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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선 아래에 글을 올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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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년전쯤 티비에 올라오던 한 기사가 너무 인상깊어 나는 그 기사만 또 나오기를 기다렸었는데 지리산속에 한 부녀가 움막집에 살며 농사도 짓고 시도 쓰며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었다. 딸은 18세고 아빠는 40대 초반쯤 보이는데 초등학교 교사였다는 그 아빠는 딸에게 글과 시를 가르쳐 그 딸이 쓰는 말이 일반애들과는 좀 다르다할까 단어들도 문어체로 내겐 흥미롭게 듣겼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 딸은 마당에서 빨래를 널며 행복한 얼굴로 '태양빛이 작열해서 빨래가 잘 마를 거에요' 라며 활짝 웃는 모습이 한송이 들꼿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그 얼마전에 그 아빠는 그동안 써둔 딸의 시들을 묶어 시집을 한권 내 주었는데 그 신선한 시어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꽤 잘 팔려나가 기자가 인세로 얼마를 받았습니까 하니 아무 경계심도 없이 바로 '8백만원을 받았어요' 라며 또 활짝 웃는다. 그 장면을 보는 시청자들은 여러분류로 나뉜다. 그냥 아름답다고 느끼고 미소짓는 사람, 저집에 내가 데릴사위로 들어가 같이 살아보면 어떨까하는 남자, 그 8백만원이 내것이라면 좋겠다 꿈꾸는 부류 그리고 저 담도없고 무방비의 외딴집에 들어가 그돈을 뺏아야겠다고 상상하는 사람, 상상 뿐 아니라 실지로 실행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사람.
그런데 그 몇일 후 충격적인 뉴스가 전국을 강타하여 모두 아연할 수 밖에 없었으니.. 딸은 출타중이고 밤에 ,아빠만 자는 방에 한 괴한이 침입해서 8백만원을 내 놓으란 것이었다. 그는 딸의 그 돈을 내 놓을 수 없다고 거절했는데 그 강도가 수십번이나 칼로 찔러가며 강요해도 그는 결단코 거절하여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던 것이다. 그 다음날 딸이 집에 돌아와 받은 충격이란..
나는 그 뉴스를 보고 참으로 안타까워 몇일을 충격속에 보냈다. 어리석은 그 아빠라니.. 진정 딸을 위해서라면, 딸의 행복을 바랬다면 돈보다는 오직 한사람 피붙이인 아빠가 옆에 있어줘야 했을 것 아닌가. 8백이라면 요즘돈으로 8천만원은 될 것인데 그 돈 없어도 그 부녀는 산속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시집이야 또 쓰면 될 것을. 그 딸은 넋이 빠져 쓰러져있다가 결국 한 절에 비구니로 입문해 들어가 숨어 살며 어떤 기자들도 만나주지 않으며 살고있다. 그 8백은 필시 그 절에 시주로 바쳤을 것이고. 그 딸과의 인터뷰하는 특종을 따내려고 기자들이 너도나도 모여들었지만 어느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내짐작에 딸의 말씨로 보아 그 남자는 서울서 결혼해 살다가 아내에게 이혼당해 쫒겨난 듯 하고 이혼조건으로 사랑하는 딸만 데리고 빈손으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융통성없고 착하기만한 즉 바보같은 남편이 마음에 안찬 마누라, 그녀는 필시 셈이 빠르고 영악한 여자였을 듯하니 시만 좋아하는 그런 답답한 남자가 심에 안찼을 것이다.
다른 자녀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유독 이 딸만 아빠를 닮아 착해 빠졌으니. 다른 자녀는 있다해도 엄마를 닮았을 터이고.
딸이 초등학교는 마쳤는지 중퇴인지 모르지만 지리산으로 들어가 아빠는 딸에게 국어와 시쓰기를 가르쳤다한다. 그 미련한 아빠는 결국 딸을 최악의 불행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어리석고 어리석도다.. 나 같으면 우선 '얼마나 곤란하고 힘들었으면 이런 일까지 벌이시는가, 그렇게 돈이 필요한 상황을 나는 백번 이해한다. 나 역시 경제적으로 힘드니 8백중 1,2백은 우리 부녀를 위해 떼어놓고 나머지만 가져가시라.' 고 설득한다면 왠만한 악인이라도 공감을 하고 6,7백만 가지고 물러날 것 같은데. 고발하진 않을 듯한 안심할 수 있는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할테고. 그 괴한도 몹시 긴장되고 속으로 떨고 있을텐데 무언가 따뜻함으로 어루만져 준다면 좀 풀어질 것이다.
언니는 미국에서 로터리클럽에 속해서 한달에 한번씩 그 클럽에 참석해 같이 점식식사를 하는데 유명인사들을 초청하여 강의도 듣고 하며 서로 대화도 나누며 친목을 나눈다. 내가 방문할 때는 어김없이 나도 데리고 가곤 하여 한국에선 잘 들을 수 없는 유명인들의 강연은 들을만 해 보였다. 한번은 TV 맥가이버의 작가가 와서 강연하는 내용이 꽤 흥미로웠는데 우리는 맥가이버 하면 그 배우만 상상하지만 실은 그는 씨나리오대로 연기만 할 뿐 그 모든 스토리와 전개는 작가가 쓴 것이니 그 작가야말로 천재였던 것이다.
첩보원인 맥가이버는 총이나 최신무기 사용을 거부하고 스위스 아미 나이프만 가지고 다니며 주위의 잡동사니들을 이용해 적을 물리치고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으로 인기가 높았다. 미국엔 그 드라마를 모방해서 사람들이 사제 폭탄을 제작하여 터뜨리는 사건이 빈번하여 경찰들이 골치를 썩았다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드라마가 상당히 인기라 아직까지도 누가 무얼 잘 고치거나 하면 와 맥가이버네 라며 치켜준다.
내가 그 작가에게 한국에서도 그 드라마는 TV에서 절찬리 상연중으로 최고의 인기중이라 했더니 '아니 한국에서도?' 라며 상당히 놀래서 나도 놀랬다. 그 때만해도 한국이란 존재는 그들의 의식중에 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으니. 한국의 인기는 이 10여년 사이에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한해 겨울 미국방문을 일주일 앞두고 언니가 국제전화로 내게 다음번 모임에서의 강연은 내가 한국에 관한 스피치를 하기로 자기가 내 이름을 올렸고 모두 좋아하며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뛸듯이 놀래 안돼 안돼! 난 자신없어! 그것도 어떻게 보름안에 영어로 강의를 준비하냐 고 소리를 질렀더니 아냐 넌 할 수 있어. 그리고 이미 니이름이 프린트되어 나와있어서 취소도 못해 라 하는 것 아닌가. 그 밀어부치는 식 언니의 막무가내 식에 내가 꼼짝없이 걸려든 것이었다.
나는 눈앞이 캄캄했지만 이제 이건 물릴 수 없는 사태다 싶어 이것을 어찌 수습하나 머리를 굴려보기 시작했다. 한국이라면 한국전쟁등 독재정권, 학생들 데모,최루탄. 남북분단 등으로 부정적 인상만 가득차 있는데 어떻게 그걸 만회시킨단 말인가. 몇일을 잠도 못자고 머리를 썩히다가 나는 우리의 뛰어난 예술과 한국인의 대단한 능력을 내세우기로 했다.
88올림픽이 끝난지는 십여년이 지나 있었지만 그것은 그때까지도 세계인들의 뇌리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먼저 그 커다란 용고하나를 만들기 위해 한 장인이 기울인 그 피나는 노력.
1981년 바덴바덴에서 차기 올림픽개최국은 "셰에우울~"이라 울려퍼지는 장면을 티비에서 본 대전의 한 악기제작소 주인은 '바로 저거다, 나는 우리 올림픽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크고 멀리 소리가 울려퍼지는 북을 만들어 나라에 바치리라'는 결심을 한다. 가족들은 모두 말렸지만 그는 몇일 후 큰소를 구입하기위해 전국을 누비기 시작하여 육개월 후 결국 제주도에서 1,200킬로의 큰 종자소 2마리를 구입했으나 아무래도 마음에 차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큰북 큰소리를 울리는 북이라면 세계에서 가장 큰소부터 구해야하는데.. 그래서 다시 여러나라를 찾아다니다가 결국 1년뒤에 미국에서 1,650킬로짜리 종자소 5마리(북 양쪽에 2마리, 예비분 3마리)를 찾아 수입하였다.
왜 모든 세상 가장 큰 것들은 모두 미국에만 있는 것인지. 이 대목에서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폭소를 터뜨린다. 내가 보기에 미국인들은 어른 아이할 것 없이 모두 순진해선지 별로 우습지도 않은 티비 코미디를 보면서도 엄청나게 웃는다. 우리나라 특히 나이든 남자들은 좀처럼 소리내 잘웃지 않는데. 권위적인 사람은 잘 웃지않고 근엄해야 한다고 믿어선지.
북통으로 쓸 나무도 국내의 원목은 너무 작아 미국 로키산맥에서 자라는 나이테가 196개나되는 미송을 사들였다. 그는 재료들을 구해놓고는 겁이 덜컥 났다. '한국의 소리'가 아니라 '미국의 소리'가 날까봐서. 여기서도 그들은 폭소한다.
그래서 쇠가죽과 나무의 처리과정에 한국북의 제작공정을 그대로 엄격히 적용하여 한국화시키기로 하였다. 쇠가죽은 핀세트로 조심스레 털을 하나씩 뽑고 적당한 습도와 온도에서 2년간 건조시켰고 모든 재료들을 섬세한 약품처리로 미송도 2년간 자연건조시킨다. 다시 2년이 걸려 북을 만든 후 국내 최고의 단청기능보유자에게 부탁하여 꽃구름에 둘러싸여 청룡, 황룡 두마리가 승천하는 모습을 완성하였던 것이다.
올림픽 초반부터 그 웅대한 용고의 출현은 전 세계인들을 압도하였다. 체격이 장대한 옛군관복장의 한 젊은이가 엄청난 몽둥이로 내려치는 웅대한 북소리에 모두 온몸이 찌르르 울리는 충격을 받아 대 히트를 쳤는데 정작 그 제작자는 조직위로부터 감사하단 말도 개막식 티킷도 못받아 동네에서 가족과 동네사람들과 TV를 보면서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고 그는 드디어 자신이 조국에 선물을 바칠 수 있게 됐다는 기쁨에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박세직(朴世直 2009년 사망)조직위원장은 주위 사람들이 하도 그 북얘기를 하니 몇달 후 그 제작자를 집으로 찾아가 감사패를 전달했다지만 그는 그런 치하를 바라지도 않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 백성들의 나라사랑 표현이다. 그는 분명 그 북제작으로 집안 기둥뿌리가 흔들렸겠지만 (한국어 숙어. 영어로는 집안 경제 바탕이 무너지는 위험을 말한다고 설명) 그는 개의치 않았다.
우리민족의 나라사랑 정열은 대단하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이 수두록했다. 잔인한 일본인들은 그런 조선인들을 잡아가 고문하고 죽이고 했지만 그 수가 크게 줄어들진 않았다. 나의 아버지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고 그 동지들의 다수가 감옥에서 옥사했지만 다행히 풀려난 사람들은 다시 독립운동을 계속하다 죽었다. 내 아버지는 해방이 되어 풀려나셨지만 평생 그 후유증으로 앓으면서도 대학강단에서 열강을 하셨고 독재정권에 의해 다시 감옥에 들어가 고생하시다 풀려나 집에서 돌아가셨다.
우리민족의 순수한 나라사랑, 그리고 그 신바람과 흥은 아무도 못말린다. 나이 80이 넘어 꼿꼿이 서기도 힘든 노인들도 꾸부정한체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에 나는 늘 미소짓는다.그런데 영어에는 없는 멋진 우리말 표현때문에 나는 늘 곤혹스럽다. '신'과 '흥'을 나타내는 영어를 나는 찾을 수 없다. 그래서 그냥 언저리로 대강 "We Koreans love dancing and singing so much."라고 둘러말한다. 그래서 영어를 쓰면 늘 코풀다 만 어정쩡한 느낌이다.
북을 옮기는 노란 복장의 젊은이들은 모두 군인들이다. 그들은 개막식내내 힘을 쓰는 일은 다
도맡았다
나는 온몸으로 그 사연을 설명했고 많은 학생들 젊은이 군인들의 고놀이같은 전통놀이 그리고 세계인들에게 큰 감동을 준 김소희 국창의 판소리 뱃노래. 생전 처음 들어보는 그 영혼의 노래가 그렇게 세계인들의 가슴을 울렸다한다. 손기정노인의 마지막 성화를 들고 입장하며 눈물로 펄쩍펄쩍 뛰며 온몸으로 말없이 외치며 입장하던 사연.. 그의 젊은 날 베를린 올림픽때 일본국기를 가슴에 달고 시상식에 섰던 그 슬픈 사연을. 그대들은 아는가 우리 한민족의 이 타오르는 정열과 애국심을..
내 정열에 따라 그들도 눈물을 글썽이며 강연이 끝나고나서 그들은 우뢰와 같은 기립 박수로 환영해 주었다. 언니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엉엉 울고 있었고 나는 강연 중 내가 정말 하고싶은 말을 못해 가슴이 답답했다. (이토록 훌륭한 이 나라를 그대들 나라가 우리에게 한 짓을 보라. 일제침범의 방조. 에치슨 라인으로 한국전쟁의 유도. 남북 분단.. 그 미국의 악행은 지금 현재까지도 진행중이지 않은가!) 우리는 역사상 (그대들 나라처럼) 다른 나라를 침략한일도 해를 끼친 일도 식민지를 삼은 일도 없었다. 오직 옆나라에 문명을 전하고 이익을 주었을 뿐이다.
그들은 내게 말했다. "We love those who love their own country!" I said,"And I hate those who betray our own country and serve for the benefit of the enemy country who invaded us! (나는 조국을 배신하고 우리를 침략한 적국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자들을 증오한다)" 친일파들 얘긴데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인디언들을 학살하고 나라를 세운 그들의 선조들을 그들은 어찌 생각하고 있을까. 그 인디언들의 후손이 여기 이렇게 서있는데.
그들은 회사 사장들 목사 교수들 모두 그지방의 고위층 유지들인데 그 강의 후 회사CEO들은 오후에 자기 회사로 바로 돌아가자마자 자신의 회사에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들을 불러다 당신들 나라가 그렇게 위대한 나라인 줄 몰랐다 하며 치하를 하고 그 담부터 모든 국제적 비지니스 수입 수출들을 한국 최우선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 후 언니는 참석만 하면 언니를 둘러싸고 자신들이 받은 감동들을 얘기하는데 한사람씩만 하는 게 아니라 양쪽에서 동시에 얘기들을 서로 해대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했다. 그런데 한번은 회원들 중 영화감독과 영화제작자가 있었는데 양쪽에서 언니에게 여러가지를 물어보더니 우리는 한국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보고싶다. 중국과 일본은 그래도 영화가 몇개 제작되어 큰돈도 벌고 했는데 여태까지 한국영화는 하나도 제작된 것이 없어 미지의 세계다.
그때 '죠이럭 클럽'이란 대만 영화가 최초로 만들어져 미국서 큰 흥행을 하고 우리나라에도 들어와서 기보았는데 내가 보기에 실상 별로였던 것 같다. 사건들이 우리나라에 비하면 너무 단순한데 그래도 미국인들은 이색적이라며 아주 좋아했었다.
그들은 언니얘기를 들어보니 한국은 그동안 전쟁 분단 정치적 사회적 문제 등 얘깃거리가 너무도 많아 흥미진진한데 당신 아버지의 독립운동등 엄청난 가정사를 중심으로 영화를 풀어나가면 진짜 대 히트를 칠 것이다. 동생에게 책을 우선 쓰라하라. 그러면 우리가 최고의 번역가를 대서 영어로 번역해 책부터 낼 것이고 그 후 최고의 씨나리오작가를 대어 각본을 쓸 것이고 영화제작도 우리가 다 알아서 할 것이다. 동생에게 책만 쓰게하라 그다음은 다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니.
언니는 흥분해 가지고 전화로 열을 올리는데 우리나라는 한 소설가의 소설이 한번 히트쳐도 몇년 후 또 써야하지만 미국은 워낙 나라가 커서 책이 한번만 성공하면 그 수입으로 베벌리 힐즈에 근사한 저택도 살 수 있고 평생 화려하게 놀고 먹을 수 있다. 더구나 그 소설이 영화화까지 돼서 히트한다면, 그리하여 또 온 세계로 수출될거고.. 더구나 미국이라면 껌뻑 죽는 한국에서 그런 경우엔 그 소설과 영화는 날개 돝힌 듯 하여 따로 선전할 필요도 없이 나는 대번에 벼락부자가 될 것이다.
나는 먼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 안타까운 내 마음을 어떻게 언니에게 설명해야할지 그냥 가슴이 답답하기만 했다. 그 많은 파파라치, 기자들, 강도들로부터 어떻게 도망갈 수 있단 말인가. 그들로부터 도망가고 보호받기위해 나는 요새같은 저택속에 들어앉아 경호원들을 고용하고 외출도 마음대로 못할 것이며 온세상은 바로 나의 <거대한 감옥>이 될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내 것이 된다한들 자유없는 세상이란 감옥이나 다름없어지는 것을. 언니는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 바보 멍청이 동생을 어찌 설득해야 할까, 황금 덩어리가 눈앞에 왔다갔다 하는데도 마다하다니..
할말이 더 남아있어 이만 줄이고 다음에 다시 계속해야겠다.
첫댓글 오래 만 오셔 네요...감사히 읽고 흔적 남기고 기네요.......
선생님 건강히 지내시지요?
감명 깊게 읽고 갑니다.
참좋은 체험수기
잘 보았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계묘년도 저물어 갑니다.
한해도 모두 탈없이 아름답게
마무리 하시길 바랍니다.
그 북을 보고싶네요
사진으로라도 볼수있다면 좋겠네요
@Kbsns 본문에 용고사진을 첨부했습니다.
그간 안녕하셨어요~?
김장도 맛깔스레 담가 갈무리해 놓으셨겠지요?^^
느리작_한 저는 오늘에야 카카오계정 만들어 재입장하였습니다..
오전 일터에서
스치듯 본 글제목 *거대한 감옥*이
현재 진행중인 비참함의 극치인 지옥같은 가자지구에 대한 내용이겠거니..하고 미뤘다가
퇴근 버스에서 열어보니...세상에나_()_
언제나 느끼지만
훌륭하고 사랑스러운 최고의 스토리텔레이시기도 합니다^^
제작자의 일편단심과 私없는 봉헌으로 1988년도에 상징적으로 청룡황룡 단청한 용고를 통해 전지구에 웅장하게 조음을 내었다니....!
그땐 진정 몰랐는데..
오늘 다시 산비탈에서 쓰신 글을 통해
대성회복의 서약을 맹세한*황궁氏께서 돌이되시어 세상을 향해 길--게 조음調音을 내시었다*는 대목이
다시금 가슴저며와
주변머리없게도 길게 쓰게 됩니다.
예수님보다도 위대하게 여겨지시는 실행가이신
황궁氏의 간절한 사랑과 자비에서 나온
대서약과 당부말씀
그리고 삼천년 동안 공력을 들이셨다는 기록에 바탕하여
언젠가 산비탈양님의 뜨거운 스토리텔링이 있게되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그리고 황궁씨의 대원력에 응하여 구상하게된 천부뮤지엄 수장고에 소장되길
염원합니다..
서술하신 전통놀이들도
황궁씨께서 말씀하신
진실로 근본이 하나임에 기반을 둔 천부문화의 일단들입니다..모두가 그 하나의 시원으로부터 나왔다는 것
부도지 기록에 의하면
韓은 보위의 뜻이고
근본을 지키는 사람들이 동쪽으로 피해살면서 그 천부의 맥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계승해 내려온 대韓🇰🇷 민국이라는 점을 꼭
@마고본성 용고의 울림은 분명 황궁씨의 調音일 것입니다.
나는 용고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전통음악은 모두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그 천부의 맥을 계승해 나가야 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본문에 올린 용고사진을 한번 보아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