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만 벌리고 궁금증에 쌓여있는 우리에게 어떤놈이 염장을 질렀다
"이삿짐 날라주고 짜장면 곱빼기로 얻어 묵었다 아이가"
서울에서 정애라는 여학생이 우리동네로 이사를 온 것이다
정애도 2 학년으로 우리와 같은 학년이었다
우리는 그때까지 서울 말하는 여학생은 처음 보았다
나긋나긋 애교가 넘치는 서울말은 내혼을 빼고도 남았다
서울말을 하면 얼굴이 못생겨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돼지 코처럼 콧구멍이 하늘을 향해 치켜들고 있어 빗물이
콧구멍으로 들어가도 상관없었고 돼지 앞다리처럼 숏다리
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정애는 흠잡을 때 없는 완벽한 여자였다
내가 정애를 처음본 순간 미동도 할수 없는 장승이 된 듯
했고 숨이 멈출 것 같았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당시 보통 남녀학생들은 교복을 조금 풍성하게 맞춰 입었다
성장에 대비하고 한 해 더 입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정애는 그렇지 않았다
유난히 하얀 천으로 몸에 찰싹 달라붙는 상의를 입어 탱글탱글
하고 불룩한 가슴과 짤록한 허리가 몽실몽실한 엉덩이와
조화를 이루어 모래시계를 연상케 하였다
스커트는 서너 치나 짧게 입어 쭉뻗은 다리가 마네킹 같았다
등교길이나 하교 길에 여러 명의 여학생들이 몰려와도 정애는
금방 알아볼 수 있는 군계일학이었다
정애가 이사 오기 전만 하더라도 동네에서 이쁘다고 콧대 높던
영숙이 윤애 미경이 미숙이 종인이 순빈이는 한 순간에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버렸다
공동 우물을 두레박에 밧줄을 묶어 퍼 올려 사용했는데 야채와
세탁물도 우물가에서 씻고 빨았다
정애가 우물가에 나타나면 발정난 수캐처럼 녀석들이 모였다
우리 집이 우물가에 위치하고 있어 아낙네의 잡담들이 방안
까지 들리곤 하였다
나는 시간만 나면 우물가를 살펴 정애가 왔는지를 확인했다
정애가 나타나면 물을 퍼 올려 부어주곤 하였다
우물이 깊어 퍼 올리기 힘들었지만 녀석들은 서로 퍼올려서
정애의 관심을 사기 위해 다툼까지 벌였다
때로는 캄캄한 밤중에 나타나기도 했는데 나는 아무 것도
하지않고 기다렸다 물을 부어주면 정애는 쌩긋이 웃었는데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 다리가 후들거렸다
나는 정애의 환상으로 서서히 병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밥상위 국그릇에도 정애의 얼굴이 나타나고 책을 펴면
책장 속에서 달이 뜨면 달 속에서 정애는 웃고있었다
심지어 똥눌때도 정애생각에 몸살을 앓았다
당시 나는 영화배우 나탈리웃과 잉그릿드버그만 그리고
크리스티너카우프만을 최고의 미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애를 본 순간부터 정애보다 미인은 세상에 없다고 단언했다
하늘에서 내려오고 땅에서 솟아나도 저렇게 이쁠 수는 없었다
해수욕장에서 만난적이 있는데 당시엔 보기 드문 비키니를
입고 휘청휘청 걷는데 뭇사람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나는
넋을 잃고 말았다
3 학년이된 어느 날 극장에서 우연히 정애를 만났다
반가운 나머지 하얀 가루가 묻은 땅콩 한 봉지를 사 주었다
나란히 앉은 행운에 가슴이 뛰어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없다
영화가 끝나면 같이 걸어서 집에 가겠구나 생각했는데
정애는 군중 속으로 쏜살같이 사라져버렸다
며칠 후 부잣집 아들이고 공부잘하고 잘생긴 친구 집으로갔다
평소처럼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녀석이 먼저 나왔다
느끼한 웃음을 머금고 뚱단지같은 한 마디를 불쑥던졌다
"야! 나도 땅콩좀 사줘봐, 사람 차별하는 거냐?"
"무슨 소리야?"
"요새 니 잘나 가는 갑데?. . . ."
녀석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땅콩봉지를 들고나와 내앞에
내밀며 야릇한 웃음을 흘렸다
며칠 전 내가 정애에게 사준 땅콩봉지 그대로 였다
빼꼼이 열린 문틈으로 방안을 쳐다보니 정애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피가 역류하는 것 같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싫어면 받지 말던지 버리던지 할 것이지 친구에게 같다
주어 망신을 시키는 이유가 무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뭔가 한 마디 하고 싶었으나 꾹참고 밖으로 나왔다
도전하지않았고 승부하지않았는데 치명적인 상처와 패배를
안겨준 의도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해되지 않는 정애를 서서히 증오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주 잔인하게 대동댕이쳐진것이다
가지려고 한적없다. 옆에 있으려고 투정부린 적도 없다.
부담되고 싫어할 까봐 미소마저 절제하였었다
정애가 내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망상은 추호도
없지만 가슴언저리에 있는 잔상은 떨쳐내고 잊기로했다
서글프고 비참한 묘멸감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정애에게 수모당한거야 언감생심이라 하면 되지만 친구들
에게 뒤지는 것은 견디기 어려웠다
표적은 없었지만 오기와 앙갚음 같은 것이 뭉클뭉클 솟아
올랐다
나는 서울로 진학했다
그리고
한참의 세월이 흐른후에
악연인가 인연인가 서울에서 정애를 만났다
하품하면 이빨 빼고
눈감으면 코베가고
먼눈 팔면 눈알 뺀다는 서울에 왔다
그리고
.....
.....
우연히 만난 동창늠이 정애 소식을 전해줬다
술집에 들어서니 먼저온 녀석들이 드럼통에 연탄불을 피워
놓고 고기를 굽고 있었다
술잔이 두어 잔씩 돌 무렵 정애가 나타났다
미워하려고 애쓴 만큼 비례하여 반가웠다
예전보다 더 성숙하고 이쁘진 것 같았다
우린 말없이 미소로 눈인사만 하였다
애증이랄까/
하튼간에 정애를 만난다는 기대와 욕심에
나는 나름대로 멋을 낸 품새였으나
더 성숙하고 더 이뻐진 정애에 비교된 나는
내몰골이 너무 초라하여 먼저 나와버릴려고 몇 번이나
딸막거렸으나 타이밍을 잡지 못해 눌러앉고 말았다
정애는 나와 마주앉았는데
옆에 앉은 친구에게 바짝 당겨
앉으며 팔장을 끼고 가살스런 웃음을 흘렸다
마치 매일 만나는 친구처럼 행세했다
어찌보면 나보라는 듯 약올리는 것 같기도 했다
화끈거렸다
녀석들은 객지에서 고생한다며 익은 고기와 술잔을 내앞에
집중시키고 계속 권했다
그럴 때마다 더욱 초라해지고 비참해지는 것 같았다
정애와 눈길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아래로만 바라보았다
더 망가질 것도 없고 망가질 바엔 철저하게 망가지자는 생각
으로 주는 대로 먹고 마셨다
흙바닥에 구른 강아지 행색으로 거식증환자처럼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난생처음 많이 마시고 많이 취했다
이 모습을 보이지 말고 바로 나왔어야 옳았는데 반편이처럼
멀뚱거리고 앉아 초라한 모습을 보여준 게 매우 후회스럽다
흑석동판잣집 자취방에 돌아오니 연탄불을 넣지 않아 냉동고 같았다
불도 켜지않은채 냉방에 홀로 앉았으니 울컥 눈물이 쏫아졌다
뚜렷한 이유 없이 서글퍼져 짐승처럼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첫댓글 중학생... 무지 조숙 했던가 보아요.... 아이고~ 난 저때 떵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하는 어리버리 아그였었는데.... ^^*
말치고 딱딱한 경상도사투리가 좋더군요,그 부산 사투리의 아줌마가 말하는부산 사투리에 끌려서는 한참 헤멨는데 지금도 그경상도 사투리에 오금이 저리며 사랑이란 짝사랑이든 첫사랑이던 풋사랑이던가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훼어지면 가슴에 상처자욱이 크더군요
조약돌선배님 2008 무자년새해 복""된 나날 되세요. 열심히 책을 많이 섭렵하신다니 좋구여~ 건강 더 많이 챙기시길... 행복하세요.
짝사랑...에효!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총각 바람"""이 난것이여ㅠㅠㅠ ㅋㅋ
누가 짝사랑 해 달라 했나요? ㅎㅎㅎ 그 짝사랑 때문에 괜히 죽일년만 되게 만든 남자들......
~~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ㅎㅎ 가슴아린 추억일텐데... 저는 웃음만.^^*
2편 기다려 집니다.언제 출시 하나요?ㅎㅎㅎ
짝사랑은 혼자만에 설레이는 기쁨""" 이라 회상합니다. 물총새5님 드~뎌 본인~은... 본인은~ 아랫도리 꿈틀거리던 시절 야기에... 흠뻑 젖어 있구랴. 흐흐
지금생각하면 철부지일텐데 그땐 어른인줄알고 착각도하지요.청소년시절 멋진 사랑^^좋은 추억입니다~
조숙했군요.....상대 여학생이 짝사랑하는줄 알고 있었네요..아마도 그 여학생이 더 좋했을듯...ㅎㅎ..다을편 기대...^^
다음편이 궁금해집니다. 옛날 학창시절이 생각납니다.ㅎㅎ
또 한편의 작품~~! "짝사랑" 누구든지 사랑으로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은 원래 나눠주는건데... 아름다워 기뻐야하는건데... 왜 아파야할까~!!! 왜 고민해야할까~!! 에효~! 참으로 힘든사랑~~~~~~ *^.^*
옛 사춘기 시절, 수줍고 용기없었던 우리들의 첫사랑이 바로 짝사랑이였지요.....그래서 더욱 잊지못하는 아련한 추억.....많은 공감하면서 다음편 고대합니다.....
엉엉~~슬포라....ㅎㅎ..다음이 더 재미있겠다~~^^*
추억은 아름답지요....짝사랑에 몸살나는것 보다 영숙,윤애나 확실히 잡으시지요... 다음이 기대 됩니다.
글 구분이 확실했으면 좋을 텐데........ 안쓰럽네여./.....자작글과 옮긴글.....
자작글인것 같은데요..?
서울이고향인 저는 경상도 사투리에 유난히 가슴이 설레였엇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