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삼회 제 343차 산행기 - 성지곡
2011년 12월 2일
오늘의 참여자
연암
혜종
춘성
태화
중산
남계
2011년도 마지막 달이다.
달력이 달랑 한 장 남았다.
연말이면 언제나 하는 말.
왜 이리 세월이 잘 가나.
아침에 비가 조금 왔지만 등산하기 좋은 날씨다.
성지곡은 지금 단풍이 한 창이다.
새빨간 단풍나무
샛노란 은행나무
갈색 참나무
일찍 떨어진 낙엽들이 길가에 굴러다닌다.
낙엽을 밟으면 언제나 생각나는 구르몽의 시
- 시몬. 나무 잎새 저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
시인의 이름도 하필 구르몽이라 ~
성지곡의 숲은 참나무, 편백나무, 소나무 등이 크게 어우러진 가운데 은행나무, 벚나무, 단풍나무들이
곳곳에 박혀 비록 큰 숲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숲의 다양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 좋은 숲이다.
먼저 만나는 것이 임도 우측의 참나무 숲이다.
참나무는 통칭이고 참나무 과에 속하는 여섯 종류의 나무를 이른다.
조상들은 참나무를 나무 중에서도 가장 쓸모 있는 나무라고 생각하여 참 (眞) 나무라고 하였다.
나는 참나무(眞木) 초등학교를 나왔다.
진목리에는 마을 이름이 될만큼 유달리 참나무가 많았다.
참나무로 집을 짓고 숯을 굽고 가구를 만들고 방망이를 만들고 지게를 만들고
가난할 땐 도토리를 우려 묵으로도 만들어 구황식품으로 삼아
가족의 명줄을 이어갈 수 있었으니 어찌 참 나무가 아닌가.
껍질이 굵다고 굴참나무,
가을 늦게까지 잎을 달고 있다고 갈참나무,
잎과 열매가 작다고 졸참나무,
짚신의 밑바닥에 깔았던 신갈나무,
떡을 싸 먹을 만큼 넓은 잎의 떡갈나무,
(임진란 때 피난길의 선조가 도토리 묵 한 그릇을 얻어 자시고 수라 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상수라라고 했던)
도토리가 많이 열리는 상수리나무
이름도 외우기 쉽도록 얼마나 잘 지었는가.
나무나 풀이름을 멋지게 지은 조상들의 지혜에 늘 감탄한다.
그러나 우리는 야생초나 나무들의 이름을 제대로 모르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너무나 유명한 김춘수의 시의 한 구절이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이름을 모르고 그 생태를 모르고 그 사연을 모르면
아무리 아름다운 꽃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에어 건 (Air gun - 공기를 쏘아 옷의 먼지를 터는 공기총) 있는 곳을 지나면 참나무 숲은 편백 숲으로 바뀐다.
일제 강점기에 일인들이 심기 시작한 편백은 그야말로 울울창창 (鬱鬱蒼蒼) - 성지곡의 주인공이라 할 만하다.
편백은 원산지가 일본 - 그래서 Hinoki Cypress 다.
평균 키가 40 m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품는 나무라서 자연 휴양림으로 최고의 수종이다.
편백 산책로는 그러므로 부산 최고의 건강 길.
하루 두어 시간 걸으면 만병통치 - 장수길이다.
11시에 우리가 전에 명명했던 산삼정(山參亭)에 도착.
정자야 잘 있었느냐 우리가 왔다.
아직 그 정자의 이름을 붙인 현판이 없으니 현판이 생길 때 까지는 산삼정이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 빙 둘러 앉았다.
연암이 매실주, 바삭과자, 귤을 내놓았고, 중산도 귤을, 남계가 생탁과 새우깡을
내놓아서 제법 풍성한 간식 술상이 되었다.
(태화가 가져온 와인은 코르크 뚜껑을 딸 수 없어 내려가서 먹기로 하다.)
술은 들어간 만큼 이야기나 노래로 환류해야 정상.
혜종은 조상들은 유산(遊山)을 네 가지로 분류했다고 소개했다.
조상들은 유산이라 했지 등산이란 말은 잘 쓰지 않았다.
유산득명 - 유산(등산)으로 이름을 얻는다.
입산수도 -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는다.
유산풍류 - 산에서 시문, 음주, 가무를 즐긴다.
서산상거 - 아예 세상을 피해 산에서 상주한다.
우리는 물론 유산풍류족이다.
친구들의 유머, 고담준론이 있다.
술이 있고 노래도 있다.
굳이 정상을 정복하겠다고 무리하게 오를 필요도 없다.
그냥 산길을 얘기하며 즐겁게 걷는 것이다.
산길 두 세 시간 걷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보약
비싼 인삼 삶아 먹는 양반네보다
인삼캐러 산을 쫓아다니는 심마니가
열배는 더 건강하다.
학수천을 지나면 내리막길
거기서부터는 주종이 소나무로 바뀐다.
반쯤 내려왔을 때 정말 멋진 소나무 한 그루를 만난다.
많은 나무들 중에서 눈에 확 띄는 소나무.
왜 지금까지 못 봤지.
군계일학이라고 할까.
훤칠한 키에 굵은 몸통
진시황이 소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고 나서
저 나무 (木) 에게 벼슬을 (公) 주라 하여
松 이 된 소나무가 바로 저런 소나무가 아닐까.
그 소나무 조금 아래
편백 한 그루가 또 명품이다.
두 아름은 족히 되어보이고 키가 6~70 m 가 되어
까마득하여 끝이 안 보인다.
소나무 대표, 편백 대표 두 그루가 가까이에서
힘겨루기를 하는 형국이다.
우리들은 두 나무에 다 같이 감탄한다.
그렇게 많이 이 길을 지났건만 예사로 보다가
오늘 비로소 눈이 열렸나보다.
12시에 호수에 다다랐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보면 청청 호수에 오리, 잉어들의 유영이 보이고
올려다 보면 금정봉에는 단풍이 한창이다.
참나무 벚나무, 간간이 단풍나무들.
우리가 서 있는 다리 옆에도 진품 단풍나무 한 그루가
파란 호수를 배경으로 빨갛게 서 있다.
한 폭이 아니라 12폭으로도 모자랄 장면들이 호수를 싸고 돈다.
동물을 남달리 사랑하는 연암이 건빵 한 봉지를 사서 한 알씩
다리 아래로 던져준다.
오리들이 와 달려들어 잽싸게 떨어지는 건빵을 채간다.
물 밑에 헤엄치는 잉어들은 오리들의 위세에 눌려 대가리도 쳐들지 못하고
물속에서만 빙빙 돌 뿐이다.
오리의 다리를 콱 물고 잠수해버리면 오리는 꼼짝 못할 텐데 잉어 머리로는
그런 요량이 있을 리 없다.
새대가리도 별로지만 보다 고기 대가리는 더 둔하다.
고기가 낚시에 걸려 올라오다가 떨어진 5초 후에 또 미끼를 무는 것을 보면
물고기의 아이큐가 한 자리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2시 반에 순두부 집에 도착
태화가 다시 와인을 꺼낸다.
최근 호주여행중에 산 것
vinelane, noble gold 라는 라벨이 붙어 있다.
금가루를 뿌린 황금색 금박주 - 이만하면 귀한 술이 아닌가.
병도 날씬하다. 섹시하다. 이런 날씬한 병을 가진 와인은 여성용이라고 한다.
그런데 콜크 마개를 딸 수 없다. 와인 좋아하는 연암이 볼펜과 열쇠로 쑤시고 돌려도 안 열린다.
결국 태화가 옆 마트에 가서 열어왔다.
꿀까지 섞인 호주산 와인이 오늘의 스펙이다.
술이 연하고 달고 맛있다.
여자들이 섹시한 병을 만지는 것 뿐만 아니고
술을 마시기도 좋아하겠다.
날계란을 깨어 넣어 먹는 이집의 순두부
언제 먹어도 맛있다.
가양 청주도 괜찮고.
총무가 계산하기도 전에 또 태화가 벌떡 일어나 계산대로 간다.
오랜만에 와서 내고 싶단다.
나는 여행중이어서 지난 주 울산시티투어를 못 갔지만
친구들이 내 고향 울산을 사랑해서 고맙고.
울산 태화강 (太和江) 은 영원한 내 마음의 고향.
크게 화합하는 마음이 흘러넘치는 강.
감사합니다. 태화선생.
말 그대로 술밥간에 잘 먹었습니다.
다음 주는 남포동 역에서 만납니다.
그 때까지 즐겁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