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Tour-490회, 생의 한가운데
우리들 독서클럽 ‘Book Tour’ 490회 모임이 있었다.
바로 오늘인 2016년 10월 12일 수요일 오전 7시 30분부터 1시간가량 서초동 투모로 법무사사무소에서 진행된 오늘 모임에서는 대검찰청 정보통신과에 근무하는 임윤정 회원이 발제자로 나섰다.
임 회원이 오늘의 그 독후감 발표를 위해 선택한 책은 독일의 소설가 루이제 린저(Luise Rinser)가 짓고 자살로 서른한 살의 삶을 마감한 수필가이며 번역문학가인 전혜린(田惠麟)이 옮긴 문예출판사 출판의 ‘생의 한가운데’라는 제목의 소설이었다.
임 회원은 미리 작성한 PPT 원고로 짜임새 있는 발표를 했다.
다음은 그 원고 전문이다.
작가 소개
저자 루이제 린저 (1911~2002, 91세)
독일 오버바이에른 주 출생/뮌헨대에서 교육학, 심리학 전공/저서 유리반지(1940, 처녀작) 생의 한가운데(1950, 슈켈러 문학상 수상) 등 다수
옮긴이 전혜린(1934~1965, 31세)
평안남도 순천 출생/뮌헨대 독문과 졸(서울대 법대 재학 중 유학)/저서(유고집)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수필, 1966)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일기·서간집, 1968) 번역서 ‘생의 한가운데’(루이제 린저, 1961) 등
작품 소개
삶의 완벽성을 추구하는 여자 니나 부슈만의 삶을 통해 사랑의 본질적인 의미를 탐구한 작품으로 2차 세계대전 후 침체된 독일 문단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린저의 작가적 기반을 튼튼히 다진 작품
니나와 오랫동안 서로의 존재를 잊고 살던 언니 마르그레트가 우연히 서로 만나고, 9개월 후 니나의 요청으로 마르그레트가 니나의 집을 방문한다. 18년 동안 니나를 사랑해온 슈타인이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니나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와 그동안 그가 썼던 일기가 소포로 배달된다. 마르그레트는 슈타인의 일기와 편지를 읽어 나가고, 자매가 그 상황에 대해 주고받는 대화, 마르그레트의 생각 등으로 이 책의 내용은 이루어져 있다. 생의 한가운데서 니나는 '생'이 자기에게 과하는 온갖 과제를 자기가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이라도 하듯 그 어떤 것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피하지도 않고 자신의 온 몸으로 생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며, 슈타인은 그런 니나를 언제까지나 지켜주고 사랑하지만 두 사람은 평행선과 같은 운명이다.
인물
니나 (고통마저도 생의 일부로 사랑하며 위험에 맞서는 인물)
여류 작가. 19살에 환자로서 20살 많은 슈타인을 만나 18년 동안 슈타인의 사랑을 받고, 그녀 역시 슈타인을 사랑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이지는 않는다.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생은 스스로 책임지고, 자신에게 닥친 고통마저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강한 의지력의 소유자.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한다. 슈타인과는 너무나 다른 성향의 남자(할)와 결혼 하지만 다른 남자(슈타인의 친구-나중에 알게 됨)의 아이를 가진 채 이루어진 결혼은 행복할 수 없었고, 두번째 아이를 가졌을 때 니나는 자살을 시도하지만 슈타인에 의해 목숨을 건진 후 생에 대한 강한 애착을 느끼게 된다. 소름끼치는 상황마저도 생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인간의 진정한 가치 기준은 유용성이 아님을 격렬하게 주장하고, 우리의 생에 있어 가장 흥미로운 것은 '죽음'이므로 행복할 때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생의 전부를 사랑한다. 자신의 생이 엉뚱하게 결정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니나는 죽음을 앞둔 슈타인이 찾아올 것을 알지만 만나지 않은 채 떠나고, 그의 신비성을 지켜주기 위해 그를 통찰하지 않을 만큼 슈타인을 사랑한다.
슈타인 (모든 것에 지나치게 신중하며 냉담한 인물)
의사이자 교수. 농독증에 걸린 니나가 치료를 받으러 온 날부터 18년 동안 니나를 사랑해 왔으며 니나에 대한 모든 것을 기록하고 수집한다. 니나가 어려움에 처할 때 마다 도움을 준다. 때로는 그 돕고자 하는 마음이 지나쳐 니나와 충돌하기도 하지만 니나가 어려움을 겪을 때 그녀의 옆에는 항상 슈타인이 있었다. 도움을 받기 싫어하는니나의 강한 자아로 인해 그들이 조화롭게 사랑을 나눈 시간은 지극히 짧지만 니나는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는 모험도 감수한다. 슈타인에게 있어서 사랑은 병이었고, 생기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니나는 갖고 싶고, 되고 싶은 모든 것의 비유였으며 생 그 자체의 상징이었다. 그는 언제까지나 변함없는 강도를 가지고 니나를 사랑했고, 전 생명력이 단 하나의 구심점에 집중되어온 것 같다고 느끼고, 아무리 지친 상태에서도 남을 일으켜 세우는 니나의 힘을 동경한다. 책의 서두에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었으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죽지 않고 니나를 찾아오지만 니나는 이미 영국으로 떠난 후였다. 니나는 슈타인의 신비성을 지킨 것이다.
마르그레트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인물)
신문 기자. 니나의 12살 위 언니. 니나가 10살 때 결혼, 니나가 간섭하지 말아 달라고 선언한 이후 서로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오다가 니나가 37살 되는 해에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이 이야기가 시작되며 이 책의 화자. 부유하고 안락하며 부부가 공통된 취미를 가지고 평화스럽게 살고 있는 것에 만족하며 지내왔는데 니나로부터 결혼과 이혼 과정에서의 어려움, 사랑이 무엇인지, 결혼생활이 행복한지를 질문받자 당황스럽다. 안정을 추구하던 그녀가 니나와 재회 후 때때로는 조금 덜 이성적으로 되고, 위대한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고, 굉장한 혼란을 일으킬 수 있었으면 무엇이든지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의 변화가 생긴다. 운명은 결국 운명이라는 것, 생의 가장 중대한 일들은 모두 당사자의 생각을 넘어서 엉뚱하게 결정되는 것이라고 니나에게 말했지만 니나의 반응을 통해 그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된다. 니나와 슈타인의 해후를 위해 마지막까지 애쓰지만 둘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말말말
니나에 대해
내 생각으로 그 여자는 인간이 허위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시위하고 있는 인간입니다. 흥미 있으나 까다롭지요. 아무 데나 충돌하고 입 안을 태우고 모험 속에 얽혀 들어가고 언제나 맨 극단에 있는 대담한 존재입니다.(마이트)
그 여자는 남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차라리 굶어 죽을 거야.(알렉산더)
니나의 운명에 대한 신념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것은 니나의 강한 점이며 니나의 보호가 되었고 니나를 감당해나가고 있었다.(슈타인)
니나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극단을 요구했고 그것을 타인으로부터도 요구했다.(마르그레트)
니나
나는 일생 동안 한 번도 정말로 사랑하지 않았어. 한 번도 진짜가 아니었어. 나는 한 번도 한 남자 때문에 정말로 불행하지 않았어. 나는 사랑한다는 게 무엇인지를 몰랐어. 그러나 지금은 그걸 알고 있어. 끔찍한 일이야.
내 생각으로는 우리가 언제나 생기를 지니는 데에, 언제나 마치 광인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듯 무슨 일에 몰두하고 있는 가운데 있는 것 같아.
책을 읽었을 때 우리는 책 속에 있는 이 사람 또는 저 사람과 같다는 것을 알게 돼. 그리고 다음 책을 읽을 때는 또 다른 모습과 같은 걸 알게 돼. 이렇게 끝없이 계속되곤 해. 사람은 몸을 굽히고 자기 자신 속을 보면 몇백 개의 나를 볼 수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도 참 자기가 아니야. 아마 그 몇백 개를 다 합치면 정말 자기일지도 모르지.
사람이 동정심에서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언니는 모를 거야.
우리는 자기가 쓴 글과 똑같은 거야. 그럴 분리시킬 수는 없어. 언니가 만약 날카롭게 주의해서 본다면 온갖 가장을 꿰뚫고 볼 수 있을 거야.
인생에서는 어떤 계산도 들어맞는 법이 없고 아무런 결말을 갖고 있지 않는데도. 결혼도 아니고 죽음도 다만 외관상 결말에 불과해. 생은 계속 흘러가는 거야. 모든 것은 그렇게도 혼란하고 무질서하고 아무 논리도 없고 모든 게 즉흥적으로 생성되고 있어.
슈타인
나는 니나를 사랑하는 것일까? 아마 나는 니나에게 있어서, 나에게 없고 그 여자에게는 특히 강하고 순수하게 있는 저 특성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그 여자의 용기와 패배하지 않는 생에 대한 호기심, 결단성 같은. 나는 내 사랑을 의심한다. 그러나 나의 자기 유지 본능의 이 교묘한 수단조차도 나를 구제할 수 없다.
나를 해탈시킨 고통에 나는 감사하고 싶다. 간밤의 눈물은 나의 생의 굳어진 괴로움을 씻어 흘려보냈다. 남은 것은 포기의 슬픔이다. 새로운 명랑함의 배경이 되어주는. 니나는 상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고 나는 그것을 기대하고 있다. 왜 나는 그것이 ‘행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것은 행복이 아닐 것이다. 아무도 행복하지 않다. 그런데 내가 왜 행복해야 하는가? 무슨 권리로 나는 내가 이 세계에서 예외일 것을 기대하는 것일까? 아무런 소망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 내 소망은 이루어져야 하는가? 내가 이처럼 끈기 있는 인내력을 가지고 그것을 쫓기 때문에? 아무도 공적에 따라서 보상받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도 다른 사람의 노력을 존중하지 않는다.
너는 강한 힘을 가졌어. 그러나 너무 많은 모험을 하는 여자는 누구나 손해 보는 법이야.
나는 이 아름다운 해후를 선사한 내 생에 감사한다. 니나의 목소리가 내가 들은 최후의 것이리라. 니나의 눈이 내가 기억하는 최후의 것이리라.
니나와 전혜린
죽음
니나
가장 흥미 있는 것은 죽음인데. 죽는다고? 아니, 지금은 아니야. 이렇게는 싫어. 지금까지 한두 번은 그걸 시도해 보았고 한번은 거의 성공했었어. 그렇지만 나는 그게 실패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어. 단념하거나 또는 절망한다고 해서 자살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야. 우리는 무한히 행복할 때만 죽어도 좋은 것인지도 몰라.
전혜린
일회적인 생을 사는 우리에게 있어서 신비한 끝인 죽음이 이렇게 등한시 되어서 될 일인가는 한번 고려해 볼 문제가 아닐까? 죽음은, 누구의 죽음이나 엄숙한 사실이다. 더구나 그것이 의식적으로 선택되고 논리적으로 사유된 결과인 경우 우리는 무엇이 그를 죽음에 던져 넣는가를 알고 싶어 해도 마땅할 것이다.
결혼
니나
공부하고 먹고 자고 직업을 갖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게 뭐예요?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사람은 그것이 습관이 되어버리고 마치 그것에 의의가 있는 것처럼 스스로 타이르는 거예요. 아마 그것밖에 모르고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의의가 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내가 어떻게 그걸로 만족할 수 있단 말이에요?
전혜린
나는 혼자 살고 싶었다. 내 일생을 바치고 싶었다. 자유롭게... 그러나 운명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우리의 의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자유롭지는 않다. 우리가 생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생이 우리를 형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기치 않았던, 때로는 소망치 않는 방향과 형식 속에 생이 형성해 놓는다.//
나는 저자 루이제 린저와 옮긴이 전혜린에 대해 이전에 아는 바가 하나 없었다.
오늘 임 회원의 발표로 처음 알게 되었을 뿐이다.
임 회원의 발표 끝에 함께 자리를 한 회원들의 의견 발표가 있었다.
나도 의견을 냈다.
나는 섭리에 따르지 않으려 하는 저자의 독선을 짚었고, 헌신과 희생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유아독존을 부르짖는 옮긴이의 이기심을 짚었다.
곧 이런 요지였다.
‘창조론에 의하든 진화론에 의하던 인간은 섭리에 따라야 한다. 그러도록 지어졌기 때문이다. 사랑의 실체는 헌신이고 희생이다. 헌신과 희생을 감당할 생각이 없이는 사랑을 할 수도 받을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