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났다.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고 동대학원에 재학중이다.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광어' 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으로 '귀뚜라미가 온다', '조대리의 트렁크'가 있다.
1. 낮잠
2. 신발의 반작용
3. 쥬비두비 쥬비두비 빰빠라
4. 도라지꽃
5. 홍어탕
6. 가슴이 살았던 자리
7. 옥수수수수
8. 죄송하무니다
9. 안아주라
10. 비 그치고 달빛 은은하게
11. 황혼 녘, 그럴 수도 있는 일
12. 가을이라 가을바람
13. 잠자는 여인
14. 봄, 그리고 가을
15. 다시, 봄에서 봄꽃으로
작품해설: 두려운 진실 _김인환
작가의 말
냄새만 남은 채 소리 없이 사라지는 나프탈렌!
죽음과 소멸이라는 주제를 통해 나의 아버지 세대의 모습을 담고 싶었고,
또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인생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 이 책에 대하여
2011년 5월호부터 2012년 5월호에 이르기까지 『현대문학』에 총 10회에 걸쳐 절찬 연재되었던 백가흠의 『나프탈렌』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출간을 앞둔 지난여름 EBS ‘라디오 연재소설’의 연재작으로 선정되어 전편이 낭독된 이 작품은 청취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출간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백가흠은 2001년 등단한 올해로 등단 12년차 작가이다. 그 사이 세 권의 소설집을 상자하고 출간된 소설집마다 개성 있고 탄탄한 작법과 구성으로 자기만의 확고한 소설세계를 구축했으며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함께 받은, 문제적 젊은 작가로 급부상되어왔다. 그런 그가 작가주의적 결벽증과 진지한 반성적 완벽주의는 10여 년이라는 긴 인고의 시간을 감내하며 마침내 완성도 높은 첫 장편 『나프탈렌』을 내놓게 되었다. 오늘 우리의 문단풍토에서 경이로운 일일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이미 출간된 다른 작품들에서 볼 수 없었던 서사의 확장이나 삶의 다양한 형태들, 그리고 인간들의 삶과 죽음이라는 대전제를 안고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거의 몇 편의 장편으로 묶였어도 좋을, 한 편으로 묶기 아까울 수도 있을 스케일의 대서사로 꾸며졌다.
산속에 위치한 하늘수련원을 배경으로 시간과 공간이 교차되며 다양한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사건, 그들이 지닌 각각의 사연과 상처들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죽음과 소멸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비틀거리는 인간 군상에 관한 나의 이야기이자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 줄거리는
육체의 병이든 마음의 병이든 상처 입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하늘수련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김덕이 여사와 그녀의 딸 부부 이양자, 민진홍이 큰 축을 이루고 수련원 원장과 최영래, 다른 인부들이 또 하나의 축을 이룬다. 정년퇴직한 백용현 교수는 수련원에 들어 있긴 하지만 그와 조교 공민지의 이야기는 퇴직을 한 학기 앞둔 당시의 도시에서 벌어진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사연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소설은 이 인물들의 시각이 바뀌고 겹쳐지는 데에서 중심을 잡으며 전개된다.
폐암 말기 선고를 받기 직전 남편이 어린 제자와 바람을 핀 사실을 알게 된 양자는 하늘수련원 황토방으로 들어오고 어머니 김덕이 여사는 자신의 몸이 망가져가는 줄도 모르고 딸을 위해 매일매일 동분서주한다. 혼잣몸으로 수련원을 경영해나가는 원장은 노망 난 노모를 모질게 대하지만 개울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노모의 죽음을 겪은 뒤로 그 자신마저 정신을 놓아버린다. 혼란에 빠져든 수련원을 둘러싸고 금전 관계로 얽힌 탈북자 최영래와 다른 인부들은 걷잡을 수 없이 사건에 휘말리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한국전쟁 때 겪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평생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노년의 교수 백용현은 30여 년 만에 재회한 전부인 손화자의 죽음을 통해, 삶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주지 않는다는 것을 아프게 깨닫는 중인 20대 중반의 조교 공민지와의 만남을 통해 죽음의 공포를 털고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이른다.
이처럼 제각각의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가 겹치고 이곳과 저곳을 오가는 구조 속에서 서로가 꼬리를 물고 피할 수 없는 죽음과 소멸을 동반하는 인생의 본질에 접근해 들어간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심리 변화를 섬세한 호흡으로 잡아내면서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는 존재들에 대해 담담하게 서술한다. 이 소설은 늙음과 젊음을 같은 높이에서 굽어보며 암담한 현실 앞에 때로 모진 말로 서로를 아프게도 하지만 결국은 일종의 도덕적 각성을 포함한 결말로 나아가며 삶에 대한 하나의 보편된 드라마를 완성시킨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마태복음」 6장 21?23절)
소설가가 꿈이었던 시절, 소설가가 되면 ‘무엇을 쓸 것인가’ 고민하던 시절, 했었던 다짐, ‘마음이 가난’하고 ‘낮은 자’를 위하여! 허나, 나는 마음이 가난한 것이 무엇인지 아적도 모르고, 선뜻, 낮은 자의 편에 서는 것도 주저한다. 원대했던 꿈에 대해 반성 중, 그리하여 나는, 앞으로 더욱 절실해질 것이다.
▲ 작품해설 중에서
젊은 작가 백가흠이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노년의 드라마 앞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비틀거리는 노년이란 그가 예측하는 자신의 잔인한 미래인 것일까? 그러나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의 이름을 물어보며 이쪽 문 저쪽 문을 열고 닫는 사람은 백용현만이 아니다. 젊은 공민지도 과거의 무게 전체를 짊어지고 자신을 인식하기보다 자신이 아닌 것을 재현하려는 공허한 시도를 반복한다. 노년이건 청년이건 분해할 수 없고 규정할 수 없는 감정에 흔들리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인간에게는 결여를 채우는 것 이외의 다른 삶이 방향이 허용되어 있지 않다. 삶은 누구에게나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백가흠은 거미줄을 사방으로 펼치는 거미처럼 늙음과 젊음을 같은 밀도로 배치한다. 다 같이 불안한 무 속에서 존재의 빛을 기다리고 있는 노년과 청년의 방황을 통해서 심리의 드라마를 도덕의 드라마로 변형한다.
- 김인환(문학평론가)
▲ 추천의 글
‘따뜻한 피가 도는 그로테스크’는 백가흠만의 것이다. 그의 그로테스크는 고원이 아니라 늘 ‘현실’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지독한 이야기를 지독하게 쓰지 않고 다만 담담하게 쓴다. 곁에서 나란히 간다는 것. 깊고 어두운 곳에 잠겨본 손만이 쓸 수 있는 문장들. 삶 너머가 아니라 삶이 심연이라는 것을, 심연은 어두운 곳이 아니라 텅 빈 곳임을 알아버린 손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
함께 이렇게 오래 머물러도 될까,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 아프게 끓고 시리게 녹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 삶과 죽음이라는 길고도 짧은 시간에 관한 이야기. 죽음으로부터 삶을, 이별로부터 사랑을 불러오는 위독하고 간절한 이야기. 가장 가파른 시간에 선 존재들. 후드득 떨어지는 열매 같기도 느닷없이 퍼붓는 장대비 같기도 그러나 어쩌면 눈부시게 쏟아지는 유성우 같기도 한 이야기.
“나 좀 안아주라.” 마지막 말임을 알지 못해 머뭇거린 당신 앞에 나타난, 유일한 사랑의 순간을 붙잡는 주문 ― 『나프탈렌』.
-이원(시인)
“지금, ……뭐하는 건가?”
“네가 변하지 않았다는 게,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나니,. 아니, 젊었을 때의 네가 나이만 먹은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넌 날 정면으로 바라보지도 못하잖냐. 넌 좀, 그래, 젊었을 때부터…….”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러는 건가? 몇십 년 만에 갑자기 찾아와서, 이렇게 무례한 일을 벌이는 이유가 뭐냔 말이야.”
“말했잖냐, 단순하게, 가슴이, 감정이 있었던 자리를 보여주려고 한다고, 있던 게 없어졌을 때 알게 되는 그 존재감 말이야, 젊은 날 한때 우리가 심취했었던 철학이잖아. 그때 알던 것들은 알던 게 아니어다는 말이지. 이렇게 늦은 나이에 그런 게 명징해질지는 몰랐다. 널 보러 온 이유도 간단해, 네가 정말 존재했었는지, 확인하러 온 거란 말이지.”
- pp. 96-37
시간이 어떻게 지나고 얼마나 지나갔는지 그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를 찾는 사람도 없었고, 그가 보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그는 때로 간절하게 누구라도 그리워하고 싶었는데, 너무 외로웠기 때문이었다. 그
는 한밤중에 깨어 다시 잠들지 못하고 뜬눈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게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우두커니 천장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자기를 그리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그리움이라고 단정했다. 곰곰 하나하나 떠오르는 사람을 되새겨보았다. 그리움과는 먼 사람들이었다. 이제껏 단 한 번도 떠올려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속으로 억지를 썼다. 그래도 잠깐 머릿속에 떠오른 그들을 생각하자 기분이 좀 좋아졌다.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금세, 자기가 왜 이러고 있는 것인지를 깨닫고는 다시 침울해졌다.
침울한, 우울의 나날에 빠져 있는 어느 하루, 갑자기 벨이 울리고 누군가 그를 찾아왔다. 누군가 자신을 찾는 벨 소리가 환청 같았다. 문 앞에 공민지가 서 있었다.
- pp. 207-208
공민지에게 욕정을 품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굉장히 개인적인 일이라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공민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 누구와도 관련 없는 일이었다. 다만, 자신이 어느 순간에도 늙고 있고, 몸이나 외형적인 것 말고 마음이, 내면이, 찰나에 늙어버리고 약해지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과정을 스스로 보고 있었다. 욕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흥분한 것은 성욕이 아니었다. 그가 평생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성욕이나 성애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원래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이제는 소멸되고 사라진 무엇을 간절하게 바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이었다. 짧은 시간, 이제 그는 모든 것을 알아버린 것만 같았다. 그게 씁쓸하고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 pp. 209-210
산 정상 근처에 오르자 하늘이 더욱 높아졌다. 숨이 가빴고, 어지럼증이 일었지만, 기분은 한결 나아졌다. 그녀는 넓적한 바위 위에 앉아 숨을 골랐다. 굽이굽이 산능선을 바라보았다. 수련원 황토집에 들어온 지 꽤 됐지만, 산에 오른 것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멋진 줄 알았으면 자주 좀 올라올 것을.” 그녀가 숨을 고르며 혼잣말을 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가 마치 떠나온 길을 돌아다보듯, 뒤돌아보았을 때 저 멀리, 바다가 보였다. 의사가 말한 대로 땅 끝에서 바다가 시작되고 있었다. “아, 이뻐라.” 그녀의 얼굴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졌다. 바다는 하늘색과 닮아 있었다. 멀리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희미한 경계를 바라보았다. 찬란한 햇빛이 부서져 내려, 그녀는 눈물을 조금 흘려보냈다.
- pp. 223-224
첫댓글 백가흠 지음 / 출판사 현대문학 | 2012.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