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
– 낙조 극장
김효은
아침이면 착상되고
저녁이면 계류되는
낙조 상영관이 있다
파도는 능숙한 조산사
시체와 도구를
겹겹이 감추기에 민첩하고 능숙한
손놀림을 가졌다
타인의 고통
연중 무휴 상시 상영 중
배냇저고리 찢긴 조각들
번역되지 않는 자막들
태반으로 만든 마스크팩을 굿즈로 드려요
스크린 여기저기 울룩불룩
이마로 발뒤꿈치로 쿡쿡 꾹꾹
움직이는 포르말린 속 태아들
둥둥 유영하는 팔다리 뻐끔거리는 입모양이
압도적으로 생생한 3D 4D 5D 상영관
1번 씨랜드 2번 팽목항 3번이태원 4번 곤지암
배경 화면은 수시 변경 가능
화재 침몰 압사 심령 체험
원하시는 모드 변환을 누르세요
덜 익은 과일이 맛있다고요?
최신형 리클라이너 의자에 누워
입을 벌리고 낙과를 기다리는 사람들
고통을 포식하는 사람들
비극은 재흥행 한다
비극은 재개봉 된다
찾는 사람이 많으니까
비명보다 질긴 어둠이
엔딩 크레딧으로 내리면
꿀꺽꿀꺽 아귀들도 몰려와
인공 젖을 빤다
거룩한 밤 고요한 밤
수유의 밤 수혈의 밤
갯벌은 신성한 자궁을 상징합니다
낙조 극장으로 오세요
치어 관리 수족관도 운영합니다
D·I·Y 시대 맞춤형 먹이를 직접 양식해서
사냥하고 조리하고 포식하세요
인내심과 긴장감 쫄깃한 식감은 덤이에요
희극과 비극 다큐와 SF 단편과 장편
공포 멜로 스너프 코미디 온갖 장르의 영화들
분할 화면으로 동시 상영 가능
지금 바로
낙조 극장으로 오세요
배우와 감독 투자자도 상시 모집합니다
웹진 『시인광장』 2024년 2월호 발표
김효은(金曉垠) 시인
목포에서 출생, 2004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2010 계간 《시에》 평론 등단.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졸업. 저서로는 『아리아드네의 비평』, 『비익조의 시학』이 있음.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강사이며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경희대 출강.
[출처] 단편영화 – 낙조 극장ㅡ 김효은 ■ 웹진 시인광장 2024년 2월호 신작시ㅣNewly Written Poem 2024, February l 통호 178호 Vol 178|작성자 웹진 시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