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에서 가장 전성기를 구가했던 팀이라면 아메리칸 리그에서는 뉴욕 양키즈, 내셔널 리그에서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거론하곤 한다... 뉴욕 양키즈의 경우 90년대 초만 해도 벅 쇼월터(현 텍사스 레인저스 감독)가 이끄는 성적은 그저 그런 팀이었지만 95년을 정점으로 아메리칸의 다크호스로 부상, 90년대 말을 조 토리 감독과 양키즈의 시대로 만들었으며, 그에 반해 애틀랜타는 9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으며, 월드시리즈도 다섯 차례나 나갔을만큼 내셔널에서는 절대 지존이라 불릴 정도의 성적과 인기를 구가했던 팀이다... 또 다른 차이점이 있다면 양키즈의 경우 90년대(1990년과 2000년 포함시)에 월드시리즈에 네 차례 진출하여 네 번을 모두 왕좌를 차지했지만, 애틀랜타의 경우 91년부터 2000년까지 10년 연속으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였고 양키즈보다 많은 다섯 번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지만 95년 단 한 번 우승을 차지하였을 뿐 나머진 준우승에 머물렀다... 참고로 이 글과는 상관없는 부분이지만 95년 월드시리즈 우승은 162경기를 다 치르지 않고 파업의 영향으로 144게임을 치르고 난 뒤 우승을 차지한 것이었다...
90년대 애틀랜타를 빛냈던 스타들은 단골 포스트 시즌 진출 팀 답게 많이 있었다... 90년대 후반에는 치퍼 존스, 앤드류 존스, 브라이언 조단(현재 LA 다저스), 안드레스 갈라라가(몬트리올 엑스포스), 프레드 맥그리프, 하비 로페스등이 주 멤버였으며, 90년대 내내 생각해보면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존 스몰츠, 2루수 마크 렘키, 마무리 마크 월러스(현재 인디언스) 등이 주력 멤버였다... 그와 함께...90년대 초에는 현재 오클랜드에 있는 데이비드 저스티스, 타격왕 출신 3루수 테리 펜들턴(현재 브레이브스 코치), 만능 스포츠맨 디온 샌더스, 영원한 유망주였던 스티브 에이브리, 수비만큼은 안정되었던 라파엘 벨리어드 등이 애틀랜타를 빛냈다... 이들과 더불어, 지금은 부상으로 많이 노쇠한, 애틀랜타 출신의 또 하나의 지금 소개할 스타 출신의 선수가 또 한 명이 있다...
올해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에서 몸을 담았던 론 갠트(Ron Gant)란 선수이다...
지금 내가 생각해보면 론 갠트를 많이 알고 있을 법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올해 샌디에이고에서 외야수로 뛰었고, 작년에는 콜로라도, 오클랜드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또한 재작년에는 필라델피아와 애너하임 등에서 뛰었으니 올해까지 3년 동안 5개 팀을 돌아다니는 저니맨 신세가 되었다... 그렇지만 또한 생각해보면 그만큼 여러 팀들이 갠트에 대한 매력을 여러모로 알고 있다는 뜻 또한 될 것이다... 론 갠트야 말로 한 때는 30~30클럽에도 가임할 정도로 호타 준족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던 스타 출신에 틀림없다...물론 1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가 되었지만 말이다... 이제 내년이면 메이저 경력 17년을 맞는 론 갠트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론 갠트(Ron Gant)의 풀네임은 로널드 에드윈 갠트(Ronald Edwin Gant)이며, 1965년 3월 2일 생이다...6-0의 키와 195파운드의 단단한 체격을 가지고 있다... 태어난 곳은 텍사스의 빅토리아(Victoria)란 곳에서 태어났으며, 고등학교 또한 이곳에서 다녔다... 1983년 고등학교 팀 내 MVP를 수상하였고 이 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4라운드로 드래프트된다... 부인과 아들 한 명, 딸 한 명을 두고 있고, 낚시와 역기들기를 취미로 갖고 있다... 올해 성적은 타율 .262에 18홈런, 59타점이었다... 올해까지 론 갠트는 모두 8개 팀에서 선수 생활을 했는데...지금까지 몸 담았던 팀들은 다음과 같다...
87년 애틀랜타에서 메이저리그 데뷔, 93년까지 브레이브스에서 뛰었으며, 94년을 부상으로 완전히 날렸고, 95년 신시내티, 96년부터 98년까지 카디널스에서 부활에 성공했으며, 이후 99년 필라델피아, 2000년 시즌 중반 애너하임으로 트레이드, 2001년 콜로라도와 1년 계약을 체결했으나, 중반에 오클랜드로 트레이드, 올 시즌 다시 샌디에이고와 계약하고 다시 파드레스와 뛸 지는 아직 모른다...
올해까지 갠트는 통산 320개의 홈런, 243개 도루, 302개 2루타, 50개 3루타, 1645안타, 1004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갠트에 대한 기록을 이렇게 자세히 나열한 것은 이 기록이 단순한 기록이 아니기 때문이다... 300홈런과 300 2루타, 50 3루타, 1000타점의 기록은 믿기 힘들겠지만 갠트를 포함해서 현역 3명밖에 없는 귀중하면서 의미 있는 기록이다... 나머지 두 명은 현역 최고의 선수인 배리 본즈와 현재 인디언스에 있는 앨리스 벅스로 본즈는 514개의 2루타, 73개의 3루타와 1652타점, 613홈런이며, 벅스는 391개 2루타, 62개 3루타, 1122타점, 345홈런을 기록중이다...참고로 벅스는 네 시즌을 20+ 도루를 기록했고, 본즈는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7개만 추가하면 500도루를 달성하게 된다...빠른 발과 파워, 주자를 불러들일 수 있는 클러치 능력에 재빠른 판단이 없으면 안되는 귀중한 기록을 갖고 있는 몇 안되는 선수가 바로 론 갠트이다...
원래 론 갠트의 원래 포지션은 2루수였다... 87년 AA에서 14홈런 82타점을 기록하고 난 뒤 9월 6일 몬트리올 전에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이후 9월 24일 휴스턴 전에서 메이저리그 첫 홈런을 기록하게 되는데...놀라운 것은 당시 홈런을 뽑아냈던 투수가 바로 불세출의 투수인 놀런 라이언이었다는 점이다... 데뷔 첫 해를 2홈런, 9타점, .271의 타율로 끝낸 갠트는 88년 드디어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259의 타율과 19홈런, 60타점, 타율을 제외한 기록들은 당시 메이저리그 신인들 중 가장 높은 기록이었고, 3루타 8개, 55개 장타(2루타 이상의 안타-홈런 포함), 85득점 또한 메이저 신인들 중 가장 높은 숫자였다... 그러나 정작 내셔널 신인왕은 당시 신시내티 레즈의 주역으로 떠오르게 되는 크리스 사보(Chris Sabo)란 3루수가 타게 되는데, 이 당시 데뷔했던 알려진 선수들 중에서는 작년에 은퇴한 시애틀의 제이 뷰너(Jay Buhner)와 나중에 애틀랜타의 유격수가 되는 월트 와이스(Walt Weiss-당시 오클랜드,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 수상), 애리조나의 마크 그레이스(Mark Grace-당시 시카고 컵스), 찬호와 주먹다짐을 벌였던 팀 벨처(Tim Belcher-당시 LA 다저스)가 데뷔한 해이기도 했다...
론 갠트의 통산 타율은 .257로 그리 선구안을 훌륭하게 마스터한 선수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론 갠트가 가장 전성기를 구가하던 1990년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이 해 애틀랜타는 지구 최하위를 차지했지만...론 갠트의 성장세는 끝을 모르고 계속되었다... 89년 75게임을 치르고 90년대를 맞은 갠트는 90년 .303의 타율과 32홈런, 84타점, 33도루로 첫 30~30클럽에 가입하게 된다...이 해는 애틀랜타의 마지막 태동기로서 데이비드 저스티스가 이 해 내셔널 신인왕을 수상하였으며, 존 스몰츠와 톰 글래빈은 각각 14승과 10승을 거두어 젊은 나이에 팀의 차세대 에이스로 급부상하게 된다...갠트 역시 이 해 USA TODAY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 지 올해의 컴백 선수로 뽑혔으며, 당시 12번째였던 30~30클럽 가입자가 되었다... 다시 한 해를 넘긴 91년...팀은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하는 영광을 안았고, 그 중엔 중심타선을 이끌던 갠트또한 끼어있었다...
91년은 팀 성적도 그랬지만 론 갠트 개인의 최고의 해라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251의 시즌 타율과 32개 105타점...그렇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더욱 알찬 한 해이기도 했다... 우선 34개의 도루로 2년 연속 30~30클럽 가입이란 역사상 3명 중 한 명이 되었다...(윌리 메이스의 56~57년, 바비 본즈(배리 본즈의 아버지)의 77~78년, 그리고 론 갠트의 90~91년, 참고로 배리 본즈는 95~97년까지 30~30이상을 했지만 96년 40~40달성을 해서 제외된 듯 함) 게다가 내셔널리그 MVP투표에서 6위까지 랭크되었으며, 선수 생활 처음이자 마지막인 실버슬러거 상을 수상했다...또 내셔널리그 챔피언쉽에서는 7번의 도루를 성공시키기도 했으며, 이 해 시즌 최고 기록인 21경기 연속안타 기록까지 달성하게 된다...91년은 93년과 더불어 론 갠트의 가장 커리어 하이의 시즌이었고, 애틀랜타의 전성기를 여는 데 투수에서는 글래빈과 스몰츠, 타자에서는 테리 펜들턴과 데이비드 저스티스, 론 갠트 등이 90년대 초 브레이브스의 전성기를 이끌게 했던 주축이었다...
이후 92년에는 저조한 성적에도 지난해의 성적에 힘을 입은 까닭인지 올스타로 뽑혔으며, 93년에는 36홈런 26도루와 117타점으로 30~30을 달성하진 못했으나 606타수에 들어서 가장 많은 한 시즌 타석 수를 섰고 가장 많은 경기를 출장했다(157게임)...비록 갠트는 어깨가 강한 편은 아니어서 89년부터는 서서히 2루에서 좌익수로 포지션 변경을 했고, 92년 터론토와의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는 1-0으로 이기고 있던 9회초 데이비 윈필드의 2루타성 타구를 더듬거림하면서 2타점 2루타를 허용하여 우승을 놓치는 비운의 스타가 되기도 한다...하지만 론 갠트가 없었다면 투-타의 균형 또한 잘 맞기로 유명한 애틀랜타의 90년대 초는 없었을 것이며 갠트야 말로 애틀랜타의 90년대 왕국에 커다란 기여를 한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생각한다...
필라델피아 시절의 론 갠트 모습...(99시즌~2000시즌 중반)
갠트는 93년 MVP투표에서 5위를 차지한 이후 불운을 겪기 시작한다... 94년...당시 ML 최고 연봉이던 550만달러의 계약을 체결하였지만 이 해 시즌 전 불의의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한 시즌을 결장하는 큰 아픔을 겪게 된다...결국 연봉의 16%만 받은 채 팀에서 방출당하고 마는 아픔을 겪었다...이 후 좌익수 자리는 팀에서 많은 기대를 받은 현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에 있는 라이언 클레스코가 메우게 된다... 이 후 1년이 지난 95년...신시내티 레즈에서 다시 모습을 보인 론 갠트는 애틀랜타에서의 사고 후유증 때문이었는지 119게임밖에 출장하지 못한다...그렇지만 29홈런과 88타점, 23개의 도루를 기록해 풀 시즌을 뛰었다면 30~30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을 수도 있을 시즌을 보냈고, 올해의 재기 선수상까지 수상하면서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한다... 다음해인 96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보금자리를 옮긴 갠트는 예전만큼은 못 미치는 플레이를 보여주지만 꾸준한 기록을 양산해 낸다... 96년의 세인트루이스는 멤버 보강으로 타선의 질을 높인 끝에 리그 챔피언 쉽까지 진출했던 강팀이었다...이 해는 지금의 카디널스 감독인 토니 라루사의 세인트루이스 첫 감독 부임 해이기도 했다... 현재 LA 다저스에 있는 브라이언 조단, 과거 미네소타 우승 주역이었던 게리 가이에티(Gary Gaetti), 당시 프랜차이즈 스타로 떠오르고 있던 레이 랭포드(Ray Lankford), 그리고 부활에 성공한 론 갠트까지 당시 25홈런 이상이 가능한 선수들이 무려 4명에 달했다...이 네 명의 95년에 기록한 홈런 수를 모두 더하면 111개였으며, 96년에 이 네 명이 올린 타점 수는 352타점이었다...덕분에 팀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게 되었고 챔피언 쉽에서 애틀랜타에게 3승 뒤 4연패로 불운하게도 월드시리즈에 진출이 좌절되게 되지만 갠트는 이 해 통산 200홈런을 달성했고 이 다음 해인 97년과 98년까지 타율은 2할 4푼과 5푼 대로 저조했지만 언제나 20홈런과 단독 도루가 가능한 선수로서의 이미지는 여전히 유효하였고 그렇게 인식되었다...
2001년 150만 달러 1년 계약을 맺었던 콜로라도 때의 모습...
98년...시즌 전 전문가들은 세인트루이스 또한 우승 후보로 조심스레 예상을 하기도 했다... 이 해 70홈런으로 홈런 신기록을 세웠던 마크 맥과이어와 96년의 강타선을 형성했던 갠트, 랭포드, 가이에티, 조단 또한 여전히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발이 빨랐던 딜라이노 드쉴즈(현 시카고 컵스)와 유망주로 성장을 기대하고 있던 존 미브리(현 오클랜드), 또 팀 내 유망주였던 플라시도 플랑코(현 필라델피아), 엘라이 마레로, J.D. 드류까지 줄줄이 빅리그 입성을 기다리고 있던 터여서 세인트루이스의 업그레이드 된 전력으로 우승이 가능하리라 예상했던 것 같다... 마운드 또한 당시에는 전성기를 맞았던 켄트 머커와 토드 스톨트마이어, 데런 올리버에 유망주였던 매트 모리스, 호세 히메네즈, 알렌 베네스(앤디 베네스의 동생)까지 있어서 어느 정도 안정된 마운드를 꾸릴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팀웍으로 대표되는 휴스턴과 소사의 홈런 레이스로 인해 팀 분위기가 수직 상승하던 시카고 컵스에 밀려 지구 3위에 그치게 되지만...맥과이어의 홈런 레이스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인기는 상승하게 되고, 전체 메이저리그의 인기 부활을 가져오게 되었다...
98년 맥과이어가 62번째 홈런을 쳐서 37년 묵은 매리스의 기록을 깨던 날...이런 일이 있은 적이 있었다... 당시 맥과이어에게 62번째 홈런을 허용했던 투수는 스티브 트락셀(현 뉴욕 메츠)이었다... 트락셀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내가 아니길 바랬다..."는 답변으로 찜찜한 기분을 드러냈었다... 당시 맥과이어에게 홈런을 허용하고 난 이후...다음 타석에서 맥과이어와 다시 만났다... 트락셀은 두 번째 기록의 제물이 되진 않겠다고 다짐했는지...맥과이어를 고의사구로 내보냈다... 부시 스타디움을 꽉 메웠던 관중들은 일제히 "우~~"를 연발했음은 물론이다... 주자는 1루(맥과이어)와 2루(드쉴즈)가 되었고, 다음 타석은 당시 강타자였던 4번타자 레이 랭포드였다... 랭포드는 많은 볼카운트를 끌고 간 끝에 쓰리런 홈런을 작렬시켰다... 관중들은 온 구장이 떠나가도록 미친 듯 환호했으며...랭포드는 홈을 밟은 뒤 맥과이어처럼 홈런 세레모니를 표현했다...역사의 주인공이 된 맥과이어를 볼넷으로 내보낸 괘씸죄(??^^)를 랭포드가 선사해 주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문제는 그 다음 타석이었던 갠트에게도 다가왔다... 론 갠트는 또다시 트락셀의 공을 저 멀리 펜스 밖으로 넘겨버린 것이다... 결국 트락셀은 강판되었고...부시 스타디움의 열기는 단숨에 뜨거워졌다... 스코어는 단숨에 5-1로 벌어졌고...이 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역사적이고 두고두고 잊지 못할 날이 되었다... 지금은 배리 본즈의 홈런 기록에 밀렸고, 맥과이어 또한 은퇴를 선언해서 역사속으로 사라진 무대가 되었지만...나는 그 경기를 직접 봤던 기억을 아직까지 지울 수가 없다... 온 미국이 함께 즐거워하고, 축제의 밤을 만들어준 몫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으며, 다시금 메이저리그의 오늘날을 있게 해 준 공헌을 나는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이 해 맥과이어가 70홈런의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단지 혼자만의 능력은 아니었던 듯 싶다... 맥과이어 뒤에는...장타를 손쉽게 칠 수 있었던 강타자들 또한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 해 31홈런 105타점으로 팀 내 타점, 홈런 2위를 마크했던(맥과이어 바로 다음 순위) 레이 랭포드에, 25홈런에 시즌 중반까지 타격 1위를 달렸던 브라이언 조단, 왕년의 30홈런 타자였던 게리 가이에티, 그리고 호타준족의 론 갠트까지...이들이 없었다면 과연 맥과이어는 투수들의 정면 승부를 이 때처럼 많이 만날 수 있었을까? 적극적인 팀의 배려와, 끈끈한 팀웍이 있었기 때문에...맥과이어의 70홈런과 축복은 빛을 발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기록은 깨지기 마련이라고 하지만...기록이 달성되는 것 자체로 스포츠는 목표를 계속 향상시키는 현실과 꿈을 같이하는 매개체라 생각한다...이러한 따뜻한 면은 앞으로도 계속되길 빈다...
다시 갠트의 이야기로 넘어가겠다... 98년 26홈런을 기록한 이후...카디널스는 이 해 볼티모어에서 30경기 연속안타를 기록해 재기에 성공한 에릭 데이비스를 영입하고, 우승권 작업에 들어갔다...론 갠트는 여기서 2 : 3트레이드로 필라델피아로 트레이드 되었고...타율은 더욱 낮아졌으며, 경기 출장 수는 꾸준했으나,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성적으로 서서히 다른 팀의 트레이드 대상으로 변하게 된다... 2000년 필라델피아와 애너하임을 오가며 26홈런 54타점을 기록하면서 여전히 파워를 보여주지만 확실히 예전만은 못한 노쇠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고...다시 콜로라도로 불과 7년 전의 550만 달러의 몸값은 온데간데 없이, 150만 달러의 1년 계약을 맺었고...다시 노장의 손을 필요로 하던 오클랜드로 트레이드...풍부해진 오클랜드의 전력에 일익을 담당하게 된다... 작년 양키즈와의 디비전 시리즈 4차전 때...저메인 다이는 자기가 때린 파울 타구에 다리 골절상을 입고 부상을 입었으며, 론 갠트는 5차전에서 주전 우익수로 기용되지만 4타수 무안타의 침묵을 지킨 뒤 연봉 부담 등으로 옵션을 포기한 오클랜드를 나와서 다시 샌디에이고로 가게 된다...
2001년 오클랜드 시절 양키즈와의 디비전 2차전에서 앤디 페티트의 공을 받아쳐 솔로홈런을 쳐 낸 갠트의 모습...
다시 내셔널리그로 복귀한 론 갠트의 올해 성적은 생각보다 기대 이상이었다... 보통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젊은 나이에 부상을 당하고 슬럼프를 겪게 되면 노쇠화가 빨리 오는 걸 많이 보게 된다... 작년에 은퇴한 에릭 데이비스, 존 자하등은 대표적으로 부상 때문에 일찍 선수생활을 접었거나 형편없이 성적이 떨어진 케이스이다... 신인 시절 20(홈런)~20(도루)과 신인왕 어워드를 차지했으나 잇따른 불운과 트레이드로 뛰어난 성장을 못하고 있는 마티 코르도바(현 볼티모어 오리올스)같은 선수들은 또다른 저니맨의 불운을 겪기도 한 케이스이다... 그에 반해 론 갠트는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지만 꾸준히 도움이 되는 플레이를 보여준 몇 안되는 사례기도 하다... 90년대 초...애틀랜타의 대표적인 중심 타자였으며, 불운의 교통사고로 1년을 날린 뒤...탄탄한 체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90년대 말 꾸준한 성적을 냈고, 이제는 순간적으로도 어찌 될 지 모르는 은퇴를 코 앞에 둔 노장이 되었지만(올해 연봉 250만 달러)...충분히 마지막의 부활의 가능성은 남아 있으며, 대선수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고 비록 지금까지 좋은 기록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팀의 활력소가 되고, 지금도 다이빙 캐치를 종종 시도하는 등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이기도 하다...칸세코나 스트로베리, 드와이트 구든처럼 자신의 관리를 소홀히 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던 선수도 아닌...그저 평범한 가장으로서 안정된 생활을 찾아가고 있는 그이다... 올해 초 이시이와의 맞대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다이빙 캐치를 시도하다 손목을 다쳐 몇 경기에 나오지 못한 적도 있었던 것을 생각하니...이제 론 갠트는 서서히 선수 생활을 정리해야 하는 베테랑의 시기가 오는 듯 하다...비록 눈에 띄는 기록도 많았지만 중간에 좋지 않은 일들을 많이 겪었기에 말이다... 중요한 것은 철저한 몸 관리로서...과거의 좋은 모습들을 잊지 않게 해주는 베테랑의 모습을 보여 주고 멋진 은퇴식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다...그것이 야구선수로서의 최고의 영광이 아니겠는가... 앞으로는 멋진 야구인으로서의 론 갠트를 만나고 싶은 소망은 부디 나만의 생각일런지...부디 그렇게 되었으면 한다...
칸원님 덕에 카페에 오랜만에 들른 사람입니다. 저 아시는 분들이나 계실지 모르겠네요. 허접한 글 잘 읽어 주십시오...그럼 이만(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