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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列國志 제17회
제희공에게는 딸이 둘 있었는데, 모두 절색(絶色)이었다. 장녀는 위나라로 출가하였는데, 그녀가 위선강(衛宣姜)이다. 그녀에 대해서는 다음에 따로 얘기할 것이다.
[위선강에 대해서는 제23회에 다시 얘기한다.]
차녀 문강(文姜)은 눈동자가 가을 물처럼 영롱하고 얼굴은 연꽃처럼 아름다웠다. 꽃이 말을 하는 것 같았고, 옥이 향기를 풍기는 것 같았다. 참으로 절세가인(絶世佳人)이요 고금(古今)의 국색(國色)이었다. 게다가 고금의 글에 널리 통달하여 입을 열면 문장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래서 문강이라 부르게 되었다.
[제나라의 시조는 강태공(姜太公)으로 성이 강씨이다. ‘해어화(解語花)’는 말하는 꽃이란 뜻으로 미인을 형용하는 말로 쓰인다. 때로는 기생을 가리키기도 한다.]
세자 제아(諸兒)는 주색에 탐닉한 인간이었는데, 문강과는 배다른 남매간이었다. 제아는 문강보다 두 살 위로, 어릴 때부터 그녀와 함께 놀면서 자랐다. 문강이 장성함에 따라 제아는 그녀에 대해 애정을 느끼기 시작했고, 문강도 거동이 경박하여 제아와 희롱하였다. 문강은 성미가 요사하고 음란하여 예의를 돌아보지 않고 되는 대로 말을 지껄였으며, 심지어 항간에 떠도는 음탕한 말까지도 조금도 꺼려하지 않았다.
제아는 날 때부터 키가 크고 풍채가 좋았다. 얼굴빛이 희고 입술은 붉어 타고난 미남자였다. 문강과는 잘 어울리는 인물이었으나, 애석하게도 남매로 태어났으니 짝을 이룰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장성할 때까지도 함께 지내다 보니 남녀의 분별이 없어서,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손을 잡으며 못하는 짓이 없게 되었다.
제희공 부부는 자녀들을 지나치게 사랑하여 미리 방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녀들이 장성하여 금수 같은 행위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후에 제아는, 자신은 죽음을 당하고 나라가 위기에 빠지게 하였는데, 그 화가 모두 여기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때, 정나라 세자 홀이 제희공을 도와 융병을 크게 무찔렀다. 희공은 문강의 면전에서 세자 홀이 영웅이라고 칭찬하면서, 그에게 청혼했음을 알렸다. 문강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다. 그러나 세자 홀이 청혼을 거절하자, 근심하다가 병이 났다. 저녁에는 열이 났다가 아침에는 서늘해져 정신이 황홀하고, 앉아 있다가 졸다가 하면서 먹는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二八深閨不解羞 이팔(二八)의 규수가 부끄러움도 모르고
一樁情事鎖眉頭 춘정(春情)을 이기지 못해 눈썹을 찌푸렸네.
鸞凰不入情絲網 푸른 발 드리운 창으로 난봉(鸞凰)은 날아들지 않고
野鳥家雞總是愁 주변엔 들꿩과 닭뿐이니 수심에 잠겼다네.
[‘난(鸞)’은 영조(靈鳥)로 봉황의 일종이다. 봉황은 상상 속의 서조(瑞鳥)로서 성인이 세상에 나오면 이에 응하여 나타난다고 한다. 수컷은 봉(鳳), 암컷은 황(凰)이라 한다. ‘난봉’은 뛰어난 남자를 비유하는 말이다.]
세자 제아는 문병한다는 핑계로 수시로 규중에 드나들었다. 침상머리에 앉아 어디가 아프냐고 하면서 문강의 몸을 어루만졌다. 다만 주변의 이목이 있어서 난잡한 짓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제희공이 우연히 문강의 처소에 들렀다가 제아가 방에 있는 것을 보고 꾸짖었다.
“네 이놈! 아무리 남매간이라 하지만 예의를 지켜 마땅히 물러나야 할 게 아니냐! 이후로는 직접 오지 말고 궁인을 보내 문병토록 해라.”
제아는 ‘예’ ‘예’ 하면서 방을 나갔다. 이때부터 서로 만나는 일이 드물었다.
얼마 뒤, 희공은 제아를 송공(宋公)의 딸에게 장가들였다. 노나라와 거(莒)나라에서는 잉첩(媵妾)을 보내왔다.
[‘잉첩’은 주나라 시대에 유지된 지배층의 독특한 결혼 풍습으로, 제후국 간에 정식 혼례를 치를 때 제후의 딸과 함께 그 이복 여동생이나 조카딸 등을 함께 딸려 보내 귀첩(貴妾)을 삼게 하여 양국의 우호를 더욱 돈독하게 하는 동시에 정부인의 말벗이 되게 하였다. 따라서 잉첩은 여타의 첩실들에 비해 높은 대우를 받았고 그녀의 소생들도 일반 서자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면서 적장자 다음가는 지위를 누렸다.]
제아는 신혼 재미에 빠져 문강과는 차츰 멀어지게 되었다. 깊은 규중에 갇혀 있는 문강은 적막하여, 더욱 더 제아를 생각하게 되었고 병세는 점점 깊어만 갔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만 생각할 뿐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마치 벙어리가 황벽나무 껍질을 맛보고서 그 쓴 맛을 자신만 알 뿐인 것과 같았다.
春草醉春煙 봄풀은 아지랑이에 취했는데
深閨人獨眠 깊은 규방의 처녀 홀로 잠들었네.
積恨顏將老 한이 쌓이면 꽃 같은 얼굴도 늙으리니
相思心欲燃 애타는 그 마음을 언제나 풀려나.
幾回明月夜 그 몇 번이던가 달 밝은 밤에
飛夢到郎邊 꿈결에 님 곁으로 날아간 것이.
한편, 노환공은 즉위했을 때 이미 나이가 많았으나 아직 부인이 없었다. 대부 장손달(臧孫達)이 아뢰었다.
“옛날에 국군(國君)은 15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주군께서는 아직도 안주인의 자리가 비어 있으니, 훗날 누가 군위를 잇겠습니까? 이는 종묘사직을 중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공자 휘가 말했다.
“신이 듣건대, 제후(齊侯)가 딸 문강을 정나라 세자 홀에게 출가시키려고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합니다. 주군께서는 제나라에 청혼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노환공이 말했다.
“좋소.”
노환공은 공자 휘를 제나라로 보내 청혼하게 하였다. 제희공은 문강이 병중이므로 시기를 늦추어 달라고 청하였다. 궁인이 노후가 청혼했다는 기쁜 소식을 문강에게 알리자, 문강은 본래 혼기를 넘겨 생긴 상사병이었기 때문에 그 소식을 듣자 마음이 편해져 병세가 점점 좋아졌다.
제·노·정 세 나라 군후가 송장공의 일로 직(稷) 땅에서 회동했을 때, 노환공은 제희공에게 직접 청혼을 하였다. 제희공은 다음 해로 미루었다. 노환공 3년에, 노환공은 영(嬴) 땅으로 가서 제희공과 회견하였는데, 거기서 또 청혼하였다. 제희공은 그 은근한 마음에 감동하여 마침내 승낙하였다.
노환공은 영 땅에서 납폐(納幣)의 예를 행하였는데, 통상적인 경우보다 예물이 더욱 많았다. 제희공은 크게 기뻐하면서, 9월에 문강을 노나라로 보내 결혼시키기로 약정하였다. 노환공은 공자 휘를 제나라로 보내 문강을 맞이해 오게 하였다.
제나라 세자 제아는 문강이 타국으로 출가한다는 말을 듣고, 예전의 그 미친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다시 싹터, 궁인을 시켜 문강에게 꽃을 보내면서 시 한 수를 끼워 넣었다.
桃有華 복숭아나무에 꽃이 피었는데
燦燦其霞 그 찬란함이 노을 같구나.
當戶不折 창가에 피었으되 꺾지 못하고
飄而為苴 회오리바람이 불어 시들고 마는구나.
吁嗟兮 아아! 안타깝도다.
復吁嗟 안타깝도다!
문강은 제아의 뜻을 이해하고 또한 시를 보내 화답하였다.
桃有英 복숭아나무의 꽃봉오리
燁燁其靈 영롱하게 빛나는구나.
今茲不折 올핸 꺾지 못하더라도
詎無來春 내년 봄엔 다시 피지 않으리오.
叮嚀兮 정녕 잊지 마세요.
復叮嚀 잊지 마세요.
답시를 읽어본 제아는 문강이 아직도 자기에게 마음이 있음을 알고, 사모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얼마 후, 노나라에서 공자 휘가 문강을 맞이하러 왔다. 제희공은 사랑하는 딸을 친히 노나라까지 데려다주려고 하였다. 제아는 그 소식을 듣고, 부군에게 청했다.
“누이가 노후에게 시집간다고 들었는데, 제나라와 노나라는 대대로 사이가 좋았으니, 이는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다만 노후가 친히 맞이하러 오지 않았으니, 반드시 가족이 직접 데려다주어야 합니다. 부친께서는 국사에 매인 몸이라 멀리 가기 불편하시니, 소자가 대신 가고자 합니다.”
희공이 말했다.
“내가 이미 친히 데려다주겠다고 승낙했는데, 어찌 신의를 잃을 수 있겠느냐?”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보고가 들어왔다.
“노후가 환읍(讙邑)에 수레를 멈추고 친히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희공이 말했다.
“노나라는 예의지국(禮義之國)이라 중도에 맞이하여, 내가 국경을 넘어가는 수고를 덜어주는구나. 내가 가지 않을 수 없다.”
제아는 아무 말 없이 물러났다. 문강도 마음속으로 뭔가 잃어버린 듯하였다.
때는 가을 9월 초순으로, 혼인날이 임박하였다. 문강은 육궁(六宮)의 비빈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오빠 제아에게도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동궁으로 갔다. 제아는 술상을 차려놓고 송별연을 열었는데, 네 개의 눈이 서로 바라보면서 떼지를 못했다. 하지만 원비(元妃)가 그 자리에 있었고, 또 희공이 궁인을 보내 지키게 하였기 때문에, 서로 말도 나누지 못하고 몰래 탄식만 할 뿐이었다.
작별할 때가 되자, 제아는 수레에 다가가 문강에게 말했다.
“누이는 조심하고, ‘정녕’이라고 한 말을 잊지 마라.”
문강이 대답했다.
“오라버니도 보중하십시오. 만날 일이 있을 겁니다.”
[제와와 문강은 훗날 어떻게 될까?]
제희공은 제아에게 나라를 지키고 있으라고 명하고, 친히 문강을 데리고 환읍으로 가서 노환공을 만났다. 노환공은 장인을 대하는 예로 연회를 열어 환대하였다. 제희공을 따라온 사람들에게도 후한 선물을 하였다. 제희공은 돌아가고, 노환공은 문강을 데리고 본국으로 가서 혼례를 치렀다.
제나라는 대국이고 또 문강이 절세미녀였기 때문에, 노환공은 문강을 애지중지하였다. 사흘째 되는 날 종묘에 가서 고하고, 대부의 부인들도 모두 와서 군부인(君夫人)을 알현하였다. 제희공은 아우 이중년을 노나라에 보내 문강의 안부를 묻게 하였다. 이로부터 제나라와 노나라는 더욱 친밀해졌다.
어떤 이름 없는 사람이 문강의 출가한 일에 대해 시를 읊었다.
從來男女慎嫌微 예로부터 남녀는 작은 일도 삼가 피했는데
兄妹如何不隔離 오누이를 어찌하여 떼놓지 않았던가?
只為臨歧言保重 작별하면서 보중하라 이르더니
致令他日玷中闈 훗날 내궁을 더럽히기에 이르렀도다.
한편, 주환왕은 정백이 왕명을 거짓으로 내세워 송나라를 토벌했다는 것을 듣고 크게 노하여, 괵공(虢公) 임보(林父)에게 조정의 정권을 혼자 쥐게 하고 정백을 기용하지 않았다. 정장공은 그 소식을 듣고 환왕에게 원한을 품고, 5년 동안 입조하지 않았다.
[제15회에, 주환왕은 괵공 기보를 우경사로 임명하여 국정을 맡기고 정백은 허명만 있는 좌경사에 임명하였다고 했었다. 임보가 기보의 뒤를 이어 괵공이 되었고, 정장공은 명목상의 좌경사 직도 삭탈 당한 것이다.]
환왕이 말했다.
“정나라 오생은 아주 무례하구나! 그를 토벌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장차 그를 본받게 될 것이다. 짐이 친히 육군(六軍)을 거느리고 가서 그 죄를 물을 것이다.”
[‘오생’은 정장공의 이름이다. 주나라 제도에 의하면, 제후는 3군을 거느리고, 천자는 6군을 거느렸다. 1군은 보통 12,500명이었다. 하지만 이때는 주왕실이 쇠약했기 때문에 ‘6군’이라고는 했지만, 실제 병력의 숫자는 훨씬 적었을 것이다.]
괵공 임보가 간했다.
“정나라는 대대로 경사의 직을 수행해 온 공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의 권력을 박탈했기 때문에 입조하지 않는 것입니다. 조칙을 내려 그를 부르시는 것이 마땅하며, 친히 가심으로써 천자의 권위를 더럽히실 필요는 없습니다.”
환왕은 화를 내면서 안색이 변하며 말했다.
“오생이 짐을 속인 것은 한번만이 아니오. 짐은 맹세코 오생과 양립하지 않을 것이오!”
환왕은 채·위·陳 3국에 명하여, 함께 군대를 일으켜 정나라를 토벌하라고 하였다.
그때 陳侯 포(鮑)가 훙거하자, 그 아우 공자 타(佗)가 세자 면(免)을 죽이고 스스로 군위에 올라 포의 시호를 환공(桓公)이라 하였다. 진나라 사람들은 공자 타에게 불복하여 뿔뿔이 흩어졌다.
주환왕의 사신이 와서 군대를 소집하라고 하자, 공자 타는 이제 막 즉위하였지만, 감히 왕명을 어길 수는 없었다. 병거와 군사들을 모아, 대부 백원제(伯爰諸)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정나라로 출발하게 하였다. 채나라와 위나라도 병력을 파견하였다.
환왕은 괵공 임보를 우군 장수로 삼아 채군과 위군을 거느리게 하고, 주공 흑견을 좌군 장수로 삼아 진군을 거느리게 하였다. 환왕 자신은 대군을 거느리고 중군이 되어, 좌우에서 접응하게 하였다.
첫댓글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골드훅(운영위원) 님!
수고가 많으십니다
고맙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이렇게 방문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