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1일 주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전례력으로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이다. 축일명대로,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임금)이심을 기리는 날이다. 예수님께서는 정치권력으로 백성을 억누르는 임금이 아니라, 당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하시며 백성을 섬기시는 메시아의 모습을 실현하셨다. 스스로 낮추심으로써 높아지신 것이다. 1925년 비오 11세 교황이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정하였다.
한국 천주교회는 1985년부터 해마다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간(올해는 오늘부터 11월 28일까지)을 ‘성서 주간’으로 정하여, 신자들이 일상생활 중에 성경을 더욱 가까이하며 자주 읽고 묵상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하느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등불이기 때문이다.
▦ 오늘은 연중 마지막 주일로,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우리가 임금님이신 그분의 사제직에 참여하게 되었으니, 하느님께서는 우리 정신을 밝게 비추시어, 섬기는 것이 다스리는 것임을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세상 모든 군주의 임금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형제들에게 삶으로 증언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합시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33ㄴ-37
그때에 빌라도가 예수님께 33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하고 물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네 생각으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너에게 말해 준 것이냐?” 하고 되물으셨다.
35 “나야 유다인이 아니잖소? 당신의 동족과 수석 사제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긴 것이오.
당신은 무슨 일을 저질렀소?” 하고 빌라도가 다시 물었다.
36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37 빌라도가 “아무튼 당신이 임금이라는 말 아니오?”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제37회 성서 주간(2021년 11월 21-27일) 담화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중에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라는 평화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세 차례에 걸쳐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21.26)라고 평화의 인사를 건네시고, 성령의 숨을 불어넣어 주십니다(요한 20,22-23 참조).
평화는 정의와 함께 성경에서 하느님 나라를 표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개념입니다. 평화는 하느님의 창조의 뜻이 모든 존재에게 온전히 회복되고 보존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닮게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래서 인간이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처럼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고,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똑같이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아담과 하와가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도 자유로울 수 있는 이 관계가 평화입니다. 민족, 재산, 명예, 직위 등 그 어떤 조건에서도 모든 이가 하느님을 닮은 동등한 형제로 서로 존중하고,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서 차별과 폭력과 같은 부끄러움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은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누리던 평화가 파괴되었습니다. 서로의 알몸을 보여 주기가 부끄러워 몸을 가리고, 하느님에게서도 숨습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창세 3,5) 되리라는 뱀의 유혹은 스스로 모든 것을 지배하여 하느님 역할을 하려는 유혹입니다. 곧 힘을 소유하고 싶고, 그 힘을 바탕으로 다른 이들과 구별되어 우위에 서고 싶은 유혹입니다. 이것이 모든 죄악의 뿌리입니다.
그렇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의 숨에는 죽음을 이긴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힘을 제자들에게 불어넣으시어 본래 하느님께서 원하셨던 인간의 모습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렇게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당신 자신을 십자가상 속죄 제물로 바치심으로써 먼저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키시고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아들이 하나인 것처럼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고, 우리 모두 하느님을 아버지로 하는 자녀들임을 일깨우시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주님의 기도 안에 사람들 사이의 일치와 평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라고 힘주어 말하며, 주님께서 당신 몸으로 사람들 사이의 장벽을 허무셨다고 선언합니다(에페 2,14 참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세계적 유행이 시작된 지 이제 2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 감염병에 대처하는 세상의 여러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성숙되지 않은 자유의 주장과 힘 있는 이들이 백신을 먼저 독점하려는 움직임도 충분히 보았습니다. 이는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전히 선진국으로 자부하는 나라 안에서 인종 차별의 행위들이 자행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이제 함께 사는 사회, 그리고 그러한 지구촌을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성찰도 하였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나면 단순히 이전 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돌보며 함께 가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의식도 생겼습니다. 이러한 깨우침과 의식들이 차별을 없애고 서로의 간격을 좁히면서 주님께서 원하시고 이끌어 주시는 평화를 실현하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당장 우리 주변에 관심과 위로와 도움이 필요한 형제들을 살피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평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과 다른 피조물 사이에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맨 마지막에 당신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시며, 지금까지 창조하신 모든 것을 지배하고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지배하고 다스리라는 말씀은 양을 돌보는 목자의 행위를 가리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자유의 영광을 누리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신비한 예언을 합니다(로마 8,19-21 참조).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듯이, 사람은 대자연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을 구원할 사명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착한 목자의 모습은, 우리가 전례에서도 자주 노래하는 시편 23편과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1)라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돈벌이를 위한 마구잡이 사냥으로 사라져 가는 동물들, 특히 생태계의 파괴는 우리 인간이 피조물에 대한 착한 목자로서 그 의무를 얼마나 무시하고 살아왔는지 똑똑히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그 파괴의 대가를 받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잘 살기 위해 동식물과 대자연을 돌보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착한 목자 주님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생명을 온전히 누리는 데에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생태계 회복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급박한 과제임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이를 위한 공동의 정책들을 찾아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실천되고 있지 않습니다. 신자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모든 가정에서는 물론 본당 공동체와 교회 전체에서 긴급히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우리의 평화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평화의 사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파견되신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평화의 사도로 파견되었습니다. 평화는 모든 존재가 창조된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고 서로 간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것, 곧 하느님의 창조 질서가 우리 가운데 실현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본래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고, 예수님을 통하여 또다시 그 모습을 회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하찮게 여겨지는 사람 없이 모두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피조물들과 생태계도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대리자인 우리 인간을 통하여 존중받아야 합니다. 이웃을 향하여, 그리고 대자연을 향하여 우리의 이 거룩한 임무를 다하며 기쁘게 살아갑시다. 지금이 실천할 때입니다.
2021년 11월 21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위원장 신호철 비오 주교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께서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셨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5ㄱㄷ-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5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시며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를 죄에서 풀어 주셨고,
6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7 보십시오, 그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모든 눈이 그분을 볼 것입니다.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고
땅의 모든 민족들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8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축일 11월 21일 성 젤라시오 1세 (Gelasius I)
신분 : 교황
활동 연도 : +496년
같은 이름 : 겔라시오, 겔라시우스, 젤라시우스
아프리카 사람인 발레리우스의 아들로 로마(Roma)에서 태어난 성 젤라시우스(또는 젤라시오)는 로마 교회의 대부제(Archidiaconus)가 되었고, 492년 3월 1일 교황 성 펠릭스 3세(Felix III, 3월 1일)를 계승하여 교황으로 뽑혔다. 성덕과 애덕, 정의와 학덕으로 명성을 떨쳤던 성 젤라시우스 교황은 그리스도단성설을 지지하는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에우페미우스(Euphemius)와의 문제로 곤경에 빠졌는데, 이 사건은 전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인 아카키우스(Acacius)에 의해 확대된 이단으로 동방과 서방 교회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불과 4년 반 가량 재위한 그는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였고, 로마 주교좌의 수위권을 보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속 권력이 영적인 권능 아래 있어야 함을 강력하게 역설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 "젤라시우스 교령집"(Decretum Gelasianum)과 "젤라시우스 미사 전례 기도집"(Sacramentarium Gelasianum) 등이 전해오는데, 현대 학자들에 의하면 후대에 저술되었거나 성 젤라시우스 교황의 것으로 잘못 이해되어 이름 붙여진 것이라 한다. 그의 시신은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젤라시오 1세 (Gelasius I)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을 가득히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