서 지내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된 거다.
장경왕후는 1491년 7월 서울 호현방에서 태어난 윤씨는 열여섯이 되던 해 중종의 후궁으로 들어와 다음해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스물다섯 나이로 아들 인종을 낳고 6일만에 산욕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담양 부사 등이 그녀의 복위를 간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으나, 복위를 반대하는 중신들에 의해 복위되지 못하였다.
그 핵심은 신씨가 복위했을 시 장경왕후 윤씨가 낳은 원자의 지위가 문제였다.
결국 원자를 흔들어서는 안되는 명분으로 상소를 올린 이는 삭탈관직을 당하고 신씨 복위 문제는 물 건너가고 만다.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 대다수가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거나, 삭탈관직을 당하는 기묘사화[1519년(중종14)]가 일어나게 된다.
그나마 신씨 복위를 논하던 사림파가 몰락하면서 복위도 완전히 물거품이 되었다,
중종과 세부인의 능은 강남 삼성동 정릉(중종), 북쪽 양주시 온릉(단경왕후 신씨), 서쪽 고양시 희릉(장경왕후 윤씨), 동쪽 태능(문정왕후 윤씨)은 따로 따로 누어있다.
38년간 왕의 자리를 보존한 중종이 1544년 11월 14일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중종이 세상을 떠나고 궁궐에서 쫓겨난지 50년이 지나 나이가 70세를 훌쩍 넘겼다.
다시 부르겠다는 남편의 말만 믿고 그리움을 삭이며 한 많은 세상을 접으니 그 때가 1557년 12월의 7일이다.
신씨가 궁궐에서 쫓겨 난지 232년이 되던 영조 15년에 단경왕후로 추존되고, 온릉(溫陵)이라는 능호가 내진다.
인왕산 바위에 다홍치마 넓게 피고 앉아 경복궁을 바라보며 눈물지으며 지아바를 생각해서 온릉이라는 능호가 붙여진 것이리라.
3. 영혼과 육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날이 온다면 주저 없이 육체를 선택해라.
이해 할 수 없으면 곱씹고, 그래도 이해하지 못하다면 생각하지마라.
기름이 없으면 자동차를 멈추면 되고, 시동을 끄면 된다.
그러하면 당신의 차는 편히 쉬게 될 것이다.
그런데 기름값 걱정은 왜 하는가!시간이 없으면, 멈추면 되고, 멈출 수 없으면, 목숨을 끊으면 된다.
그리하면 당신의 시간은 영원히 멈출 것이다.
無時間則可爲所止 不可止則可自斃 然則爾時間永爲所止矣
무시간즉가위소지 불가지즉가자폐 연즉이시간영위소지의
영혼과 육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날이 온다면 주저 없이 육체를 선택해라.
그것이 진정 현명한 인간이다.
靈魂與肉體 選其二者之一之日來 則勿躊而擇肉體 此苟謂賢人矣
영혼여육체 선기이자지일지일래 즉물주이택육체 차구위현인의
인생은 활동함으로써 값어치가 있으며, 빈곤한 휴식은 죽음을 의미한다.
人生活動以有價者 而貧困之休是卽死矣 인생활동이유가자 이빈곤지휴시즉사의
4. 일반불안에서는 눈동자가 커진다.
기질선행자란 자존심, 자신감의 결여, 좌절에 대한 관대함, 수학에 대한 태도, 자기의심, 승인욕구, 성취욕구가 강한 기질을 일컫는다.
불안 가운데 수학학습에 관련하여 논의 되는 것이 수학 불안이다.
수학불안은 일상생활과 학습장면에서 수의조작과 수학문제 해결을 방해하는 긴장과 불안한 간전이라고 정의한다.
수학불안은 수학학습과 관련된 불안감, 두려움, 신경 증세라 한다.
이것은 수학수업시간, 수학문제, 수학시험과 관련된 불안감과 관계하고 있다.
수학불안은 수학문제를 풀도록 요구할 때 몇몇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공포, 무기력, 마비, 정신적 혼란 같은 상황자체를 설명하는데 사용된다.
수학불안을 포괄적으로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식으로든 수학에 접하였을 때 개인이 불안을 경험하는 상황이다.
스켐프(Skempt)는 기계적인 학습에 의한 이해가 불안을 낳는다고 하였다.
그린우드(Creenwood)는 패러다임에 의한 특성화된 교육방법이 불안을 낳는다고 주장하였다.
라자루스(Razarus)는 수학자체의 특성, 기호와 용어, 아동의 학습 유형, 교과과정, 교사를 불안의 요인으로 보았다.
수학불안의 5가지 요소는 수학교과 요인, 수학성취 요인, 인지요인과 부정적인 생각, 수학에 대한 태도, 교사 요인으로 보고 있다.
사람이 불안을 느끼는 상황 :
심리적 증상 :
막연한 불안감, 근심스러움
신체적 증상 :
일반불안에서는 혈압이 상승한다.
가슴이 뛴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땀이 난다.
눈동자가 커진다.
손발이 떨린다.
특성불안에서는 넓은 범위에서 보다 강하게 불안을 느낀다. 손에 땀이 밴다.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불길한 예감을 갖는다.
5. 자기주도적 학습은 학생이 학습을 통해 무엇을 베웠는가를 더 중요시한다.
사랑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찾아 든다. 우리들은 다만 그것이 사라져가는 것을 볼 뿐이다. (도브슨)
학교수업에서 학습의 형태는 자기주도적 학습과 일제학습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일제학습에서 강의식 일제학습 모형은 학교 수업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어진 방법이다.
교사가 수업의 중심이 되어 수업내용을 학생들에게 주입시키는 교수법이다.
수업모형은 계획 단계, 진단 단계, 지도 단계, 발전 단계, 평가 단계를 일제 학습의 모형으로 제시 되고 있다.
일제학습과 자기주도적 학습의 차이점
일제학습은 지식의 전달을 중요시하는 반면에 자기주도식 학습은 학습자의 학습을 중요시 한다.
1. 학습의 이해
자기주도적 학습은 학습자를 학습과 관련하여 자기 주도성 자율성을 높이는 사람이다.
일제학습은 교사의 가르침에 의존해서 학습해 가는 사람이다.
2. 학습과의 관련
학습자의 경험을 이해하는 문제에서 자기주도적 학습은 학습자의 경험을 학습에 활용되어야할 학습자원으로 여긴다.
교사주도 학습에서는 교과나 단원을 중심으로 한 교사의 교육 내용이 더 중요한 학습 자원으로 생각하여 학습자의 경험을 학습에 활용하는 것에 그다지 비중을 두지 않는다.
3.학습의 중심과 문제해결
자기주도적 학습은 삶의 문제나 삶의 문제를 중심으로 과제나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을 지향한다.
교사주도 학습에서는 과목이나 단원을 중심으로 과목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지향한다.
4. 학습자의 학습 동기
자기주도적 학습은 학습자 스스로 알고자 하는 지적 호기심,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 등에서 내적 동기에 의하여 학습한다. 교사주도 학습에서는 외적 동기에 의하여 학습한다. 예를 들면 상이나 벌, 혹은 성적, 상급학교 진학 들이다.
6. 그가 유식하다고 말하는 자만이 그에게 무지를 안기게 되는 것이다.
진보는 살기 위해 밖으로 나가고, 수구는 놀기 위해 안으로 들어간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하루다.(소포클레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은 대략 2500년 전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서양의 모든 철학이 출발했다고도 생각하는 비극편이다.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양에서의 그리스 ․ 로마 신화는 우리나라의 단군 신화처럼 어릴 적부터 익히 들어온 친숙한 이야기라고 한다.
그 스핑크스가 낸 인간으로의 문제는 하나뿐이다.
아침에는 다리가 네 개, 점심엔 두 개, 저녁엔 세 개가 되는 것은?
답은 인간의 일생이다. 혹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4 - 2 + 1 = 3이기 때문이다.
아기 때는 기어 다니니 다리가 4개고. 어른이 되면 둘. 늙으면 지팡이까지 세 개가 된다.
그 문제를 오이디푸스가 맞히자 열 받은 스핑크스는 자살을 했다고 한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서 자신의 지적 능력에 확신이 차 있다고 굳게 믿었다.
스핑크스는 드디어 진리를 깨우친 인간, 즉 오이디푸스를 발견하고 장렬하게 기둥에서 떨어지면서 바닥에 머리를 박게 된다.
반면에 오이디푸스는 커서는 두 발로 걷고, 늙어서 허리가 구부러지고 지탱할 것이 필요할 때는 지팡이와 함께 세 발로 걷는 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정작 그러한 자신의 모습은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오이디푸스는 진리를 깨우친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침에 세계연합군의 초월포괄자가 되었다고 해보자.
그자는 히틀러처럼 이등병 출신도 아닌 무등병 출신으로 인류연합군의 통수권자가 되었다고 수리학적으로 가정해보자.
임기초년에는 별이 7개에 해당하는 통수권, 오전에는 별이 6개에, 점심에는 별이 5개에, 오후에는 별이 4개에, 저녁에는 별이 3개에, 한밤중에는 별이 2개, 이른 새벽에는 별이 1개, 늦은 새벽에는 별이 0개, 마침내 밝은 태양이 떠오르니 그 많던 별을 다 없어지고 이등병 계급장조차 없었다.
오이디푸스는 인간의 교만과 무지에 대한 상징처럼 보인다.
그가 유식하다고 말하는 자만이 그에게 무지를 안기게 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모든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 문제를 풀어 나감에 있어서 점점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7. 민들레는 꽃이 폈을 때 노란 색이다.
노래 일편단심 민들레야에서 조용필은 아래처럼 부르고 있다.
긴 세월 하루 같이 하늘만 쳐다보니.
그이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들을까.
일편단심 민들레는 일편단심 민들레는 떠나지 않으리라.
그는 민들레꽃을 일편단심으로 보고 있다.
민들레(dandelion)는 꽃이 폈을 때 노란 색이다.
고대로부터 구약성경 출애굽기에 나오는 5종의 보약 중 하나이다.
님 주신 밤에 씨 뿌렸네.
사랑의 물로 꽃을 피웠네.
처음 만나 맺은 마음 일편단심 민들레야.
그 여름 어인 광풍 그 여름 어인 광풍 낙엽지듯 가시었나.
행복했던 장미인생 비바람에 꺽이니.
나는 한 떨기 슬픈 민들레야.
긴 세월 하루같이 하늘만 쳐다보니.
그이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들을까.
일편단심 민들레는 일편단심 민들레는 떠나지 않으리라.
해가 뜨면 달이 가고 낙엽지니 눈보라치네.
기다리고 기다리는 일편단심 민들레야.
가시밭길 산을 넘고 가시밭길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찾아왔소.
행복했던 장미인생 비바람에 꺽이니,
나는 한 떨기 슬픈 민들레야.
긴 세월 하루같이 하늘만 쳐다보니.
그이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들을까.
일편단심 민들레는 일편단심 민들레는 떠나지 않으리라.
8. 악마가 어디 써서 악마겠는가? 악마는 너무 달콤해서 악마인 것이다.
어느 누구인들 태도는 공손하고 더없이 친절하지만 그 뒤에는 그것 즉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가?
나와 그대가 점심시간에 만나서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고급 양식을 먹으면서 재미난 대화를 나눈다고 해보자.
하얀 잇몸에 낀 양념을 닦아 주면서 언제 다시 이 자리에서 만나자고 약속하면서 그 집을 나간다고 해보자.
나(I)와 너(You)는 다정한 사람으로 연인처럼 되었지만 그것으로 다는 아니다.
나(I)와 그것(It)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그것은 바로 식대(돈)인 것이다.
그대가 만난 그 연인이 써서 악마인가?
너무 달콤한 연인이라 점심값 20만원이 악마처럼 그대를 빈털터리로 만들지도 모른다.
이른바 I-You와 I-It라는 우정과 손실은 늘 그림자 같이 나을 둘러싸게 된다.
9. 전설이란 지난 지 꽤 오래된 시기를 막연히 이르는 말로서 이미 지나간 어떤 날의 애기를 뜻한다.
노무현(1946년 9월 1일 ~ 2009년 5월 23일)은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했지만 잘됐다
그만두시라고 한 사람이 전혀 없었다.
장인 장기 미전향수 권오석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나보고 아내를 버리라는 말인가?」
그 뿐만이 아니다.
더하여 이런 말도 했다.
『아내를 잡으려면 밥상을 엎어야 한다.』
필자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무현을 잘 모른다.
직접 만난 적도 별로 없으며 여러 명의 전직 대통령의 한 사람일 뿐이다.
전설이란 백과사전에 따르면 지난 지 꽤 오래된 시기를 막연히 이르는 말로서 이미 지나간 어떤 날의 애기를 뜻한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사람이 지껄이던 말 중에서 부정적인 것은 서서히 소멸되고 좋은 애기만 흘러 다닌다.
수많은 전설에 관하여 필자가 판단하겐데 노무현의 이야기는 한민족에게는 이미 『노무현의 전설』이 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노무현의 상록수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쳐도,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거치른 들판에 솔잎 되리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이기리라 깨우치리라.
10. 새가된 망제는 밤마다 불여귀를 부르짖으며 목구멍에 피가 나도록 울었다고 한다.
접동새는 두견새의 방언이다.
두견이는 두견과의 새로서 뻐꾸기와 비슷하나 좀 작고 몸빛 등이 어두운 청갈색 또는 회색이고 배는 흰 바탕에 검은 가로 무뉘가 있다.
딴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생육을 떠맏긴다.
우리나라와 동북아시아에서 번식하고 인도 등지에서 겨울을 난다. 귀촉도, 두견새, 불여귀, 자규, 망제라고도 부른다.
소쩍새는 두견새와 다른 새이다.
영어로 cuckoo라는 두견새는 주로 낮에 활동하는 뻐꾸기목 두견과의 새인데 반하여 영어로 owl이라는 소쩍새는 올빼미과의 새로 주로 밤에 활동한다.
소쩍이라는 이름은 몹쓸 시어머니가 작은 솥으로 밥을 하게 함으로써 밥이 모자라 결국 굶게 된 며느리의 넋이 새가 되어 솥이 작다고 슬피 운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솥 작다-솥적-소쩍)
불여귀는 촉나라 망제가 하루아침에 나라를 빼앗기고 타국으로 쫓겨난 후로 촉나라로 돌아가지 못함을 한탄하다가 저녁에 죽었는데. 그의 영혼은 두견이라는 새가 되었다고 전한다.
새가된 망제는 밤마다 불여귀(不如歸)를 부르짖으며 목구멍에 피가 나도록 울었다고 한다.
블여귀란 돌아가지 못함을 뜻한다. 소월의 접동새는 소쩍새를 잘못 표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