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찬(讚)을 읽다
대한을 나흘 앞둔 일월 중순 목요일이다. 영하권이긴 해도 아침 최저가 4도에 이르러 그렇게 매섭게 느껴지는 강추위는 아니다.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이 가장 낮은 때가 소한과 대한 이 무렵이다. 앞으로 빙점 아래로 내려갈 날이 서너 차례 더 있겠지만 올겨울 추위가 정점에 이른 때라 여겨진다. 날씨가 추우면 도서관에서 보내려는데 기온이 오르면 그 명분이 사라질까 머쓱하다.
아침 식후에 자연 학교 행선지는 교육단지 도서관으로 정해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난 외동반림로에 줄지어 선 메타스퀘이아 가로수는 새털과 같은 낙엽이 거의 졌다. 메타스퀘이아는 낙엽수라도 바늘잎인데 뒤늦게 단풍이 물들어 바람이 불 때마다 시나브로 떨어져 한겨울에 나목이 되는 특성을 보였다. 봄에 잎이 돋는 속도도 다른 가로수보다 늦게 연초록으로 물들었다.
보도를 걸어가다 반송 소하천 냇바닥을 내려다보니 웅덩이에 먹이활동을 하는 새들이 보였다. 번식기가 아님에도 금실을 과시하는 흰뺨검둥오리 한 쌍이 주둥이를 밀고 다니며 먹잇감을 찾았다. 일부 흰뺨검둥오리는 봄에도 북녘으로 가질 않고 우리 고장에 머물며 새끼를 쳐 식구를 늘리기도 했다. 여름 철새 쇠백로는 가을에 남녘으로 내려가지 않고 겨울 추위를 버티는 녀석도 있다.
도심 속 반송 소하천은 한겨울이라도 물이 고인 웅덩이가 얼지 않으니 새들이 날아와 놀았다. 지난번은 몸집이 통통한 해오라기 한 마리가 추위에 떨고 있었는데 먹이를 찾아 어디로 떠났는지 보이질 않았다. 대신 체구가 적기는 해도 직박구리만한 잿빛 깃털의 새 한 쌍 날아와 먹이를 찾아 놀았다. 무슨 새인지 궁금해 사진으로 찍어 새 박사한테 여쭈니 백할미새라는 회신이 왔다.
아침 등굣길에서 반송 소하천에서 노는 새들만으로도 자연학교 오전 학습량을 마쳤다고 여겨도 될 듯하다. 해가 솟은 대암산 방향에서 뜬 아침 햇살이 비치는 원이대로를 건너 창원 레포츠파크 동문 앞을 지났다. 삼사 년 걸려 민자 사업으로 시공 중인 대상공원에 들어설 구조물이 외양을 드러냈다. 산마루에는 높다란 전망대가 세워지고 산기슭에는 방문자 센터에 지붕이 덮어졌다.
폴리텍대학 구내를 지난 교육단지 전문계 공업고등학교 곁 도서관으로 향했다. 사서 직원들이 차를 몰아 출근한 이들과 같이 열람실로 올랐다. 지정석이 되다시피 한 전망이 트인 2층 창가 열람석을 차지했다. 일전 대출 도서로 집으로 가져갔던 이종묵의 ‘알고 보면 반할 매화’를 펼쳤다. 저자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서울대로 옮겨 재직하는 국문과 교수인데 책을 통해 만난 사이다.
앞서 읽은 그의 책은 ‘우리 한시를 읽다’였다. 이 교수는 국문학자로 한시에 해박하고 글솜씨도 좋아 어려운 한시를 쉽게 잘 풀어주었다. 신라 적 최치원의 ‘가을밤 비 내리는데’에서부터 구한말 우국지사 황현의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역대 명사의 한시를 한 권에서 접했던 묘미에 빠졌다. 한양대 정민 교수도 한시를 맛깔스럽게 잘 푼다만 그에 못지않은 글 향기가 느껴지는 분이다.
‘매화’에 대한 찬(讚)과 송(頌)을 담은 이 책 1부 ‘매화를 키우는 일’에서는 설중매와 접목으로 키운 매화들이 소개되었다. 조선시대 원예학의 고전인 강희안의 ‘양화소록’은 당연히 언급되었다. 2부 ‘매화를 사랑한 사람들’에서는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아내가 보내준 치마폭에 그린 매조도와 시는 가슴 뭉클한 사연이다. 마지막은 ‘조선의 명품 매화’에 유서 깊은 단속사지 정당매도 나왔다.
때가 되어 휴게실로 건너가 간편식으로 한 끼 때우고 북 카페에서 커피 향을 맡으면서 아침 등굣길에 본 ‘백할미새’를 글감으로 시조를 한 수 남겼다. “녀석들 서식지가 사할린 캄차카서 / 남에서 따뜻하게 겨울을 보내려고 / 반송천 냇바닥 물가 먹이 찾아 노닌다 // 봄이면 본향으로 왔던 길 되돌아가 / 새 둥지 알을 놓아 새끼 쳐 키우려고 / 암수는 서로 눈 맞아 밀월여행 즐긴다” 25.01.16