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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8월 26일자에 안병직의 주장을 게재한 기사가 올라왔다. 제목은 '뉴라이트가 매국노? 친일 청산했다는 북한의 오늘을 보라'이다.
안병직은 소련의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대두한 친북주의, 소위 주사파가 판치는 것을 보고 뉴라이트의 주장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고 조선일보는 이를 기사화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병직은 매우 협소한 관점에서 일방적인 주장을 하고 있었다. 그의 주장은 자신의 사상적 전환을 합리화하기위한 변명에 불과했다. 안병직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학자나 사상가가 아니라 독일 사회주의 운동사에서 볼 수 있는 카우츠키나 베른슈타인과 같은 현실타협주의자에 불과했다. 물론 안병직을 카우츠키나 베른슈타인과 같은 수준의 인물과 비교하는 것은 아니다.
안병직이 무슨 말을 했는지 관심이 없어서 그의 생각 전체를 잘 모른다. 내가 그를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인터뷰 내용에 불과하다. 인터뷰가 매우 짧은 단편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적수준은 주체사상의 강철서신 작가인 김영환 정도의 안티테제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안병직은 원래 사회주의 성향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소련이 붕괴하자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에 충격을 받고 180도 전향하여 그토록 부정하고 극복하고자 했던 극우적 자본주의자가 된 것으로 보인다. 제대로 된 사상가라면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지향하는 이념적 지향을 포기하기 어렵다. 사상가의 이념적 지향은 자신의 정체성이기 때문이고 삶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안병직은 사회주의가 몰락하자 자본주의자로 전향했다. 그는 자신이 극우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의 주장은 전형적인 극우다. 뉴라이트가 극우가 아니라면 그가 생각하는 극우는 무엇인가? 뉴라이트를 극우라고 하는 것은 뉴라이트들이 움직이고 있는 윤석열 정권이 전형적인 극우적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안병직은 뉴라이트를 친북주의에 대한 반발이라고 했다. 사실 제대로된 학자라면 친북주의와 주체사상을 반대하는 것을 학문의 지향으로 삼기가 어렵다. 그가 친일을 주장하는 이유로 북한이 친일파 척결을 했지만 잘살지 못했지 않느냐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북한이 잘살면 친일파 척결이 옳은 일이고 북한이 잘 살지 못하면 친일파 척결이 틀인 일이 되는가? 친일파 척결은 북한이 잘살거나 못사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1970년대 중반 북한은 남한보다 훨씬 잘 살았다. 그럼 그때 당시 북한의 친일파 척결을 옳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1980년대를 지나면서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것은 사회주의 진영 전체의 경제붕괴와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북한이 1980년대 이후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것은 친일파 척결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 안병직이 이런 사실을 모를리가 없다. 그는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뉴라이트의 친일과 친미를 문제삼는 것은 친일과 친미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뉴라이트는 일제식민지 시대 당시 전형적인 매국노의 행태와 전혀 다를 것이 없다.
오늘날 한국에서 살고 있는 합리적인 사람 그 누구도 무조건적인 반일과 반미를 주장하지 않는다고 하겠다. 일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국가를 발전시키고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국가를 발전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본 그리고 미국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국가의 발전을 위한 것이지 친일 친미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뉴라이트를 비판하는 것은 그들이 한국의 이익과 전혀 상관없이 친일과 친미적인 정책 그 자체를 선이라고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평가를 받는 법이다. 안병직은 독립투사를 받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말뿐이다. 문제는 실제 뉴라이트들이 주도하는 윤석열 정권하에서 독립운동가들은 홀대를 받고 있다. 육사에서 홍범도 장군 동상을 철거한 것도 뉴라이트의 행동이 안병직의 말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은 안병직이 뉴라이트가 원래 사회주의 운동을 했기에 사회주의적 평등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는데서 절정을 이룬다. 김문수를 보라. 그가 사회주의적 평등의 가치를 인정하는가? 윤석열 정권이 최소한의 서민의 삶에 대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가? 뉴라이트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수정자본주의적 범위를 뛰어 넘어 극우적 자본주의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뉴라이트가 생존할 수 있는 사상적 공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안병직의 식민지 근대화론은 전제가 잘못된 주장이다. 당시 대한제국이 일본에 합병되지 않았다면 대한제국은 근대화를 위한 그 어떠한 진보와 전진도 이루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이 성립되어야 한다. 그가 말하는 호적제도도 그렇다. 일본도 근대화를 통해서 호적이나 다른 제도를 도입했을 것이다. 대한제국도 스스로 근대화의 길을 걸어갔다면 오히려 일본 식민지시대보다 훨씬 발전된 시스템을 갖췄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한국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식민지 경험 때문이 아니다. 한국은 식민지를 통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특히 인적자원의 개발이라는 점에서는 치명적 문제에 봉착했다. 대부분의 식민지 조선인들은 국가를 경영할 수 있는 최상급직위로 올라갈 수 없었다.
일제가 남겨놓은 산업시설도 한국전쟁을 통해서 완전히 파괴되었다. 한국을 오늘날 처럼 발전시킨 것은 일제의 식민통치가 아니다. 오히려 한국전쟁을 통해서 과거의 잔재가 깡그리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안병직이 식민지 근대화론이 아니라 한국전쟁 근대화론을 주장했다면 그것이 오히려 타당하거나 합리적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인들이 위대한 것은 일제시대를 통해 최악의 수탈을 당했고 한국전쟁으로 전국토가 완전하게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피와 땀으로 다시 건설했기 때문이다.
안병직은 뉴라이트들이 이승만과 박정희를 같은 반열로 생각하는 것처럼 위선을 부리고 있다. 뉴라이트는 박정희가 아니라 이승만을 숭배하고 있다. 뉴라이트는 박정희에 대한 태도와 이승만에 대한 태도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뉴라이트들이 이승만을 숭배하고 재평가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뉴라이트가 이승만을 우상화하는 것은 그가 친일파를 보호했기 때문이며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이승만의 미국에 대한 태도를 그의 재평가 이유로 생각하는 뉴라이트의 주장은 현실적이지 않다. 당시에 남한에 있던 그 어떤 정치인도 미국과 나쁜관계를 맺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뉴라이트가 이승만을 재평가하려는 이유의 핵심은 친일파 옹호에 불과하다. 이승만이 독재를 했고 그리하여 4.19 혁명에서 수없이 많은 생명을 죽인 것은 그 어떤 죄로도 씻을 수 없다. 이승만이 4.19혁명당시 사람을 죽인 것은 전두환이 5.18 당시 사람을 죽인 것보다 100배는 더 비판받아야 한다.
안병직은 사실과 인식의 차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학자는 사실을 나열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학자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를 그리고 세상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작업하는 사람이다. 사실은 완전하지 않다. 사실과 사실간에는 연속성도 떨어진다. 결국은 어떻게 이해하고 판단하고 해석하는가가 중요하다.
안병직은 사실과 가치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는 사실아 아니라 가치를 주장하고 있다. 그가 지향하는 가치는 극우이고 친일이고 친미지상주의인 것이다. 그의 인터뷰를 읽어 보면서 그가 얼마나 얄팍한 사고의 소유자인지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