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3년 오스만 제국은 오스트리아를 침공합니다. 그 전에 술탄은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가 오스트리아를 도와 주지 않도록 구워 삶았는데,그 조건이 커피 원두를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말도 안된다구요? 그렇지만 엄연한 세계사의 한 장면입니다. 황홀한 맛의 커피 원두로 인해 태양왕은 오스트리아 를 외면했습니다. 커피가 국가를 이긴 것이지요. 오스트리아는 간신히 오스만 군대를 물리치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 내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오스만 군대가 놔 두고 간 커피 원두를 서로 차 지하기 위해 피 터지는 싸움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이해가 안 된다구요... 세계사를 공부해 보면,지금의 시각으로 는 정말 이해 못할 일들이 많이 벌어졌 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그럴 수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 야 합니다. 국가간의 신의도 저버릴 만 큼, 커피는 그렇게 사람들을 미혹시키며 전 유럽에 퍼졌습니다. 일설에는 프랑 스 대혁명도 커피의 영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취해서 몸도,정신도 못 가누는 술이 아 닌, 커피를 마시면서 점점 또렷해지는 의식으로 토론하며 혁명의 기운이 싹텄 다고들 말합니다.. 그럴수도 있다고 봅 니다. 남자들이 모여 떠들기 시작하면 사달이 나니까요. 그럼 이 커피가 우리 나라에는 언제 들어 왔을까요? 뭐, 정 확한 날짜에 공식적으로 수입한 것도 아니니 여러가지 설이 분분합니다. 대략 1890년 전후로 보는데, 1895년 을미사변 때, 러시아 공사관으로 아관 파천을 한 고종에게 러시아 공사가 커피 를 대접한 것을 시초로 보는 것이 정설 로 되어 있습니다. 고종은 이 검은 음료 에 완전히 빠졌고,식혜와 함께 커피만을 마셨답니다. 그 이후 중구 정동에 손탁 호텔이 생겼고, 그 호텔 안에 조선 최초 의 커피하우스가 생겼습니다.
손탁호텔은 한성부 정동에 1902년, 최초의 서양식 호텔로 지어졌는데 고종 이 황실 소유의 땅 1184평을 하사한 것 입니다. 지금의 덕수궁 옆에 있었습니 다. 25개의 객실을 갖춘 이 층 건물의 호텔 1층에 커피하우스가 자리했는데, 장안의 명소로 등극했습니다. 한성빈관 으로도 불린 이 손탁 호텔의 이름은 , 독일인 안토니테 존 타크가 운영했기 때문에 한국식 이름인 손탁으로 불리웠 지요.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도, 1904년 종군기자로( 러일전쟁) 조선에 와서 이 커피하우스를 애용했다고 합니 다. 그 뿐 아니라 그 당시 조선을 찾은 외국인들은 반드시 들렀다고 하니, 우리 나라 최초의 커피하우스로 인정함이 옳겠습니다. 이 커피하우스를 따라서 서울 장안에 커피숖이 여기저기 생겨 났습니다. 그 당시 유행하던 모던걸, 모던보이들의 집합소였지요. 손탁호텔 에서 가배 한 잔 마시는 것은,특권층이 란 증표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 특권층 이 나라를 팔아 먹은 자들이거나 그 자 제들 이었으나,커피는 죄 없습니다.
나라는 일제에 먹혀 사라졌으나 매국노 들의 자제들, 신흥부자들, 예술가들의 낭만주의 사조는 커피 향처럼 진하게 퍼졌습니다. 커피의 잘못은 절대 아니 지요. 아르데코 낭만주의 물결에 힘 입어,그 시대의 커피잔의 장식은 우미하 고 정교하기 이를데 없었습니다. 지금의 심플한 커피잔과는 많이 다른, 그 시대의 커피잔을 사진으로 볼 때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관파천을 한 고종이 마신 커피가 한강 토에서는 처음이라고 공식적으로 알려 져 있지만, 그 전에 일본을 통해, 시중의 상인들은 이미 커피를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양탕국이라고 불렀다고 하지 요. 그 양탕국이 지금은 믹스커피, 다방 커피 라는 이름으로 서민의 힘이 되어주 고 있습니다.
예전의 커피하우스나, 지금의 카페나, 음료를 팔며 손님을 맞이하는 형태는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제공하는 커피는 엄청난 진화를 겪었습니다. 예전에는 아랍식으로 커 피콩을 볶고,갈아서 설탕을 넣고 진하게 끓이거나,그 찌꺼기를 면보에 받혀 물만 받아 마시는 형태였습니다. 언젠가 어 느 책을 읽었는데 지금도 아랍의 사막 부족 가운데서는,여아에게 맨 먼저 가르 치는 것이 커피를 끓이는 법이라고 하더 군요. 우리 여성들이 시집가기 전에 요리법을 전수받듯이, 맛있는 커피를 끓이는 것이 여성의 중요한 덕목이었습 니다. 커피콩을 볶는 정도, 분쇄해서 끓일 때의 물과 불과 시간의 조절, 설탕 과 우유의 양 등...우리가 집집마다 김치 맛이 다르듯이 그렇게 다른 커피를 만듭니다. 아랍 커피는 지금도 그렇게 끓인다고 합니다.
지금의 한국에서의 커피는, 인스턴트 커피와 원두커피로 나뉘입니다. 일본 에서 물려받은 영향이지요. 단지 일본 에서는 원두커피를 레굴러커피라고 부르는 것이 다릅니다. 지금 우리들이 선호하는 멜리타 드립 커피와 에스프레 소 등은 20세기 이후에 나온 것들입니 다. 이태리인들이 미국으로 대거 이민 가면서 가져간 에스프레소를, 미국민의 입맛에 맞게 변형된 것이 요즘 어르신 들도 아는 아메리카노입니다. 아메리 카노를, 현대식 카페의 메인 메뉴로 만 든 것이 바로 스타벅스입니다. 1980년, 가공된 원두와 음료를 세련된 인테리어가 된 공간에서 같이 판매하기 시작한 스타벅스가 현재 모든 카페들의 효시입니다.
젊은이들이 빵 한 조각으로 식사를 때우 고 그것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가는 일은 이제 당연지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커피 는? 바로 믹스커피입니다. 아무리 원두 커피가 일반화 되고 카페가 많이 생겨도 요지부동의 1위 자리를 놓치지 않는 커피는 믹스커피입니다. 어르신들 은 다방커피라고 하지요. 얼마 전에 서산에 갔었는데, 이 십년의 전통을 자 랑하는 다방의 믹스 커피가 정말 좋았습 니다. 아마 오랜 노하우의 비법이 있는 모양입니다. 특히 힘든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서 그 시장 점유율은 언제나 1위입니다. 라면보다도 매출이 높다면 말 다했지요. 시장 규모가 1조가 넘습니다. 아무리 의사들이 몸에 해롭다고 해도 믹스커피를 향한 서민들의 사랑은 불변 입니다.
첫댓글 믹스 커피 역사가 재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