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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은 지리적으로는 같은 동아시아이지만 여러 이국적인 문화를 체험할 수 있고 비록 유목민족이라 유적은 적지만 대신 유목 생활이 아직도 남아있고, 몽골의사막도 충분히 매력을 느낄만 한 곳이다. 몽골은 넓은 땅덩이를 가지고 있지만 인구 밀도가 희박하고 지역색이 강한중국과는 달리 굳이 영토를 모두 둘러볼 필요는 없다.
서북쪽에는 산맥이 있고,카자흐족이 산다. 카자흐인들은 문화가 일반적인 몽골인과는 조금 차이가 있기에 그들의 문화와 산을 보고 싶다면 서쪽으로 가보는 것도 추천한다. 몽골은 광활한 영토 때문에 조금이라도 규모가 있는 도시라면 어디든 공항이 있어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으나, 큰 규모의 마을이 아니거나 허허벌판이라면 도로도 놓여있지 않는 경우가 있다. 또한 선크림을 가져가는 것도 도움이 된다. 후술하겠지만 몽골은 햇살이 매우 강력하여 여행할 때 피부가 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몽골 여행 할 때는 간단한 여행 몽골어를 배워가거나 책을 들고 가자. 젊은 사람들은 영어를 알지만 중장년층은 영어를 하지 못하거나 러시아어만 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발음이 좋지 못하더라도 러시아어 읽듯 키릴문자를 읽지 않는 이상엔 알아듣는다. 아니면 책을 보여주자. 그 외에 등산을 하고 광활한 경치를 즐길 수도 있다.
▶ 여행 준비
몽골은 굉장히 춥기 때문에,겨울에 관광을 갈 것이라면 따듯한 옷도 챙겨야 한다. 하지만 몇몇 지역에서는 -40℃를 넘나드는 추위를 경험할 수도 있기에 한국에서 구매가 가능한 옷들로는 추위를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추운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해당 지역을 방문할 예정이라면 몽골 현지에서 방한복을 사는 것도 팁이다.
여름에는 온도도 높고 햇살도 강하지만, 건조하기 때문에 한국의 더위와는 달라 오히려 햇빛을 가릴 수 있는 옷을 입는 것이 좋다. 어차피 그늘에 들어가면 서늘하다. 하지만 몽골 여행시 대부분 차량 이동을 하기 마련이고 가장 많이 이용하는 푸르공은 에어컨이 없다. 여름에 가면 정말 차 안이 찜통이다.
먼지 바람이 휘날리는데도 창문을 열 수밖에 없기에 마스크는 필수로 가져가는 것이 좋다. 그런 게 싫다면 스타렉스를 타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보통 스타렉스와 푸르공을 선택 가능한 투어가 많다. 전기로는 220V 50Hz가 사용된다. 중국과 같다. 보통 콘센트 규격은Type E다.
▶ 장점
국토가 광활하긴 하지만, 사람이 많지 않고 특별히 범죄조직이 판을 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소매치기나 절도같은 경범죄는 있다. 운이 매우 나쁘면 무장한 강도를 만나는 경우까진 있지만, 강력범죄나 테러를 당할 위험성은 매우 낮다. 보통 붐비는 곳에서 소매치기가 잘 발생하니 항상 유의하도록 하자. 몽골의 긴급신고 번호는 소방서의 경우 101, 경찰은 102, 구급차는 103이다.
몽골이 애초에 넓고 희박한 인구 때문에 당연한 말일 수도 있지만, 자연이 매우 아름답다. 몽골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비사막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모래사막이 아닌 대부분은 황무지이다. 모래사막은 홍고린엘스(Khongoryn Els)라는 지역 등이 있으며 매우 유명한 관광지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처럼 끝없는 모래사장은 아니고 그냥 모래 산이며 황무지 가운데에 모래 산이 솟아있는 형태이다.
몽골은 티베트 불교문화권이다 보니 불교사원들이 많은 편이다. 전술했듯 유목민족 특성상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한국에서 보던절들과는 다른 모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말을 타고 여행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몽골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몽골 유목민의 집에 손님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또한 유목민들은 매우 친절하고, 몽골 현지의 이국적인 문화를 체험할 수 있고몽골 요리도 같이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요리가 입에 맞지 않는다고 거부하는 것은 현지인들에게 꽤 큰 실례이기 때문에 한 조각이라도 먹자. 또한 운이 좋다면 유목민들과 같이 말을 타거나 사냥도 해볼 수 있다.
한국에 우호적인 국가이며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마트에 가면한국 요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 한국 식당들도 많다. 몽골 여행 시 음식 적응이 되지 않는다면 한국 요리를 쉽게 사 먹을 수 있어 향수병이 생길 우려 거의 없다.
외국인, 특히중국인들에 대한 배척이 심하다. 한국인들에겐 크게 혐오감을 보이지 않지만, 중국인과 비슷한 외모 때문에 오해받을 가능성은 존재한다. 외국인에 대한 혐오범죄도 발생한 적이 있다. 심지어 네오 나치들이 있기도 하다.
▶ 관광지
♣ 울란바토르 : 수흐바타르 광장, 간단 사원, 복드 칸 겨울궁전
♣ 카라코룸 : 한때 몽골 제국의 두 번째 수도였지만, 지금은 허허벌판인 곳이다.
2004년'오르콘 계곡 문화 경관' 중 하나로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되었다.
♣ 부르한 산 : 몽골인들의 성산. 2015년에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되었다.
■ 유의사항
몽골 어디서든수돗물을 마시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 수돗물의 위생 상태가 딱히 좋은 것도 아니고, 물갈이를 겪을 수도 있다. 웬만하면 몽골 유목민들이 주는 물을 마시거나 마트에서 사 먹는 것을 추천한다. 매월 첫날은술의 판매 및 구매가 일절 금지된다. 질병이 흔하다. 여러 질병들에 대한 예방 주사를 맞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이슬람국가와 힌두교의 인도처럼 왼손을 부정시 하여 왼손으로 음식을 먹거나 왼손을 건네는 것은 결례이다. 게르 안에서 시끄럽게 굴지 말자. 게르도 남의 집이기 때문에 이건 만국 공통 사항이다. 중장년층에게는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한국과 문화가 비슷하기 때문에 그냥 한국 사회 예절 문화를 똑같이 적용하면 된다.
계절 상관없이 전체적으로 기후가 건조하므로,립밤을 챙겨가면 큰 도움이 된다.
■ 식당가
▶ 한식당 : 몽골 본죽 (Bonjuk)
▶ 일식당 : Ajisen Ramen Mongolia (아지센 라멘 몽골)
Arig Anya Ramen & More (아릭 엔야 라멘)
▶ 중식당 : Жантай гоймон (장태거이멍 중식당), Dongseoul (동서울 중식당)
Hutong Restaurant(후통 레스토랑), Yu-Long Chinese Restaurant
(유롱 차이니즈 레스토랑)
▶ 양/몽골 레스토랑 : Bluefin The Steakhouse(블루핀 더 스테이크하우스)
Café Park Restaurant(카페 파크 레스토랑)
Kozy Nomads Restaurant(코지 노마즈 레스토랑)
Modern Nomads(모던 노마즈)
▶ 아시아식 등 : Asiana Restaurant (아시아나 레스토랑)
Oriental Express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Oriental Treasure Restaurant(오리엔탈 트레져 레스토랑)
▶ 패스트 푸드 : MANDU HOUSE (만두 하우스)
Black Burger Factory (블랙 버거 팩토리), Шөлөндө (슐릉두)
▶ 펍/바/클럽 : CHOCO Metropolis CLUB (초코 클럽)
MINT Ulaanbaatar CLUB (민트 클럽), ZU CLUB (주 클럽)
■ 수흐바타르(징기스칸) 광장 : 사회주의 혁명 25주년 기념
1921년 7월 울란바토르(울란바토르 도시명은 수흐바타르 사후에 변경)에서 담딩 수흐바타르가 중국(1911년 청나라 멸망)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다. 담딩 수흐바타르는 군인으로서 몽골의 독립을 위해 그 당시 몽골의 지도자 복드칸을 도와 독립을 위해 힘썼던 사람이며 인민혁명당을 조직하여 현재의 몽골 국회의 정당 중에 하나인 인민당을 있게 한 사람이다. 이후 1923년 30세의 젊은 나이에 수흐바타르가 갑자기 병사했다. 1946년 사회주의혁명 25주년에 그를 기념하기 위해 광장이 지어지고 중앙에 그의 동상이 건립되었다.
현재 광장에서 보면 중앙에 수흐바타르 기마상이 있고 북쪽의 건물에 거대한 동상들이 여러 개 보이는데 건립할 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본래 건물에서 2006년 몽골 제국 창립 800주년을 맞아 리모델링하면서 동상들과 위에 게르 모양 등을 만든 것이다. 중앙에 있는 큰 동상이 칭기즈칸(Chinggis Khaan)이고 서쪽의 동상이 그의 아들 2대 칸 오고타이칸(Ogedei Khaan)이며, 동쪽의 동상이 그의 손자이자 5대 칸이며 원나라 초대 황제인 쿠빌라이칸(Kublai Khaan) 이다. 그리고 칭기즈칸 앞에 기마상 2개는 몽골 전사인 보루추(Boruchu)와 무흘라이(Mukhlai) 이다.
이 동상들이 있는 건물은 정부청사이자 국회의사당이다. 몽골은 현재 이원집정부제여서 총리가 행정부의 수장인데, 그 총리실도 이 건물에 있고, 대통령 집무실도 같이 있다. 국회도 있기 때문에 국회의장실도 물론 같이 있다. 사법 건물을 빼고 행정과 국회 관련 건물이 같이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 정권이었던 시절부터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참고로 공산정권이 무너진 후 국회의원 수가 우리나라와 같이 300명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는 줄여서 76명이다. 국민이 약 300만 명인데 300명은 많긴 했다.)
광장 이름이 두 개 불리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2013년 공산정권이 무너진 후 생긴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어 울란바토르시는 민주당과 함께 인민당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수흐바타르 광장을 칭기즈칸 광장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이에 몽골 인민당과 함께 수흐바타르 후손들은 행정 법원에 제소하였고, 2016년 최종 승소하여 수흐바타르 광장으로 명명하는 것을 되찾았다. 하지만 수흐바타르 광장이 이제 칭기즈칸 광장으로 변경되었다고 여전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현재는 혼용되고 있다.
■ 몽골 국립 역사 박물관
▶ 입장료 – 10,000₮ (몽골 투그릭 : 1원/2.4) =4,100
▶ 사진 촬영 –10,000₮
1971년 현재 건물로 자연박물관이 이전되어 운영되다가 1992년 자연사 박물관과 국립 역사박물관으로 분리되면서 자연사 박물관이 이전하며 국립 역사박물관으로 운영되었다. 이후 2008년 12월 몽골 국립 박물관으로 개칭되었지만, 일반적으로 역사박물관이라 불린다. 3층의 9개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 1층 1전시실 : 몽골의 선사시대
약 80만년 전부터 몽골에 살던 고인류가 남긴 석기들과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사 용하던 생활도구,토기,장신구,무기 등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 1층 2전시실 : 고대 유목 국가
몽골의 조상인 훈누(흉노) 이후 돌궐-위구르-거란 시대의 역사와 문화 및 생활상 을 보여주는 각종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 2층 3전시실 : 몽골의 전통 의상
몽골의 20여개 민족별 전통의상과 장신구가 전시되어 있다. 보기 드문 화려한 몽 골여성의 머리장식과 옷 및 장식 등을 감상할 수 있다.
- 3층 4전시실 : 몽골제국 시대
이흐 몽골국과 몽골제국 시대로 나눠서 칭기즈칸이 건국한 이흐몽골국에 관련되 는 귀중하고 화려한 자료들과 몽골제국의 수도 하르호룸에서 출토된 유물 및 각 종 무기와 외교문서 등이 전시되어 있다.
- 3층 5전시실 : 몽골의 전통 문화
몽골인의 정신문화를 보여주는 각종 유물들과 몽골 전통 예술품들 및 악기/놀이 도구 등이 전시되어 있다.
- 3층 6전시실 : 몽골의 전통 생활
유목민들의 독특한 문화를 보여주는 목축,수렵에 관련되는 도구와 농기구 그리고 이동식 가옥인 게르를 볼 수 있다.
- 3층 7전시실 : 청나라 지배기의 몽골
몽골은 북원이 청나라에 복속된 1635년 부터 청나라가 멸망하는 1911년 까지 약 275년 동안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지배를 받았다. 이 당시 사용하던 고문 도구와 갑옷 및 무기 등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 3층 8전시실 : 사회주의 시대의 몽골
1921년부터 1990년까지 몽골은 사회주의 국가였는데 이 때의 몽골 사회를 보여 주는 문서와 사진 등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 3층 9전시실 : 민주주의와 개혁의 시기
1990년에 소련의 붕괴와 함께 몽골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 전시실 에서 이와 관련된 사진과 문서 자료를 볼 수 있다.
■ 이태준 열사 기념공원
2001년 7월, 이태준 열사의 업적을 기념하여 몽골에서 부지를 지원하고 우리나라 국가보훈처 및 연세의료원의 재정지원으로 공원을 300평 규모로 준공했고, 이후 2010년 6월 이태준 기념관을 개축했다. 몽골에서 만나는 애국지사의 흔적이 한국인에게는 뜻 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이태준은 1883년 11월 21일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에 태어났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반식민지 상태가 되고 다음 해 결혼한 지 3년 만에 부인을 잃자(슬하에 딸 2명이 있음) 상경해 세브란스병원 앞에 있던 김형제상회에 점원으로 취직했다. 김형제상회는 제중원(세브란스병원) 의학도 김필순이 운영하던 곳으로 안창호 등 독립지사들의 비밀 회합 장소였다. 이태준은 이들의 영향을 크게 받아 1907년 세브란스병원 의학교(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스승이자 동지인 김필순은 안창호와 의형제를 맺은 사이로 1908년 6월 졸업해 한국 최초의 의사 7명 중 1명이 돼 모교에 남아 후학을 가르치면서 일제 침략에 맞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1909년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안창호를 간호하고, 그해 말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사건으로 체포됐다가 이듬해 풀려난 이태준은 안창호의 권유로 신민회의 산하 청년학우회에 가입했다. 이태준은 1910년 8월 일제에 의해 한국이 강제합병 된 다음 해인 1911년 6월 2일 세브란스병원 의학교를 졸업(제2회)해 92번째로 ‘의술개업인허장’을 받았다.
1911년 말 일제가 애국지사들을 대량 검거하기 위해 이른바 105인 사건을 조작하자 김필순은 체포 위기에 빠진 이태준과 함께 중국으로 가서 항일 독립운동에 몸담을 계획으로 중국으로 망명하기로 한다. (1911년 10월 중국에서는 신해혁명이 일어난다.) 12월 말에 중국 난징으로 망명한 이태준은 중국 남경의 ‘기독회의원’에서 의술을 펼치다 처사촌인 김규식의 권유로 1914년 31살에 몽골 울란바토르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몽골에서 이태준은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개설해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비밀 연락소로 삼으며, 성병(매독) 퇴치에 앞장섰다. 이 당시 몽골 사람의 70%가 매독에 고통받고 있었다고 한다. (매독은 패니실린 항생제가 나오기 전 불치병이었는데 패니실린은 1928년 영국에서 발견된 것이므로 이때는 패니실린 항생제도 없었다) 몽골사람들은 그를 신인(神人) 혹은 ‘붓다 의사’라 칭송했다고 한다.
1917년 몽골의 마지막 왕인 복드칸 8세의 어의가 된 그는 1919년 7월 ‘에르데닌 오치르’라는 높은 등급의 훈장도 받았다. 몽골 사회에서 두터운 신뢰를 쌓은 이태준은 한인사회당 지하당원으로 활동하며 코민테른 자금 40만 루불 상당의 금괴 운송에 깊이 관여하기도 했고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여하는 김규식에게 활동비를 대기도 했다. 또한 김원봉이 이끄는 의열단에 가입해 우수한 폭탄 제조자인 마자르를 소개함으로써 의열단 활동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1921년 2월 러시아에서 잔인하기로 악명높아 미친 남작이라 불리며 일본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운게른 시테른베르크(반공주의자)가 몽골을 점령했다. 이때 이태준은 몽골에서 항일운동을 지속해야 한다고 판단하여 피하지 않고 남았다가 러시아 백군의 공산주의자 숙청정책의 일환(러시아 백군은 일본과 한편이었다.)으로 잡혀 39세의 나이로 처형당했다.
■ 자이승 승전탑
몽골이 구소련과 함께 연합국으로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것과 몽골 사회주의 혁명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71년 구소련이 몽골에 기증한 탑이다. 또한 2차 세계대전 당시 다양한 전쟁에서 ‘알려지지 않은 군인과 영웅’ 을 기념하는 의미도 있는데 상징적으로 구소련의 붉은 군대의 상징이 있는 깃발을 들고 27미터 높이의 구소련 군인 동상을 볼 수 있다.
거대한 군인 동상을 지나 전망대에 오르면 둥그렇게 펼쳐진 벽화를 볼 수 있는데 스탈린과 레닌을 포함한 구소련의 모자이크 형식의 사실주의 형식을 볼 수 있다.
이외에 2차 세계 대전 당시 구소련-몽골 연합군이 일본과 독일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모습과 짓밟히는 욱일기 및 말과 같이 있는 몽골의 그 당시 지도자 허를러깅 처이발상의 모습 및 1921년 몽골 독립 선언에 대한 구소련의 지원, 2차 세계대전의 동아시아 지역의 핵심 전투인 할인골 전투(1939년) 에서의 구소련-몽골에 의한 일본 관동군의 패배와 같은 장면을 볼 수 있다.
▶ 울란바토르 전망대
자이승 승전탑이 있는 지역이 몽골에서는 부자들이 사는 동네 중에 한 곳이다. 한국으로 보자면 강남 같은 곳이다. 바로 앞에 톨강이 흐르고 뒤에 복드산이 크게 위치하고 최근 쇼핑 건축물도 많고 하여 이 곳을 오면 한국 도시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경관들이 보인다. 높은 지역에 세워졌기 때문에 울란바토르 시내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도 하고 있어서 몽골에 여행 온 사람들이 꼭 한번 들르는 곳이다. 전망대를 올라가기 전 계단 옆에 보면 탱크가 한 대 있는데, 이 탱크는 몽골에서 2차 세계 대전때 구소련을 위해 지불한 탱크이다. 이 탱크가 1943년 모스크바에서 1945년 독일 베를린까지 이동한 경로를 표시한 것을 탱크 아래 돌에서 볼 수 있다.
■ 테를지 국립공원
몽골의 최대 휴양지로 1993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푸르고 드넓은 초원과 나무가 우거진 숲을 볼 수 있고, 밤에는 별이 쏟아지며 은하수를 보기 쉽다. 수도 울란바토르와 차로 1시간 30분 정도의 거리여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몽골에 오면 많이 찾는 대표 휴양지이다. 몽골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휴양지여서 게르 캠프들의 시설이 가장 좋다.
▶ 칭기즈칸 대형 동상
울란바토르 오른쪽으로 천진벌덕(Tsonjin Boldog) 지역에 몽골의 랜드마크인 대형 동상이 있다. 동상의 높이는 40m이고 밑에 기념관과 합치면 50m 정도로 그 웅장함이 멀리서도 느껴지는 세계에서 가장 큰 기마상이다.
2006년 몽골제국 800주년 기념으로 건립을 시작하여 2010년에 완공된 최근의 건축물이다. 이 기마상은 정부에서 건립한 것이 아니고 몽골의 재벌인 젠코(Genco)에서 410만 달러를 투자해서 건립한 것이라 한다. 칭기즈칸에 대한 경외심이 그만큼 몽골 사람들에게 크다는 점도 있지만, 공산주의 이후 칭기즈칸을 영웅시하는 몽골 사회에서 수익성도 있다고 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몽골인보다 외국 관광객의 입장료가 최근 3배로 인상되었다.
이곳에 지속해서 투자하여 복합관광 단지로 개발할 계획이고 수백 개의 게르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모두 완성되면 테를 지가 가장 몽골에서 유명한 관광지인데 대부분의 여행객이 이곳에 와서 숙박을 한 번씩은 하게 될 듯하다.
이곳에 건설된 이유는 전설에 따르면 동상의 위치에서 칭기즈칸이 1179년 17살이 되던 해이 길을 지나다가 길에 황금 채찍을 발견한 곳이기 때문이라 한다. 또한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태어난 곳이 동쪽 방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칭기즈칸이 바라보는 쪽에 동상이 또 하나 보이는데 이 동상은 칭기즈칸의 어머니(호에륜) 동상이다. 어머니 동상은 칭기즈칸을 바라보고 있다.
안에 들어가서 보면 높이 9m, 길이 6m의 대형 장화가 보인다. 실제 칭기즈칸 기마상의 발 사이즈에 맞춘 장화 크기라 한다. 이 장화에 가죽은 소 120여 마리 가죽으로 만들어졌고, 세계에서 가장 큰 장화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 계단 및 엘리베이터로 동상의 말머리 정도의 전망대까지 올라가서 칭기즈칸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같이 보이는 경치를 볼 수 있다. 입장료는 1인당 외국인은 30,000₮(14,000원) 정도이고, 내부에서 몽골 전통의상 체험을 할 수도 있다. 1인당 20,000₮(9,000원) 정도이고 사진 인화도 해준다.
▶ 거북바위
몽골에서도 거북이는 장수를 상징하는데 바위의 형세가 마치 거북이 같이 생겼다 하여 거북바위라 불린다. 약 30m 크기의 큰 바위는 테를지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거북바위 전설: 오이라트/Ойрад/의 갈당/Галдан/ 왕은 전쟁 중 열세에 시달리다가 거북 바위 앞에서 병력을 정비했다. 그는 서쪽으로 퇴각하기로 결정하고, 가지고 있던 금은을 거북바위 협곡에 묻었다. 그러자 그의 부인들 중 만주 왕비는 돈과 보물을 두고 갈 수 없다고 반대했고, 이에 화가 난 갈당 왕은 그 왕비를 죽여버렸다. 이에 왕비의 원혼이 그 자리에 남았다. 그 후 사람들이 금은을 가지러 이곳에 왔는데 그들은 보물을 가져가려고 젖은 소고기를 이용했다. 동전이 젖은 고기에 잘 들러붙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잘 들러 붙어있던 동전이 가져가려 하기만 하면 바위 아래쪽으로 굴러떨어져 버리면서 왕비의 원혼이 웃어대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 아리야발 사원
‘새벽 사원’이라는 별명을 가진 테를지의 대표적인 라마 불교 사원이다. 입구를 지나 올라가는 길에 부처님 말씀이 있고, 정자가 하나 있는데 가운데 큰 후르트(원통 모양의 돌리는 불교 법구) 를 돌리면 천장에 숫자가 정해진다. 이 숫자에 따라 자신에 맞는 말씀을 볼 수 있다.(모두 몽골어 되어 있으니 가이드의 도움)
조금 더 가면 ‘삶과 죽음을 생각하며 걷는 다리’가 나온다. 우리가 흔히 본 흔들 다리인데, 몽골인들은 아무리 덩치가 커도 상당히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다리를 많이 겪어 보지 않아서 그런 듯한데, 한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허술해 보이는 다리가 무너질까 봐 무섭다. 자연스럽게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듯하다.
이후 108계단이 있는데 계단 하나 올라갈 때마다 ‘옴 마니 반메 훔’ 이라고 외우며 천천히 올라가 보자. 문자적인 뜻은 ‘옴, 연꽃 속에 있는 보석이여, 훔’이라 하며, 불교의 천수경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의 진언이라 한다. 이 주문을 외우면 그 자체로 원하는 바를 이룬다고 티베트 사람들은 믿는다고 한다. 사원에서는 후르트(마니차)를 시계방향으로 돌리면서 소원을 빌어 보자.
♣ 미라지 캠프 : 몽골 테를지에 있는 럭셔리 게르 중 한국인이 운영하는 캠프
■ 아르항가이 州
(몽골어: Архангай/Arkhangai)는 몽골 중부에 위치한 주로 주도는 체체를렉이며 면적은 55,313.82㎢, 인구는 84,584명(2011년 기준)이다.
항가이 산맥의 북쪽 사면에 위치해 있으며, 이름인 '아르항가이'도 몽골어로 '항 가이의 뒤쪽'이라는 뜻이다. 항가이의 평균 해발 고도가 2000m를 넘는다. 낙농 업이 발달해 있으며 몽골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으로 뽑힌다.
▶ 도트 레조트
일단 천장이 유리로 되어있는 것이 아주 큰 차이점이고 게르의 크기와 퀄리티도 이곳 도트 리조트가 훨씬 좋다. 난로는 장식적인 감성적 의미가 강하고 실질적 난방은 전기장판이 담당하는 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트 리조트 근처에는
몽골 온천이 있다.(쳉헤르 온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