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사역의 사이즈나 목표는 더 큰 세상이나 탁월한 사역의 사이즈가 아니었다. 그저 하나님이신 그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야 했던 이유..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사랑하셨고 그렇게 죽으셨다. 그래서 그는 한 영혼이면, 그리고 작은 동네이면 충분했다. 그에게 나사렛은.. 혹은 이스라엘은.. 로마의 사이즈와 다르지 않았고 세상의 사이즈와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의 사이즈보다 큰 하나님 나라의 사이즈였다. "
"내 경험상 말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밤낮으로 '나의 의'로 달린 20-40대 중반의 역사보다 최근 수년의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가 얼마나 크고 성실하신지 모른다. 그저 내눈에 보이는 한 영혼, 한 가정, 작은 동네를 섬기면 된다. 내가 백바퀴구르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한바퀴 구르시는게 역사하는 힘이 크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다. 주의 은총과 성실만이 답이다."
아래는 이루다 목사의 글이다.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면 대다수 리더들에게 오는 것은 상당한 성취감과 안정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목회자들이나 리더들은 주변의 사람들이 이때부터 자신의 사역을 인정해주거나 칭찬하기 시작하면, 자신보다 자신의 사역을 더 크게 보고 놓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때, 어느 정도의 진심으로, 그 모든 성과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런 고백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온 사역을 마치 자신의 것인냥 자신이 걱정하고 있는 모습이 그런 경우일 것이다.
지나치게 책임감을 운운하거나 그 사역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과의 관계가 틀어지거나 나빠져도 “어쩔 수 없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역이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있는한 자신이 누구보다 자신은 하나님쪽에 더 가깝다고 여긴다.
무엇을 위한 사역인가?
누구를 위한 사역인가 ?
한 영혼인가? 지금까지 일구어 온 단체인가?
99마리의 양이 있는 우리를 두고 한 마리를 찾아 나선 주님의 리더십은 차라리 효과적 경영이나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합리적 운영과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또한 주님이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이신데도 불구하고
단숨에 로마로 가, 그가 누구이심을 보이지 않으시고
작디 작은 나라의 작디 작은 마을에서 생을 마감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보여주어야 할 사람이 많아야 하는 것이 맞는게 아닐까?
드러내야 할 능력이 더 강력해야 함이 아닐까?
주님의 사역의 사이즈나 목표는 더 큰 세상이나 탁월한 사역의 사이즈가 아니었다.
그저 하나님이신 그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야 했던 이유..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사랑하셨고 그렇게 죽으셨다.
그래서 그는 한 영혼이면, 그리고 작은 동네이면 충분했다.
그에게 나사렛은.. 혹은 이스라엘은.. 로마의 사이즈와 다르지 않았고 세상의 사이즈와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의 사이즈보다 큰 하나님 나라의 사이즈였다.
나에게 있어서 BAM은 무너진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시는 하나님의 선교에 증인된 삶이다. 그래서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짐을 따라 구도하는 제자도이다.
그리고 그 것이 무엇이든 그 중심에는 “이처럼 사랑하신” 한영혼이 있음을 본다.
이제 So BAM 10기를 마치고,
수고한 모든 동역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한 영혼을 포기하지 않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며 살아가는 구도적 일상이다.
하나님이 우리가 서있는 모든 곳을 거룩한 땅으로 만들어 주심은 그 한번도 해보지 못한 사랑을 초대하시기 위함이 아닐까?
그렇지 못할때 우리는 사역이 커져도 그 한 영혼때문에 거룩함대신 거북한 땅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따금씩 난 BAMer 란 단어가 그저 크리스천들이 사업을 하는 정도로 여겨지는 것이 안타깝다. 거기엔 더 깊고 신비한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기쁨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 신비하고 감당할 수 없는 기쁨을 사모하고 함께 해준 10기 식구들에게 깊은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가라 세상으로 ~ 주께서 하신 화해를 따라 ~~ 주가 함께 하신다.
권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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