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그렇게 흘러
해가 바뀌고 나흘 전 소한을 넘긴 일월 둘째 목요일이다. 새벽에 잠 깨어 생활 속에 남기는 일기는 전날 다녀온 북면 무동 최윤덕도서관에서 읽은 ‘한국의 서원’을 글감으로 삼았다. 이어 인터넷 검색으로 날씨를 살피니 낮에도 빙점 부근이라 북극발 한파가 이번이 정점에 이른 듯하다. 우리나라 연중 최저 기온은 소한 무렵인데 올해는 며칠 비켜 오늘내일이 최저점을 찍을 모양이다.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나서는 자연학교는 등교를 유예하고 오전은 집에서 머물다 점심 이후 길을 나서야 할 처지다. 날씨가 추우면 도서관으로 나가 한나절 보내고 와도 되는데 그럴 여건이 못 되었다. 젊은 날 교육대학에서 연이 닿는 동기들 8명이 북면 마금산 온천장에서 만나기로 되어 오후에 그곳으로 나갈 참이다. 졸업 후부터 여름과 겨울 방학에 만나왔으니 40여 년 흘렀다.
우리는 400명 입학생 가운데 남학생은 36명이라 10분의 1이 되지 않았다. 이후 전국 교육대학에서는 어느 한쪽 성이 80퍼센트를 초과하지 못한다는 입학 전형 규정을 정하기도 했다. 나는 서너 살 더한 늦깎이로 입학해도 동기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려 노력했다. 동기들은 경남뿐만 아니라 부산과 대구로도 희망해 임지가 정해졌고 고향을 찾아 충청도나 경북으로 간 이들도 있었다.
청년 교사 8명은 방학을 맞은 여름과 겨울이면 하룻밤을 같이 보내면서 서로를 부추기며 교직을 수행했다. 각자는 인연 따라 시차는 있어도 결혼해 자녀들을 두고 처자식을 거느리고 산골 학교 운동장에서 텐트를 쳐 야영하기도 했다. 그 아이들이 성장에 제 갈 길을 가고 짝을 만나 속속 가정을 꾸려간다. 지난여름 한 동기가 정년을 맞았고 오는 2월에 교직을 마무리 짓는 친구도 있다.
같은 출발선에 선 동기들이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아도 가지런할 수 없다. 통영을 연고로 둔 친구는 20여 년 전 자영업을 하려 도중 명예퇴직했다. 보이스카우트 활동에서나 남다르게 봉사심도 뛰어나고 벽지 근무 승진 가산점이 쌓여 누구보다 먼저 관리자로 능력을 발휘할듯하더니 교단을 일찍 떠났다. 피아노를 교습하던 아내가 네트워크 마케팅을 놓지 않아 동업자가 되어주었다.
경남은 울산이 광역시로 분리되어 인사 교류가 닫혔는데 그쪽에도 3명이 근무했다. 대구로 간 친구는 초등에서 드문 사립으로 초빙되어 교장을 중임하고 이번 2월에 퇴직을 앞두었다. 나는 도중에 중등으로 전직했고 뒤이어 한 친구도 중등으로 옮겨 국어를 가르치다가 드물게 초등으로 되돌아갔다. 그 친구는 나와 같이 예비고사에서 학력고사로 바뀐 입시제도에서 야간대학을 진학했다.
연전 울산의 한 친구는 아내를 먼저 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그해 여름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저녁에 오래도록 교류한 우리는 장례식장을 찾아 망연자실한 친구 손을 맞잡고 눈가는 이슬이 맺혔다. 화사하게 웃는 아내의 영정 사진만이 말없이 우리를 지켜봤다. 친구는 교장 중임에 들어 임기를 3년 남겨두고 아내 간병을 위해 조기 퇴직해 곁을 지켜준 보람도 없이 세상을 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교단을 떠나 각자 취향 따라 열심히 산다. 생활권이 같은 창원의 한 친구는 시내에 번듯한 아파트를 두고 처가 동네인 의령으로 전원주택을 지어 귀촌해 농사를 잘 짓고 있다. 울산에서 교직을 마무리 지은 친구는 고향 함양 자택의 노부모를 돌보면서 어제는 눈 속에 지리산을 등정한 사진을 보내오기도 했다. 골프장으로 나가거나 기타교습을 받는 이도 있다.
지난여름 무더위 속에 남해 삼동 한 펜션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 멸치회와 장어구이로 식도락을 즐기고 이튿날 죽방렴 어촌 체험과 물건 방조어부림을 둘러보기도 했다. 이번 겨울은 북면 마금산 온천장에 만나기로 해 지난 세밑에 현지 사정을 봐두었다. 주말은 혼잡했으나 마침 주중이 모이기로 해 숙박 여건은 나을 듯하다. 이튿날은 주남저수지로 산책을 함께 나설 수 있으려나. 25.01.09
첫댓글
지난 여름 먹었던 음식
기억하지도 못하는데
자네는 대단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