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바람소리길
대학 동기들과 온천에서 하룻밤 보내고 북부리 팽나무와 봉하마을을 둘러봤다. 새벽에 전날 동선을 글로 남기면서 ‘봉하 겨울 홍시’도 곁들였다. “봉화산 너럭바위 한 줌 재 박석 묘역 / 한 시대 획을 긋고 잠에 든 노 대통령 / 현대사 올곧은 외침 기념관에 퍼졌다 // 방문객 매장에는 노란색 일색인데 / 생가 뜰 지키고 선 마당귀 감나무는 / 까치밥 얼음이 언 채 애잔하게 달렸다”
토요일은 아침이 밝아와도 자연학교 등교는 미적대며 느긋했다. 가고자 하는 행선지가 남강 하류 함안 대산 장포인데 그곳으로 가는 버스 교통편이 이른 시각 운행하지 않아서다. 버스 출발 시각을 가늠해 도시락을 대신할 간편식으로 반송시장에서 마련한 흑미영양빵을 챙겨 마산역으로 나갔다. 광장에는 주말 아침나절 노점이 펼쳐지는데 날씨가 추워서인지 활기가 없는 편이었다.
동마산병원 앞에서 합성동 터미널을 출발해 근교로 운행하는 농어촌버스를 타고 서마산에서 칠원 읍내를 거쳐 함안 대산으로 갔다. 승객이 몇 되지 않았는데 같이 탄 한 할머니는 대산 장터에서 내리고 기사는 차를 돌려 들판을 더 둘러 외진 강가로 나간 장포 종점에 닿았다. 기사에게 이곳까지 다니는 다음 교통편을 여쭈니 오후에 두 차례 더 있긴 하나 이번 차가 첫차라고 했다.
마을 앞 들판은 온통 비닐하우스단지였는데 그 지역은 수박을 가꾸는 특산지로 알려졌다. 들판을 에워싼 둑 너머는 남강 하류로 낙동강 본류에 합류하는 지점이다. 그곳도 남한강 양수리와 같은 두물머리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가 첫 승전을 기록한 ‘기강전투’ 현장으로 성산마을 동구 밖에 홍의장군 충절을 기린 보덕각과 휘하 장수 손인갑 부자의 쌍절각 빗돌이 세워져 있다
장포 배수장에서 용화산 자락 북사면으로 난 데크를 따라 합강정으로 향해 걸었다. 용화산은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된 낙남정맥이 무학산으로 건너오기 전 광려산에서 북으로 화개산을 거쳐온 화개지맥 끝이다. 산허리로 뚫어 놓은 임도 아래쪽 소나무와 낙엽활엽수가 섞여 자란 벼랑으로 설치된 데크를 따라 걸었다. 강 건너 남지 개비리길이 바라보였고 데크는 합강정에서 멈췄다.
노거수 은행나무 아래서 흑미빵은 점심을 대신한 간식으로 삼았다. 이어 층계를 밟아 합강정 경내를 둘러보면서 물길이 흘러가는 풍광을 완상했다. 응달 비탈길을 지그재그로 올라 산기슭 임도에서 다시 내리막으로 들어 반구정으로 향했다. 합강정과 반구정은 둘 다 함안의 유력 성씨인 조 씨 문중이 관리하는 누정이다. 남강에 와룡정과 악양루가 있고 창녕함안보 근처 광심정이 있다.
용화산 북사면 응달 비탈은 ‘낙동강 바람소리길’로 명명해 산책로를 개설하는 중이다. 반구정에서 능가사에 이르는 구간은 데크와 출렁다리를 놓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반구정으로 내려가는 응달 숲 바닥은 남바람꽃 자생지라 야생화를 탐방하는 이들이 눈독 들여 찾는 명소다. 전남 구례와 제주도에 자생하는 남바람꽃은 반구정 주변도 군락을 이루는데 봄날 다시 찾을 예정이다.
보호수 느티나무가 우뚝한 반구정으로 내려가 강변을 굽어보고 되돌아 나와 임도로 올라가니 한 노인이 삭정이를 모아 땔감으로 쓰려고 했다. 그는 반구정 관리인이었는데 남바람꽃에 대해 여쭈니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었다. 연초록 잎맥 하얀 꽃잎에 자색이 살짝 비쳤는데 무척 앙증맞고 귀여웠다. 아까 지나온 합강정은 문중 조카로 반구정을 세운 이와는 숙질간이라 했다.
반구정을 관리하는 조 씨 노인과 헤어져 산등선으로 뚫은 임도를 따라 산마루를 넘으니 옛길 남지 철교 교각이 강심에 걸쳐져 있었다. 낙동강 바람소리길 탐방로 미개통 구간 데크와 출렁다리를 놓는 공사 현장을 지나 능가사 벼랑길이 나왔다. 고소공포로 벼랑의 데크를 피해 자전거길을 따라 걸어 수녀원을 지나 계내삼거리에 이르러 남지를 출발해 마산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25.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