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列國志 제15회
정장공이 받은 송나라의 국서 내용을 보기 전에, 송나라의 지난 일을 돌아보기로 하자.
송상공(宋殤公) 여이(與夷)는 즉위한 이래 여러 번 용병했는데, 정나라만 이미 세 차례 공격했었다. 공자 풍이 정나라에 있었으므로, 그를 꺼려하여 공격했던 것이다. 태재 화독(華督)은 평소 공자 풍과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송상공이 정나라를 공격할 때마다 입으로는 감히 그만두라고 간하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또 공부가는 주전론자였기 때문에, 화독은 그도 싫어하였다. 그래서 항상 공부가를 살해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상공이 중용하는 인물인데다 병권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감히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런데 공부가가 대나라를 정벌하러 갔다가 전군을 잃고 단신으로 도망쳐 돌아오자, 송나라 사람들 가운데 원망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제13회에, 공부가는 위나라 우재 추와 함께 대나라를 공격하다가 정장공의 의병지계에 당하여 패전하였었다.]
“송나라 군주는 백성을 긍휼히 여기지 않고 전쟁을 좋아하여 함부로 군대를 동원함으로써, 나라 안의 아내들은 과부로 만들고 자식들은 고아로 만들었으며 인구가 감소하는 해를 끼쳤다.”
이런 원성이 자자한 데다, 화독은 또 심복들을 시켜 항간에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누차 출병한 것은 모두 공사마(孔司馬)가 주장한 것이다.”
송나라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모두 공부가를 원망하였다. 화독이, 사람들이 품고 있는 생각을 제대로 맞춘 것이었다.
또 화독은 공부가의 후처인 위씨(魏氏)가 세상에 비할 바 없는 비상한 미모를 지녔다는 말을 듣고, 한번 볼 수 없는 것을 한스러워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위씨가 친정 부모에게 문안을 갔다가 가족들과 함께 교외로 성묘하러 나갔다. 때는 마침 봄날이라, 버들가지는 연기처럼 하늘거리고 꽃빛은 비단처럼 고와, 남녀가 소풍하기 좋은 시절이었다. 위씨는 수레의 포장을 걷고 바깥 경치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화독도 교외로 나와 산책하다가 우연히 위씨 일행과 마주쳤다. 화독은 공부가의 가족임을 알고서 깜짝 놀라 혼자 말했다.
“세간에서 대단한 미녀라도 하더니,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로다!”
위씨를 한번 본 후로부터 화독은 밤낮으로 그녀를 생각하느라 혼백이 다 녹아내리는 듯하였다.
“만약 그런 미인을 곁에 둘 수만 있다면, 남은 반평생을 누리기에 족할 것이다! 그 남편만 없애버리면, 그 아내를 빼앗을 수 있겠지.”
그리하여 화독은 공부가를 해칠 결의를 더욱 굳히게 되었다.
때는 주환왕 10년으로 봄 사냥을 나가는 시기였다. 공부가는 수레와 말들을 검열하였는데, 호령이 엄하였다. 화독은 심복들을 시켜 군중에 말을 퍼뜨렸다.
“사마가 또 군대를 일으켜 정나라를 치려 한다. 어제 태재와 회의하여 결정했다. 그래서 오늘 군대를 검열하는 것이다.”
군사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 두려워하여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태재 화독의 집 문 앞으로 몰려가서, 임금에게 진언하여 전쟁을 멈추어 줄 것을 호소하였다. 화독은 일부러 대문을 굳게 닫고서, 문지기로 하여금 문틈으로 좋은 말로 군사들을 달래게 하였다. 군사들은 태재를 만나기를 더욱 간절히 요구했는데, 모여드는 군사들의 숫자도 점점 더 많아지고 그 중에는 무기를 들고 온 자들도 많았다.
날이 점점 저물어 가는데도 태재를 만날 수 없게 되자, 군사들은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예로부터 말하기를, ‘사람이 모이기는 쉬워도, 흩어지기는 어렵다.’고 하였다. 화독은 군사들의 마음이 이미 변했음을 알고, 평복 속에 갑옷을 입고 검을 차고서 나섰다. 대문을 열라고 명하고, 군사들을 정렬시켜 시끄럽게 떠들지 못하게 하였다. 화독은 문 앞에 서서 먼저 부드러운 말로 군사들의 마음을 달랜 다음 말했다.
“공사마는 출병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것은 백성을 해치고 군사들을 죽이는 일이다. 주군은 공사마만 신임하여 내 간언은 듣지 않으신다. 이제 사흘 내로 대군을 일으켜 정나라를 치려고 한다. 송나라 백성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고충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화독이 이렇게 군사들을 충동질하자, 군사들은 교아절치(咬牙切齒)하면서 모두 ‘죽여라!’ 하고 소리쳤다.
[‘교아절치’는 몹시 분하여 어금니를 악물고 이를 가는 모습이다.]
화독은 거짓으로 군사들을 말리는 척했다.
“너희들은 함부로 날뛰지 마라! 만약 공사마가 알고서 주공에게 알리게 되면, 너희들의 목숨을 보존하기 어려울 것이다!”
군사들이 떠들썩하게 외쳤다.
“우리 가족과 친척들은 해마다 전쟁에 나가느라 절반 이상이 죽었습니다. 이제 또 대군을 일으켜 출정한다는데, 정나라는 장수들이 용맹하고 병사들이 강하니 어떻게 그들을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바에는, 차라리 그 역적부터 죽임으로써 백성을 위해 해악을 제거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러다 죽으면 원한이 없을 것입니다!”
화독이 또 말했다.
“‘쥐를 잡으려는 자는 그릇을 깨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공사마가 비록 악하더라도, 주공께서 총애하는 신하이니, 그런 일은 결코 행할 수 없다!”
군사들이 말했다.
“만약 태재께서 주도하신다면, 그런 무도한 혼군은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편에서는 소리를 지르고, 또 한편에서는 화독의 소매를 잡아끌면서 놓지 않았다. 그러면서 군사들이 일제히 말했다.
“태재를 따라 백성을 해치는 역적을 죽이겠습니다!”
군사들은 마부를 도와 수레를 끌고 와서 화독을 태웠다. 화독의 심복들이 같이 수레를 타고 호위하였다. 군사들은 수레를 몰고 곧장 공사마의 사택으로 가서 주위를 단단히 포위하였다. 화독이 군사들에게 분부하였다.
“시끄럽게 떠들 필요 없다. 내가 문을 두드릴 테니, 그가 나오면 해치워라.”
그때는 황혼이 지고 어두워졌다. 공부가는 내실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가, 바깥에서 대문을 급하게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사람을 시켜 무슨 일인지 알아보게 하였다. 심부름한 자가 돌아와서 말했다.
“화태재가 친히 와서 기밀사가 있어 상의하러 왔다고 합니다.”
공부가는 급히 의관을 정제하고 화독을 영접하러 나갔다. 대문을 열자마자 바깥에서 함성이 울리면서 군사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왔다. 공부가가 당황하여 막 걸음을 돌리려고 하는데, 화독이 이미 당상에 올라가 소리쳤다.
“백성을 해치는 역적이 여기 있다! 빨리 손을 쓰지 않고 뭐 하느냐!”
공부가가 뭐라고 말하려고 입을 열기도 전에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화독은 심복들을 거느리고 곧장 내실로 뛰어들어 위씨를 납치하여 수레에 태우고 갔다. 위씨는 수레 안에서 몰래 허리띠를 풀어 스스로 목을 매었는데, 수레가 화독의 집 문 앞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화독은 탄식하여 마지않았다.
화독은 심복들에게 시신을 거적으로 싸서 교외로 싣고 가서 매장하게 하고, 동행했던 자들에게 절대 누설하지 말라고 엄하게 단속하였다. 아아! 하룻밤의 환락도 누리지 못하고 헛되이 만겁(萬劫)의 원한만 샀으니, 어찌 후회스럽지 않겠는가! 군사들은 그 기회를 틈타 공씨 집안의 재물을 모조리 약탈하였다.
공부가에게는 아들 하나만 있었는데, 이름이 목금부(木金父)였으며 나이가 아직 어렸다. 가신이 아들을 안고 노나라로 도망쳤다. 공부가의 字가 ‘공부’였는데, 목금부는 부친의 자를 따서 성을 ‘공(孔)’이라 하였다. 목금부의 6세손이 바로 공자(孔子)이다.
한편, 송상공은 공사마가 피살되었다는 것을 듣고,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다가 화독이 군사들과 함께 갔다는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그 죄를 다스리기 위해 사람을 보내 화독을 불렀다. 하지만 화독은 병을 핑계대고 가지 않았다.
상공은 친히 공부가의 상례에 가기 위해 어가를 준비하라고 명하였다. 화독은 그 소식을 듣고, 급히 군정(軍正)을 불러 말했다.
“주공이 공사마를 총애하는 것을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이 멋대로 공사마를 죽였으니, 어찌 죄가 없겠느냐? 선군 목공께서는 그 아들을 제쳐놓고 주공을 세웠는데, 주공은 은덕을 원한으로 갚아 공사마를 임용하여 정나라를 치는 일을 그치지 않고 있다.
공사마가 죽음을 당한 것은, 천리가 밝게 빛난 것이다. 이제 아울러 대사를 거행하여 선군의 아들을 맞이하여 군위에 세우면, 전화위복(轉禍為福)이 될 것이니 어찌 아름다운 일이 되지 않겠느냐?”
군정이 말했다.
“태재의 말씀이 저희들의 뜻과 합치됩니다.”
군정은 군사들을 소집하여 공씨 집 근처에 매복하였다. 이윽고 송상공이 당도하자, 북소리를 신호로 하여 일제히 튀어나왔다. 송상공을 호위하던 시위(侍衛)들은 놀라서 달아나 버리고, 송상공은 군사들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화독은 보고를 받고, 상복을 입고 달려가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북을 울려 신하들을 소집한 다음, 군사들 가운데 한두 명에게 주군을 시해한 죄목을 뒤집어씌워 처형함으로써 사람들의 이목을 가렸다. 그렇게 일을 처리한 다음, 화독은 사람들 앞에서 선언하였다.
“선군의 아들 풍이 현재 정나라에 있습니다. 인심이 선군을 잊지 못하고 있으니, 그 아들을 맞이하여 군위에 세우는 것이 합당합니다.”
백관은 ‘예’ ‘예’ 하고서 물러갔다. 화독은 사신을 정나라로 보내 국상을 알리고, 공자 풍을 송나라로 맞이하였다. 그리고 송나라 부고에 있는 많은 예물들을 이웃 나라들에 보내 공자 풍을 군위에 세운 일을 알렸다.
한편, 정장공은 송나라 사신이 가져온 국서를 보고서야 비로소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곧 수레를 준비하여 공자 풍을 송나라로 보내기로 하였다. 공자 풍은 떠나기에 앞서 땅에 엎드려 울면서 정장공에게 말했다.
“풍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군후의 은덕입니다. 이제 다행히 본국으로 돌아가 선조의 제사를 이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땅히 대대로 배신(陪臣)이 되어, 감히 두 마음을 갖지 않겠습니다.”
[‘배신’은 신하의 신하, 즉 제후의 신하를 말한다.]
장공 역시 목이 메었다.
공자 풍이 송나라로 돌아가자, 화독이 받들어 군위에 세웠으니, 그가 송장공(宋莊公)이다. 화독은 여전히 태재의 자리를 지켰으며, 이웃나라에 뇌물을 보냈는데 받지 않는 나라가 없었다. 제·노·정 세 나라 군후는 직(稷) 땅에서 회동하여 송공의 지위를 인정하고, 화독을 재상으로 삼게 하였다.
사관이 시를 지어 탄식하였다.
春秋篡弒嘆紛然 춘추시대의 찬탈과 시해를 한탄하노라.
宋魯奇聞只隔年 宋과 魯에서 나쁜 소문이 해를 걸러 들렸도다.
列國若能辭賄賂 열국이 뇌물을 거절했더라면
亂臣賊子豈安眠 난신적자들이 어찌 편히 잠잘 수 있었겠는가!
또 사관들이 시를 지어, 송상공이 의리를 배신하고 풍을 꺼렸기 때문에 시해를 당했으니, 그것은 천리라고 하였다.
穆公讓國乃公心 목공이 나라를 양보한 것은 공정한 마음이었는데
可恨殤公反忌馮 안타깝게도 상공은 도리어 풍을 꺼려하였네.
今日殤亡馮即位 오늘 상공이 죽고 풍이 즉위하였으니
九泉羞見父和兄 구천에서 부친과 형을 만나면 부끄럽지 않겠는가?
첫댓글 당송 시대의 송나라 말고 이 때도 송나라가 있었군요.
아래 당시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중국도 작은 나라 여러개로 쪼개져야 했습니다.
유럽과 똑같이 말입니다.
지금 중국은 커도 너무 큽니다.
맞습니다
소련처럼 아니 더 잘게
분쇄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