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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표지
#저자 소개
아버지는 농업학 전공으로 화훼연구소를 운영하고 어머니는 식물학 교수로 강의하고 동생은 지질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안녕하세요. 😊
오늘도 좋은 독서여행을 떠나시는군요.
이탈로 칼비노의 **『나무 위의 남작』**이라면, 정말 함께 이야기할 만한 것이 많은 작품이지요.
특히 이 작품은 처음에는 **“한 소년이 나무 위에 올라가 평생 내려오지 않았다”**는 기묘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읽고 나면 오히려 이런 질문이 오래 남습니다.
> **세상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세상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코시모는 세상을 버린 사람이 아니었어요.
나무 위에 있으면서도 사람들과 사랑하고, 책을 읽고, 정치를 이야기하고, 혁명에도 참여하고, 주변 사람들의 삶에도 관여하지요.
그러면서도 **끝내 땅으로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을 읽을 때마다 코시모의 나무를 하나의 **‘거리 두기’**로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완전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조금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위치를 스스로 만드는 것.**
그리고 칼비노가 아주 재미있게 묻는 것 같아요.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사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오늘은 줄거리부터 다시 정리하기보다는,
선생님께서 완독하시면서 **가장 마음에 남았던 장면이나 인물, 또는 ‘이게 무슨 뜻일까?’ 하고 오래 생각했던 부분**부터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지점에서부터 천천히 나무 위로 올라가 볼까요? 🌳📖
아, 선생님께서 고르신 세 가지를 보니 **코시모를 단순히 ‘나무 위에 숨어 사는 괴짜’로 읽지 않으셨다는 것**이 아주 잘 느껴집니다. 오히려 작품의 핵심을 정확히 짚으신 것 같아요.
특히 마지막 문장까지 함께 보니, 코시모의 삶 전체가 하나의 원칙으로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 1. 나무 위에 있지만 고립되지 않는다
이게 정말 중요하지요.
코시모는 **세상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위치를 바꾼 것** 같습니다.
땅 위에 살 때는 가족의 관습과 귀족 사회의 규율 속에 있었지만, 나무 위로 올라간 뒤에는 오히려 훨씬 더 많은 사람과 만납니다.
하인, 농부, 도둑, 사냥꾼, 마을 사람들, 군인, 철학자들까지요.
그리고 사랑도 합니다.
그러니 코시모의 나무는 **고립의 공간이 아니라 독립의 공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진 속 문장,
> **“땅을 제대로 보고 싶은 사람은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이 말이 정말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것 같아요.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지요.
**적당한 거리 때문에 세상이 더 잘 보이는 것.**
저는 이것이 칼비노가 코시모를 통해 말하는 ‘자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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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귀족이면서도 모든 존재와 함께 살아가려 했다는 것
두 번째가 저는 특히 재미있습니다.
코시모는 신분상으로는 귀족인데, 나무 위에 올라간 순간부터 **기존의 신분 질서와 조금씩 다른 관계를 만들어갑니다.**
걸인과도 만나고 도둑과도 이야기하고, 동물과 식물까지 자신의 세계 안에 포함시키지요.
그리고 사진에 나온 것처럼 **‘공화정 도시를 위한 헌법 개요’**까지 썼다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그가 꿈꾼 세계는 아마
**“모두가 똑같아지는 세상”**이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자기 자리를 가지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
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사람만이 중심이 되는 세계도 아니고요.
동물과 식물까지 하나의 공동체 안에 넣으려 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현대적인 생각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코시모가 **나무 위에 있으면서 오히려 공동체를 꿈꾼다**는 것입니다.
땅에서 떨어졌는데 공동체를 더 넓게 바라보게 된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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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그리고 마지막까지 타협하지 않는 것
이 부분은 코시모라는 인물을 완성시키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참 쓸쓸하지요.
사람들은 코시모가 기구를 타고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그가 죽어서 땅으로 돌아오는 모습조차 보지 못합니다.
결국
**그는 올라갈 때도 자기 의지로 올라갔고
내려올 때도 자기 의지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의
> **“나무 위에서 살았고—땅을 사랑했으며—하늘로 올라갔노라.”**
라는 비문이 참 묘합니다.
코시모는 땅을 거부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땅을 사랑했기 때문에 땅과 거리를 두었던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에서 코시모의 ‘타협하지 않음’이 단순한 고집과는 다르다고 봅니다.
어린 시절의 반항은 “나는 싫어!”에 가까웠지만,
마지막의 코시모는 **자기가 선택한 삶에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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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선생님, 저는 세 가지 중에서도 **1번과 3번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참 좋습니다.
**거리를 둔다 → 더 넓게 본다 → 자기 생각을 갖는다 → 그렇기 때문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다.**
그래서 코시모에게 **나무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하나의 삶의 방식**이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코시모는 정말 현실을 ‘회피’한 사람일까요?**
사진 첫 부분에서도 바로 그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요.
저는 오히려 **현실을 회피한 사람이라면 그렇게까지 현실에 깊이 관여할 수 없었을 것** 같아요.
혁명에도 참여하고, 사람들의 문제에도 관여하고, 책을 읽고, 사랑하고, 공동체의 미래까지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나무 위의 남작』을 읽고 나서 코시모를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 **“세상에서 떠난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다른 높이에서 끝까지 살아낸 사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적당한 거리를 두고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사는 것”**이라는 표현이 바로 이 작품의 핵심을 아주 잘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재미있는 문제가 하나 남습니다.
**그렇다면 코시모가 끝내 사랑했던 비올라와의 관계도 ‘거리’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사랑 이야기가 사실 코시모의 삶 전체를 시험하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네, 맞습니다. ^^ 오히려 아주 중요한 부분을 짚으셨어요.
코시모는 **세상과의 관계에서는 ‘거리’를 잘 유지했지만, 사랑에서는 그 원칙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비올라 앞에서는 달랐지요.
어린 시절부터 두 사람 사이에는 강렬한 끌림이 있었고, 비올라는 코시모에게 단순한 연인이 아니라 **그가 나무 위에서 살아가는 세계까지 흔들어 놓는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둘이 다시 만났을 때는 오히려 서로 너무 강하게 끌리면서 관계가 극단적으로 치닫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 🌳 코시모가 세상에는 거리를 두면서도 사랑에는 거리를 두지 못했다
코시모는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기 때문에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올라에게만큼은 그 거리를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사랑이 **이해와 공존**이 아니라 점점 **소유와 확인, 질투와 오해**의 문제가 되어버리지요.
그리고 결국 헤어집니다.
그 후 코시모가 비올라의 사랑을 다시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것은,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후회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했던 원칙,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
를 정작 가장 사랑했던 사람에게는 적용하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후회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저는 이 점에서 코시모가 아주 인간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는 모든 것을 초월한 현자가 아니었어요.
**정치와 사회와 인간 세상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었지만, 사랑 앞에서는 한 사람의 평범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작품을 훨씬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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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더 마음 아픈 것은 **비올라와의 이별이 코시모의 삶에서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는 나무 위에서 끝까지 자신의 선택을 지켰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처까지 초월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코시모의 삶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어요.
> **세상과는 거리를 두었지만, 사랑과는 거리를 둘 수 없었던 사람.
> 그래서 세상에서는 자유로웠지만, 사랑에서는 가장 깊이 상처받은 사람.**
그리고 이것 때문에 마지막의 코시모가 더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끝까지 땅에 내려오지 않은 것은 **자신의 신념을 지킨 승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끝내 사랑하는 사람과 현실적인 삶을 함께하지 못한 대가**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선생님이 말씀하신 **“후에 비올라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깨닫고 코시모가 후회한다”**는 해석, 저는 충분히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후회에는 **사랑을 잃은 후회 + 자신이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후회**가 함께 들어 있다고 보면 작품이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참 재미있지요.
**나무 위에 올라간 코시모보다, 비올라 앞에서 흔들리는 코시모가 오히려 더 인간적이었습니다.** 😊
맞아요. ^^ 『나무 위의 남작』은 무겁게 파고들지 않아도 **동화처럼 재미있게 읽히는데, 다 읽고 나면 생각할 거리가 남는 작품**이라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칼비노의 가족 이야기를 알고 나면 이 작품이 조금 다르게 보이지요.
칼비노의 **아버지는 농학자·식물학자**, 어머니도 **식물학자**였고, 동생 플로리아노는 **지질학자**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식물, 숲과 나무가 아주 가까운 환경에서 자란 셈이지요.
그래서 『나무 위의 남작』에 나오는 나무들이 단순한 배경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코시모는 나무 하나에 올라가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서 나무로 이동하고, 숲 전체를 하나의 길처럼 살아가잖아요.**
땅 위에서 보면 나무는 각각 떨어져 있지만, 코시모에게는 나무와 나무 사이가 하나의 세계가 됩니다.
이것이 어쩌면 칼비노에게 자연이란 **관찰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살아가는 공간**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동생이 지질학자였다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부모와 동생이 **땅과 식물의 세계를 연구했다면, 칼비노는 그것을 문학의 세계로 옮겨놓은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칼비노의 작품에는 자연이 그냥 아름다운 풍경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인간과 자연의 관계, 인간이 어디에 서 있어야 세상이 잘 보이는가**
같은 질문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고 보니 코시모가 나무 위에 올라간 것도 재미있습니다.
**식물학자의 아들이 만들어낸 가장 문학적인 인간이 아닐까요?** 🌳😊
그리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동화 같아 즐겁게 읽었다”**는 느낌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칼비노는 어려운 철학을 독자에게 무겁게 들이밀지 않고, **“평생 나무 위에서 살았던 남자”라는 기발한 이야기 속에 슬쩍 넣어놓았으니까요.**
그래서 읽는 동안에는 웃으며 따라가다가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그런데 코시모가 말하고 싶었던 건 결국 무엇이었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오늘 발견하신 **‘거리 두기, 함께 살아가기, 타협하지 않기’**가 바로 그 남은 생각인 것 같고요. 🌿
맞아요. 저는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비아지오가 이 가족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가장 안쓰러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코시모는 자기 삶을 아주 강렬하게 선택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겠다” 하고 나무 위에 올라가 버렸지요.
그런데 비아지오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형이 워낙 특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비아지오는 자연스럽게 **형을 이해하고, 형의 삶을 지켜보고, 가족과 형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형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사람이 되지요.
그러다 보니 선생님 말씀처럼,
> **코시모가 자기 자유를 끝까지 지키는 동안, 비아지오는 어쩌면 형의 자유를 뒷받침하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조금씩 양보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비아지오는 코시모처럼 세상을 거부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아버지처럼 권위적인 질서를 고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형을 받아들이고 곁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었지요.
그래서 저는 비아지오에게 묘한 희생이 있다고 봅니다.
코시모에게는 **나무가 자유의 상징**이었다면,
비아지오에게는 **땅이 책임의 공간**이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정말 재미있는 역전이 일어납니다.
코시모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비아지오가 그의 삶을 기억하고 기록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코시모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코시모가 자유를 얻는 데에는 비아지오의 조용한 희생이 있었고,
코시모가 역사와 문학 속에 남는 데에도 비아지오의 역할이 있었던 것이지요.
저는 그래서 비아지오를 보면서 **“평범하게 산다는 것도 하나의 희생이고, 하나의 사랑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시모가 너무 눈부셔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인물이지만, 어쩌면 **비아지오야말로 현실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을 대표하는 인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형처럼 과감하게 나무 위로 올라갈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형을 땅으로 끌어내리지도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의 선택도 존중해 주는 사람.**
그래서 선생님이 비아지오를 안타깝게 느끼신 것이 저는 아주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코시모의 자유 뒤편에 **비아지오의 조용한 책임**이 있었으니까요. 🌿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면 작품의 제목도 조금 달라 보입니다.
**『나무 위의 남작』은 코시모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코시모처럼 살 수 있었던 사람과 그렇게 살 수 없었던 사람—두 형제의 삶을 함께 보여주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네요.
예~~ 😊 저도 선생님께서 칼비노와 잘 맞으시는 것 같아요.
특히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읽으실 때 말씀하셨던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인데, 간간이 반짝이는 보석을 만나는 기분”이라는 표현이 기억에 남는데, 『나무 위의 남작』과 비교하면 두 작품의 분위기는 꽤 다른데도 **칼비노 특유의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 **『보이지 않는 도시들』** → 도시를 이야기하면서 결국 **기억, 욕망, 시간,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을 이야기하고
- **『나무 위의 남작』** → 한 사람이 나무 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자유, 거리, 공동체, 사랑, 자신의 원칙**을 이야기하지요.
둘 다 어려운 철학을 앞세우지 않고 **아름답고 기묘한 이야기 속에 생각할 씨앗을 숨겨놓는 방식**이라서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다음 칼비노를 고르신다면 저는 **『우주만화』**나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도 권하고 싶습니다.
특히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는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를 가지고 아주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펼치는 작품이라, 지금까지 선생님과 함께 해온 독서여행과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 📖
다만 칼비노는 작품마다 결이 상당히 달라서, **『나무 위의 남작』의 여운을 조금 더 간직한 뒤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것**도 좋겠습니다.
오늘은 코시모가 나무 위에서 바라보았던 세상을 함께 내려다본 것 같아 저도 참 즐거웠어요. 🌳
**“세상과 거리를 두되, 세상을 포기하지 않는 것.”**
오늘 우리가 코시모에게서 발견한 이 문장은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다음 독서여행에서도 또 만나 이야기 나눠요.
오늘도 참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