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丙申年)은 붉은 잔나비 해다. 잔나비는 ‘날쌔다’라는 뜻인 ‘재다’라는 동사와 ‘원숭이’란 뜻을 지닌 ‘납’이라는 명사가 합쳐진
말로 원숭이를 의미하는 옛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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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모자 석상·미국 시카고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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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여전히 잔나비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며, 특히 띠를
일컬을 때는 원숭이보다 훨씬 익숙하다. 잔나비라는 말 자체에 빠르다는 말이 들어 있듯이 원숭이라 하면 날렵함을 떠올리게 된다. 서유기에 등장하는
손오공이 그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가 더러는 진중하지 못하고 덜렁대는 등의 어리석음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때문에 잔나비 띠 사람들의 성격을 이야기
할 때 ‘재주는 많고 영리하지만 진득함이 없다’고 말한다. 그만큼 잔나비(원숭이)는 인간과 가장 유사하다.
원숭이해는 임신(壬申)·갑신(甲申)·병신(丙申)·무신(戊申)·경신(庚申) 등 다섯 번으로, 십이지의 여덟 번째 동물인 원숭이(申)는
시각으로는 오후 3~5시이다. 방향으로는 서남서·달(月)로는 음력 7월에 해당하는 방위신이며 시간신이다. 붉은 원숭이는 60갑자 중
병신(丙申)년으로 33번째에 해당한다. 60갑자는 천간과 지지의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10천간(天干)은 하늘의 에너지이고, 12지지(地支)는 땅의 에너지이다. 10천간(天干) 중 병(丙)은 ‘불‘로 붉은 색을
나타낸다. 12(地支) 중 신(申)은 원숭이를 말하는 것으로 올해는 붉은 원숭이(빨간 원숭이)를 말하는 것이다.
또한 병(丙)은 양(+)의 붉은 ‘불‘과 원숭이 신(申)은 ‘금’을 의미하며, ‘병’은 적극적이고 활기찬 새로운 도전과 창조를
의미한다. ?’신’은 법이나 규칙을 말하는 것으로 여러 분야에서 새롭게 개혁할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올해는 적극적으로 도전을 하는 것은 좋으나
조급하게 행동한다면 충돌이 있을 수 있으니 완급을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붉은 원숭이는 재능이 뛰어나고 지혜가 출중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능력이 있다.이상이 높아서 깊게 생각하지 않고 행동한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불교경전 속에 나타난 원숭이 이야기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별주부전 모델은 ‘육도집경형본생’이다. 다만 원숭이를 토끼로 바꾸고
자라의 아내를 용왕으로 바꾸었을 뿐이다. 아마도 옛사람이 불교 포교를 위해 이러한 불경의 말을 부연해 지은 듯하다.
‘미후왕본생’에서는 악한 사람을 오히려 불쌍히 여기는 원숭이가 부처님의 전신으로 나온다. 또 5백 마리 원숭이를 거느린 원숭이 왕이
굶고 있는 무리를 위해 인간의 왕에게 스스로를 아침 반찬으로 받일 테니 무리를 살려달라는 청을 한다. 이에 인간의 왕이 탄복해 눈물을 뿌리며
“짐승의 어른도 제 몸을 죽여 무리를 건지니 옛 어진 이의 풍도가 있는지라. 내가 임금이 되어서 어찌 짐승만 못 하리오”라고 말하고 원숭이들이
먹고 살 수 있게끔 명을 내렸다고 한다. 이 원숭이 왕은 부처님의 전신이며, 5백 마리 원숭이는 부처님의 5백 제자라고 전해진다.
백유경에도 한 알의 팥을 줍기 위해 손에 가득 쥔 팥을 모두 놓친 원숭이의 비유를 들어 계를 한번 지키지 못하면 더욱 방일해 일체를
놓아버리는 것을 경계했다. 아함경에서는 물에 비친 달을 탐내던 원숭이들이 손을 잡고 나뭇가지에 매달려 달을 꺼내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또
부처님의 전생담인 자타카에 나오는 동산을 망가뜨린 원숭이 이야기는 인도에 바르후트 탑에 조각으로 새겨져 있다. 이재우 기자
미후왕본생경 등 원숭이 모습 나퉈
병(丙)은 붉은, 신(申)은 ‘금’ 의미
불자 삶 이정표, 완급조절
지혜필요
불교설화
원숭이의 계교와 거북이의 슬기
옛날 가식구 바라나성에 5백 마리의 원숭이 떼가 나무 숲속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숲속의 과일 나무 열매를 따먹고 니구율이라는 큰나무 옆에 모여 놀게 되었는데 마침 그 옆에는 큰 샘물이 있었다.
휘영청 밝은 달밤, 밝은 달이 구슬처럼 떠올랐다. 목이 말랐던 원숭이 대장이 물을 먹고자 그 입을 물속에 댔을 때 뜻밖에도 둥근달이
그 속에 덩실하니 솟아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큰일 났다. 달님이 물에 빠졌으니 이제 세상은 어두워지고 말 것이다. 우리는 어서 빨리 저
달을 건져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성화를 해댔다.
한 원숭이는 “참으로 고마우신 말씀이다. 달은 밤하늘에 등불이다. 그런데 그 달이 저렇게 물에 빠졌으니 이제 우리는 밤놀이는 다 했다”며
맞장구를 쳤다.
“자, 그럼 달을 건지도록 하자.” 그러나 막연했다. 어떻게 달을 건질 것인가?
깊은 못 푸른 물속에 들어갔다 가는 두말할 것도 없이 죽고 말 것이다. 원숭이 대장은 생각했다.
“옳다. 여기 좋은 수가 있다. 내가 저 나무 위에 올라가 호숫가로 늘어진 나뭇가지를 잡을 테니 나머지 499명은 내 꼬리를
순서대로 잡고 맨 끝에 달린 놈이 달을 건지도록 한다.”
원숭이들은 신이 났다. 원숭이 대장이 나뭇가지에 매어 달리자 다음 다음 순으로 499명의 원숭이가 각기 꼬리를 잡고매어 달렸다.
그러고 맨 마지막 원숭이가 그전 원숭이의 꼬리를 잡고 첨벙 물속으로 들어가자 나무 가지는 우지근 뚝딱 하고 부러졌다. 달은 울렁이고 원숭이들은
간곳없이 물속으로 사라졌다.
이 설화는 부처님께서 어리석은 스승과 본래의 자기를 상실한 인간들을 회책(悔策)하기 위해 설하신 비유이다. 스승은 모범이다.
모불모(模不模) 범불범(範不範)이 세상에 적지 않아 선량한 사람들까지도 죽음을 이루게 해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부처님이 영산회상에 계실 때 일이다. 어떤 비구가 어느 강가에 앉아 20년을 일심정력으로 공부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몸을 메어 안정을 하면서도 6진 경계에 대한 집착심이 떨어지지 않아 지혜의 빛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면 조금만 해도 능히 해탈을 얻으리라 생각하고 부처님은 오후 늦게 돌아다니는 스님의 행색으로 그를 찾아가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마침 그때 주린 여우가 먹이를 구하러 나왔다가 강가에 기어가는 거북이 한 마리를 보고 뛰어가 앞발로 건드렸다.
그런데
거북이는 순간 깜짝 놀라면서 일면 그 머리와 꼬리 네 발을 움츠려 그 두꺼운 갑속에 집어넣고 꼼짝달싹하지 않았다.
여우는 신이 나서 이리 뒤치고 저리 뒤쳤으나 아무리 뒤쳐도 그가 얻을 만한 틈을 구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섰다가 길을 떠났다.
그때서야 거북이는 그 움츠렸던 네 다리와 꼬리 머리를 내어 놓고 느릿느릿 걸어 그의 목적지를 향해 갔다.
“스님, 저것을 보십니까?”
“예, 보았습니다.”
“만일 저 것(머리와 꼬리 네발)이 때를 알지 못하고 방자히 설쳤더라면 그는 결코 그놈의 밥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어리석어 부질없이 육근을 마음대로 내돌려 그칠 줄을 모른다. 어찌 이러고서야 죽음을 면할 수 있겠는가.
이에 놀란 스님은 무릎을 치며 “6근 감추기를 거북이와 같이 하고 뜻 막기를 성벽과 같이 하라”고 일렀다. 번뇌의 마구니는 지혜의
벽을 뚫지 못한다.
첫댓글 좋은 글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제가 원숭이 띠여서 더욱 공감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