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행전 9:32-35
네 자리를 정돈하라
우리는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이 계시는 자리로 옮겨가면
반드시 새로운 일꾼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의 자리를 정돈하고 일어나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로
발돋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의
유일한 소망은 무엇입니까?
빨리 건강을 회복하여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환자에게는 성공도 필요 없습니다.
권세도 필요 없습니다.
돈도 필요 없습니다.
거뜬히 병석에서 일어나 퇴원하여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지 사람이
병원 침대에만 누워 있습니까?
아닙니다.
몸이 건강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녀도
영혼이 병든 사람이 있습니다.
영적 환자가 되어
죽음의 자리에 누워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죄와 사망의 질병을 앓고 있는
불신자들입니다.
그들도 속히 영혼의 질병을 치유 받아
사망의 자리를 정돈하고
벌떡 일어나야 합니다.
저는 췌장암으로 인해
오랫동안 자리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제 유일한 소망은 속히 병석에서 일어나
다시 목회 사역을 재개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치유의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저를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질병의 자리를 정돈하고
영혼의 질병으로 자리에 누워있는
불신자들을 일으켜서
생명의 자리로 들어가게 하고 있습니다.
제가 부족했던 점을 고백합니다.
옛날에 저는 수줍음을 많이 탔습니다.
발표력도 없었습니다.
누구를 만나 대화를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의외로 마음이 약하여 걱정 근심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를 않습니다.
주님께서 제 성격을 고쳐 주셨고
성령의 능력으로
전혀 다른 삶을 살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성격상 누구보다
전도를 못 해야 할 사람입니다.
그런데 내성적인 성격의 자리를 정돈한 후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가장 전도가 어렵고
전도자들도 거의 없는
서울 대학교에서 가서 열 네 명의 학생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혹시 이런 생각을 하는 분이 있습니까?
‘나는 이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어.’
‘나에게는 변화될 가능성이 없어.’
‘나는 실패자에 불과해.’
이것이 편견입니다.
이 세상에 편견만큼 무서운 질병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고질적인 편견의 병석에서
일어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예수를 뜨겁게 만나는 길입니다.
불같은 성령을 받는 길입니다.
사도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 역시 한 때 실패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스승 예수님을 배반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자기가 살려고
예수님을 저주까지 했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부활의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중
불 성령을 받고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위대한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변화된 그는 사방으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를 통해 복음이 증언되는 곳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본문 32절입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오늘날 많은 사람이 분주하게 살아갑니다.
세상일을 좇아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바쁘게 생활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효율적인 삶을
살고 있을까요?
얼마나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을까요?
오히려 헛된 욕망의 늪에 빠져
불행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달랐습니다.
그는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천국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방으로 두루 다니면서
수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했습니다.
그가 다니는 곳마다
풍성한 영혼 구원의 열매가 맺혔습니다.
질병이 치유되며 귀신이 쫓겨가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과거 배신자, 실패자였던 베드로였지만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새롭게 변화됨으로 인류의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위대한 사람으로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나를 변화시키지 못해도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변화시키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얼마든지 변화되고, 성화되어
복되고 아름다운 구원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중국의 기독교 지도자인
리의 답변이 유명합니다.
그가 미국에 가서 강연을 할 때
어떤 미국인 학생이 리에게 물었습니다.
"중국에는 이미 유교가 있는데
꼭 기독교를 전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때 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자는 선생이었으나
그리스도는 구세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죽었으나
그리스도는 사셨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부활하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합니다.
공자는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국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자로 만나기 전에
구세주로 만나야 합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를 만나지 못한
중국의 시진핑이
얼마나 불쌍하게 생각되는지요.
그뿐만 아니라 그는 교회와 기독교인들을
많이 핍박하고 있습니다.
시진핑이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 심판에 빠질 수밖에 없으니
참으로 가련할 뿐입니다.
김정은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속히 사회주의, 공산주의
악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예수 그리스도께로 달려와야
천국 백성이 됩니다.
로마서 6:23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우리는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망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죽어서
지옥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구세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미국 오클라호마 인디언 교회에
다음과 같은 비문이 있습니다.
그들이 백인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글입니다.
“우리는 백인들로 인해 여섯 번 파산하고
여섯 번 이사를 해야만 했다.
그때마다 우리의 재산은
모두 약탈당하고 말았다.
우리는 미조리강을 건너 그곳에 집 짓고 살면
안전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몇 해 안 가
백인들이 그곳까지 찾아와서
재산을 빼앗아 갔다.
우리의 말과 소를 다 끌고 갔다.
그들에게 항의하는 자는 다 죽임을 당했다.
우리는 이것을 잊으려 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좋은 농장, 외양간,
편리한 집, 자녀를 위한 학교,
그리고 예배당을 지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복음을 들을 수가 있었다.
다른 것은 빼앗겼어도
백인들이 가져다준 그리스도의 복음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가 받은 고난보다 더 큰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을 용서한다.”
백인들은 인디언을 못살게 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인디언들에게 가져다준
구원의 복음에 대해서는
감사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가 최고입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 어떤 대가를 지불한다 해도
우리는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을 살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풍 병자 애니아를 보십시오.
그는 베드로 사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질병을 치유 받고
자리에서 가볍게 일어납니다.
지금은 중풍을 뇌졸중이라고 하지요.
본문 33, 34절입니다.
33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34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베드로가 애니아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만납니까?
일 때문에 만납니다.
놀기 위해서 만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만남은 다릅니다.
예배를 위해 만납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만납니다.
베드로도 복음을 가지고
애니아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애니아는 중풍 병자였고 8년 동안 침상에 누워
꼼짝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애니아가 중풍병을 치유 받고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애니아와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몸과 마음의 중풍병을 앓고 있으면서
절망의 자리에 누워 있는 자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찾아가야 할
영적 중풍 병자들이 많습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무기력과 낙심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소망 없이 누워 있는 자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들에게 찾아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회복의 사랑을 베풀어 주어야 합니다.
탤런트 임동진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그가 뇌경색으로 쓰러졌습니다.
의사는 장례를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사지가 정상으로 회복되어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중풍이 나은 것입니다.
여러분, 중풍이 무엇입니까?
뇌세포가 죽어서 발생하는 병이 아닙니까?
증상은 조금 개선될 수 있어도
의학적으로 치유가 불가능한 병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그에게 치유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임동진 씨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를 체험하고
급기야 목회자까지 되어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와 연극 등을 통해
복음을 증거하고 있죠.
개척교회도 하시다가 지금은 은퇴를 하셨습니다.
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반드시 삶의 전환기가 찾아옵니다.
이 때 고난과 시련을 잘 극복하면
새로운 삶의 현장으로 가서
다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는 이 세상의 삶에 지친
우리의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에
힘을 주셔서 거뜬히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우리의 열등감과, 좌절감과, 패배감과,
무력감의 상처를 씻기시고 치료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모든 어려움을 능히 물리치고
풍성한 복을 누리게 해 주십니다.
간절히 부탁합니다.
나는 결코 일어설 수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내가 누워 있는 이 자리가
그냥 좋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이제 중풍 병자의 모습에서
단호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십시오.
주저앉아 있는 자리를 정돈하고 일어나서
새롭고 가치 있는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누가복음 9:6입니다.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제자들은 스승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도망을 갔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기도하다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성령을 받고
위대한 전도자가 됩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제자들처럼 각 곳을
두루 다니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며
육의 질병, 영혼의 질병을 고치는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지난주 전도 후기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우리 교회가 다른 교회를 위해서 전도해 주면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부흥하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사실 분명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교회에 주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몇 년 후 신도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불과 한 달 전에 이 지역이
화성 진안 신도시 지구로 확정 발표되었습니다.
여러 신문 기사에 이 내용이 실렸지요.
우리 교회가 신도시에 들어가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활발하고 능력있게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살고 있는 수양관 주변에
멋진 카페 건물이 하나 있더군요.
그래서 이곳을 두세 번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건물을 보면서 앞으로
우리 교회 건물 양식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다른 형태로 건물을 지을 수도 있지만
우선 미래의 우리 교회 건물을 상상하면서
꿈을 갖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스크린을 통해 사진을 보십시오.
이 사진은 2층인데 우리 교회는
3층으로 지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1층은 카페로 임대를 내 주거나
커피 프랜차이즈 전문가에게 맡기고요.
교회에서는 직접 운영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교회는 오직 예배와 복음 전하는 일에
전념을 해야죠.
그리고 불과 5, 6년 전에야
종교 부지에 카페 설치가
국토교통부에 의해 허가가 났습니다.
제가 송산 그린시티에 가서
<섬기는 교회> 목사님을 통해
이 모습을 보고 왔습니다.
그러면 입주하자마자 수익이 금방 발생하여
교회 운영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도님들에게는 건축으로 인해서
재정 부담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불신자들이
교회로 오질 않습니다.
카페가 있으면 많은 사람이 오게 될 것입니다.
이로 인해 전도의 접촉점이
마련되지 않겠습니까?
카페는 주일이면
성도들의 식당으로 사용됩니다.
그리고 2층은 교육관과
목회자 사택으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3층은 대예배실을 들이고요.
이게 제 생각인데
하나님께서 4층, 5층까지도
올리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우리 교회를 신도시에 세워주십니까?
저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교회는 내가 세운다. 그리고 전도하는 교회는
내가 복을 주어 부흥을 하게 된다.
이 소문이 온 세상에 퍼지게 해서
모두가 전도하는 교회가 되도록
이끌어갈 것이다.”
이제 우리 교회는 전도자들이
많이 들어와야 합니다.
대면 전도는 물론, 비대면 전도를 할 수 있는
일꾼들이 들어와서
복음 전파를 위해 충성을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상 가운데
전도 상이 제일 큰 상인데
우리가 피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오히려 우리 교회를 사용해 주시는 것이
감사한 일이지요.
우리가 천국에 가면 천사도 부러워하는
영생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가복음 16:15입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우리는 베드로와 같이 복음 전파자로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 중풍병을 앓고 있는
불신자들에게 찾아가서
그들이 앓고 있는 죄와 사망의 질병을
고쳐 주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가
이렇게 귀한 일에 헌신하여
큰 상급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성시를 묵상하시겠습니다.
<그날의 역사>
베드로는 사방으로 두루 다녔네
구원의 복음 전하기 위해
그가 가는 곳마다
들불처럼 번지는 구원의 복음
주저리주저리 열리는
영혼의 구원 열매
룻다에 사는 성도들
애니아라 하는 중풍 병자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
마치 죽어 있는 고목 나무같이 텅 빈 삶
애니아를 긍휼의 눈으로 쳐다보는 베드로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신다.
네 자리를 정돈하라
쓰러진 볏단 같던 애니아 벌떡 일어서고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
눈을 둥그렇게 뜨고 놀라는 사람들
주께로 달려왔네
주께로 돌아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