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신부
석야 신웅순
“여보, 장미꽃이 피었어요.”
“뭐, 한겨울인데 무슨 미녀가 그렇게 독해.”
집사람이 한 번 보라고 한다.
아내는 추운 겨울인데 꽃을 피운 것을 보고 놀란 것 같다.
이사와 몇 년 내내 보아오던 분홍빛 장미이다. 궁금해 직접 화단에 갔다. 키가 나보다 훨씬 크다. 내 집 베란다에서는 앞모습만 보였는데 정원에서는 뒷모습만 보인다. 화장끼 없는데도 맵씨가 여전히 곱다.
그 화려했던 5월의 신부도 겨울의 신부가 되면 시들기 마련이다. 저 장미는 청청하다.
“나는 누구와 살고 있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배우자는 애인에서 반려자로 그리고 친구였다가 간호사로 변한다고 한다. 얼마 전 감기에 걸려 20여일을 보냈다. 옆에서 마음을 써주는 것은 역시 아내밖에 없다. 나는 친구까지였으면 좋겠다. 아내가 간호사로 변하면 남편의 역할은 안녕이다. 남자들은 남편이 간호사가 되리라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 것 같다. 이것은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머지않아 닥쳐올 우리들의 운명이다.
난 가장
아름다운
어머니와 살았고
지금은
가장 소중한
아내와 살고 있다
천년 후 부를 수 있을까.
한 생애 원왕생가를
-신원왕생가, 묵서재일기 51
저 분홍빛 장미는 얼마나 혹한을 더 견딜 수 있을까. 아버지는 늦여름에 떠났고 어머니는 초겨울에 떠났다. 한겨울에 남은 아내와 나, 그냥 그대로 친구였으면 좋겠다. 간호사는 마음이 아프다. 환자는 몸이 아프지만 바라보는 간호사는 마음이 더 아프다.
정원의 5월의 신부를 겨울에도 오랫동안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바라보는 친구가 있다는 것, 그만으로 행복한 것은 세상엔 없다.
정원의 겨울 바람이 차다. 저 분홍빛 겨울의 신부, 지금까지 살아온 뭇 아내들의 위대함이 저런 모습 아닐까.
- 2023.12.2. 석야 신웅순의 서재, 여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