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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신 예수님(2)(2024년 3월 10일 오후예배)
성 경 : 요한복음 19:28-42(신약 181)
지난 주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하신 일곱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계속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신 것과 장사지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 세상을 떠나게 될 때는 이별의 슬픔이 있게 마련입니다. 슬프지 않은 장례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평범하게 살지 않고 모두에게 손가락질을 당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세상을 떠날 때는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장례를 보았는데 저에게 있어 가장 마음 아프고 슬픈 장례식은 초등학생 두 딸과 암 선고를 받은 남편을 두고 떠나는 분의 장례였던 것 같습니다. 어린 두 딸이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참 힘든 일이었고 울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정말 마음 아팠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큰딸이 결혼하면서 주례를 해 달라고 해서 주례를 해주면서 잘 자라서 잘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금요일 송경순 집사님 시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밤 기도회를 끝나고 가면서 연락을 받았는데 송경순 집사님은 며느리임에도 시아버지가 아프시고 고생하시는 것을 보면서 마음 아파했고 마지막 순간에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받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의식이 없는 시아버지 귀에 대고 주님을 전하고 영접 기도를 해 드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사님의 진심과 아픔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월 말에서 3월에 들어서면서 매주 장례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도 하나님 품에 안길 날이 곧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사람의 몸으로 영원히 살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 주님의 부름을 받아서 육체와 이별을 해야 할 날이 오게 되겠지요.
언제나 나에게 찾아올 인생의 마지막 날을 위한 영적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내 몸과 영혼이 이별하는 날 내 영혼이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갈까요?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는 영원한 천국에 믿지 않는 자는 영원한 지옥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으로 가고 지옥으로 가는 것은 믿음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죽으심과 장사지내심에 대한 기록은 우리가 가야 할 천국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고,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영생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죽으신 예수님”이란 제목으로 두 번째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성경을 응하게 하셨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기록하면서 예수님의 죽으심은 성경을 응하게 하신 것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지난 주에 살펴본 가상 칠 언 중에 다섯 번째 말씀인 내가 목마르다고 하신 것은 성경을 응하게 하심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계속해서 요한 사도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관련된 성경 말씀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운명하시는 과정에서 성경을 응하게 하신 일을 설명한 것을 보면
시체를 십자가에 두지 않으려고 했다. 31절을 보면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이 날은 준비일이라고 했는데 안식일 전날이고 유월절 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때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큰 안식일이라고 한 것은 유월절의 첫날이 안식일로 시작되기 때문에 평소 안식일과 다르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안식일이라는 의미입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시작되는 상황에서 사형당한 시체가 나무에 달려 있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최고의 축제의 날인데 축제가 시작되기 전에 시체를 치우고 축제를 시작해야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도에게 가서 곧 시작될 유월절 축제를 위해서 시체를 치워달라고 부탁을 하면서 아직 죽지 않았다면 다리를 꺾어서 숨이 끊어지게 해서 치워달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아침이 하루의 시작이지만 유대인의 시간은 해질 무렵부터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후 3시쯤에는 곧 새날이 시작되기 전이기 때문에 날이 저물기 전에 사형 집행이 모두 마무리되고 새날을 시작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다리를 꺾어서라도 죽여서 치워달라고 한 것입니다.
유대 역사가인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장례만큼은 정성을 다해서 치루었다고 합니다. 십자가에 달린 죄수라고 해가 지기 전에 장사를 지내주는 관습이 있었고, 율법에 나무에 달린 자를 밤이 지나도록 매달아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요구대로 병사들을 시켜서 두 사람의 다리를 꺾게 했습니다. 32절을 보면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일반적으로 로마의 형벌은 십자가에 처형을 당한 사람을 곧 바로 치우지 않고 사람들이 보도록 며칠을 십자가에 달린 채로 두어서 로마에 대항하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유대인들이 자신의 축제일을 위해서 치워달라고 하는 말을 듣고 빌라도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 처형 판결을 할 때도 무죄로 풀어줄 수 있지만 유대인들과 마칠을 피하기 위해서 십자가 판결을 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고 시체를 치워달라는 요구도 들어주었습니다. 축제를 위해서 예루살렘에 수많은 인파가 모인 상황에서 유대인들과 마찰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를 들어준 것입니다.
빌라도는 군인들에게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 중에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사람들은 다리를 꺾어서 죽게 해서 치우라고 명령을 했고 군인들은 빌라도의 명령에 의해서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을 살펴보면서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사람들은 다리를 꺾어서 죽게 했습니다.
우리는 그럼 왜 다리를 꺾어서 죽게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다리를 꺾으면 극심한 통증을 느끼게 되면서 다리를 받침대에 의지해서 견디고 있기 때문에 균형이 무너지고 호흡 장애가 생겨서 숨을 빨리 거두게 된다고 합니다. 십자가에 처형의 경우에 해당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33-37절까지를 보면
19:33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19: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19:35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19:36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19:37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다른 사형수들은 아직 숨이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다리를 꺾어서 숨이 멈추게 했지만 군인들이 예수님을 확인한 결과 예수님은 이미 돌아가셨기 때문에 다리를 꺾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군인은 확인을 위해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몸에서 피와 물이 나왔습니다. 이런 광경을 본 사람들 중에 이것은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성경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는 말은 시 34:20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의 성취라고 말한 것이고, 유대인의 유월절 양을 잡을 때 뼈가 상하지 않게 하도록 규정했고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유월절 어린 양이시기 때문에 뼈가 하나도 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고 한 말씀은 슥 12: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의 성취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셨고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하게 하셨고 그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고 그리고
2. 무덤에 장사지냈습니다.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오후 3시쯤에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다음에 장사를 지내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사형을 당한 죄수들은 당일에 장사를 지내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도 당일에 장사를 지내는 것을 볼 수도 있습니다.
특별한 분들의 장례는 길게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중동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그래서 가급적이면 빨리 장례를 치루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문제가 있는데 누가 장례를 치루고 어디에 무덤을 만드는가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도망을 갔고 가족들도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장사지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서 미리 준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38절을 보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구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였다고 기록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해서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숨기고 살았습니다. 왜 숨겨야만 했는가에 대해서 마태는 부자였다고 기록하고 마가는 존경받는 공회원이었다고 기록을 했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공회 회원이라는 것은 정치적으로 상당한 힘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런 요셉이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유대 지도자들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누리는 것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을 숨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이제는 당당하게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드러내면서 예수님을 장사지내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정작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가 숨어버린 상황에서 하나님은 숨은 제자였던 아리마다 사람을 요셉을 통해서 예수님의 장례를 치루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오늘날도 숨겨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의 가정과 사업체와 직장생활을 위해서 숨겨둔 사람들이 있음을 믿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담대하게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장례에 참여한 또 다른 사람은 니고데모였습니다. 39절을 보면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니고데모가 예수님 장례를 위해서 헌신했다는 이야기는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요한복음 3장에서 한 밤 중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듣고 갔습니다.
요한복음 7장에서는 예수님을 정죄하려고 할 때 예수님을 변론하려고 하기도 했지만 니고데모도 숨은 제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니고데모도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서 장례에 필요한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같이 니고데모도 이제는 자신이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어떤 불이익이 오더라고 감수하겠다는 자세로 예수님의 장례를 치룬 것입니다.
로마는 십자가에 처형당한 죄수는 그대로 나무에 달아놓고 새들의 먹이가 되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정해진 장소에 묻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새 무덤에 장자 지냈습니다.
40-42절까지를 보면
19:40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19:41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19:42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는 유대인들의 장례법대로 온갖 정성을 다해서 예수님의 시체를 무덤에 안치했습니다. 예수님을 장사지낸 무덤은 마태복음에 의하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소유입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자신의 소유 중에서 사람을 장사지낸 적이 없은 새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 지냈습니다.
유대인들은 우리처럼 땅을 파도 묻는 것이 아니라 굴속에 시신을 넣고 돌로 입구를 막았습니다. 마가복음에 의하면 바위게 판 굴속에서 예수님을 장사지냈습니다.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돌아가셨지만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으신 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돌아가신 그날에 있었던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을 이미 준비해 놓으셨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역사하시고 함께 하심을 믿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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