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동 도서관으로 나가
을사년 새해를 맞아 보름이 지나는 일월 중순 수요일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이즈음이 겨울 한복판으로 추위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때다. 소한을 넘겼고 대한을 엿새 앞두었다. 청소년기 학창 시절 교과서에 우리나라 겨울은 삼한사온이라고 나왔다. 겨울이면 극동에서는 시베리아 한랭 기단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데 팽창기 사흘은 춥고 수축기 나흘은 따뜻하다.
해가 바뀌어도 연일 우리 지역 최저 기온은 빙점에 머무는 아침이다. 새해 첫날 제1 수산교에서 무척산을 넘어와 낙동강 강심으로 비친 일출을 봤고, 날씨가 추워 도서관을 찾은 날과 야외로 트레킹을 나선 날이 반반 정도다. 지난주 대학 동기 내외들과 연 2회 갖는 정기 모임으로 마금산 온천장에서 하룻밤 보내고 이튿날은 북부리 팽나무와 봉하마을 노 대통령 묘역을 찾았다.
내가 찾는 도서관 열람실은 세 군데다. 근교 농촌인 대산 마을도서관과 무동 최윤덕도서관과 함께 교육단지 창원도서관이다. 일전에 펼친 책으로 조선 후기 풍속화가 김홍도 평전과 신라 승려 혜초를 다룬 역사소설을 읽었다. 미술평론가 정범모가 쓴 ‘김홍도 새로움’에서 저자를 가이드 삼아 금강산 화첩 기행에 동행했고 김탁환 소설가와는 혜초와 함께 인도를 순례길을 다녀왔다.
지난해 연말 초등학교 남녀 동기 15명이 장가계를 다녀왔는데 나는 가질 못했다. 고산과 벼랑 잔도로 된 여로라 고소 공포를 심하게 느껴 마음으로만 그려보고 말았다. 금강산도 한때 남북 화해 분위기에 답사길이 열렸으나 지금은 오갈 수 없는 처지다. 그러함에도 도서관 열람실에서 펼친 서책에서는 작가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머나먼 인도 여정이나 금강산도 자유로이 다녀왔다.
지난주 대학 동기들과 일정을 같이 보낸 후 주말은 대산 낙동강 강가 용화산 북향 언저리를 다녀오고 도서관에서 하루 보냈다. 그리고 그제 김해 상동 매리에서 감로로 가는 강변길을 걸었고 어제는 한림정으로 나가 들녘과 강둑을 걸어 대산 모산 비닐하우스단지에서 하품 오이를 챙겨왔다. 올겨울 추위로 막바지에 해당하는 영하권으로 내려간 수요일 행선지는 도서관으로 정했다.
평소와 같은 등교 시각에 현관을 나서 정류소로 가는 길에 빵을 사러 제과점에 들렀다. 배낭을 짊어진 내 행색을 본 주인이 등산 가는 길이냐고 물어와 도서관 가는 길이라 했다. 원이대로에서 북면으로 가는 17번 버스를 타고 소답동에서 천주암 아래를 지나 굴현고개를 넘으니 창밖은 눈에 익숙한 풍경이었다. 봄날이면 어느 기슭 무슨 산나물이 나는지 훤해 지도로 그려도 된다.
감계 신도시를 거쳐 동전 산업단지에서 무동으로 들어 아파트단지 산기슭의 최윤덕도서관을 찾았다. 자유 학습실은 8시부터 문을 열고 열람실은 9시부터 업무를 시작해 그 시각에 맞춰 입실했다. 아침 이른 때 열람자 없어 호젓하고 아늑한 공간이라 마음에 들었다. 집에서 가져간 이종목의 매화를 소개한 책이 있었으나 인문학과 자연과학 서가에 읽고자 하는 책을 네 권 골랐다.
열람석에서 곽정식이 쓴 ‘조선생’을 먼저 펼쳤다. 저자는 정치학과 경영학을 공부해 기업과 지방정부에서 핵심 자리를 거쳐 유엔 산하 기구도 근무한 이력을 가진 이였다. 학부 전공으로는 인문학인데도 현역 은퇴 후 벌레에 관한 책으로 ‘충선생’을 펴냈는데 그 책은 읽은 바 있다. 저자는 생물학이 비전문가이면서도 새에 대해서 세계 곳곳을 누빈 그의 여정과 박식함에 매료되었다.
때가 되어 아래층 카페로 내려가 시니어 일자리에 맡은 임무를 다하는 아주머니급 할머니가 내려준 커피를 받아 빵조각으로 한 끼 때웠다. 다시 열람실로 돌아온 오후는 아파트단지 초등생과 젊은 엄마들이 몇 보였다. 오전에 남긴 부분을 완독하니 해거름이라 나머지 책은 펼칠 시간이 나질 않았다. 최재천의 문명 비평 ‘감히, 아름다움’과 지구 온난화에 관한 책은 제목만 봐두었다. 25.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