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의 일이지만 공무원인 아버지와 지체장애자인 어머니를 살해한 대학생 아들이 범행후에 태연하게 여자친구와 여행을 즐겼다는 기사를 보고 왜 이런 인간말종에 세상 말세 같은 사건들이 자꾸 일어나는지 제발 금년에는 이런 기사가 안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신문기사 한구석에 흥미로운 단어가 눈에 띈다. 베테랑 수사관이 “왜 그랬어?” 라고 하자 순순히 범행을 자백하기 시작했다고 하는 내용이다. 범인과 수사관 사이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사 매사가 가만히 보면 천적이라는 것이 있고 기(氣 )싸움이 있는 것 같다. 또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는지 한눈에 요즘 말로 필(feel)이 꽂히는 사랑이 있다고도 하지만 처음 본 사이인데도 공연히 주눅이 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만만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고 전생에 원수지간인 것 처럼 그냥 싫은 사람이 있다.
범인을 검거할 때까지 물론 증거에 의한 추적이 과학적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실질 수사는 아무리 현장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어쩌고 하더라도 그리 만만하게 증거를 찾을 수 없는게 현실이고 또 그게 수사를 하다보면 시간이 상당히 걸리기 때문에 빨리 범인을 검거 할 생각으로 육감적인 추리로 움직일 때가 많다. 어쩌면 신들린 사람이 신기가 발동한다고 할까, 그렇지만 이런 육감 수사는 헛다리를 짚을 가능성도 크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동자동 여관에서 40대 여인의 살인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 현장에는 여인이 반듯하게 이불을 덮고 숨져 있는 모습으로 종업원에게 발견되었다. 전날 비슷한 또래의 남자와 투숙했는데 아침늦게 까지 기척이 없어서 들여다 보니까 남자는 없고 여인만 누워있어서 “여보세요” 하고 부르다가 혼비 백산했다는 것이다.
골치아픈 법의학적 소견을 적어 봐야 이해도 안되기때문에 간략하게 정리하면,현장에 임해 보니 반항의 흔적이 없이 비교적 현장이 깨끗한점으로 보아 일단 면식범의 소행이었고 목부위에 앞에서 뒤로 나타난 반점으로 보아 잠잘 때 또는 의식이 없을때 목을 졸라 숨지게 한 범행이었고, 얼굴색이 암청색으로 변한 것으로 보아 거의 초범이 엉겁결에 범행을 하고 도주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완전히 질식 시켜 죽은 것을 확인할 정도의 여유가 있는 범행이었다면 얼굴색이 하얀 백지장 처럼 되기 때문이다)
여인의 소지품이 전혀 없었다. 신원은 지문으로 찾아 내었다. 남편과 이혼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일단 전남편을 용의자로 연행하여 심문했으나 성과가 없어 귀가 시켰다. 현장에서 범인의 지문같은 흔적을 채취하는데 실패함으로서 (이상하게 남녀관계의 흔적도 없었다) 여인의 이혼후 행적을 수소문했다. 야구르트 판매를 해온것 까지 확인하였으나. 교제하던 남자가 몇 명 있었는데 거의가 어디 사는 사람인지는 피해 여인이 가까운 친구에게 조차 제대로 말을 하지 않아 남자들의 신원을 확인 하는데 무척 애를 먹었다. 맨땅에 헤딩하는 꼴이었다. 거의 120여명의 피해 여인과 아는 여인들을 찾아 다니며 이리 저리 수소문한 끝에 조모라는 남자가 범인이라는 심증을 얻게 되었으나 어디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는 전혀 아는 사람이 없었다..--아무증거도 없이 육감수사로 추적한 만큼 베테랑 수사관들사이에도 나는 이남자를 지목했으나 다른 수사관은 용의자 A 또 B를 쫒는 3개팀으로 분리되었으므로 이남자를 검거한후에도 범인이 아니면 원점으로 돌아 가는 것임은 물론이다 원시적이긴 하지만 무조건 뛰어야 하니까 어쩌면 복걸복일지도 모르기는 하지만 내 육감을 믿고 ㅎㅎ- 우여곡절끝에 상도동 어느 셋방에 사는 사실까지 알아내고 덮쳤으나 이미 떠나가 버린 후였고 다행히 집주인이 작성해두었던 이름을 가지고 본적이 전남 신안에 있는 어떤 섬이고 그곳에 80 노모가 살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 내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끈질기고 대단한 집념의 수사였다.
추석을 앞둔 어느날 목포 신안군 복지회관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용의자의 본적지 섬에 들어갔다. 일주일여를 잠복한 끝에 달밝은 밤 마당앞에 쌓아둔 볏집단 속에서 노모가 차려다 주는 밥상을 받던 용의자를 검거했다. 빨찌산이든 인민군에 쫒기던 국군이 숨어 지내던 모습도 그랬을 것 같았다. 어떻든 숨어 있다는 자체가 스스로 쫒기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일단 범인이라는 확신을 더해 주었다. 물론 용의자는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서울로 압송하여 심문을 시작했다.심문은 범인과의 기(氣)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를 제압하는 방법도 강한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강온의 방법으로 한참의 시간을 보낸후 설렁탕을 같이 시켜 먹으며 담배를 한 대 주면서“왜그랬어? 늙으신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불효를 덜 하려면 참회하는 모습으로 법의 동정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나” 초범은 체념하면 어린애 처럼 순진해진다. 범행을 순순히 자백함으로서 긴 수사여정을 마칠수 있었다. 궁금한게 있었다. 범행동기는 결혼을 미끼로 여인의 돈을 쓰고 독촉을 받자 저지른것이엇고, 그보다도 범행후 어디 숨어 있었냐고 하자 쌀집 종업원으로 지냈다고 했다 그러니 행방을 쫒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떻든 “ 왜 그랬어?” 이 한말에 이번 범행도 순순히 자백하였다 하니 순간적으로 환장을 하여 악행은 저질렀어도-그래서 이런 악한 자들에게 동정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즉각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고 하고 나도 사실 그의견에 동조하는 편이긴 한데...그래도 인간의 본성속에 良心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었던 맹자님의 성선설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끊임없는 교화를 통하여 언젠가는 이런 끔찍한 환장하는 자들이 없어져야 되지 않을까 하는게 내 소신이며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