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 114- 2회 - DJ 김봉곤
한국 가요의 역사 2
무대 배우의 가수
1930년에 접어들자 음반계의 시선은 연극무대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당시 미모의 이애리수와 김연실, 강석연, 이경설, 윤백단, 전옥등 여배우가
노래를 불러 인기를 끌었습니다.
여배우 복혜숙은 콜럼비아레코드에 종로행진곡등 몇 곡을 불렀으나
노래솜씨가 신통치 않아 그것으로 그치고 말았다.
취성좌의 배우에서 토월회 등에서 활동을 한 강석연은 1931년 콜럼비아 레코드에서
세동무 방랑가 오동나무를 불러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애리수는 빅터 레코드에서 1930년에 방랑가 오동나무를 부르면서
1932년 빅터 레코드에서 황성옛터를 불러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취성좌 배우인 전옥은 1933년 포리돌 레코드에서 째즈 멜로디를 시작으로
1934년 콜럼비아 레코드에서 물길천리 수부의 아내등 배우로서 인기를 굳히는데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33년 연극 항구의 일야(주제가 : 노래 김용환)는 1950년대 극장에서 연극으로 흥행을 많이 하였다.
윤백단은 1933년 OK 레코드에서 횃불을 높혀라 등을 불렀었는데
배우가수중 연장자로서 선배 배우인 셈이다.
이외에 1930년에 빅터 레코드에서 세동무를 부른 김연실과
1933년 콜럼비아 레코드에서 강남을 가자를 부른 김선초도 초기의 유명한 배우 가수였다.
당시에 제일 많이 부른 노래는 방랑가 오동나무 세동무 강남달 황성옛터가 대표적인 노래들이다.
배우가수중 남자로는 강홍식이 유일하게 유명한 가수이다.
1934년 강홍식의 노래 처녀총각이 거리의 축음기 가게를 한창 바쁘게 만들었었다.
강홍식- 처녀(處女) 총각(總角)
봄은 왔네 봄이 와 숫처녀의 가슴에도 나물 캐러 간다고 아장아장 들로 가네
산들산들 부는 바람 아리랑타령이 절로 난다 응-응-응-응 응-응-응-응
호미 들고 밭 가는 저 총각의 가슴에도 봄은 찾아 왔다고 피는 끓어 울렁울렁
콧노래도 구성지다 멋드러지게 들려오네 응-응-응-응 응-응-응-응
봄아가씨 긴 한숨 꽃바구니 내던지고 버들 가질 꺾더니 양지쪽에 반만 누워
장도 든 손 싹둑싹둑 피리 만들어 부는구나 응-응-응-응 응-응-응-응
노래 실은 봄바람 은은하게 불어오네 늙은 총각 기막혀 호미자룰 내던지고
피리 소리 맞춰 가며 신세타령을 하는구나 응-응-응-응 응-응-응-응
지금도 간혹 들리고 있는 이 노래는 북한방송에서도 불려지고 있다.
직업 가수의 등장
1930년 3월 콜럼비아 레코드사에서 나온 축음기판에 채규엽이란
이름이 처음으로 눈에 띈다.
노래 제목은 <봄노래 부르자>로
오너라 동무야 강산에 다시 때 돌아 꽃은 피고 새 우는 이봄을 노래하자 강산에 동무들아
모두 다 모여라 춤을 추며 봄노래 부르자
오너라 동무야 소리를 높이 봄노래 부르면서 이 강산 잔디밭 향기 위에 민들레 꽃 따면서
동무들아 다같이 이 봄을 찬미하며 이 봄이 가기 전
<봄노래 부르자>를 시작으로 한국 최초의 직업 가수 채규엽이 탄생하게 된다.
채규엽은 1933년 일본 중앙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서도 일본 노래를 취입했으며,
1930년대 말에는 태평 레코드사에서도 활동을 계속하였으나,
1948년경 고향인 함경도로 간 이후 행적이 묘연하다. 탄광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말이 전해지기도 한다.
채규엽과 같이 일본 중앙음악학교를 졸업한 가요 관계 인물로서는
북한 음악가 동맹 위원장을 역임하다 1990년에 사망한 이 면상이 있었으며,
빅터 레코드사와 콜럼비아 레코드사 전속 가수였던 <진주라 천릿길>을 부른 월북 가수 이규남이 있다.
권번 기생 가수
1930년 초반, 여배우들의 가수 활동과 함께 권번 기생들의 활약도 가요의 흐름에 한줄기 영향을 주었다.
권번에 소속된 기생은 예의범절, 서화, 시조, 창, 가야금, 유행가, 일본 노래까지 공부를 해야만 했다.
1941년까지도 평양에는 기생 학교가 있었다.
기생에 적을 두고 노래를 불러 인기를 끈 인물로는 선우일선, 왕수복이 특히 유명하였다.
그들이 노래를 취입하기 위해 평양에서 서울에 올 때는
레코드 회사 간부들은 인력거를 서울역에 대기시켜 놓고 칙사 대접을 하였다.
일본에 있는 녹음실에서 취입하고 돌아올 때까지는 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선우일선과 왕수복은 6.25 전쟁 이후에도 평양에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이들의 노래는 거의 신민요 노래들이고 1934년에 나온 이면상 작곡인 <꽃을 잡고>는
선우일선을 스타덤에 올려놓는 계기가 된다.
왕수복의 인기곡은 전기현 곡으로 1933년에 나온 <고도의 정한>이다.
1940년대 대중 가요계를 주름잡은 이화자는 권번 소속 기생이 아니고
일반 유흥가 술집 출신으로 천부적인 자질과 풍부한 호소력을 가진 1936년에 등장한 가수이다.
1940년 초에 널리 퍼진 이화자의 <목단강 편지>는
1950년 후반에 엉뚱하게 <처녀 뱃사공>이라는 노래에서 가사는 바뀌었으나
멜로디의 많은 부분이 표절되어졌다.
출처 : 실버시대
첫댓글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함게가는 세월앞에 변함없는 마음으로
서로의 인연에 감사하며 안부를 주고 받을수 있음에
감사한 날들입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