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단지 도서관으로 나가
일월 중순 둘째 일요일이다. 새벽잠을 깨 전날 다녀온 온 함안 대산에서 칠서 계내 ‘낙동강 바람소리길’ 동선을 글로 남기고 시조도 한 수 곁들였다. “임진란 첫 승 거둔 거름강 기강 나루 / 낙동강 본류 만나 물줄기 더욱 굵어 / 강심에 걸쳐진 철교 전쟁 상흔 남았다 // 용화산 벼랑으로 반구정 지킨 응달 / 가랑잎 비집고서 바람꽃 피는 봄날 / 야생화 탐방 사진가 종종걸음 나선다”
아침 식후 자연학교 행선지는 도서관으로 마음을 두고 열람실이 열릴 시각에 맞춰 현관을 나섰다. 창원도서관까지 걸어서 반 시간이면 되는데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일찍 나왔다. 아파트단지에서 외동반림로로 나가자 우뚝하게 높이 자란 메타스퀘이아 가로수는 갈색 단풍이 거의 떨어진 상태였다. 낙엽활엽수에 드문 바늘잎은 단풍이 늦게 물들어 시나브로 낙엽이 져 나목이 되었다.
반송 소하천 천변을 따라 걸으니 냇바닥에는 북녘으로 귀향을 단념하고 우리 고장에서 겨울을 나는 흰뺨검둥오리 한 쌍이 먹이 활동에 열중했다. 녀석들은 다수가 본향으로 돌아가고 일부는 남녘에 남아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 짝짓기 해 새끼를 불렸다. 외양이 같아 얼핏 봐 암수가 구분되질 않는 흰뺨검둥오리는 번식기가 아닌 겨울도 나란히 붙어 다녀 연중 좋은 금실을 과시했다.
흰뺨검둥오리가 주둥이를 밀고 다니는 냇바닥 곁에는 지난 세밑에도 보이던 해오라기 한 마리가 우두커니 주둥이를 내밀고 있었다. 해오라기는 여름 철새로 가을이 되면 남녘으로 내려갔다가 봄이 되어 우리나라로 와 새끼를 쳐 키웠다. 그런데 녀석 가운데 몇 마리는 본향으로 귀향을 포기하고 우리 지역에 머무니 겨울은 먹잇감도 귀하고 추운 날씨를 견디느라 고생을 좀 하지 싶다.
원이대로를 건너 창원레포츠파크 동문 앞에서 폴리텍대학 구내를 지났다. 방학을 맞은 일요일이라 교육단지 차도는 오가는 차가 한 대도 없어 한산했다. 캠퍼스에 자라는 동백나무는 한겨울에도 선홍색 꽃망울을 달고 나왔고 목련 가지에는 솜털이 보송한 꽃눈을 볼 수 있었다. 교육단지 보도를 따라 줄지은 벚나무 가로수도 비록 나목일지라도 봄날에 피울 꽃망울로 수액이 오를 테다.
창원도서관으로 가는 진입로 가로등 기둥에는 ‘우리의 끝과 시작, 겨울’이라는 주제로 도전을 권유하는 펼침막이 내걸려 있었다. 윤동주와 나태주의 시구와 함께 마크 트웨인이 남긴 어록 “20년 후 당신은 했던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일로 인해 실망할 것이다. 돛줄을 던져라. 안전한 항구를 떠나 항해하라. 당신의 돛에 무역풍을 가득 담아라. 탐험하라. 꿈꾸라. 발견하라.”고 부추겼다.
창원도서관 열람실 입구에 이르자 개관 시각보다 조금 일러 바깥에서 대기하다가 문이 열기기를 기다려 입실했다. 지정석이 되다시피 한 2층 창가 열람석에 앉아 대출 도서로 집에서 못다 읽은 정범모가 쓴 ‘김홍도 새로움’을 펼쳤다. 정조 임금의 총애를 받은 김홍도는 왕명을 받들어 금강산을 답사한 화첩을 남겼고 이어 대마도와 청나라 외교 사절단 화사로 연경을 다녀오기도 했다.
조선 신분제 사회에서 화사는 중인계급이라 관직 진출이 제한적인데 안기 찰방과 연풍 현감을 지내기도 했으나 김홍도는 행정에서는 그다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 파직당하는 곤욕을 치렀다. 저자는 김홍도를 두고 새로운 제재를 서슴없이 창안한 창의적 화가로 평가했다. 둘째는 그림으로 우리나라 최고 이야기꾼이자 휴머니스트로 봤다. 마지막으로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칭송했다.
점심은 휴게실로 건너가 간편식으로 때우고 다시 열람실로 돌아와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리추얼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붙은 ‘인간은 의례를 갈망한다’와 심리학이 만성질환의 숨겨진 이유를 밝힌 ‘이유 없는 병은 없다’를 일별했다. 해거름이 다가와 도서관을 나서면서 집에서 읽으려고 이종목이 매화에 얽힌 옛글을 풀어 쓴 책과 한시로 읽는 우리 꽃 이야기에 대한 책을 골랐다. 25.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