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기법에서 벗어난 현대소설은 수필과 가까운 면도 많다. 현대소설이 즐겨 사용하는 기법에는 주인공이 직접 사건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고, 주인공의 의식에서 만들어진다. ‘꽁초’의 경우 주인공 ‘주실댁’이 돌 위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면서, 긴 회상을 한다. 주인공의 의식이란 엄격히 따지면 작가의 몫이다. 주인공은 작가의 꼭두각시이기 때문이다. 즉 무의식에 대한 탐구, 액자 형식, 회상에 기댄 의식의 흐름, 시간성과 공간성을 무시하는 등등을 가져와서 소설을 만든다. 이러한 기법은 김귀선의 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나는 이런 기법의 글을 소설과 수필의 혼합이라고 보았다.
김귀선 수필가는 ‘푸른 귀향’이라는 수필집(그의 말대로라면 창작적 에세이집)을 보내왔다. 책을 읽으면서, ‘이건 소설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 묘사를 바로 곁에서 보듯이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표현했다. 그러니까 더 재미가 있었다. 이 기법을 수필에 도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른 귀향’에는 아무리 수필로 볼래도 소설이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은 작품도 있었다. 그러나 수필을 소설 형식으로, 또는 이야기 구조로 써 보자는 것이 평소의 나의 생각이었으므로 그의 작품세계를 써보자고 마음먹었다.
명당자리
김 귀 선
불볕 여름날이었다.
굴착기의 된소리가 낮은 산을 뒤챈다. 네모진 몸통이 방향을 돌릴 때마다 높이 들린 바가지엔 넓적한 대리석이 매달려 이리저리 흔들리다 묫자리 구덩이로 툭 떨어진다. 파헤쳐진 봉분들 주위엔 개망초와 억새가 짓뭉개져 어지럽다. 시댁 가족묘의 모습이다. 대대손손 전해질 질서 정연한 궁서체의 자손 이름도, 그 위에 머물렀을 석공의 손끝 떨림도 이제 다시 공(空)으로 돌아가는 순간인가.
“조카 보래이. 나는 고마 산소를 없앴으면 한다. 이번에 너거 숙모 묘를 파 보이까내 물이 꽈악 차가 형편읎더라. 거어 물 찼으믄 가까이 있는 아부지, 엄마 그리고 형수 묘에도 물이 다 찼을 낀데 개장해서 고마 뿌리거나 수목장으로 했으면 한다.”
얼마 전 사십 초반의 아들을 황망히 잃은 막내 작은아버님이 어렵게 내놓은 의견이었다. 아들의 임종을 앞뒀을 때 작은아버님은 홀로 먼 길을 가야 할 자식이 안쓰러워 오래전에 먼저 간 아내와 같이 수목장을 해주고 싶었다. 그때 아내 묘를 개장해 보니 물이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이다. 묘지 속 물 때문에 우환이 온 것이라고 작은아버님은 굳게 믿은 듯했고, 다른 우환을 막기 위해서라도 서둘러야 한다는 그분의 채근 속엔 조바심이 묻어 있었다.
막내 작은아버님의 의견에 둘째 작은아버님과 고모님들이 적극적으로 찬성했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땡볕 여름날이지만 개장 작업을 하게 된 것이다.
어른들이 일러준 대로 제물을 준비해 산소 부근에 도착했을 때 고모님 부부와 숙모님, 시숙님 등 늙수그레한 몇 분이 참나무 숲 그늘에 계셨다. 대소간 행사에 좀처럼 참석할 수 없었던, 공기업에서 승승장구해 친척들의 부러움을 받았던 당숙님도 보였다. 바쁜 시간도 높은 위상도 같이 퇴직했는지 지금은 평범한 초로의 모습이다. 다들 편할 대로 돗자리 위에 앉아 개장 작업이 끝나기를 멀찌감치 기다리고 있었다.
“묘 없애는 거 아버님도 아시는가요?”
제물이 든 쇼핑백을 고모님에게 넘겨주며 물었다.
“일부러 말할 거 머 있겠노. 알면 노인네 펄펄 뛰실 건데.”
휘감기는 파도 그림이 그려진 커다란 부채로 연신 부채질을 하며 고모님이 말했다. 그런 중에도 묵정밭 떼기 건너 가족묘에는 굴착기가 끼익끽거렸다. 그 소리만큼이나 묘는 무지막지하게 헤집어지고 있을 것이었다. 정말 저렇게 함부로 뒤집어도 괜찮은 것일까. 사래 기침도 억누르며 예를 갖추었던 곳인데…….
묘 터 장만하느라 바쁘게 오갔던 발길들, 돈을 갹출하고 누가 어디에 묻힐 것인가까지 정하지 않았던가. 미처 묘 터 준비하지 못한 먼 친척이 세상을 뜨자 그 자식이 사정하는 통에 엉겁결에 가족묘를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을 두고 대소 간이 얼마나 또 웅성거렸던가. 그토록 신성시하며 지키려 했던 이곳의 지금 상황을, 혹시라도 아버님이 아신다면 어떤 심정일까.
아버님은 성묘 때마다 간절히 부탁하는 것이 있었다. 성묘가 끝나면 자식과 조카들을 병풍처럼 세워놓고는 어머님 산소를 기준으로 어느 정도의 거리를 뼘으로 재었다. 그리고 한 곳을 손으로 꼭 짚고는 올려다보며 말했다.
“야들아 내가 죽으면 너거 엄마 묘에서 요 정도만 물리가 묻거레이. 소문난 풍수를 세 사람이나 델다가 보있디마는 다 여기가 명당이라 카더라. 역시나 너거 엄마 묘 팔 때 보이 마른 김이 푹 솟아올랐다 아이가.”
아버님은 묘 터 잘 정한 일을 그 어떤 일보다 대견하게 여기셨다. 당신이 묻힐 곳이니 오죽이나 애착이 갔을까. 요양병원에 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산소 돌보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아버님이시다.
“봉분에는 쇠붙이를 대면 안 되는 기다.”
봉분에 난 쑥을 뽑는데 며칠이나 걸렸다며 초여름이면 아버님은 거무스름한 엄지와 검지를 초록 수세미로 문질러 씻곤 했다. 멧돼지 발자국이라도 산소 주위에 보인 날엔 해코지하지 않았는지 경운기를 타고 날마다 산소에 다녀오기도 했다. 묘지 돌보는 일이 아버님에겐 종교의식만큼이나 깊은 듯했다.
아버님은 묘 터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또 있었다. 제사였다.
“너거 암만 캐사도 내한테는 환이밖에 없데이. 갈 자리에 가야 마음이 편하지를.”
환이는 아버님의 맏손자다. 맏손자에게 간다는 것은 당신이 저세상으로 간 후를 말하는 것이다. 맏손자의 품이야말로 둘도 없는 명당자리라는 듯 아버님은 흡족해했다.
어머님과 사별 후 아버님은 십여 년을 홀로 지냈다. 반찬을 갖다 드리거나 빨래라도 해드리려 시골에 들르면 아버님은 맏손자 걱정뿐이었다.
“우야꼬. 일억을 얼릉 모아 우리 환이한테 줄라 캤는데 올해 나락 곡수가 목표액에 차질나뿟다.”
당신의 집 난 아들은 걱정 테두리 밖이었다.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손자지만, 아버님은 오직 맏손자밖에 없는 듯했다. 둘째 며느리인 나는 섭섭할 때가 많았다. 한번은 유별난 맏손자 사랑에 대해 그 이유를 슬쩍 아버님께 물어보았다.
“야야. 갸는 내 제사를 지내줄 손자 아이가. 조상들 다 모실라카머 얼마나 애를 묵겠노. 그러이 논밭과 집은 당연히 갸를 다 조야 안 되겠나. 장가도 갈라 카머 돈이 필요할 낀데 돈이라도 모아 조야 내가 가도 덜 미안체.”
아버님의 음성을 떠올리며 파헤쳐지는 묘를 보자니 맑은 하늘이 텅 빈 허공으로 다가왔다. 오직 제사 지내줄 맏손자만 바라보던 아버님,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굴착기는 묘를 파 뒤집는데 온 힘을 쏟아붓고 있다. 그것은 바위만큼이나 묵직하게 버티던 아버님의 종교가 거대한 시간의 물살에 맥없이 부스러지는 모습이었다.
유골함이 준비되었다는 인부들의 말에 현장으로 갔다. 상석 받침돌은 질척한 흙무더기에 처박혀 있고 꽃병은 시커멓게 그을린 모습이다. 찌꺼기를 태울 때 굄돌로 사용했나 보다. 정성스레 묻어두었던, 아버님의 묘에 쓸 상석과 둘레석도 파헤쳐져 진흙 칠갑이다. 푼돈 모은 것에다 소 팔아가며 묘 터 장만한 정성은 어디로 휘발되어 버린 것일까. 목숨 같았던 일들이 이토록 부질없게 되다니.
인부들이 흰 보자기로 묶인 네모진 상자를 넘겨줬다. 시할아버지, 시할머니, 시 증조할머니, 시어머니의 유골함이다. 그 앞에 제물을 펼치고 마지막 절을 했다.
고개를 들자 푸른 연기를 뿜으며 굴착기가 마지막 대리석을 바가지에 걸어 구덩이 속으로 떨어뜨린다. 이어 우묵한 꽃병과 꽃병 받침, 상석 받침대 등을 구덩이로 쓸어 넣는다. 빗질하듯 바가지로 땅을 고르자 봉분 자리가 밋밋하다. 모든 것이 평평해졌다. 주위마저 고요하다. 군데군데 뒤집어진 묘 터의 흙만이 복잡한 인간사의 모습에 할 말을 참느라 용쓰는지 불그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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