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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8일
비가 내렸다.
○ 사시(巳時)에 측우기의 수심(水深)은 3푼이었다.
빈전에 나아가 조전을 행하였다.
○ 의주대로 예를 행하였다.
호조 참판 정창순(鄭昌順)이 정세(情勢)를 진달하는 소를 올려 사신(使臣)의 직함을 체차해 달라고 청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 상소의 대략에,
하였는데, 비답하기를,
하였다.
판의금부사 서명선(徐命善)이 새로 내린 자급을 사양하는 소를 올린 데 대해, 의례적인 비답을 내렸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정언 김치신(金致信)이 현(縣)과 도(道)를 통해 소를 올려 사직하고 이어 정후겸(鄭厚謙)을 현륙(顯戮)하도록 청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 비답하기를,
하였다.
경상 감사 김재순(金載順)이 어미의 병을 진달하여 감사의 직임을 체차해 주기를 청하는 소를 올린 데 대해, 비답을 내려 허락하였다.
○ 비답하기를,
하였다.
부사직 이상로(李商輅)가 개명(改名)을 청하는 소를 올린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 이상로가 김상로(金尙魯), 박상로(朴相老)와 이름의 음이 서로 유사하기 때문이었다.
○ 비답하기를,
하였다.
황해 감사 이성원(李性源)이 새로 제수된 감사 의 직임을 사직하는 소를 올린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 비답하기를,
하였다.
병조 판서 이휘지(李徽之)와 주서 윤익동(尹翊東)이 소를 진달하여 춘추 겸함을 체차해 주기를 청한 데 대해, 모두 해조(該曹)에 내려 품처(稟處)토록 하겠다고 비답을 내렸다.
○ 이휘지가 그의 친사돈(親査頓)인 영사(領事) 김양택(金陽澤)과 춘추 겸함을 피해야 할 혐의가 있어서이다.
○ 윤익동이 응교 정원시(鄭元始)와 처남 매부 관계로 피해야 할 혐의가 있어서이다.
대사헌 박상덕(朴相德) 등이 연명으로 상소하여 항렬(行列)을 고치게 해 달라고 청한 데 대해, 해조에 내려 품처하도록 하겠다고 비답을 내렸다. 부사직 박상악(朴相岳), 은산 현감(殷山縣監) 박상래(朴相來)이다.
○ 박상덕이 ‘상(相)’ 자를 ‘종(宗)’ 자로 고치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하직하는 수령 및 호조 판서 정홍순(鄭弘淳)과 약원의 세 제조 를 여차에서 소견하였다. 도제조 김양택, 제조 서명선(徐命善), 부제조 홍국영(洪國榮)이다.
○ 비안 현감(比安縣監) 이석직(李錫稷)이 앞으로 나왔다. 내가 이르기를,
하니, 대답하기를,
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하니, 정홍순이 아뢰기를,
하였다.
○ 의관(醫官) 이 체후를 진찰하고 아뢰기를,
하여, 내가 이르기를,
하니, 의관 방태여(方泰輿)가 아뢰기를,
하였다.
[주D-001]오일 경조(五日京兆) : 관원이 직임을 오래 맡지 못한다는 뜻이다. 한 선제(漢宣帝) 때 경조윤(京兆尹) 으로 있던 장창(張敞)이 탄핵을 받았다. 이 때 장창이 포연(捕掾)인 서순(絮舜)에게 일을 시켰는데, 서순은 장창이 탄핵을 받아 곧 면직될 것이므로 5일밖에 경조윤 에 있지 못하리라 여겨 일을 보지 않다가, 장창에게 기시(棄市)되었다. 《漢書 卷七十六 趙尹韓張兩王傳》
진어할 가감(加減)한 이신교제탕을 오늘부터 달여 들이도록 명하였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의소묘(懿昭廟) 감실(龕室)의 산선(繖扇)은 그대로 사용하고, 상탁(狀卓)과 제기(祭器)는 새로 제조하지 말도록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경모궁(景慕宮)의 보수 공사 때 옮겨 봉안하는 의절은 그때 가서 품지(稟旨)하도록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호조 참의 이시달(李蓍達), 풍천 부사(豐川府使) 이시정(李蓍廷), 포도대장 이한응(李漢膺)을 개차하였다.
○ 영의정 김양택(金陽澤)이 아뢰기를,
하여, 따랐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이홍상(李鴻祥)을 전직(前職)에 유임시키도록 명하였다.
○ 영의정 김양택이 아뢰기를,
하여, 따랐다.
광주(廣州)의 향곡(餉穀)과 환곡(還穀)의 가분(加分)을 획급(劃給)해 달라는 청을 허락하였다.
○ 수어사(守禦使) 서명선(徐命善)이 아뢰기를,
하였다. 내가 대신에게 문의하자, 영의정 김양택이 아뢰기를,
하여, 따랐다.
산릉도감 도청 과 상지관(相地官) 을 여차에서 소견하였다. 부사과 이상봉(李商鳳), 상지관 김기량(金基良)ㆍ김상현(金相鉉)ㆍ유동형(柳東亨)이 나왔다.
○ 내가 이르기를,
하니, 이상봉이 아뢰기를,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하니, 이상봉이 아뢰기를,
하고, 김기량이 아뢰기를,
하여, 내가 이르기를,
하고, 민 문충공(閔文忠公)의 주의를 들여 읽어 아뢰도록 명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하였다.
빈전에 나아가 석전을 행하였다.
○ 의주대로 예를 행하였다.
본부에 추국을 설치하였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추국을 잠시 파하도록 명하였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병조참판 홍수보(洪秀輔)와 승지 서호수(徐浩修)를 추고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4월 9일
빈전에 나아가 조전을 행하였다.
○ 의주대로 예를 행하였다.
다른 도청(都廳) 과 금성위(錦城尉) 가 지사(地師)를 인솔하고 간심하라고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공조 참판 정이환(鄭履煥)이 상소하여 새로 내린 자급을 사양하고 이어 홍봉한(洪鳳漢)을 재량하여 처리하도록 청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 비답하기를,
하였다.
정언 송환억(宋煥億)이 상소하여 자신을 탄핵하고 이어 홍인한(洪麟漢)의 패역(悖逆)을 성토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 상소의 대략에,
하였는데, 비답하기를,
하였다.
지평 윤광승(尹光昇)이 소를 올려 어미의 병 때문에 고향으로 찾아간다고 진달한데 대해, 가서 간호하도록 허락하는 비답을 내렸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대사성 김문순(金文淳)이 소를 올려 어미의 병 때문에 지레 떠나며 체직을 바란다고 진달한 데 대해, 가서 간호하도록 허락하는 비답을 내렸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강원 감사 김하재(金夏材)가 소를 올려 새로 제수된 감사의 직임을 사양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 비답하기를,
하였다.
동지춘추관사 조재준(趙載俊)이 소를 진달하여 항렬을 고치게 해 달라고 청한 데 대해, 해조에 내려 품처하도록 하겠다는 비답을 내렸다.
○ 조재한(趙載翰)이 흉역(凶逆)을 저지른 자이기 때문에 ‘재(載)’ 자를 ‘시(時)’ 자로 고치게 해 달라고 청한 것이다.
좌참찬 홍낙성(洪樂性)이 소를 올려 응당 피해야 할 혐의가 있다고 진달하면서 체직을 청한 데 대해, 해조에 내려 품처하도록 하겠다는 비답을 내렸다.
○ 홍낙성이 좌의정 정존겸(鄭存謙)과 친사돈 관계로 응당 피해야 할 혐의가 있었다.
교리 박천형(朴天衡) 등이 연명으로 소를 올려 강연(講筵)을 열도록 권면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교리 김이정(金履正), 부교리 심풍지(沈豐之)ㆍ심유진(沈有鎭)이다.
○ 비답하기를,
하였다.
시원임 대신, 금성위 , 상지관 을 여차에서 소견하였다. 판중추부사 김치인(金致仁), 영의정 김양택(金陽澤), 판중추부사 이은(李溵), 좌의정 정존겸, 금성위 박명원(朴明源), 상지관 김기량(金基良)ㆍ김전(金田)ㆍ유동형(柳東亨)ㆍ김상현(金相鉉)이 나왔다.
○ 김양택이 아뢰기를,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하니, 김치인이 아뢰기를,
하고, 승지 홍국영(洪國榮)이 아뢰기를,
하였다. 내가 지사(地師)에게 묻기를,
하니, 김기량이 아뢰기를,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하니, 김기량이 아뢰기를,
하고, 유동형이 아뢰기를,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하니, 김기량 등이 아뢰기를,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하니, 김기량 등이 아뢰기를,
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승지 오재소(吳載紹)를 체차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정사가 있었다. 이조 판서 서명선이 나왔다.
○ 이상암(李商巖)을 승지 로, 김익(金熤)을 형조 참판 으로, 황경원(黃景源)을 예문관 제학 으로, 오재소를 곡산 부사(谷山府使) 로, 이명걸(李命杰)을 선산 부사(善山府使) 로, 이석모(李碩模)를 장릉 참봉(長陵參奉) 으로, 조정헌(趙廷獻)을 홍릉 참봉(弘陵參奉) 으로 삼았다. - 이석모 이하는 모두 초사(初仕)이다.
산릉을 간심한 신하들을 여차에서 소견하였다. 판중추부사 김치인, 영의정 김양택, 판중추부사 이은, 좌의정 정존겸, 금성위 박명원, 상지관 김기량ㆍ유동형ㆍ김상현이 나왔다.
○ 건원릉의 오른쪽 두 번째 언덕을 간심한 뒤 들어온 것이다.
○ 내가 이르기를,
하니, 김양택이 아뢰기를,
하고, 박명원이 아뢰기를,
하였다. 내가 산론(山論)을 읽도록 명하고는, 이르기를,
하니, 정존겸이 아뢰기를,
하였다.
○ 산론의 별단(別單)에,
건원릉 오른쪽 두 번째 언덕에 벌목(伐木)을 하고 표(標)를 세우고 고유(告由)하는 것을 규례대로 거행하도록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능호(陵號)를 회의하도록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어사 임희우(任希雨)의 공초(供招)를 봉입한 계목(啓目)을 판하(判下)하였다.
○ 전 해서 어사(海西御史) 임희우의 공초를 봉입한 의금부의 계목과 관련하여, 하교하기를,
하였다.
추쇄관(推刷官) 최익령(崔益齡) 등 및 별감 신익표(申翊標) 등에 대해 조사한 형조의 계목을 판하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 황해도 추쇄관 천세익(千世翊)을 조사한 형조의 계목과 관련하여, 하교하기를,
하였다.
○ 승혜전(繩鞋廛)에서 야료를 부린 별감 신익표, 김흥운(金興雲), 조수대(趙壽大), 유춘득(柳春得), 김서흥(金瑞興) 등에 대해 고율(考律)한 형조의 계목과 관련하여, 하교하기를,
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설리(薛里) 정덕해(鄭德海)를 조율하도록 명하였다.
○ 설리 정덕해를 태거(汰去)하는 문제를 해부(該府)에 내려 처리하라는 의금부의 계목과 관련하여, 하교하기를,
하였다.
중관(中官) 안경택(安景宅)을 감봉(減俸)하도록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여러 궁방(宮房)의 전결(田結)을 조사해 내어 아뢰도록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남양부(南陽府)에 정배한 죄인 김상익(金相翊)을 석방하였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빈전에 나아가 석상식을 행하였다.
○ 의주대로 예를 행하였다.
각사 문서의 수교(受敎) 위에 ‘선조(先朝)’라는 두 글자를 쓰도록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어서각(御書閣)의 상량문(上樑文)을 승지 가 지어 올리도록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가분(加分)을 요구하는 장계를 내일 품처하도록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4월 10일
봉조하 홍봉한(洪鳳漢)에게 유시(諭示)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황경원(黃景源)을 좌참찬 으로, 이진옥(李鎭玉)을 원릉 참봉(元陵參奉) 으로 삼았다. 구전(口傳)이고 초사(初仕)이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이국현(李國顯)을 평안 병사 로 삼았다. 비천(備薦)이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예조가 건원릉(健元陵)을 벌목할 때 고유(告由)할 길일(吉日)을 잡아 아뢰었다.
○ 해조가 아뢰기를,
하여, 윤허하였다.
우참찬 이복원(李福源)이 소를 올려 정세(情勢)를 진달하고 체직을 청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 상소의 대략에,
하였는데, 비답하기를,
하였다.
청천군(淸川君) 김종정(金鍾正)이 소를 올려 정세를 진달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 상소의 대략에,
하였는데, 비답하기를,
하였다.
부제학 심이지(沈履之)가 소를 올려 자신을 인책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 상소의 대략에,
하였는데, 비답하기를,
하였다.
흥정당(興政堂)에서 차대(次對)를 행하였다.
○ 영의정 김양택(金陽澤)이 아뢰기를,
하여, 내가 이르기를,
하니, 대제학 이휘지(李徽之)가 아뢰기를,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하니, 김양택이 아뢰기를,
하여, 내가 이르기를,
하였다.
각도의 환곡(還穀)과 향곡(餉穀)을 가분(加分)해 달라는 청을 허락하였다.
○ 영의정 김양택이 아뢰기를,
하여, 따랐다. 또 아뢰기를,
하여, 내가 좌상 에게 물어 보니, 정존겸(鄭存謙)이 아뢰기를,
하여, 따랐다. 또 아뢰기를,
하여, 따랐다. 또 아뢰기를,
하여, 따랐다. 또 아뢰기를,
하여, 따랐다.
이계(李溎)와 조준(趙㻐)에게 급첩(給牒)하여 서용(敍用)하도록 명하였다.
○ 영의정 김양택이 계품한 것을 따른 것이다.
비국 당상(備局堂上) 에 황경원(黃景源)과 서호수(徐浩修)를 차하하였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강익 현감(康翊縣監) 민종렬(閔鍾烈)을 내직(內職)에 의망하라고 명하였다.
○ 민종렬이 외직에 보임된 지 오래 되어 병치레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상 이 계품한 것이다.
이번 책보(冊寶)를 요여(腰輿)에 함께 싣도록 명하였다.
○ 대제학 이휘지가 아뢰기를,
하여, 따랐다.
선혜청 당상 에 정홍순(鄭弘淳)을 다시 차출하였다.
○ 영상 이 계품한 것이다.
대사헌 박상덕(朴相德)이 피혐(避嫌)하여 체직을 청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 피혐의 대략에,
하였는데, 비답하기를,
하였다.
사간 유언수(兪彦脩)와 헌납 홍주만(洪周萬)이 연계(聯啓)하여 구윤명(具允明) 등을 원지(遠地)에 찬배하도록 청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 연계의 대략에,
하였는데, 비답하기를,
하였다.
○ 대사헌 박상덕이 아뢰기를,
하여, 따랐다.
정언 송환억(宋煥億)을 파직하였다.
○ 영의정 김양택이 아뢰기를,
하여, 비답하기를,
하였다.
전 비국 당상 구선복(具善復), 정홍순(鄭弘淳), 김종정(金鐘正), 조중회(趙重晦), 이중호(李重祜), 홍지해(洪趾海), 이계(李溎), 서유린(徐有隣), 권도(權噵), 심이지(沈履之), 윤득양(尹得養), 정일상(鄭一祥)을 도로 차출하였다. 탑교(榻敎)이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이번 사행(使行)에 관서(關西)의 은(銀) 3만 냥을 내주도록 명하였다.
○ 영의정 김양택이 아뢰기를,
하여, 따랐다.
빈전(殯殿)에 나아가 주다례(晝茶禮)를 행하였다.
○ 의주대로 예를 행하였다.
판중추부사 김상철(金尙喆)에게 유시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능(陵)과 원(園)의 제향(祭享) 식례(式例)를 고찰하여 아뢰도록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연령군(延齡君)의 봉사손(奉祀孫)을 정하도록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저경궁(儲慶宮)과 순강원(順康園)의 향사(享祀)에 대해 대신에게 문의하여 품처(稟處)하도록 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또 하교하기를,
하였다.
부제조 는 이신교제탕(二神交濟湯)을 가지고 입시하라고 명하였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임희우(任希雨)를 우선 그대로 가두어 두라고 명하였다.
○ 의금부가 아뢰기를,
하여, 하교하기를,
하였다.
사행(使行)에 쓰이는 인삼을 전례에 준하여 지급하라고 명하였다.
○ 영의정 김양택이 아뢰기를,
하여, 하교하기를,
하였다.
빈전에 나아가 석전을 행하였다.
○ 의주대로 예를 행하였다.
대가 끊어진 궁방(宮房)은 다시 세(稅)를 내도록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4월 11일
비가 내렸다.
○ 동틀녘부터 미시(未時)까지 내린 비로 측우기의 수심은 2치 5푼이었다.
빈전(殯殿)에 나아가 조전(朝奠)을 행하였다.
○ 의주대로 예를 행하였다.
판중추부사 김상철(金尙喆)과 호조 판서 정홍순(鄭弘淳)을 여차에서 소견하였다.
○ 내가 이르기를,
하니, 김상철이 아뢰기를,
하여, 내가 이르기를,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하니, 김상철이 아뢰기를,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하였다. 정홍순이 앞으로 나왔다. 내가 이르기를,
하였다.
[주D-001]양궁(兩宮) : 영조(英祖)와 동궁인 사도세자(思悼世子)를 말한다.
삼사(三司)의 신하들을 서용하도록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복상(卜相)하도록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 빈청에서 복상하여 봉조하 홍봉한(洪鳳漢), 영중추부사 김상복(金相福), 판중추부사 김치인(金致仁)ㆍ한익모(韓翼謩)ㆍ김상철ㆍ이은(李溵)을 봉입(封入)하였다.
김상철을 좌의정으로 삼았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명릉 참봉(明陵參奉) 최수신(崔粹臣)을 태거(汰去)하였다.
○ 최수신이 죄인 최재흥(崔載興)의 아들이기 때문에 이조에서 아뢰어 태거한 것이다.
정사가 있었다. 이조판서 서명선(徐命善), 참의 홍검(洪檢)이 나왔다.
○ 이현영(李顯永)을 사간 으로, 이겸빈(李謙彬)을 헌납 으로, 강침(姜忱)을 정언 으로, 이계(李溎)를 동지의금부사 로, 이상매(李商梅)를 명릉 참봉(明陵參奉) 으로 삼았다. - 초사(初仕)이다. -좌의정 에 김상철, 우의정 에 정존겸(鄭存謙), 예문관 대교 에 박우원(朴祐源)을 단부하였다.
경상 감사 이연상(李衍祥)이 소를 올려 새로 제수된 관찰사 의 직임을 사양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 비답하기를,
하였다.
거상중인 신하 김귀주(金龜柱)가 소를 올려 인삼에 관한 일을 상세히 조사하도록 청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 상소의 대략에,
하였는데, 비답하기를,
하였다.
교리 김이정(金履正)이 소를 올려 어미의 병 때문에 지레 나간다고 진달한 데 대해, 간호하도록 허락하는 비답을 내렸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돈녕부 도정 이재간(李在簡)이 소를 올려 자신을 인책하면서 체직을 청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 상소의 대략에,
하였는데, 비답하기를,
하였다.
형조 참판 김익(金熤)이 소를 올려 새로 내린 자급을 사양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 비답하기를,
하였다.
공조 참판 정이환(鄭履煥)이 소를 올려 의리를 끌어대고 이어 어미의 병 때문에 고향을 찾아간다고 진달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 상소의 대략에,
하였는데, 비답하기를,
하였다.
추쇄관 천세익(千世翊) 등과 정배한 죄인 윤기신(尹起莘) 등을 엄히 형신하여 정상을 알아 내도록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 형조의, 죄인 윤기신에 대한 계목과 죄인인 종[奴] 김이(金伊)를 다시 추고하라는 계목과 관련하여, 모두 하교하기를,
하였다. 또 이장환(李長煥)을 다시 추고하라는 계목과 관련하여, 하교하기를,
하였다.
남간(南間)의 죄인들에 대해 의금부에 별도로 신칙하도록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영의정 김양택(金陽澤)과 금성위(錦城尉) 박명원(朴明源)을 여차에서 소견하였다.
○ 김양택이 아뢰기를,
하여, 내가 이르기를,
하자, 김양택이 아뢰기를,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하니, 김양택이 아뢰기를,
하여, 내가 이르기를,
하였다. 박명원이 아뢰기를,
하였다.
빈전에 나아가 석전을 행하였다.
○ 의주대로 예를 행하였다.
4월 12일
빈전에 나아가 조상식(朝上食)을 행하였다.
○ 의주대로 예를 행하였다.
예조가, 저경궁(儲慶宮)과 순강원(順康園)의 향사(享祀) 등의 의절 및 연복전(延福殿)과 경모궁(景慕宮)의 향(香)을 전하는 봉투에 관한 의론을 수합한 것을 아뢰었다.
○ 해조(該曹)가 아뢰기를,
하여, 하교하기를,
하였다. 해조가 또 아뢰기를,
하여, 하교하기를,
하였다.
판중추부사 김치인이 소를 올려 의리를 끌어댄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 상소의 대략에,
하였는데, 비답하기를,
하고, 이어 사관 에게 전유하도록 명하였다.
좌의정 김상철이 소를 올려 거듭 재상직에 임명하는 명을 사양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 비답하기를,
하고, 이어 함께 오도록 한 승지 에게 전유하도록 명하였다.
병조 참의 박사해(朴師海)가 소를 올려 자신을 논열(論列)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 상소의 대략에,
하였는데, 비답하기를,
하였다.
동지경연사 이의철(李宜哲)이 소를 올려 강학(講學)을 권면하고 이어 사면(辭免)해 달라고 진달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 상소의 대략에,
하였는데, 비답하기를,
하였다.
좌의정 김상철에게 유시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수찬 조원진(曺遠振)과 이유경(李儒慶)을 체직하고, 이병모(李秉模)를 수찬 으로 삼았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김한로(金漢老)에게 군직(軍職)을 주어 승후(承候)하도록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흥정당(興政堂)에서 소대를 행하였다. 승지 서호수(徐浩修)ㆍ홍국영(洪國榮)ㆍ정민시(鄭民始), 부교리 심유진(沈有鎭), 수찬 이병모, 가주서 유맹양(柳孟養), 기사관 백광택(白光澤)ㆍ박우원(朴祐源)이 나왔다.
○ 《예기(禮記)》를 강(講)하였다.
○ 서호수에게 저경궁의 조례(祧禮)가 합당한지에 대해 품처한 예조의 초기를 읽도록 명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하니, 홍국영이 아뢰기를,
하여, 내가 이르기를,
하였다.
영희전(永禧殿)에 영정(影幀)을 봉안(奉安)하는 문제를 대신들에게 문의하도록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경모궁(景慕宮)의 악장문(樂章文)에 대해 3년 뒤에 거행하도록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영의정 김양택과 예조판서 정상순(鄭尙淳)을 여차에서 소견하였다.
○ 승지 홍국영이 아뢰기를,
하여, 내가 김양택에게 이르기를,
하였다.
통제사 조완(趙
)을 그대로 유임하도록 명하였다.
○ 영의정 김양택이 아뢰기를,
하여, 따랐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진묘(眞廟)를 추숭(追崇)하는 일을 고유(告由)하도록 명하였다.
○ 예조가 아뢰기를,
하여, 따랐다.
궁원(宮園)의 식례(式例)를 책자로 만듦에 있어 검토하여 품처하도록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추숭할 때 종묘에 시호(諡號)를 청하는 것은 마련하지 말도록 명하였다.
○ 예조 판서 정상순이 아뢰기를,
하여, 하교하기를,
하였다.
진종 대왕(眞宗大王)과 효순왕후(孝純王后)의 신주(神主)를 연복전에 봉안한 뒤 제사를 지내도록 명하였다.
○ 예조 판서 정상순이 아뢰기를,
하여, 따랐다. 하교하기를,
하였다.
[주D-001]고동가제(告動駕祭) : 3년상이 끝난 뒤 왕의 신주(神主)를 태묘(太廟)에 모시기 위하여 신주의 수레를 인발(引發)한다는 것을 고유(告由)하는 제사를 말한다.
진묘(眞廟)를 추숭한 뒤 옛 신주를 매안(埋安)하는 것은 장릉의 예대로 거행하도록 명하였다.
○ 예조 판서 정상순이 아뢰기를,
하여, 하교하기를,
하였다.
진종 대왕과 효순왕후의 새 신주를 옮겨 봉안하는 것은 졸곡(卒哭) 뒤에 택일하도록 명하였다.
○ 예조 판서 정상순이 아뢰기를,
하여, 하교하기를,
하였다.
경모궁에 시인(諡印)을 올리는 의식에는 모두 이전의 시호를 쓰도록 명하였다.
○ 예조 판서 정상순이 아뢰기를,
하여, 하교하기를,
하였다.
영정(影幀)을 장녕전(長寧殿)에 함께 봉안하는 일과 관련하여, 봉심하고 회주(回奏)하도록 명하였다.
○ 예조 판서 정상순이 아뢰기를,
하여, 하교하기를,
하였다.
경모궁에 시호를 올리는 날짜는 연복전을 추숭한 뒤 가려서 거행하도록 명하였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내일 예조 판서 와 참판 은 《황단의》와 《궁원식례》를 가지고 입시하도록 명하였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정민시는 영조도감(營造都監) 의 직임을 계속 살피고, 도감 당상 과 낭청 은 모두 추고하도록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열성(列聖)의 어제(御製)를 광중(壙中)에서 꺼내어 봉안하는 건(件)은 인산 때 안봉(安奉)하도록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빈전에 나아가 석전을 행하였다.
○ 의주대로 예를 행하였다.
4월 13일
승지 를 보내어 영우원(永祐園)에 나아가 봉심하게 하였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부제조 에게 이신교제탕(二神交濟湯)을 가지고 입시하라고 명하였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신대승(申大升)을 승지 로 삼았다. 전망(前望)이다.
○ 목(目)이 없는 기사임
예문관 대교 박우원(朴祐源)이 소를 진달하여 춘추 겸함의 체직을 청한데 대해, 해조에 내려 품처하도록 하겠다는 비답을 내렸다.
○ 박우원이 승지 신대승과 이종간(姨從間)으로 응당 피해야 할 혐의가 있었다.
영의정 김양택(金陽澤), 좌의정 김상철(金尙喆), 우의정 정존겸(鄭存謙), 황해 감사 이성원(李性源), 태천 현감(泰川縣監) 신익(申熤)을 여차(廬次)에서 소견하였다.
○ 이성원이 하직 인사를 한 것이다.
○ 내가 이성원에게 명하기를,
하니, 이성원이 아뢰기를,
하여, 따랐다. 내가 이르기를,
하니, 김상철이 아뢰기를,
하였다. 내가, 시장을 받들고 들어와 승지 가 읽도록 명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하니, 김양택이 아뢰기를,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하니, 김상철이 아뢰기를,
하고, 김양택이 아뢰기를,
하여, 내가 이르기를,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하였다.
그저께 내린 전교를 효주(爻周)하도록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영우원의 위답(位沓)과 향과 숯을 후하게 마련하도록 명하였다.
○ 승지 홍국영(洪國榮)이 아뢰기를,
하여, 따랐다.
영우원 뒷기슭에 말을 풀어 놓지 못하도록 명하였다.
○ 승지 홍국영이 아뢰기를,
하여, 따랐다.
빈전(殯殿)에 나아가 주다례(晝茶禮)를 행하였다.
○ 의주대로 예를 행하였다.
흥정당(興政堂)에서 소대(召對)를 행하였다. 참찬관 홍국영, 시독관 심유진(沈有鎭), 검토관 이병모(李秉模), 기사관 윤익동(尹翊東)ㆍ백광택(白光澤)ㆍ박우원(朴祐源)이 나왔다.
○ 《예기(禮記)》를 강하였다.
고(故) 대사간 이존중(李存中)에게 특별히 문형(文衡)을 증직하도록 명하였다.
○ 참찬관 홍국영이 아뢰기를,
하여, 하교하기를,
하였다.
양녕대군(讓寧大君)과 효령대군(孝寧大君) 두 궁방(宮房)의 세금을 면제해 주는 것은 다른 방과 똑같은 예(例)로 거행하지 않도록 명하였다.
○ 호조 판서 정홍순(鄭弘淳)이 아뢰기를,
하여, 따랐다.
이번에 적몰(籍沒)한 전답을 양향청(糧餉廳)에 소속시키도록 명하였다.
○ 호조 판서 정홍순이 아뢰기를,
하여, 따랐다.
산릉을 간심한 상지관 김기량(金基良) 등을 여차에서 소견하였다. 상지관 은 유동형(柳東亨)과 김전(金田)이다.
○ 내가 이르기를,
하니, 김기량 등이 아뢰기를,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하니, 김기량 등이 아뢰기를,
하여, 내가 이르기를,
하였다.
산릉을 간심한 상지관 김기량(金基良) 등을 여차에서 소견하였다. 상지관 은 유동형(柳東亨)과 김전(金田)이다.
○ 내가 이르기를,
하니, 김기량 등이 아뢰기를,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하니, 김기량 등이 아뢰기를,
하여, 내가 이르기를,
하였다.
4월 14일
빈전에 나아가 조상식을 행하였다.
○ 의주대로 예를 행하였다.
영정을 옮겨 봉안하는 날짜를 20일 전으로 잡도록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또 하교하기를,
하였다.
예조가 영정을 옮겨 봉안하는 길일을 잡아 아뢰었다.
○ 해조가 아뢰기를,
하여, 하교하기를,
하였다.
영의정 김양택(金陽澤)을 여차에서 소견하였다.
○ 내가 이르기를,
하니, 김양택이 아뢰기를,
하였다.
대사헌 박상덕(朴相德)을 체차하였다.
○ 박상덕이 품계는 높은데 직임은 낮아, 대신이 계청(啓請)하여 변통한 것이다.
이번 정사(正使)의 사행(使行)에 어의(御醫)를 보내는 한 가지 의절(儀節)은 규례대로 거행하도록 명하였다.
○ 대신의 계품으로 인하여 이런 명을 하게 된 것이다.
정사가 있었다. 이조판서 서명선(徐命善)과 참의 홍검(洪檢)이 나왔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 김재순(金載順)을 대사헌 으로, 박재원(朴在源)을 교리 로, 엄사만(嚴思晚)을 수찬 으로, 홍경안(洪景顔)을 영광 군수(靈光郡守) 로 삼았다.
혼전도감(魂殿都監)의 당상 정상순(鄭尙淳)과 도청 임득호(林得浩)를 여차에서 소견하였다.
○ 내가 이르기를,
하니, 정상순이 아뢰기를,
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하였다.
영정을 옮겨 봉안할 때 섭관(攝官)을 차출하고, 운검(雲劍)과 보검(寶劍)은 새로 만들지 말도록 명하였다.
○ 하교하기를,
하였다. 또 하교하기를,
하였다.
빈전에 나아가 석상식을 행하였다.
○ 의주대로 예를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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