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https://www.fmkorea.com/7317839545
우리의 양궁처럼 중국의 탁구 실력은 유명하다
하지만 중국 탁구가 처음부터 세계 정상급이었던건 아니다
세계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한 중국인은 룽궈퇀이다
사실 룽궈퇀은 영국령 홍콩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중국 국적이 아니었고
당연히 중국 대표팀도 아니었다
룽궈퇀은 대영제국령 홍콩 대표입니다만?
그러다 1957년 그의 인생을 뒤바꿔놓는 사건이 발생한다.
1957년 9월 룽궈퇀은
홍콩-마카오 탁구 대표팀으로
중국 본토를 방문, 중국 대표팀과 경기를 갖는다
덩샤오핑:
오 좀 치네
허룽:
그니까ㅋㅋㅋ 영입하고 싶음ㅇㅇ
이 경기를 직관한 덩샤오핑과 허룽은
룽궈퇀의 실력에 감탄했다
당시 중국 국가체육운동위원회 주임(위원장, 장관급)
허룽은 그에게 조국의 품에 안길 것을 제안한다
허룽:
어이 젊은 친구
룽궈퇀:
아저씨 뭐야?
허룽: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이며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이며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부총리이며
국방위원회 부주석인 허룽이다
룽궈퇀:
그런 사람 모름ㅋ
허룽:
10명의 개국 원수중 한 명이며
1급 팔일훈장 수훈자이며
1급 독립자유훈장 수훈자이며
1급 해방훈장 수훈자인
허룽 원수이다
룽궈퇀:
그런 사람 모름ㅋ
허룽:
그저 체육에 관심이 많은...
한낱 중국 체육운동위원회 주임
허룽이다
룽궈퇀:
그렇다면 말해보시죠
허룽:
팩트는 너의 몸에는
중국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거임
허룽은 룽궈퇀에게 귀화를 제안했고
룽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1958년 4월...
룽궈퇀:
3년 안에 세계 대회에서 우승할거임ㅋㅋ
룽궈퇀은 3년 안에
세계 대회에서 우승하겠다는 목표를 밝힌다
물론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듬해 독일에서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렸는데
저우언라이:
오늘 경기 어땠음?
저우언라이:
오늘 경기는 어땠음?
저우언라이:
오늘 경기도 잘했음?
총리 저우언라이가
매일 밤 대표팀에게 직접 전화를 걸 정도였는데
이 대회에서 룽궈퇀이
중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한 것
군부 실세이자 부총리였던 허룽은
공항으로 직접 나가 꽃을 전달했고
허룽:
캬 내 선구안 지렸고
저우언라이는
1959년의 두 가지 경사로
건국 10주년과 룽의 우승을 뽑을 정도였다
룽의 우승 소식은 인민일보 1면 기사로 실렸고
귀국 후에는
당시 중국 2인자였던 류사오치
저우언라이
허룽 등의 축하를 받았다
룽궈퇀은
1959년 개인전 우승 외에
1961년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에서도 우승을 경험한다
그리고 1965년 대회에서는
여자대표팀 감독으로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룽궈퇀은 중국의 국민영웅으로 대접 받고 있었다
이대로 끝났으면 해피엔딩으로 끝났겠지
하지만 제목을 보자
'반동으로 몰린'
그렇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날이 오고 있었다
끼얏호!
1966년 캄보디아에서 열린 가네포 대회에서
돌아온 룽궈퇀이 훈련장으로 가보니
탁구대에는 먼지가 쌓여 있고
붉은 완장을 찬 홍위병들이
사방에 누군가를 비난하고
마오쩌둥을 찬양하는 대자보를 붙이고 있었다
당연히 룽궈퇀은 큰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당시 운동 선수들을 상대로
성적이 좋을수록 반동
우승을 많이 할 수록 반동
이라는 황당한 말이 나돌고 있었다
이상한 논리라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그 시절 중국은 그런 곳이었다
문혁적 사고입니다만^^
더구나 홍콩 출신들은
장제스나 미국의 비밀 요원
그러니까 스파이 의심을 받았다
지들이 데려가놓고…
당연히 룽궈퇀은
교과서에서 볼법한 아주 좋은 표적이었다
그 와중에도
세계대회에 나가고 싶던 룽궈퇀은 청원서를 제출했는데
룽궈퇀:
제발 대회는 나가게 해다오
이 반동!
감히 청원서를 내?
이것이 다시 공격거리가 되었다
물론 룽궈퇀에게도 후견인은 있었는데 없었다
개국 원수, 중앙군사위 부주석, 부총리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허룽은
룽궈퇀에게 중국행을 제안 했을뿐 아니라
이후로도 룽의 후견인 역할을 해주었다
하지만
린뱌오(당시 중국 2인자):
허룽은 반혁명 수정주의분자임
장칭(마오쩌둥 부인):
허룽…나쁜 사람…타도해야 함
저우언라이:
팩트는 허룽은 군권을 탈취하려던 대야심가라는거임
허룽은 이미 누군가를 보호할 처지가 아니었다
(허룽의 최후에 대해서는
중국 개국 원수 허룽의 최후 https://www.fmkorea.com/7273872326 를 참고)
1968년 5월 12일,
중국공산당과 정부는
허룽이 담당했던 체육운동위원회를
무산계급과 괴리되어
나쁜 사람들로 가득 찬 독립왕국
으로 공식 규정했다
(1979년 이 지침은 린뱌오와 장칭의 음모였다며 폐기되었다)
룽궈퇀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게다가 이즈음
룽궈퇀과 함께
홍콩에서 중국으로 온
친구 둘이 자살했다
결국 1968년 6월, 룽궈퇀은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자신의 결백을 호소하는 유서와 함께였다
향년 30세였다
룽궈퇀이 사망한지 10년이 되는
1978년 6월, 중국 정부는
룽궈퇀에게 씌워진 모든 혐의가 잘못된 것이었다며
공식 복권했다
첫댓글 착한 중국인은 저때 다 죽었네욥
저질 AI짤에 억지밈 욱여넣기가 없으면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지 못하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