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전라도의 이름없는 농꾼(농사꾼)이 2017년 11월 15일 전남 곡성 한울고등학교 학생들(수능일을 하루 앞둔)에게 “그대를 사랑하는 쌀”이라는 제목으로 들려준 ‘놀랍고 두려운’ 이야기입니다. 최근 그 선생님이『논 벼 쌀』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이 나라 국민으로서 이 단음절 세 단어의 역사와 현재적 의의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은 반드시 정독해야 할 ‘쾌저快著’입니다. 강의 내용은 모두 1만1천여자(200자 원고지 60장)가 되므로 상,중,하로 분절하여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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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수능일입니다. 이런 날은 머리가 잘 돌아가야 합니다. 평소 잘 알고 있었던 것뿐만 아니라 먼 산 보느라 흘려들었던 것까지도 벼락처럼 생각나야 하는 날입니다. 그래, 어떻게 해야 머리가 잘 돌아갈 수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이 오늘 논의의 초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머리, 특히 뇌는 감각 언어 기억 등 사람의 여러 행동을 관장하는 신경세포와 이들을 서로 연결해 주는 신경섬유, 이것들에 산소와 양분을 공급하는 혈관 그리고 이들 전체를 보호하는 여러 종류의 외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뇌는 영구치가 나오는 6∼7세가 되면 성인 크기의 90%에 달할 만큼 성장합니다. 그것의 주류는 뇌신경세포, 결코 손상되어서는 안될, 또한 손상이 되면 회복이 어려운 일종의 영구세포인 뇌신경세포가 그 중심입니다. 그 후의 성장과정은 이들을 연결하고 작동하게 할 신경섬유와 뇌혈관이 보강되는 시기입니다. 이리 보면 머리가 잘 돌아간다고 하는 말이 제법 그럴 듯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성장과정은 중요한 점을 시사해 줍니다. 무엇보다 머리가 나쁜 사람이란 것이 본래 없었다는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그 뇌세포들이 얼마나 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활동할 수 있게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다를 수 있을 뿐입니다.
연구자들은 신경세포 자체의 결손이 없는 한, 뇌의 부피나 무게 또는 피질 주름의 굴곡도 등이 지능 감성 등의 능력과 무관함을 밝히고 있습니다. 관건은 신경섬유와 뇌혈관의 성장, 즉 여러분 나이의 성장기를 어떻게 보내는가에 있습니다. 그 결과가 머리가 좋니 나쁘니 하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은 또한 좋고 나쁘다는 것이 타고난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개선 내지 변경할 수 있는 것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흔히들 말하는 깨운다는 뜻의 계발啓發도 바로 이것이겠습니다.
뇌의 성장과정은 사람의 생명력을 여지없이 보여줍니다. 사람의 뇌신경세포는 170억 개쯤 된다고 합니다. 그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신체의 각 부분에 도달하는 과정은 지극히 정교하면서도 복잡할 것입니다. 신경세포끼리 연결하는 170억×169억…999만 하더라도 그 숫자를 적느라 여러분의 펜이 다 닳아질 지경입니다. 더구나 그것은 단순히 자를 대고 선을 그리는 것이 아닙니다. 수만의 세포와 조직으로 이루어지는 미세한 물질구조를, 그것도 억과 조 단위를 넘어가는 양을 현실세계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해내는 것입니다.
그 현장을 실제 볼 수 있는 예로 심혈관계 환자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원인으로 심장을 들고나는 혈관이 막혀가면서 뇌졸중이나 뇌경색에 이를 가능성이 있는 환자가 많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어느 틈엔가 기존 혈관 대신 전혀 새로운 대체혈관이 만들어져 있곤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생리물질에 의해 혈관의 환경이 좋아지거나 상처에 살이 차오르는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신체구조를 만들어내는, 이것은 가히 조물주, 신의 세계라 할 만합니다. 나이 많은 이들이 이러한데, 비교할 수없이 생생한 여러분 때는 어떻겠습니까? 그것이 어떤 힘,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은 조물주의 신인 여러분이 맑은 눈, 힘 있는 의기로써 앞으로 알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뇌의 성장에 결정적인 것이 무엇보다 여러분의 생각과 의지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흙에서는 왜 이런 냄새가 나지 하면서 땅을 파볼 때 그와 관계된 지각 유추 기억이나 감각운동 등 관련된 신경세포들이 앞서의 대체혈관에서처럼 서로 연결됩니다. 북두칠성의 가운데 별은 색깔이 파란가 하얀가 하고 초점을 모을 때도 또한 그럴 것입니다.
사람을 소우주라도도 합니다. 우주의 무수한 형상과 기운에 영향을 받아 그것을 170억 가지로 정리해 압축해 놓은 것이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연결하여 별이 뜨고 기울며 계절이 오고 가면서 우주가 돌 듯, 여러분의 소우주를 돌릴 준비를 하는 단계가 여러분의 성장기입니다. 달과 지구의 중력이나 구심력 원심력과 관련된 것이 연결되지 않으면 달이 뜨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심각한 일입니까. 어머니의 한숨을 새겨 보는 시각이나 촉각, 기억의 회로가 원활하지 않다면 또한 어떻겠습니까? 그래 우리 문화에서는 영구치가 나오려고 젖니가 빠지면(이것이 신경세포가 준비되어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것을 지붕 위로 던지면서 ‘까치야 까치야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하면서 그 신경세포들을 연결할, 일생일대의 중대사를 맞이할 일종의 의식을 치르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 일대사를 원만하게 진행시키고자 하는 것의 하나가 여러분의 학교입니다. 학교 교육을 여섯 살 무렵에 시작하는 것이 비단 말귀 알아들을 만하고 저 혼자서도 웬만큼 저 혼자서도 나다닐 수 있겠다 싶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무렵이 바야흐로 신경세포가 준비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라 하여 모두가 꼰대인 것은 아닙니다. 초등 중둥으로 이어지는 12년의 기간에 이 뇌신경세포들을 이어갈 넒은 신작로로부터 마을의 작은 골목길, 나아가 식구들의 나이나 성향에 맞게 방을 앉히고 부엌과 화장실 등을 배치하는 그 동선에 이르기까지 단계 단계로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중에 하나라도 빠지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른들한테서 고등학교 때 배운 미분 적분, 어렵기만 하고 나중에 아무 데도 쓸모가 없었다는 말을 듣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시기는 그 지식만이 초점이 아닙니다. 미적분의 복잡한 세계를 접할 때 우리의 신경세포는 그만큼 정교하게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위해서 국어시간이 있고 영어가 있으며 목공 수업도 운동장의 체육도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술 담배는 못하게 합니다. 그것들은 곧바로 혈관계로 침투합니다. 특히 인체에서 활동량이 가장 많은 부분이기 때문에도 뇌 속으로 신속하게 빨려들어갑니다. 이것이 의식중추를 만들고 있는, 우주에서 가장 민감하고 정교한 뇌신경 공장을 덮치는 것입니다.
컴퓨터나 게임도 그렇습니다. 프랑스는 12세 이하의 아이들이 컴퓨터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아예 법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전국 수천 개의 도서관이 세밀히 네트워크화되어 있어 시골의 작은 도서관에서 검색한 책과 음반이 다음날이면 런던이나 에든버러로부터 날아올 정도로 발달된 나라이지만, 그곳의 검색 컴퓨터, 아이나 여러분 또래의 청소년이 접근할 수도 있는 그 장비는 옛날의 펜티엄은 고사하고 셀러론이기조차 했습니다.
한 곳에 집중하면 그 부분은 발달할 수 있겠지만, 대신에 다른 부분은 방치 고사됩니다. 뿐만 아니라 과도한 몰입은 부하로 인해 그 부분마저 파괴해 버릴 수 있습니다. 여기에다 한 술 더 떠, 우리의 전통교육에서도 그러했듯이, 현대 대안교육의 양대 조류라 할 수 있는 독일의 발도르프나 영국의 서머힐의 경우 신경세포가 구축되기 이전이 6세 이하의 경우 머리를 굴려아 하는 문자교육 자체를 금하기까지 합니다.
어찌 보면 여러분은 똑똑해질 것이 아니라 한없이 다양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여러분의 170억 개 신경세포가 마치 하나인 것처럼 다 연결되었을 때, 여러분은 어떤 사람 어떤 믈건이라도 곧바로 내 심정을 다 열어 들여다볼 수 있고, 필요한 것이라면 광대한 우주의 끄트머리까지라도 단번에 날아가 찾아내올 수 있는 의기와 힘이 있는, 말 그대로 만물의 영장, 온전한 하나의 사람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