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여, 네가 입김으로
대낮에 불을 밝히면
환히 금빛으로 열리는 가장자리,
빛깔이며 향기며
화분(花粉)이며…나비며 나비며
축제의 날은 그러나
먼 추억으로만 온다.
나의 추억 위에서 꽃이여,
네가 머금은 이슬의 한 방울이
떨어진다.
(하략)
- 김춘수 '꽃의 소묘' 부분
'꽃'의 시인은 꽃을 색으로 보지 않고 빛으로 본다. 시인의 눈에서 꽃은 실제 색이 어떻든 온통 금빛이며 세계의 대낮을 훤히 밝히는 하나의 광원이다. 꽃은 단지 꽃이라는 생물이 아니라 과거의 한 시절을 꺼내 밝히는 불이기도 한 것이다.
한 시절의 기억으로 남겨지기 위해 거친 씨앗 속에서 잠자고, 흙냄새를 맡으며 뒤엉켜 하늘을 바라보다 어느 날 하나의 결정(結晶)이 되는 사물이 꽃이 아니던가. 그런 때라야 한 방울의 눈물도 값어치를 지닌다. 사람의 삶도 이와 같아서 한 시절의 무엇으로 기억되다 이슬처럼 사라진다. 그런 소멸은 값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