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들녘을 걸어
전날 김해 상동 낙동강 강변으로 트레킹을 다녀온 일월 중순 화요일이다. 잠을 깬 새벽에 생활 속 글과 함께 ‘한겨울 용당나루’ 시조를 한 수 남겼다. “건너편 빤히 보인 용신제 가야진사 / 고매가 여러 그루 여차리 용당나루 / 강심은 검푸른 물결 일렁이며 흐른다 // 한겨울 소한 지나 대한을 앞둔 절기 / 영하권 날씨에도 꽃눈은 몽글해져 / 다가올 입춘 무렵은 매향으로 번진다.”
김해 상동 용당은 양산 원동 가야진사를 마주한 나루터로 매화공원이 꾸며젔다. 강 건너는 원동 순매원이 위치해 섬진강 강가 청매실 농원처럼 매화로 알려진 고장이다. 원동은 자동찻길은 불편해도 경부선 무궁화호가 운행되는 간이역이 있어 접근성이 나은 편이라 봄날이면 상춘객이 넘친다. 반면 김해 상동 여차리는 육로로도 오지에 해당해 외부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용당나루 매화공원을 둘러보면서 자잘한 몽우리가 진 꽃망울에서 한 달 뒤 번져날 매화 향기를 떠올린 발걸음이었다. 최저 기온은 여전히 빙점 아래로 내려간 화요일 아침 식후 창원중앙역으로 나가 김해 한림정역으로 가는 열차표를 구했다. 이른 아침 순천을 출발 진주를 거쳐온 열차는 부전으로 가는데 정한 시각 도착해 진례터널을 지나 진영역에 멈췄다가 한림정역에서 내렸다.
역사는 덩그렇게 지어져도 이용 승객이 적어 역무원이 근무하지 않은 무인역으로 운영되는 한림정역이다. 내린 승객이라고는 혼자 썰렁한 역사를 빠져나가 역전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받아 손에 쥐고 신동마을에서 들녘으로 나갔다. 근래 부분 개통된 60번 국도는 경전선 철길과 화포천 습지에 높다란 주탑을 세워 쇠줄로 팽팽히 당긴 화포대교가 놓여 터널로 진입했다.
새로 뚫은 자동찻길 굴다리를 지난 들녘은 일모작과 이모작이 혼재했다. 추수를 끝내고 비워둔 논으로 어디선가 잠들고 날이 밝아와 먹이활동을 나선 기러기들이 떼를 지어 날았다. 가까이 화포천 습지가 있고 조금 멀게는 주남저수지도 있는데 밤이면 그곳에서 잠들고 날이 새면 들녘으로 나오는 겨울 철새들이다. 오리와 고니는 수면에서 놀아도 기러기는 논에서 먹이를 찾았다.
머리 위로 날아가는 기러기를 폰 카메라 앵글에 담고 들녘 농로를 따라 걸었다. 양파와 마늘을 심은 이모작 경작지는 파릇한 싹이 추위에 얼어 시들기는 해도 날이 풀리면 생기를 되찾을 테다. 들녘에서 벼농사 이후 겨울을 넘기는 작물로 예전에는 보리도 심었으나 소비량이 적어 경작지가 줄어 보기가 드문 편이다. 대신 비닐하우스에서 알로에나 파프리카 같은 특용작물을 길렀다.
시전과 신촌을 지난 강둑으로 오르자 술뫼생태공원은 색이 바랜 갈대와 물억새가 평원처럼 펼쳐졌다. 한림배수장에서 밀양강이 합류해 삼랑진으로 빠져나간 강심으로는 경전선 철교가 가로질러 지났다. 느티나무가 줄지은 강둑에서 시산마을 지인 농막을 찾아갔다. 주말은 부산 자택에 머물다 주중은 농막에서 보내는 지인은 간밤에도 멋진 강변 풍광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잘 봤다.
지인은 칠십대 중반임에도 젊은이 못지않게 예술성 있는 영상 편집으로 전원생활을 동경하는 구독자를 대리 만족시켰다. 거실로 들어 따뜻한 결명자차를 들면서 한담을 나누고 겨울 텃밭에 자라는 작물을 둘러보고 유등으로 향했다. 시산공원 파크골프장에는 동호인들이 공을 굴리느라 집중했다. 가동마을에서 유등에 닿아 36번 마을버스로 우암리에서 가술리를 거쳐 모산리로 갔다.
사계절 비닐하우스에서 한겨울 다다기오이를 키우는 농장을 찾아 주인장과 인사를 나누었다. 온실 안에서는 베트남 부녀들이 수확한 오이를 상자에 채워 포장하는 손길이 분주했다. 바깥에 둔 하품으로 처진 오이는 간밤 추위에 상했으나 금방 선별에서 제외한 오이는 봉지에 채워 담았다. 이전에도 몇 차례 챙겨간 오이를 주변 지기들과도 나누어 먹음에 주인한테 고마움을 표했다. 25.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