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와서 작업을 하겠다는 바람에 김포지구 모델을 내 방에서 복도로 옮겼다. 그나마 통로
가 넓어 다행이었다.
“갑자기 왜요?”
김 상영 씨가 모델을 옮기다 물었다.
“다른 일 때문에요. 그 일을 내 방에서 해야 할 것 같아서. 모델 만드는 학생 요즘 연락 와
요?”
“요즘 과제 내느라 바쁜 것 같던데. 한가 해 지면 얼굴 내밀겠죠.”
“그 친구 일 좀 시켜야 할 것 같은데.”
“모델 만들어야 돼요?”
“누가 모델을 사겠다고 해서요.”
“이 바쁜 와중에 모델까지. 다른데 일 주죠?”
“단지 사겠다는 게 아니라 모델 만드는걸 배우겠데요.”
그와 모델을 옮기고 나서 방 한쪽 테이블을 비우고 바닥으로 쓸 두꺼운 합판을 잘라 왔다.
너무 일찍 일어난 탓인지 점심을 먹고 일을 정리 하고 있자니 몸이 몹시 나른 했다. 깜박
졸려 순간에 새 메일이 뜨는 것이 보였다. 그가 7시 반쯤 오겠노라고 보낸 메일 이였다. 그
는 대게 직원들이 다 퇴근 하고 난 시간에 맞추어 오는 듯했다.
직원들이 거의 퇴근을 한 시간에 그가 여전히 평범한 차림으로 사무실에 들어오며 인사를 건
냈다.
“일을 어떻게 하는지 과정을 알고 싶으신 거죠?”
“예, 일 하는 과정을 좀 자세히 배워 보려고요. 앞으로 이걸 취미로 해 볼까 해서.”
“재미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직업이라 모델 만드는 것 안 좋아하세요?”
“아니에요. 요즘도 가끔 기분이 나면 나도 거들어요. 다 만들어 놓으면 이쁘기도 하고 또
뿌듯 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래도 우리야 일이다 생각 하고 하니까 좀 까다로워도 그러려
니 하지만 취미로 하기에는 그다지 만만 할 것 같지가 않은데.”
“모형 비행기 같은거 좀 아세요?”
“모형비행기?”
“뭐 그런 것도 있고 배 조립 하는 것도 있고.”
“아뇨”
“그것도 장난 아니에요. 일도 엄청 많구요. 또 좋아는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직접 못 만들
면 사람 사서 만들어야 하거든요. 조립 하나 하는데 인건비만 천단위 해요.”
“그래요? 그 정말 비싼 취미네요. 그 정도면 뭐 일이 특별히 어려워서 중간에 그만 두고 그
러는사태는 없겠네. 그렇게 인건비를 지불 해야 하는 일이면 그것도 간단하진 않을 거니
까”
나는 노트북을 들고 그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건너 왔다.
“첫 번째 해야 하는 일은 모델을 만드는데 필요한 모든 조각을 일단 컴퓨터에서 그려야 해
요. 이건 석사 하던 당시에 해 두었던 파일 인데요. 제대로 한번 해 보시려면 이것도 배우셔
야 할 것 같은데.”
“모델을 만드는데 칼로 자르고 그러는 것 아니에요?”
컴퓨터 화면을 보려고 그가 내가 앉은 쪽으로 건너 왔을 때 방금 샤워를 했는지 시원한 무스
크 향이 나서 순간 피곤도 잊었다. 나까지 상쾌해 지는 듯 해서.
“그렇게 해도 되는데 모델이 커지면 일이 많아서 손으로 일일이 자르는 것은 좀 무리예요.
신경 써서 자른다고 해도 미스가 나서 문제도 생기고요. 저 모델 하고 똑같이 하시겠어요
아님 저기 있는 다른 모델 들처럼 해 보시겠어요.”
선반에 죽 놓여 있는 다른 스타일의 모델을 가리켰다.
“일단은 저 모델 하고 똑 같이요.”
“그래요 그럼. 일단 저걸 어떻게 만들었는지 만 한번 보세요. 그럼 나중에 혼자 다른 좋은
방법을 찾을 수 도 있고 그러니까. 일단 여기 있는 건 작업하는데 필요한 조각들을 그려 놓
은 건데요. 이걸 가지고 재료를 잘라야 하니까 다른 방에 있는 기계로 갑시다.”
노트북을 들고 김 상영 씨나 전 영현 씨가 일하는 다른 방으로 그를 데리고 갔다.
“재료는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나무 종류에 따라 색이나 질감이 달라요. 이렇게 붉은 톤이
나 짙은 갈색 나는 것 그리고 미색 나는 것 여러 종류가 있거든요. 아님 저기 보이는 모델처
럼 아크릴 판으로 해도 되구요. 만들고 나면 분위기가 다 틀리니까 마음에 드는 색깔을 한
번 골라 보세요.”
재료들을 넣어둔 서랍 장을 열어 보였다.
“이 붉은색 나는 거 멋있네요.”
그가 손으로 나뭇결을 가만히 쓸어 보고 있었다.
“배경하고 메인 건물은 차이를 둬야 하니까 그걸 메인으로 쓸 거면 이걸로 배경을 하죠.”
나는 미색 나무 판을 꺼냈다.
“예”
“그러면 어느 걸 먼저 자를까. ..”
파일들을 죽 열어 보니 이것 저것이 섞여 있었다.
“일단 기본적인 것 두 종류만 잘라서 보여 드릴께요. 그런데 다 직접 만드시겠어요? 아님
모델 만드는 학생이 있는데 하는 방법만 좀 보시고 그 학생을 시켜도 돼요.”
“혼자 하기는 일이 너무 많을까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아님 배우실 거면 부분 부분 나누어서 일부만 해 보시던가. 왜냐면
저 건물 외부에 있는 기존 건물을 하나 하나 다 짜 맞추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집들이
작아서 손도 많이 가고.”
“일단은 제가 직접 해보다가 나중에 결정 하면 안되까요?”
“그래도 되구요.”
“저 작은 집들은 따로 만들어와서 여기서 붙여도 될 것 같은데요.”
“그래도 되죠. 어차피 따로 작업을 해야 하니까. 그렇다면 자료들을 잘라 드릴께요.”
컷팅머신이 돌아가자 그는 어린 소년처럼 신기해 했다. 비어 있는 구두 상자를 어디서 하나
찾아 들고 잘라낸 조각들을 모두 담았다.
“어차피 뭐 만드시는게 취미라니까.”
잘라낸 걸 보니 양이 좀 많은 듯 해서 혼잣말 하듯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가 작업하는데 필요한 도면들을 프린터로 뽑다 들고 다시 내방으로 돌아 왔다.
“이 플랜을 보면요 조각 마다 번호가 다 붙어 있지요. 그 번호들이 집 한 채 예요. 그게 어
떤 집인지는 이 사진에 매겨 놓은 집 번호를 찾아서 참고를 해야 하구요.”
“일이 아주 치밀 하네요. 정말 손으로 하기는 좀 어렵겠어요.”
“손으로 하면 힘도 들고 정확하게 재서 잘라도 나중에 볼륨이 커지거나 잘아 지기도 해서
두 번 일 해야 하는 확률이 높아요. 그리고 이 접착제는 나무 전용을 쓰셔야 하는데. 이거예
요.”
선반에 놓인 접착제들 중에 나무 전용 접착제를 골라 그에게 건네 주었다. 그리고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일러 주고 더러는 시범을 보여 주기도 했다.
“집에 가서 쉬엄쉬엄 해 보다가 다음에 올 때 가지고 와 보세요. 다음에 들리 실 때는 바
닥 까는 방법을 보여 드릴게요.”
“흠. 잘 돼야 할 텐데.”
그는 모델 이야기를 할 때는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그렇지 않을 때는 이 사람이 지금 뭘 생
각 하나 싶을 만큼 무표정했다. 그리고 나서 기본 스케치 몇 개를 가지고 일반적인 방향 선
택 같은 기본 설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와 그의 별장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가 내가 준비 하는 만큼 그 역시 세심하게 자신의 집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 놓는 것이
느껴졌다. 그날은 그가 혼자 왔기 때문에 10시가 너머 같이 사무실을 나왔는데 주차장에 세
워진 그의 차도 평범한 것 이였다.
김포 일은 중요한 부분이 모두 끝나 있는 상태 이고 이미 상계지역에서의 경험이 있는 터라
큰 부담 없이 느긋하게 일상을 돌보는 중이었는데 디자인 파트를 하고 있는 전 영현 씨가 갑
자기 병원에 입원한 시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일이 생겼다. 그 바람에 급하게 사람을 구하고
일부는 직접 새로운 사람에게 일 설명을 하느라 그 주는 다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별장
에 많은 시간을 할애 하기도 하면서.
그는 일주일 도 되지 않아서 저녁 나절 커다란 양철 박스를 하나 옆구리에 끼고 찾아왔다.
“그거 숙제 예요?”
“예.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네.”
겉옷을 벗어 의자에 걸쳐 놓고 눈을 반짝 빛내며 양철 박스를 열어 보였다.
“이 박스 어디서 산 거예요? 참 유용하게 생겼네요.”
그 양철 박스는 내부에 칸막이도 조정할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조그만 물건들을 잘 분류해 두
기 적합해 보였다.
“박스 말고 모델 봐주세요.”
“그러죠.”
그가 조그만 모델들을 하나씩 꺼내 테이블에 놓았다. 모델들은 놀랄 만큼 정교하게 만들어
져 있었다. 문득 그가 몹시 섬세한 사람 일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경험이 많으신 것 같네요. 지난번 가지고 가신 건 벌써 다 끝내신 거예요?”
너무도 많은 모델이 이미 끝나 있었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몇 개 조각은 서로 짝이 안 맞던데 뭐 제가 잊어 버린 거예요?”
“아닐 수도 있어요. 일하다 필요 할까봐 일부러 몇 조각 더 잘라두기도 하니까. 아니 이걸
언제다 끝내신 거예요?”
“얼마 안 걸렸는데. 첫 날은 재미 있어서 종일 했구요. 그 다음은 하루에 두 세 시간 정
도.”
“손이 빠른가 봐요.”
내가 그의 손을 넘겨다 보았기 때문에 그도 자신의 손을 이리 저리 들여다 보았다.
“손으로 뭐 만들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 해져요. 골치 아픈 일도 좀 객관적으로도 보이고.”
“그래요? 취미생활도 하고 스트레스도 풀고 일거 양득이네요. 일단 이것들은 잘 보관해두
고 오늘은 바닥 까는 법을 보여 줄게요.”
나는 테이블을 치우고 미리 뽑아 두었던 플랜을 테이블 위에 펼쳤다.
“이건 너무 커서 기계로 자르기가 쉽지 않으니까 손으로 해야 하거든요. 여기 보이죠 이 등
고선 이것도 정확하게 잘라야 하니까 재료를 먼저 바닥에 놓고 이 뽑은 종이를 이렇게 테이
프로 붙여 두고.”
“이렇게요?”
그도 내가 하는걸 보고 있다가 한쪽 귀퉁이를 붙였다. 그렇게 그 저녁은 다른 일을 설명해
주고 있었는데 그를 보니 시키는걸 곧이 곧 대로 열심히 따라 하고 있었다. 문득 그가 모델
을 만들려는 이유가 다시금 궁금해 졌다. 그는 벌써 한동안 저녁 시간이면 이렇게 전문적인
모델 만들기 수업에 적극 출석을 하고 있어서 직원들을 제외하고는 식구들 보다도 더 자주
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저 배경에 있는 집들은요. 내가 하고 싶은데.”
“그래요. 그럼 오늘도 숙제 잔뜩 잘라 드릴께요.”
잘라 놓은 얇은 나무 판의 거스러미를 줄칼로 털어내며 말했다. 그는 그가 가지고 갈 부분들
을 자르다 튀어 나간 한 조각을 애써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 찾아 내더니 모든 조각 들을
다시 상자에 담고 테이블 위에 두었다. 홈 시어터나 운동공간에 그는 무척 까다롭게 굴었다.
꼭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에 운동공간을 원했고 서재에는 영화에 흔히 나오는 것처럼 당구대
를 놓고 싶어했다. 모델을 만들 작업 공간도 서재와 가까이 있었으면 했다. 그런데 어쩐지
그는 다른 사람을 위한 공간은 전혀 고려 하고 있지 않았다.
“손님은 안 받으실거예요? 아님 나중에라도 변형이 가능하게 설계를 할까요.”
“글쎄요…”
“좋은 집을 가지면 남에게 보여 주고 싶은 법인데. 꼭 방해 받고 싶지 않으면 문 하나를 닫
으면 손님들이 쓰는 공간하고 차단 되게 할 수도 있어요.”
그에게 간단하게 스케치를 해 보였다.
“…”
정말 일하다 숨돌릴 목적으로만 이 집을 쓸 생각 인가? 그러기에는 너무 큰집인데.
“ 다음에 오실 때는 몇 가지 모델에 좀 더 구체적인 걸 보여 드릴게요. 내부도 한번 보시
고. 또 수정 할 부분이 있는 지도 보시구요.”
“예 그럼 다음주 화요일쯤에 들릴게요. 뭐 다른일 생기면 메일 드릴께요.”
그는 웃옷을 챙겨 입고 나무조각들이 든 상자를 들며 말했다.
“아 이건 새 메일 주소 예요. 지금 쓰는 건 배달 사고가 가끔 나서 바꾸려구요.”
그에게 새 메일 주소를 적어 주었다.
“참 이 나무 조각들 좀 얻어 가도 되요? 지난번에 일하다 보니까 여유 분이 좀 필요 하던
데 가끔 쪼개 지기도 해서요. 또 그런 일이 생길 까봐서.”
“그래요. 적당한걸 하나 드릴께요.”
나는 나무 판을 하나 그에게 건냈다. 사무실을 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그의 그
배움이, 열정이 어쩐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그날 헤어 졌다가 그 다음 화요일 그가
들리지 않았고 그 이후는 현장을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가 그 즈음해서 리버 스카이 에서 우
연히 만난 것이다.
지난 목요일은 뜻밖에 아니타가 메일을 보내 왔다. 독어는 우리 말의 한자처럼 영어와 60 프
로 정도의 단어를 같이 쓰니까 동양 사람이 서양 언어를 배우거나 서양 사람이 동양 언어를
배우는 것과는 좀 다른 처지 인데도 스페인에서 영어로 살아 가다 보니 나나 동양에서 유학
왔던 친구들이 생각 나노라고 했다.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견뎠을까 하고. 그녀는 졸업 후
에 죽 스페인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홀랜드에서 일을 할까 싶어 지난주에 인터뷰
를 하고 왔단다. 그녀도 나도 잘 아는 욕은 졸업 후 일본에 인턴 사원으로 갔다가 거기서 일
본 여자와 결혼했다고. 올 여름 휴가를 그녀의 애인이기도 하고 욕의 친구 이기도 한 마티아
스와 함께 욕에게서 보내려고 일본 항공을 보니 독일서 서울을 들렸다가 가는 노선이 있어
나에게 잠시 들렸으면 했다. 내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나
도 시간이 된다면 같이 휴가를 욕에게서 보내자는 제안도 해왔다. 사람들 마다 선호 하는
경향이있다. 욕은 우리가 다 같이 학부 학생 이였던 시절에 율리아와 좋은 사이 이면서도 어
쩐지 동양 학생들 에게 몹시 친절했었다. 그 잘생기고 친절한 욕이 동양 여학생들과 잘 지
낼 때 율리아는 히스테릭하게 자신은 동양 사람을 싫어하노라 하고 다녔단다. 전해 들은 이
야기지만. 그러더니 결국 일본 사람과 결혼을 했구나. 옛 친구들의 소식을 들으니 우리가 함
께 지냈던 시간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세월만 쉼 없이 저 혼자 부지런히 가고 있는 듯 했
다.
카페 게시글
로맨스 소설 2.
[ 중편 ]
어느 스타의 죽음 4
푸른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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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08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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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근데.. 소설과 같은 직업을 하시나요? 너무 자세히 표현되어잇는데
드라마틱 하지 않은 실 생활에서 생길수 있는 리얼리티가 담긴 ..그런 두 사람 사이의 인간 관계 그리고 사랑을 시험 하고 있읍니다.
추석 잘 보내셧나요??
예. 루나리아님도 추석 잘 보내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