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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雲峰)은 혜월의 법제자로 법명은 성수(性粹)이다. 13세에 출가하여 35세 때 우연히 새벽녘 문 밖에 나서는 순간 홀연히 마음 광명이 열려 가슴에 막혀 있던 의심이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한다. 혜월에게서 전법게(傳法偈)를 받았다. 제77대이다.
어떤 스님이 운봉에게 물었다.
“옛 부처님 나시기 전에 ‘응연한 한 모양 뚜렷하다’ 하니, 그 뜻이 어떤 것입니까?”
운봉: 늦더위가 찌는구나. 부채질이 바쁘니라.
(본인: 청풍기처월자명(淸風起處月自明)이니라. 맑은 바람이 이는 곳에 달이 스스로 밝았다.)
스님: 더위가 상관없는데 부채가 무슨 필요 있습니까?
운봉: 더우면 부치고 시원하면 버리느니라.
(본인: 도리어 그대가 더 부채질이 바쁘군.)
스님: 풍월을 읊는 것은 어떻습니까?
운봉: 진흙 밭에 개가 뛰니 자국마다 매화로다.
(본인: 그러잖아도 지금 앞산에서 뻐꾸기가 먼저 풍월을 읊고 있느니라.)
향곡(香谷)의 법명은 혜림(惠林)이다. 16세에 천성산 내원사에서 출가하여 32세 때 가을 산골짜기에서 일어난 돌풍이 열린 문짝을 거세게 닫아 버리는 소리를 듣고서 화두에 대한 의심을 풀었다고 한다. 운봉의 법을 이어 받았다. 제78대이다.
향곡이 상당(上堂)하여 묵좌하고 있는데 진제(眞際)가 나와서 여쭈었다.
“불조께서 아신 곳은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불조께서 아시지 못한 곳을 스님께서 일러주십시오.”
“구구(九九)는 팔십일(八十一)이니라.”
“그것은 불조께서 다 아신 곳입니다.”
“육육(六六)은 삼십육(三十六)이니라.”
이에 진제가 예배드리고 물러가니, 향곡은 아무 말없이 법상에서 내려왔다.
다음날 진제가 다시 여쭈었다.
“불안(佛眼)과 혜안(慧眼)은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어떤 것이 납승(衲僧)의 안목입니까?”
향곡이 답했다.
“비구니 노릇은 원래 여자가 하는 것이니라.”
그러자 진제가 말했다.
“오늘에야 비로소 큰스님을 친견하였습니다.”
그러자 향곡이 물었다.
“네가 어느 곳에서 나를 보았느냐?”
“관(關).”
“옳고, 옳다.”
여기서 향곡이 전법게를 내려 태고 보우로부터 경허, 혜월, 운봉, 향곡으로 내려온 임제 정맥(臨濟正脈)을 진제에게 이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제79대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겠다. 내가 볼 때는 한 마디도 서로 깊이 정곡을 찌르지 못했다. 진제는 분명히 ‘불조께서 아시지 못한 곳을 스님께서 일러 주십시오’라고 물었다. 그런데 그 물음에 대해 향곡은 ‘구구는 팔십일이니라.’라고 하였고, ‘육육은 삼십육이니라.’라고 했다. 그것이 ‘불조께서 아시지 못한 곳’이란 말인가?
누가 만일 나에게 그와 같은 질문을 했다면 나는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아는 것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 다음날 진제가 ‘어떤 것이 납승의 안목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향곡은 ‘비구니 노릇은 원래 여자가 하는 것이니라.’고 했는데, 그 말이 진제의 문처(問處)와 하등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래서 나 같으면 이렇게 말한다.
“어떤 것이 납승의 안목입니까?”
“견곡노오진안목(犬哭鷺嗚盡眼目)이라. 개 짖고 당나귀 우는 것이 그대로 다 제 안목이니라.”
또, 향곡이 ‘네가 어느 곳에서 나를 보았느냐?’고 묻자 진제는 ‘관(關)’이라고 했는데, 나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그 본 곳을 알아서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네가 어느 곳에서 나를 보았느냐?”
“문 앞 글 읽는 데서 보았습니다(門前讀書人).”
본래 불이문(不二門)이다.)
금오에 천추 달이요
낙동에 만리 파로다.
고기 잡는 배가 어느 곳으로 갔는고?
의구히 갈대꽃에서 자더라.
金烏千秋月
洛東萬里波
漁舟何處去
依舊宿蘆花
이것은 용성(龍城)의 오도송이다.
용성은 전북 장수 출생으로 속성은 백(白)씨이다. 16세에 해인사에서 출가하였고, 기미년(1919)에는 만해 한용운과 더불어 불교계의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에 힘쓰기도 했는데, 이 오도송은 낙동강을 건너면서 지었다 하며, 뒷날 대각교를 창설했을 때 종지(宗旨)의 구(句)로 삼았다고 한다.
(보통 사람이 보기에는 은유가 너무 깊고 어렵긴 하나 이것이 곧 진짜 오도송이다. 참으로 더없이 아름다운 오도송이다. 고기 잡는 배는 무엇을 뜻함이며, 갈대꽃은 어디에 있는가? 이것만 분명히 알면 누구나 오도(悟道)를 할 수 있으며, 실은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 조사들이 바로 그 갈대꽃에서 안신입명(安身立命)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혜월과 만공이 양산 통도사로부터 청장(請狀)을 받아 그곳에 이르렀다. 대중이 모두 모여 공양을 받으려 할 때 혜월이 별안간 할(喝) 일할(一喝)을 하였다. 대중공양을 마치고 마악 발우를 걷으려 할 때 만공이 할(喝) 일할(一喝)을 하였다.
그 뒤 모든 선객들이 이 일을 듣고 놀라 의심하고 두 분 선지식의 할(喝)을 한 뜻이 어떤 것인가 하여 쟁론이 끊어지지 않다가, 드디어 용성에게 물었다.
“노승이 비록 그 사이에 들어 입을 놀려 말하고 싶지 않으나, 가히 여러 사람을 위하여 의심을 풀어주지 아니 할 수 없노라.”
하고, 용성도 할(喝) 일할(一喝)을 하였다.
(세 선지식의 대가풍(大家風)이여! 이제는 더 이상 할(喝)을 할 자리가 없구나. 아무리 석가모니 부처님이라도 여기다 다시 입만 대면 머리가 두 쪽이 나리라. 할(喝) 일할(一喝)!)
한암(漢巖)은 강원도 화천 출생으로 속성은 방(方)씨이다. 21세에 금강산 장안사에서 출가하였고, 경허 문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서울 봉은사 조실로 있던 50세 때는 맹세하기를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삼춘(三春)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노라’고 하면서 오대산에 들어가 그 후 27년 동안 동구 밖에 나오지 않은 채 그곳에서 조용히 일생을 마쳤다.
만공이 오대산 적멸보궁을 참배하고 돌아갈 때 한암은 몸소 산문까지 전송을 했다. 둘이 다리에 다다르자 만공이 돌멩이 하나를 주워 한암 앞으로 던졌다. 그러자, 한암이 그 돌멩이를 주워서 개울에 던져버렸다.
이에 만공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번 걸음에는 손해가 적지 않다.”
(공연히 남의 생다리를 걸다가 오히려 자기가 제 꾀에 넘어졌다.
대체로 선법(禪法)은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하는데, 의리선(義理禪)이란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을 말함이고, 여래선(如來禪)은 생각과 알음알이가 아주 끊어지지 않아서 아직도 말 자취와 이치 길이 남아 있어 참다운 선에 이르지 못한 것을 말함이고, 조사선(祖師禪)은 의해(義解)나 명상(名相), 문자에 걸리지 않고 바로 이심전심(以心傳心)하는, 달마가 본래 전한 선법을 말한다. 즉 교외별전(敎外別傳)이 그것이다.)
춘성이 도봉산 망월사에서 겨울을 날 때였다. 심한 추위가 닥쳐와 승려들에게 벌목을 시켰는데 그 일 때문에 춘성은 의정부 경찰서로 불려가게 되었다. 서장이 조서를 작성하려고 춘성에게 물었다.
“왜 벌목을 하였소?”
“날은 추운데 땔감이 없기 때문이오.”
“하지만 그것은 불법 아니오. 스님의 본적은 어디요?”
춘성은 벽력같은 소리로 말했다.
“우리 아버지의 ××요.”
그러자 경찰서장이 놀라서 같이 소리를 질렀다.
“그것 말고 스님의 고향이 어디냔 말이오?”
“우리 아버지의 ××라고 벌써 답하지 않았소.”
“당신 돌았소?”
“아니오.”
“어디에서 오셨소?”
서장이 다시 물었다.
“우리 어머니의 ××요.”
춘성은 여전히 집이 떠나갈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서장은 어처구니가 없어 춘성을 그냥 돌려보냈다.
“이 늙은 중아, 어서 그만 가시오.”
그 후 누가 춘성에게 그 벌목 사건을 어떻게 무사히 넘기셨느냐고 묻자 오히려 천연스럽게 반문했다.
“내가 당연히 할 소리를 했는데 어찌 하였겠느냐?”
춘성(春城)은 13세 때 설악산 백담사에서 만해 한용운을 은사로 출가하여, 만공의 문하에서 깨달음을 얻고, 한 평생을 구름처럼 바람처럼 걸림 없이 수행 정진을 했다. 특히 그는 아무 악의 없이 ‘씨브랄 놈’이라고 욕 잘하는 도인으로 유명하다.
(욕도 곧 법이다. 만약 여기서 경찰서장이 그것을 자기에게 하는 욕인 줄로 알아듣는다면. 춘성이 내뱉은 말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그 ‘씨브랄 놈’에 있는 것이다. 그것이 또한 그 ‘돌장승이 애기 낳는 도리’이다. 이 씨브랄 놈!)
고불총림 백양사에서 ‘무차선회(無遮禪會)’가 86년만에 새롭게 복원되어 뜻 깊은 불사가 행해졌다. 무차선회란 지위가 높고 낮음, 권력이 있고 없음, 재산이 많고 적음에 상관하지 않고 누구나 평등하게 법을 논하는 법회를 말한다. 또한 피차 선문답(禪問答)에 대한 거론은 한국 불교의 오랜 전통이다.
서옹의 뜻을 받들어 이루어진 이번 행사는 한국 불교가 조사선의 전통을 올바로 계승하고, 국내외 학자들에게 조사선의 종지를 정확히 알리며, 과학 문명의 극대화로 정신적 위기에 처한 인류에게 희망을 안겨주기 위해 열렸다. 전국의 불교인들은 물론 외국의 불교 석학들까지 모여 회상에는 5천의 사부대중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또 인터넷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를 하는 등 아주 굉장했다.
MBC-TV에서도 이것을 1시간 동안 다큐 스페셜로 방영해 주었는데, 법상에는 백양사 방장 서옹,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혜암, 해운정사 금모선원 조실 진제가 앉아 있었다.
이때 어느 위풍이 당당한 젊은 스님이 성큼 사자좌 앞으로 다가가 삼배를 마친 뒤 서옹에게 법거량(法擧梁)을 청했다.
“고불총림인데 부처님도 안 계시고 또한 스님도 저는 뵙지를 못했습니다. 이상한 임제 스님께서 이 자리를 다녀가셨다고 하는데, 임제 스님은 그만두시고 금일에 스님의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이에 서옹은 법상에 앉은 채 주장자를 높이 잡고 대답했다.
“나의 모습이라도 삼십방, 나의 모습을 투과했더라도 삼십방, 여하즉시((如何卽是)냐? 말하거라, 이놈!”
그러자 그 젊은 스님이 말했다.
“맞았습니다.”
“헤엄! 안 된다, 그래서!”
(하지만 또 그래서는 안 될 것이, 이미 나의 모습이 지금 바로 코앞에 드러나 있는데 그걸 전혀 보지 못하고, ‘나의 모습이라도 삼십방, 나의 모습을 투과했더라도 삼십방……’ 하고 왜 다른 말만을 하고 있는 것일까.
서옹은 무슨 생각에서 그리 말했는지는 몰라도 나의 견해로는 이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은 바로 자다가 남의 다리를 긁는 격이 아니고 무엇인가. 무엇보다 여기서 ‘문 앞의 한 길이 이미 장안으로 통한 것’을 알아야 한다.
대단히 죄송한 말이지만, 그래서 눈을 뜨지 못한 장님이란 말을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바로 코앞에 드러나 있는 그 나의 모습을 떠나 따로 나의 모습은 없다. 그럼에도 오히려 엉뚱하게 없는 그놈을 설명하려 하다니.
그런데, 그 젊은 스님은 자기가 무엇을 알아서 맞았다고 했는가? 차라리 ‘그 또한 좋게 삼십방이오.’라고 해야지.
사자교인(獅子咬人)이요, 한로축괴(韓盧逐塊)라. 사자는 돌을 던진 사람을 물고, 개는 흙덩이를 쫓아간다. 실은 또한 ‘나의 모습이라도 삼십방, 나의 모습을 투과했더라도 삼십방, 여하즉시냐(이것이 무엇이냐?)고 말하는 그것이 지금 곧 ‘나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서옹은 이렇게 답을 했어야 한다.
“너는 지금 어느 곳에서 나의 모습을 보았느냐? 말하거라, 이놈! 고불과거구(古佛過去久)니라. 옛부처가 이미 지나간 지 오래니라.”)
부산 해운정사 금모선원의 조실로 있는 진제(眞際)는 ‘수선회’와의 문답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문: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세다고 하는데요. ‘도고마성(道高魔盛’이 사실입니까?
답: 잘못된 인식이니라.
(본인: 도(道)가 높다는 그 생각이 곧 마(魔)다. 그러므로 그 도고마성은 당연한 말이다. 도무지 도가 높고 낮은 것을 어느 곳에서 보았는가.)
문: <선가구감>에 서산 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즉돈오 사비돈제(理卽頓悟 事非頓除. 이치로는 깨달았어도 습기는 없애지 못했다)’라 하셨는데요.
답: 그것은 모순이다. 육조 대사도 금을 캐서 녹여 잡금을 제하면 순금이 된다고 하셨지. 물에 있으나 산에 있으나 순금은 변하지 않는 것과 같이 견성(見性)을 하면 습기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지. 번뇌가 곧 보리, 완전히 진리로 돌아갔는데 번뇌에 놀아나게 되겠는가.
(본인: 하지만 나는 전혀 그 말씀과는 다른 생각이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견성을 하면 습기와는 상관이 없다’고 하는 그 말이 바로 습기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진리로 돌아갔다’고 하는 그놈이 오히려 돌아가지 못하고 번뇌에 놀아나고 있다는 말이다. 번뇌가 곧 보리라고? 오히려 보리가 번뇌이다.)
문: 무자 화두(無字話頭)를 참구할 때 ‘조주는 어째서 무라고 했는가?’ 하고 그 뜻을 참구하는 것이 바르게 하는 것입니까?
답: 그렇지.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에게 다 불성(佛性)이 있다고 하셨는데 조주 선사는 왜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하셨는가?’ 하고 오매불망 조주 선사의 뜻을 참구하는 것이지.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느니라.’
(본인: 이 ‘무자 화두’ 드는 법도 큰 문제다.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느니라.”
이렇게 말을 하면 틀린 답이다.
여기서는 이렇게 말해야 맞는 답이다.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개는 짖는 것이 곧 불성이니라.”
언뜻 이해가 안 될 줄 안다. 하지만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라고 해야 ‘없느니라.’라는 답이 나온다. ‘없습니까?’라는 말이 빠지면 ‘없느니라.’라는 답은 나올 수 없다. 그러므로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하는 물음은 이미 무자 화두로서 성립이 될 수 없다.
그런 식으로 백날 화두를 들어보라. 무슨 소득이 있겠는가. 백년하청이다. 아무리 공부하려고 애를 써도 벌써 그 문제부터가 틀려버렸으니 어떻게 답이 나오겠는가. 그러면 어떻게 그 무자 화두를 들어야 하겠는가?
조주의 무자를 누가 감히 깨달아 얻을 것이랴
부처라도 입만 열면 살인검이 내리리.
무슨 일이 있었는가, 묻는 이가 있다면
어젯밤 삼경에 이미 달이 달을 삼켰다고 하리라.
趙州無誰敢得悟
佛開口下殺人劍
若人問我當何事
昨夜三更月呑月
중이 조주에게 묻되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조주 이르되, “무(無).”
그렇다면 어째서 무라고 하였는가? 천칠백 공안의 대의가 다 그 ‘무’ 속에 있다. 하지만 이제 그 ‘무’ 다음에 입만 벌리면 머리가 두 쪽으로 박살이 난다.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하고 물으나,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하고 물으나 그게 다 그거 같지만 실로 천지현격이다.
왜 그러느냐 하면 비록 개 불성의 유무(有無)를 물었지만, 그보다도 먼저 지금 그것을 묻고 있는 게 누구인가? 바로 나다. 내 불성이 지금 바로 그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무’는 이미 내게 대한 답인 것이다. 그러므로 개 불성과는 무관하게 무(無)다. 또한 개 불성이든, 내 불성이든, 부처님 불성이든, 조사님 불성이든, 그 누구의 불성이든 불성은 다 같은 하나다. 그런데 왜 그리 모두들 한결같이 개 불성에만 집착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지금 내 불성이 바로 개 불성이다.
이 ‘무자 화두’를 어떤 조사는 ‘일체 명근(一切名根)을 끊어버리는 칼이다’고 했고, 또는 ‘일체를 열어주는 자물쇠통이다’고도 했으며, ‘일체를 쓸어버리는 쇠빗자루다’ ‘나귀를 매어두는 말뚝이다’라고도 했다. 이는 곧 삼세 제불(三世諸佛)의 골수요 역대 조사(歷代祖師)의 안목이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에게 다 불성이 있다고 하셨는데 조주 선사는 왜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하셨는가?’ 하고 오매불망 조주 선사의 뜻을 참구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렇게 의심을 지어 나가면 크게 화두를 잘못 드는 것이다. 하긴 전강(田岡)도 무자 화두는 ‘무’자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라고 말씀하신 조주 대사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참상(參想)하지 말고 ‘무’를 말씀하신 조주 대사의 의지(意旨)를 참구해야 한다고 했다. 무자 화두를 참구하는 학자들은 꼭 조주 대사의 뜻을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실로 어림도 없는 소리다. 크게 잘못된 말이다. 그러니 도무지 어린 학인들이 누굴 믿고 공부를 하겠는가. 오히려 배워야 할 사람들이 남을 가르치고 있는 세상이다. 자기의 목숨을 잃는 것은 말하지 않겠지만, 공연히 아까운 학인들의 눈을 멀게 하고 있으니 그게 탈이다. 그래서 더욱 말법시대라는 얘기다. 그렇게 조사 공안(祖師公案)을 더럽히다 죽으면 어느 곳으로 떨어지는 줄이나 아는가. 그 죄 무간지옥이다. 그러기에 자기 공부부터 해야 한다.
‘무자 화두’는 바로 그 ‘무’에 절대적인 뜻이 있으며, 이미 그 ‘무’로써 일체가 다 끝난 경지이다. 이제 그 ‘무’ 다음에 다시 입을 열면 목숨을 잃는다. 그 ‘무’라고 한 것이 바로 조주의 뜻인 거고, 그 외의 다른 뜻은 없다.
모르면, 그냥 그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오직 자기 수도에만 전념할 뿐이다. 그것이 바로 중생제도다. 자기 제도를 떠나서는 그 어떤 중생제도도 있을 수 없다. 지금 세상에는 중생제도를 말하는 이들이 많지만, 이 화두를 들어 도를 깨닫게 하는 일만이 중생제도요, 그 외의 것은 또한 생사윤회라 그 무엇도 중생제도가 아니다. 오직 대해탈(大解脫)의 길로 인도하는 것만이 그것이다.
누구나 간절히 정진을 하면 아상(我想)은 저절로 소멸되어 버린다. 그 아상이 없는데 무엇이 나고 무엇이 죽겠는가. 하지만 사실은 그 아상이 소멸되어 버린다는 그놈이 바로 이 아상이다. 그놈을 빼놓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 아상이 바로 깨달음이다. 그 생사가 곧 열반이요, 영생이다. 이것을 떠나 따로 부처는 없다. 그러니, 다시 무슨 도를 닦고 말고 하겠는가.
불법(佛法)은 비단 석가모니의 것도 아니요, 무슨 무슨 종단 종정의 것도 아니요, 승려들의 것도 아니요, 신도들의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일체 중생들의 것이다. 그러므로 불법에 죄를 지으면 일체 중생들에게 죄를 짓는 결과가 된다. 이제는 이미 석가모니의 제78대이니, 제79대이니 하는 게 도리어 무의미해진 지 오래다. 다시 그 ‘경허’가 동해의 태양처럼 걸출하게 솟아 나와야 한다.)
청봉 스님의 장군 죽비
<1> 청봉 스님, 제가 그동안 다시 청봉 스님의 말을 다 확인해 보았는데, 청봉 스님의 말은 전부 다 사실이 아니더군요. 지금 이 문제를 가지고 나뿐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봉 스님은 “그 자의 집을 가보시오. 그 자는 그의 처자식도 불교를 외면하고 천주교를 믿는다는 사실을 말이오. 어떻게 독사 같은 행을 하기에 처자식이 불교를 멀리하겠소이까? 그런 처자식을 쥐 잡듯이 하는 자가 그 자인 것은 모르고……”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청봉 스님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분의 식구들은 천주교를 믿지 않습니다. 또 설사 천주교를 믿는다 해도 그것이 뭐 어떻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오히려 그분이 독사 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그 엄연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 것이지, 어린 딸아이를 강제로 머리 박박 깎아서 비구니를 만들 수는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또한 깨달은 사람에게는 불교나 천주교나 진리는 같은 하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따로 불교니, 천주교니, 고집하는 사람은 진리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청봉 스님은 “이 아둔한 사람아, 그렇게 억지로 ‘전법게’라고 써 달라 떼를 썼다면 알만한 일이 아니오?”라고 말했는데, 이 또한 전혀 사실무근입니다.
그분의 책에도 자세히 나와 있지만, 혜암 스님 생존시에는 누구든 그 앞에서 감히 전법게란 말을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자기 정신을 가지고 ‘그렇게 억지로 전법게라고 써 달라 떼를 썼다’고 하십니까? 또 떼를 써서 될 일도 아니고요. 스승에게 감히 어떻게 ‘전법게란 말을 써 달라’고 떼를 쓰겠으며, 떼를 쓴다고 해서 그게 될 일입니까? 그런데, 세상에 그런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이 어디 있습니까?
그 당시 혜암 스님은 건강상 친필로 써서 전법게를 내려줄 처지가 못 되어, 그분에게 전법게를 내려줄 때 “이것은 전법게다”라고 하며 시자 일묵한테 대필을 시켰고, 또 거기에 분명히 <전법게>란 말을 넣으라고 했습니다. “그 전법게란 말을 꼭 넣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그 전법게를 대필해준 시자 일묵을 비롯하여 그 당시 거기에 있던 스님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되었든 그것이 틀림없는 전법게라면, 그분 뒤에 받은 전법게에도 당연히 <傳法偈>란 말이 들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혜암 스님은 그렇게 해서 그것이 전법게임을 정확히 구별해준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다같은 전법게라면, 왜 그분에게만 전법게란 말을 넣으라고 했겠습니까? 혜암 스님은 오직 그분 외에는, 그 뒤 아무에게도 전법게를 내려주지 않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청봉 스님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는 사실 아닙니까? 이것은 그 문도들도 다 공공연히 아는 일이고.
<2> 또 청봉 스님은 “이 산승이 보이고 있는 전법게가 원본이올시다. 알겠소?”라고 말했는데, 제가 묻고 있는 원본은 맨 처음 시자 일묵이 대필해준 그 글씨의 원본을 말한 것입니다. 그것이 물증이니 그것을 보여주십시오.
그분이 혜암의 법어집 <늙은 원숭이>를 출간하려고 할 무렵, 청봉 스님이 혜암 스님에게서 받은 참회게(懺悔偈)를 고쳐준 것은 바로 이렇습니다.
이것은 그분의 말입니다.
<청봉이 혜암 노선사에게서 받은 참회게를 내게 보여주어서, 그 참회게도 노선사의 법어집에 넣기 위해 자세히 보니 뭔가 잘못되어 있었다. 제대로 받아 적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법에 딱 맞아 떨어지지가 않는 것이다. 나는 부득이 스승을 대신해서 그 참회게를 고칠 수밖에 없었다. 앞의 두 구(句)는 원문 그대로 놓아두고(上方春日花如霰 異鳥聲中午夢甘), 뒤의 두 구를 내 임의대로 빼고 다시 다른 말로 법에 맞게 채워준 것(萬法通光無證處 唯有揷天是淸峯)이다. 잘못된 것을 그대로 법어집에 넣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나는 또한 그 법어집을 번역할 때도 노선사와 의논하여 원문까지도 고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청봉 스님은 고작 그분이 고쳐준 그 참회게(上方春日花如霰 異鳥聲中午夢甘 萬法通光無證處 唯有揷天是淸峯)를 가지고 끝내 ‘혜암 스님으로부터 받은 전법게’라고 사람들을 속이고 있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이 돈 몇 푼을 사기 당해도 억울한 일인데, 하물며 그 인생을 사기 당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혜암 스님이 여러 문도(門徒)들에게 참회게를 줄 때, 시자 일묵이 일일이 다 불러주는 대로 옥편을 찾아가며 받아 적어 주었고, 청봉 스님의 참회게도 분명한 일묵의 필체였다니, 그 참회게의 원본 글씨를 확인해 보면 금방 모든 것을 다 명백히 알 수 있는 일입니다.
<3> 청봉 스님은 “하하…… 그런 쥐방울 같은 자에게 이 산승이 인가를 받았다고 하더이까? 그가 우리 노사로부터 인가를 받았고, 그가 이 산승을 인가해 주겠다면 이 산승을 인정하기는 하는 것이 아니요?”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얼토당토않은 청봉 스님의 곡해입니다. 그분은 청봉 스님을 인가해준 일이 없다고 합니다. 또 청봉 스님이 그렇게 그분을 비방하고서 그분한테 인가 받기를 원한다면 그게 말이 되겠습니까? 그리고 도를 닦는 사람으로서 가장 기초적인 사구(死句), 활구(活句)를 말 못하고 회피한다면, 그거 말 다한 것 아닙니까? 무엇보다도 첫째는 깨달음(見性)을 얻어야 합니다. 전법게는 그 다음의 일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청봉 스님에게 오도송(悟道頌)을 포함해서 무자 화두(無字話頭)에 대한 것을 준 것은, 그 당시 청봉 스님이 그분한테 공부를 하고 있을 때여서 더욱더 분발해서 공부하여 자기한테 인가(印可)를 받기로 한 약속 때문이라고 합니다.
조주의 무자를 누가 감히 깨달아 얻을 것인가.
부처라도 입만 열면 살인검이 내리리.
무슨 일이 있었는가, 묻는 이가 있다면
어젯밤 삼경에 이미 달이 달을 삼켰다고 하리라.
趙州無誰敢得悟
佛開口下殺人劍
若人問我當何事
昨夜三更月呑月
이것이 바로 그분이 청봉 스님에게 준 오도송입니다.
그리고 그 조주의 무자 화두에 대해 ‘무라고 한 뜻이 무엇이냐?’고 묻거든 “무엇을 삼키고 무라고 했습니다.”라고 말하라 시켰고, 다시 더 묻거든 “다시 더 이를 것이 없습니다. 그 무 다음에 입만 열면 목이 떨어집니다.”라고 하라 시켰으며, ‘그 도리는 어디서 보았느냐?’고 묻거든 “달이 뜨는 곳에서 보았습니다.”라고 하라고만 시켰을 뿐이어서 청봉 스님은 그 속에 담긴 뜻은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종탈 법문(從脫法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힘으로 뺏지 말고 말로 빼앗아 가보라’고 말하면, 무엇이 되었든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내보이며 “스님이 이것을 힘으로 뺏지 마시고 말로 빼앗아 보시오.”라고 시켰을 뿐 왜 그런가에 대해서는 감히 말하지 못하는 법이었으므로, 청봉 스님은 그것이 무슨 말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또한 도(道)는 오직 다 버리고 본래의 마음(本心)으로 돌아갈 때 자기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지, 남이 아무리 설명을 해서 가르쳐 준다고 해도 그 깨달음은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도는 바로 자기 진실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것을 청봉 스님 스스로 참구해서 직접 깨달아 인가(印可)를 받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때 청봉이 그 인가를 받기 위해 혼자 조용히 앉아서 자기 공부나 열심히 하고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분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실 아무 문제도 없을 일이다, 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일이 결국 이렇게까지 되고 보면, 그분이 설사 좋은 의도에서 개인적인 공부 차원으로 그렇게 해서라도 한 사람을 이끌어 주고 싶은 충정이었다 해도,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청봉 스님이 아무리 요구를 해도 완강히 거절해야 했는데, 공(公)과 사(私)를 신중히 구별하지 못하고 ‘기어이 해냈구나’느니, ‘종탈 법문’이라는 말을 만들어서 그것들을 혜암의 법어집 <늙은 원숭이>에 넣어준 것은 그분의 심각한 실수입니다. 거기다가 그분은 ‘혜암 현문 선사 행장기’까지 자기가 쓴 것을 청봉 스님의 이름으로 넣어주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청봉 스님은 오히려 엉뚱하게 그것까지 악용해서 꿈에도 생각 못할 너무나 엄청난 일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일이 결국 이렇게 되었다면 그분은 그리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한 사람을 이끌어 주려다가, 오히려 불행하게 사람을 하나 버려놓은 꼴이 된 셈입니다. 왜 가슴 아픈 일이 아니겠습니까? 무엇보다 사람이 본심(本心)으로 돌아가 진실하고 깨끗하게 살기 위해 도를 닦는 것이거늘.
그래서 그분은 백번 그 책임을 통감하고, 우매한 불자들을 데리고 서로 피차 더 이상의 피해를 입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만인 앞에 이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말미암아 더 씻을 수조차 없는 죄업을 쌓기 전에 이제 도로 회수할 것은 회수하고, 바로잡을 것은 바로잡아서, 다시 본래대로 되돌려놓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후 어쩌다 본의 아닌 그 한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지 않고 그냥 산야에 묻혀 아무 이름없이 피었다 지는 풀꽃처럼 혼자 숨어 살기로 했다고 합니다.
<4> 이것은 그분의 말입니다.
<이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 정황을 말하자면, 그 무렵 혜암의 문하에 어떤 불미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서 심히 절망적인 마음일 때 나는 차라리 ‘전법게’를 반납하고 산에 가서 잠시 쉬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장발이었고 남한테서 빌려 쓴 빚이 좀 있었는데, 청봉이 그 전법게 반납을 만류하며 ‘머리 깎고 노선사의 법을 펴라’는 조건으로 200만원을 후원해 주었다. 그러면서 청봉은 말했다.
“그렇다고 스님이 떠나 버리면 노스님은 어떻게 됩니까. 노스님에게 스님 하나밖에 또 누가 있습니까?”
그래서 그때 나는 전법게 반납은 혜암이 받아주지 않아서 못했지만, 영산 스님과 안동 석탑사에 가서 잠시 쉬었고, 그렇게 후원해준 청봉의 마음을 고맙게 생각해서, 청봉이 공부를 하기 위해서 그런다면 그의 웬만한 요구는 다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청봉은 10여 년이 지난 뒤에까지도 너무나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이다. 그 요구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국내에서는 아직 한번도 번역이 안 된 <선과 수행>이라는 일본 책을 구입하여 청봉에게 넘겨주었는데, 청봉은 그 번역물과 진오가 혜암의 시자를 할 때 틈틈이 법문 등을 적어 모아 넘겨준 것을 합해서 자기 이름으로 편저(編著)라는 꼬리를 붙여 냈던 책이다.
언젠가도 나는 ‘다시 책을 낸다.’는 청봉의 요구에 의해 그 책의 잘못된 번역 문장과 진오가 넘겨준 선문답 등등을 고쳐주고, 거기 더 몇 개 추가해준 일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그 책의 글들을 자기의 말인 것처럼 고쳐 달라기에 그것은 안 된다고 했던 것이다.
“견성을 하지도 못한 사람이 견성을 한 것처럼 남들을 속여 살다가 죽어 무간지옥에 떨어지면 뭐가 좋겠소?”
“죽어서 지옥에 갈 때 가더라도요.”
내가 끝내 단호히 그것은 못해 주겠다고 하자, 청봉은 “그럼 그 200만원을 달라”고 했다. 이것도 과연 사람의 입으로 할 수 있는 말인가? 10여 년 전에 후원해준 돈을 이제 와서 치사하게 도로 달라니? 그렇다면 청봉은 순전히 나를 이용하기 위해서 후원을 해준 것이 아닌가?
그러고서도, 청봉이 혼자서 떠돌고 있을 때 나를 따라 칠곡의 어느 절에 갔다가 거의 밤 12시가 다 되어 우리 집에 같이 와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떠났을 뿐인데 이런 말을 하고 있다 한다.
“그 처자식을 먹고 살도록 해줘야 한다고 울며 사정하기에 선뜻 내어준 돈으로 이 산승이 출가 후 그의 집을 방문했더니 그의 처가 ‘원장님이 아니었으면 이 집도 없었을 것입니다. 항상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갑니다.’하며 밤을 새워 이 산승의 옷을 빨아 아침에 다려 놓았더구려. 무슨 말인지 아시겠소이까?”
사람의 말이라는 것이 참 뻔뻔하기도 하지. 도대체 누가 그 처자식을 먹고 살도록 해줘야 한다고 울며 사정을 했다는 말인가. 세상에 그런 거짓말이 어디 있는가 말이다. 사실 그때 나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혜암의 쟁쟁한 전법 제자였고, 청봉은 병원 원장을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부탁을 할만 해서 그 빚 갚을 돈 280만원을 말했던 것인데, 그는 200만원만 후원해 주고 80만원은 딱 거절해 버린 것이다. 그런 정도의 돈은 그 당시 청봉에게는 하룻밤 술값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그것만이라도 고맙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 200만원이 얼마나 대단한 돈이라고 집은 무슨 집이고, 은혜는 또 무슨 은혜란 말인가. 내 아내가 그런 말을 한 일도 없고, 청봉의 옷을 빨아준 일도 없다. 그게 도무지 말이 안 되는 것이, 그 시간에 남의 집에 와서 빨래는 무슨 빨래이며, 그 여름 T셔츠에 다림질은 무슨 다림질이란 말인가.
그러면서 청봉은 “언행일치가 안 되는 법은 법이 아니라는 것만이라도 기억하도록 하시오. ……술을 먹지 않고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주제에 입만 가지고 까불지 말라 하시오. ……퇴속했다가 다시 출가하기를 밥 먹 듯한 그 자를 이 산승이 승가로 돌려보내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썼으며, ……그 자가 쓴 <늙은 원숭이>는 거의 이 산승에게서 자료를 수집해서 쓴 책이올시다.”하고 있다는데,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그런 거짓말이 바로 언행일치인가?
자기와 같이 앉아서 술 한잔 하며 이런저런 공부 얘기를 하고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는가? 오히려 나는 스승 혜암한테 찾아갈 때마다 맥주를 대접 받는 사람임을 자기가 왜 모르겠는가? 또 자기가 무엇인데 나를 승가로 돌려보내고 말고 하는가? 그렇게 말하면 사람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는 사람이지. 나는 혜암이 머리를 깎으라 해서 깎았고, 길러라 해서 길렀을 뿐이다.
그리고 법어집 <늙은 원숭이>는 그해 여름 혜암이 “충남대학교 어느 교수에게 법어집 번역을 부탁했더니, 그 교수가 하는 말이 ‘아무리 한문 실력이 출중할지라도 도를 알지 못하는 자는 그 누구도 감히 도인의 글을 번역할 수가 없으니 노스님이 직접 하라’고 하더구나.”라고 내게 말하고 나서, 시자 진오를 불러 당신의 법문(法門)과 선문답(禪問答), 게송(偈頌)들을 모아 기록해 놓은 노트를 가져오라고 하더니,
“그렇다면 너밖에 할 사람이 없구나. 네가 한문을 좀더 익혀서 전에 나왔던 법어집(禪關法要)의 잘못된 것을 고치고, 이것을 거기에 합쳐서 다시 만들어 보도록 하여라.”하고 그 노트를 넘겨주며, 법어집의 일체를 내게 단독으로 일임해 주었다는 것은 누구보다 청봉이 더 잘 알고 있는 일이고, 그 법어집의 원본 노트는 지금도 내가 그대로 다 가지고 있다. 청봉은 그 법어집의 원고를 다 탈고한 뒤에야 다만 자기 처자식의 참회게만을 넣어 달라고 주었을 뿐이다. 도대체 사람이 그 나이를 먹고 금방 알게 될 거짓말을 왜 하는지 모를 일이다. 부끄럽지도 않는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정작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 살 테면 무엇 하려고 도를 닦는가?
선(禪)은 바로 진실의 결정체이다. 이제라도 청봉은 더 이상 혜암을 팔며 그 이름을 더럽히는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고 다시 초발심(初發心)으로 돌아가 부단히 공부를 해서 깨달음을 얻어 누구한테서든 인가(印可)를 받아야 할 것이다. 공안 파설(公案破說) 몇 개 주워들은 걸 끝내 못 버리고 잔머리를 굴려 선문답(禪問答)에 이리저리 꿰어 맞춰서 원숭이 흉내를 내는 그 말장난도 이제 그만 때려치우고. 바로 자기 자신의 인생이다. 어찌 색신(色身)의 일을 믿겠는가. 안광 낙지시(眼光落地時)를 생각해 보라. 깨달음만 얻는다면, 누구한테 인가를 받든 법(法)은 하나이니 그게 다 그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고는, 자기 자신도 인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남을 인가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운전대도 한번 잡아보지 못한 자가 운전 면허증을 받았다고 하는 것보다 더 위험천만한 일이다. 아무리 남의 글들을 긁어모아 그것이 마치 자기의 말인 것처럼 책을 내어 위장을 한다 해도 법(法)을 모르면 빈 그릇의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가짜는 언젠가 그 가면이 처절하게 벗겨지기 마련이다.>
<5> 하지만 제가 무엇보다 정작 묻고 싶은 것은 청봉 스님의 승적(僧籍)에 관한 것입니다. 스님이 되기 위해서는 누구나 다 정상적으로 거쳐야 하는 행자 수업이 있고, 또 조계종에서는 엄격하게 연령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행자 과정을 거치고 나서 사미계(沙彌戒)를 받고, 더 갈고 닦아서 연륜을 쌓은 다음 비구계(比丘戒)를 받습니다.
그런데 청봉 스님은 언제 어느 절에서 행자 생활을 했으며, 또 사미계는 언제 어느 절에서 받았습니까? 사실 저는 무엇보다 그것이 가장 의문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자기 혼자 집을 떠나 제 손으로 머리를 깎고 승복을 걸쳤다면 그것은 스님이 아니지 않습니까? 만약 청봉 스님이 그렇게 하고 있다면 그것도 도저히 사람이 해서는 안 될 심각한 가짜인 것입니다.
저는 청봉 스님이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만, 이제는 어느 정도 제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확인했으니, 다만 청봉 스님이 이후로 더 이상 아무 근거 없는 거짓말로 그분을 비방하지만 않으면 여기서 그만 모든 것을 접겠습니다. 이제 청봉 스님이 어떻게 하든 그것은 청봉 스님의 인생이니 본인이 알아서 잘 사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첫댓글 이 글의 신뢰성을 뒷받침 하기위해 필자의 이력을 밝히심이 어떠하실지???'' .공부하신 분이라면 새장에 갖힌 앵무새 우는 소리로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출처가 불분명한 모해성 글은 삼가하심이 좋을 듯 하네요!!..특히 불법을 공부하시는 분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